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은 경제 민주화를 하는 척만 하고 있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3.05.2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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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임시국회 앞두고 주목받는 박영선 법사위원장

5월15일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원내대표가 새롭게 선출됐다. 이에 따라 오는 6월 임시국회에서는 정국 주도권을 놓고 여야의 샅바 싸움이 치열할 전망이다. 핵심은 ‘경제 민주화’와 ‘검찰 개혁’ 관련 법안 처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5월16일 5·18 국립묘역에서 ‘을(乙)을 위한 광주선언’까지 하면서 경제 민주화에 전력투구할 뜻을 내비쳤다. 새누리당은 신중한 논의를 통한 속도 조절에 무게를 두고 있어 충돌은 불가피하다.

여야 대치 정국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이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영선 민주당 의원(서울 구로을)이다. 소관 상임위원회를 거친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올라가는 마지막 관문이 법사위이기 때문이다. 박 위원장은 그동안 박근혜정부가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경제 민주화, 검찰 개혁 실천을 촉구하는 선봉장 역할을 자처해왔다. 특히 대기업 규제와 관련된 법안들이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그가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에 따라 경제 민주화 관련 법안들의 향방이나 강약이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은 6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뉴스의 중심인물로 떠오른 박 위원장을 만났다.  

ⓒ 시사저널 윤성호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었던 ‘경제 민주화’ 등과 관련해 박 위원장이 가장 날 선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내 주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경제 민주화는 국민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정치를 하는 이유인 ‘기회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도 그렇다. 지금 대한민국의 기회 불균등 문제는 심각하다. 우리는 1970년대 재벌 기업군이 형성된 이후 밑에서 새롭게 커 나오는 기업이 거의 없다. 기존 재벌 기업에 대한 혜택이 지속되면서 새로운 기업이 커 나갈 기회를 잠식하는 것이다. 새로 태어난, 혹은 자라나는 중소기업에 문을 열어주는 기회를 제공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지난 4월 말 법사위에서 경제 민주화 법안 등의 통과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과 관련해 새누리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법사위 운영을 두고 여야 간 인식 차이가 상당한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유해 화학물질 관리법, 60세 정년 연장법도 새누리당 법사위원들이 이의를 제기해서 매우 어려운 과정을 거쳐 통과됐다. 기업들의 반대도 심했는데 특히 유해 화학물질 법안을 반대하는 기업은 중소기업이 아닌 재벌 기업이었다. 과연 우리나라 재벌들이 국민의 생명을 우선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기업 이윤만을 위해서 경영을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상당히 의문스러웠다. 국민연금법이나 지방의료원 법안 등은 새누리당 법사위원들의 반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보육료 지급 문제도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는데, 보육료의 국고 보조율을 높이는 영유아 보육법도 대선 전에 이미 보건복지위를 통과했지만 반년이 지나도록 새누리당의 반대로 법사위 통과가 안 되고 있다. 이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우선 박 대통령이 경제 민주화를 하겠다고 국민에게 이미 약속했기 때문에 해당 상임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이 법을 하는 척하고, 실제로는 이 법의 통과를 원하지 않았던 새누리당 의원들의 의견을 중심으로 법사위에 와서 반대한다는 가정을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새누리당 원내 지도부가 새누리당 법사위 간사나 법사위원들에게 이 법을 통과시키지 말라고 어떤 지침을 주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다. 일례로 지난 5월 가맹사업법이나 전속고발권 폐지와 같은 경제 민주화 법률안이 법사위에 올라왔는데, 새누리당은 원칙적으로 5일이 지나야 상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들어 반대했다. 당시 여야 원내대표 합의를 위한 회담까지 했지만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이 법의 상정을 반대했기 때문에 결국 협상이 결렬됐다고 전해 들었다.

최근 박근혜정부의 경제 민주화 정책이 상당 부분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경제 민주화’가 여러 차례 언급되긴 했지만, 대선 공약이었던 경제 민주화가 실제 국정 목표나 과제에선 빠졌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봐야 할지 참 모호하다. 사실 취임사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경제 민주화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겠다는 것은 없이 수식어 차원에서 사용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감이 든다. 경제적 집중 현상을 해소하고 중소기업에게 기회를 주고, 골목상권들이 힘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 경제 민주화를 하려면 재벌 집중 현상과 관련해 재벌의 소유 문제를 규제할 것인지, 행위를 규제할 것인지에 대한 철학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정확한 언급이 없었다는 것이 아쉽다.

