여자나 꼬시던 녀석이 슈퍼히어로?
  • 허남웅│영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3.05.1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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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3> 주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영화와 닮은 인생사 고백

<아이언맨3>는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1999년을 회상하는 내레이션으로 문을 연다. 당시 그는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하며 미모의 여성과 원나잇 스탠드 중이었다. 밖에서는 과학자 알드리치 킬리언(가이 피어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토니의 명석한 두뇌와 막대한 부의 도움을 얻어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재생 기술을 연구하고 싶었던 것. 하지만 토니에겐 쾌락이 우선이었고, 킬리언은 약속을 거절당하고 만다. 킬리언은 그때의 분노와 치욕을 잊지 못한 채 24년을 보냈고, 지금 강력한 악당이 되어 토니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계속된 말썽으로 방송에서 퇴출당하기도

토니 스타크를 연기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슈퍼히어로물 역사상 배역과 배우의 싱크로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아이언맨’ 시리즈로 슈퍼스타가 되기 이전 스캔들 메이커로 더 유명했다. <아이언맨3>에서처럼 1999년으로 한번 돌아가보자. 1999년 6월22일자 미국 연예 정보지들의 헤드라인은 이렇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마약 문제로 또다시 철창행!’ 1996년 처음으로 갱생원에 수감된 이후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된 말썽이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근신 기간에 갱생원에서 싸움을 벌여 교도소에 수감되는가 하면, 풀려나기가 무섭게 마약을 복용하고 운전하다가 단속에 걸려 거액의 벌금을 물기도 했다.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았던 그는 급기야 당시 가장 잘나가던 TV 드라마 <앨리 맥빌>(1997~2002년)에서 퇴출되는 수모를 겪었다.

<채플린>(1992년)에서 찰리 채플린에 빙의한 듯한 연기로 각종 시상식 남우주연상을 휩쓸던 시절은 대중에게 이미 잊힌 상태였다. 그는 더는 배우로 존재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굿나잇 앤 굿럭>(2005년),  <조디악>(2007년)을 통해 조연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대신 착실한 연기로 재기를 모색했다.

마침 찾아온 ‘아이언맨’ 시리즈는 그의 배우 경력을 완전한 갱생으로 이끌 작품이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네 살 때 아버지의 영화에 출연한 것처럼 극 중 토니는 군수사업체를 유산으로 물려받아 20대 나이에 CEO가 된 인물이다. 허구한 날 카지노를 들락날락거렸고 술에 취했으며 여자들과 놀아났다. 마약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토니 스타크는 누가 보더라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판박이였다.

그도 이에 동의한다. “과거의 내 행동이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된 건 사실이다. 토니 스타크는 슈퍼히어로 중에서도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캐릭터다.” 하지만 토니 스타크가 극 중에서 오랜 시간 방탕아적인 면모를 과시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언맨>에서 신무기를 시험하러 갔다가 아프가니스탄 테러 집단의 포로가 된 후 그는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자신의 회사에서 개발한 무기가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는 데 충격을 받고 인류를 구원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기계를 만지고 조립하는 데 천재적인 능력을 보였던 토니는 아이언맨 수트를 직접 개발해 세계 평화의 수호자로 우뚝 섰다.

토니 스타크의 갑작스러운 변화처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변신은 대중에게 뜻밖의 모습이다. 마약이나 빨고, 여자들이나 후리던 녀석이 슈퍼히어로라고? 세계를 구한다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처음에 얼떨떨하기는 마찬가지다.

주로 독립영화 쪽에서 활약하던 그가 블록버스터에 출연한 것 자체도 놀랍지만, 한때 감옥을 드나들던 문제아가 구름 관객을 몰고 다니는 슈퍼스타가 됐으니 말이다. <아이언맨>과 <아이언맨2>(2010년)의 성공을 겪으면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그야말로 성숙해졌다. “예상하지 못했던 큰 성공을 거두면서 점점 더 겸손해지고 있다.”

‘아이언맨’처럼 철들어 ‘가정적인 남자’로 변신

그렇지 않아도 <아이언맨3>에서 토니 스타크는 연인인 페퍼(기네스 펠트로) 말고 다른 여자에게 한눈파는 법이 없다. 무엇보다 영웅과 인간 사이에서 심각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정의의 수호라는 거창한 임무 대신 자신 때문에 목숨이 경각에 놓인 페퍼를 구하기 위해 악당과 맞서는 까닭이다.

그러니까, 이번에 그가 얻는 각성이란 이런 것이다. ‘히어로, 그딴 건 없다!’ 왜 아니겠는가, <아이언맨3>에서 토니는 돈과 명예, 친구와 저택, 아이언맨을 규정하는 수트까지 모든 걸 잃는다.

이는 알드리치 킬리언을 위시한 악당들이 워낙 강한 탓도 있지만 스스로 자초한 것이기도 하다. ‘자신이 영웅인지, 수트가 영웅인지’ 좀 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그는 초심으로 돌아간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다르지 않다. 미국 독립영화계의 천재 배우에서 희대의 말썽꾼을 거치는 동안 급격한 커브 길의 인생을 전전했다.

지금은 어떨까. “과거와 달리 나는 이제 파티를 즐기기보다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가정적인 남자다.” 이렇게 말하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배우 인생길은 ‘아이언맨’ 시리즈를 거치면서 느긋한 직선 주로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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