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고 무모한 도전자가 없다
  • 엄민우 기자·양창희 인턴기자 ()
  • 승인 2013.05.2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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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주기가 돌아왔다. 전국 각지에서 그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리고 매스컴에서도 그의 이름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그를 따르던 인사들이 보이지 않는다. ‘노무현’이라는 상징을 잃은 이들은 지금 그의 가치를 이어갈 새로운 리더십을 기다린다.


‘친노’는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주기를 맞는 민주당의 현주소다. 민주당은 대선 직후 패배에 대한 책임이 ‘주류(친노)’에 있다는 내용이 담긴 대선평가보고서를 내놓았다. 친노는 반발했고, 비주류는 몰아세웠다. 결국 ‘주류’가 ‘비주류’가 되는 것으로 상황은 역전됐다. 최근 전당대회(5월4일)와 원내대표 경선(5월15일)을 거친 후 진용을 갖춘 민주당의 새 지도부를 보면 이른바 ‘주류’ 혹은 ‘친노’로 구분됐던 인사들이 사라졌다. 비주류인 김한길 의원이 당 대표로 선출됐고, 중도 혹은 비주류 인사들이 최고위원 자리를 꿰찼다. 원내대표는 ‘정세균계’로 분류되는 전병헌 의원이 맡았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친노의 위기’라고 해석한다.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그랬던 것처럼, ‘친노’도 결국 정치권에서 사그라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다른 의견도 있다. 원래 친노 자체가 실체가 없는 것이니 만큼 사라질 것도 없고, 강력한 리더십이 등장하면 노 전 대통령의 유지가 실현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노 전 대통령 서거 4주기를 맞아 권력의 중심에서 사라진 친노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해봤다.

2009년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저 뒷산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 몰고 온 충격은 컸다.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멘붕(멘탈 붕괴)’에 빠졌다. 영결식 때 한명숙 전 총리는 조사를 낭독하며 울먹였고, 그와 함께 정치적 인연을 맺었던 많은 인사가 비통해했다. 백원우 당시 의원은 조문하던 이명박 대통령에게 “살인마”라고 외치다가 경호원에게 끌려나갔다. 노무현 대통령 지지 세력은 이들이 슬픔을 딛고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이어나가기를 기대했다.

지난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서울광장으로 몰려든 시민들. ⓒ 시사저널 사진 자료
“친노·비노 구분은 반노들이 만든 것”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노무현 지지자들은 착잡할 뿐이다. 백원우 전 의원은 당시 영결식장에서 소란을 피운 혐의로 기소됐다가 올해 2월에야 대법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은 한명숙 전 총리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아직 항소심이 남아 있다. 친노의 고전은 대선 이후 더욱 심해졌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의 대선 패배는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었던 이른바 일부 주류 세력 의원들을 ‘대선 패배 책임론’에 내몰리게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공개 석상에서 “문재인을 내 친구로 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 ‘친노’와 ‘비노’를 구분하는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한 야당 인사는 “친노란 용어 자체가 노무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에 있는 이들이 만든 것이다. 현역 의원 중 어디까지를 ‘친노 의원’이라고 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언론에서 ‘친노’로 규정됐던 몇몇 의원실 관계자는 “우리를 ‘친노’라고 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며 “‘친노’란 명칭 자체가 여당이나 노무현 반대 세력이 멋대로 규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야당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현역 의원 중에선 참여정부 시절 노 전 대통령과 함께했던 이들이 친노에 가까운 인물들이다. 민주당 박남춘 의원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기자에게 자신을 ‘친노’가 아닌 ‘뼈노’라고 소개했다. ‘뼛속까지 노무현’이라는 뜻이다. 박 의원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인사수석을 지냈다. 이런 박 의원조차도 ‘친노’라는 용어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박 의원은 “친노라는 용어는 노 전 대통령이 추구하는 가치가 자신에게 불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만든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당내 대선평가보고서를 펴낼 인적 구성을 보는 순간부터 과연 객관성을 띨 것인가 의문을 가졌다. 정치적 이익에 따라 해석이 달리 되는 것은 보고서가 아니다”라며 ‘대선 책임론’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했다.

친노는 결집 세력이 없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기반으로 뭉쳤던 ‘동교동계’와 달리 ‘친노’로 불리는 인사들은 개별적으로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던 이들이다. 참여정부 때 청와대에서 일한 한 인사는 “정작 ‘친노’라고 지목되는 인사들은 함께 결집한다든가 세력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노 전 대통령 자체가 그런 스타일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는 “동교동계가 강력한 보스의 리더십으로 뭉친 집단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데, 친노는 그러한 리더십이 약해 결집력이나 조직력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세력화하지 못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것을 뜻한다. 친노 정치 세력이 잠잠하자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하던 외곽 조직도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2002년 당시 ‘노풍’을 일으킨 주역인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현 상황은 과거에 비해 초라하다. 추모 활동은 지속하고 있지만 파급력과 규모 면에서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참여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국정홍보비서관을 지낸 노혜경 전 노사모 대표는 현재 북한대학원에서 학업에 열중하고 있다. 박사 논문 주제는 ‘북한에서의 국가와 시인의 관계 연구’다. 노 전 대표는 “지금까지 너무 어수선하게 산 것 같다.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는 조용히 세상에 기여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노사모’ 떠나 개인 행보 이어가기도