한편으로는 지나친 기업 규제가 경제 활동을 위축시키고 경기 침체를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기업은 늘 그런 주장을 해오곤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우뚝 서기 위해선 그런 상황을 이겨내야만 한다. 왜냐하면 선진국의 세계적인 기업들은 그러한 규제를 스스로 이겨내야만 세계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는 점을 당연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재벌처럼 특혜만을 바라지는 않는다. 국민이 있어야 재벌도 존재하는 것이다. 경제 상황이 좋았을 때는 우리 재벌들이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해 과연 어떠한 공헌을 했는지 반문하고 싶다. 어려울수록 재계가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재계도 마른 수건을 더 짜는 심정으로 기업을 끌고 가야 한다. 매번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국민의 쉴 권리를 박탈해선 안 된다.

최근 많은 국민이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창조경제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나.

아직까지 청와대나 여당 내부에서도 창조경제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정책 방향을 갖고 있으며 어떤 사업에 얼마나 예산을 투입하게 될지 설명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창조경제가 어떤 전략이라면 경제 민주화는 전술 중 하나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창조경제나 경제 민주화의 기본에는 공정한 시장경제가 전제돼야 하고 이를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문제가 연결돼야 한다. 이를 위해 국회에서 법을 개정하거나 수정해야 하는데, (새누리당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움직임이 거의 없다. (박근혜정부가 말하는) 창조경제나 경제 민주화라는 것이 단순한 수식어로, 때때로 지지율이 떨어지면 등장하는 단어가 아니길 바란다.

박영선 위원장이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에 따라 경제 민주화 관련 법안의 향방이 결정될 수 있다. ⓒ 연합뉴스
현오석 부총리를 비롯한 박근혜정부의 경제팀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박 대통령은 경제 민주화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대선 캠프에도 재벌과 연결된 사람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그런 걸 봤을 때 박 대통령의 경제 민주화 공약이 잘 지켜질지 의문이 많이 들었다. 경제 민주화에 대한 의지가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만큼 박근혜정부에 포진돼 있느냐는 문제인데, 현재로서는 찾을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경제팀도 중요하지만 경제 민주화를 위한 입법 과제나 예산 배정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원내 사령탑이 누가 되느냐도 상당히 중요하다. 그런데 새누리당 원내 사령탑이었던 이한구 전 원내대표의 경우 대선 전부터 경제 민주화에 부정적이었다. 이번에 새로 선출된 최경환 원내대표 역시 5월1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경제 민주화 법안 처리와 관련해 “법을 만들 때는 법적 안정성이나 현실에 적용했을 때 여러 가지 부작용이 없는지, 이런 것을 다 검토하면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경제 민주화 법안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로 비치고 있어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검찰 개혁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검찰 개혁 법안과 관련해서는 지난 5월 법사위 법안심사 1소위에서 한 차례 논의가 있었지만, 어떠한 법도 아직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계속 논의 중이다. 그런데 새누리당 법사위원들, 특히 검찰 출신 법사위원들의 태도를 보면 검찰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상설특검과 특별감찰관제 실시, 중수부 폐지, 정부 각 부처 검사 파견 제한 등은 6월 중에 법을 통과시키기로 여야 원내대표 간에 이미 합의가 돼 있기 때문에 6월 임시국회에서 이를 다 정리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최근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이 터지면서 박 대통령의 ‘1인 인사’ 문제점이 다시 한번 도마에 오르고 있다.

박 대통령이 윤 전 대변인을 면직 처리하면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면서 배신감을 토로했다고 한다. 이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본다. 윤 전 대변인을 임명한 사람은 대통령 자신이었는데도 ‘사람을 잘못 본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잘못된 인선에 대한 자기 성찰은 없고, 오히려 자신을 피해자로 생각한다는 것은 인사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인식으로는 대단히 부적절한 것이다. 과거 왕권 통치 시대처럼 왕에게는 그 어떠한 잘못도 물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가는 청와대의 모습이 안타깝다. 돌이켜보면 박 대통령은 이미 국무위원 인선 과정에서 7명이나 낙마한 ‘인사 참사’에 대해서도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다. 한 번의 잘못이 아니라 같은 잘못이 되풀이되는데도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하지 않는 것은 ‘여왕 통치국’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민주당의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민주당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호남 지역에서조차 민심 이반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오고 있다고 보는가.

국민들의 관심은 계파 간 세력 경쟁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민주당의 리더십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있고, 다른 측면으로는 정의로운 리더십에 대한 열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이 그동안 야당으로서 검찰 개혁, 보편적 복지, 경제 민주화 등 이 시대의 화두를 계속 던져왔는데, 지금 국민이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심도 있게 고민해서 새로운 화두를 던져야 하는 시점이고, 그것에 대한 고민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최근 박 대통령이 “그래도 방미 성과가 있었다”고 했는데 통상임금을 GM 입맛대로 해주겠다는 것이 방미 성과인지 의문이다. 대통령의 발언으로 대법원 판결을 앞둔 GM 통상임금 재판이 앞으로 화약고가 될 것 같은데, 통상임금을 포함한 노동과 일자리 이슈가 앞으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이에 따른 민주당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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