과거 노사모 활동가 중에는 노사모를 떠난 사람도 있다. 이상호 전 민주당 전국청년위원장이 대표적 인물이다. 노사모의 상징 ‘노란 손수건’과 ‘희망돼지 분양 사업’ 등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이가 바로 그다. 무명의 양말장수였던 이씨는 노사모 활동 이후 ‘국민의 힘’ ‘국민참여연대’ 등의 단체를 조직했다. 이씨는 “사실 그때는 노무현 대통령보다 노무현에게 기대를 갖고 활동했던 사람들에게 반해서 움직였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이 만들어낸 친노 프레임도 이제는 (노무현 서거) 4주기가 됐으니 끝낼 때다”고 덧붙였다. 아직 민주당 당적을 갖고 있는 이씨는 현재 법륜 스님의 ‘정토회’에서 열성적으로 활동 중이다.

오영애씨는 2002년 대선 당시 ‘희망 포장마차’를 끌고 두 달 동안 전국을 돌았다. 직장도 그만두고 시작한 포장마차로 후원금 1650만원을 모았다. 오씨는 “대선이 끝나고 노무현을 국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노사모를 그만뒀다”며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는 눈도 감고 귀도 막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동은 계속하고 있다. 끓는 피가 어디 가겠나”라고 말했다. 그녀는 지난 1월 ‘강정마을 수호천사돕기를 위한 힐링포차’를 열었다.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바위 폭파를 저지하다 벌금을 받은 딸 친구들을 돕기 위해서다.

시인인 김정란 상지대 교수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안티조선’ 운동, 잡지 <아웃사이더> 창간 등으로 이름을 알렸다. ‘노사모’에서도 활동했다. 그녀가 바라보는 현실은 밝지 않았다. 김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이 가져오려고 했던 변화는 대단한 것이 아니라 상식적이라면 당연히 받아들여질 수준”이라며 “노무현에게 애정이 있는 국민도 그것이 정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지, 그분이 실현하고자 했던 가치에 대해 특별한 의식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의 누나인 소설가 유시춘씨는 참여정부 시절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다. 지난해 대선 때는 문재인 후보의 ‘멘토단’에 합류하기도 했다. 현재는 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근황을 묻는 질문에 유씨는 “현재 내가 활동할 ‘공간’이 별로 없다. 요새는 조용히 지내고 있다”고 답했다.

‘동교동계’와 달리 정치적 결집력 약해

이병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다. 문재인 의원이 그의 후임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국민참여당의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았다. 지금은 광주시 서구 구의원이다. 이 이사장은 “친노라는 것이 그룹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큰 틀에서 ‘노무현 정신’을 공유한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을 다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친노’ 집단이 향후 주요 역할을 하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에만 20년 가까이 몸담아온 당내 고위 관계자는 “권력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과거 동교동계와 인연이 있는 이들 중 이제는 누구 하나도 자기가 동교동계라고 말하지 않지 않나. 이게 정치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당내에는 친노, 친DJ, 친박 이런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곧 리더십의 실종을 의미한다. 그렇다 보니 최근 터지고 있는 정치 이슈들을 당이 선점해 끌고 가지 못한 채 뒤쫓고만 있는 씁쓸한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제 국민 자체가 이념적 중립성을 추구한다. 친노가 다시 세력화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문재인 의원이 다시 (대권에) 도전할 순 있지만, 그렇게 되면 정동영의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노무현의 정치’가 다시 펼쳐지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는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실현해줄 리더십의 등장과 결부시켜 생각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철학을 공유하고 추진할 인물이 나타나면 ‘친노’로 거론되는 인사들이 다시 뭉칠 수 있다는 얘기다. 자신을 ‘뼈노’라고 소개한 박남춘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언론과 싸우면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왜 몰랐겠나. 그분은 무모해 보이는 일도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행했는데, 나는 그게 너무 좋았다. 지금이라도 그분이 이루고자 했던 과업을 소신 있게 실천해줄 인물이 나타난다면 얼마든지 도울 의향이 있다. 정치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과업이나 가치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노사모 출신 오영애씨는 이번 취재 과정에서 기자에게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포장마차를 방문했을 때 찍은 영상을 하나 보여줬다. 화면 속 노무현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노무현이 대통령 되고 나서도 (이 목표는) 계속 가고, 안 되고 나서도 그냥 갔으면 좋겠습니다. 노무현 아니면 정치를 바로 할 사람이 없는 사회는 어두운 사회고, 노무현 말고도 정치를 바로 할 사람이 수두룩해서 바른 정치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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