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홍송원 수상한 거래 ‘또’ 있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3.06.0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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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씨, 이재현 회장 장녀에게 20억 싸게 빌라 매각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녀인 이경후씨가 서울의 한 고급 빌라를 20억여 원이나 싸게 매입한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게다가 거래 상대자가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여서 주목된다.

이씨는 2010년 6월 서울 장충동에 위치한 고급 ㅅ빌라 1층 101호를 홍 대표로부터 38억원에 매입했다. 그해 2월 이화일 조선내화 회장도 이 빌라 7층 702호를 샀다. 거래 가격은 이씨보다 19억이나 많은 57억원이었다. 같은 평형(244.75㎡)의 빌라를 비슷한 시기에 매입했음에도 가격이 20억원 가까이 차이를 나타내 축소 계약 의혹이 일고 있다.

CJ그룹측은 “축소 계약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그룹 관계자는 “(경후씨가) 서울 신사동 부동산을 담보로 40억원을 대출받았다”며 “이 돈으로 빌라를 매입했고, 세금도 모두 납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래 대상이 이재현 회장 부부와 미술품 거래가 빈번했던 홍송원 대표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검찰은 최근 CJ그룹에 대한 수사 강도를 높이고 있다. 5월21일 CJ그룹 본사와 경영연구소 등을 압수수색한 지 불과 8일 만에 또다시 이 회장의 장충동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홍송원 대표와의 거래를 집중적으로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이재현 회장이 해외로 차명재산을 빼돌리면서 홍송원 대표와 아들이 운영하는 갤러리를 활용한 단서를 검찰이 포착했다”면서 “압수수색 과정에서 내부 문건까지 확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5월30일 서울 장충동1가 5×-××번지에 위치한 ㅅ빌라 전경. 뒤쪽으로 이재현 회장 자택과 CJ경영연구소가 보인다. ⓒ 시사저널 임준선
국세청, 이경후씨 매입 빌라 관련 조사

<시사저널>은 최근 홍송원 대표와 장남이 운영하는 원앤제이갤러리의 내부 회계 자료를 단독으로 입수·공개했다. 문건에는 홍 대표가 2010년 10월부터 12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이 회장에게 26억원을 입금한 것으로 명시돼 있다(제 1232호 참조). 홍 대표가 이경후씨에게 빌라를 매각한 시기도 이즈음이다. 이씨가 매입한 빌라는 이재현 회장 자택 인근에 위치한 서울 중구 장충동1가 5×-××번지에 있다. 건물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 부지는 최원석 전 동아건설 회장 소유였다. 2001년 동아건설이 파산 선고를 받으면서 경매로 매각됐다. 이후 재계 2·3세들과 중견 연예인 등 19명이 조합 형식으로 이 땅을 매입했고 2008년 7층짜리 빌라가 들어섰다.

이 빌라를 소유한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예사롭지 않다. 재벌 2·3세와 대기업 CEO, 중견 그룹 창업주, 중견 연예인들이 2008년 분양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역시 이씨와 마찬가지로 축소 거래한 정황이 포착됐다. 1층은 홍송원 대표가 보유하고 있다가 이경후씨에게 매각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둘째 누나와 셋째 누나 역시 각각 1층과 6층 빌라를 분양받았다. 5층은 가수 인순이씨가 보유하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사장의 남편인 김 아무개씨에게 매각했다.

특히 인순이씨는 빌라 판매 대금의 일부를 미국의 유명 화가 앤디 워홀의 작품인 <블루 재키(Blue Jackie)>로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7층은 한 아무개 김포CC 사장이 보유했다가 2010년 이 아무개씨에게 매각했다. 한 사장은 최근 골프장 증설 과정에서 군사 동의권을 갖고 있는 군 장성에게 금거북을 전달해 논란을 빚었다. 주선자가 유정복 안전행정부장관이어서 인사청문회 쟁점이 되기도 했다.

조경민 오리온그룹 전 사장 역시 7층 빌라를 부인 명의로 보유하다 매각했다. 빌라 가치는 최소 45억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거래 가격이 50억원대를 호가했다고 한다. 국세청 조사4국은 이 빌라의 일부 거래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4국은 ‘재계 저승사자’ ‘국세청의 중수부’라고 불린다. 국세청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조경민 전 오리온 사장이 2010년 부인 명의로 7층을 분양받은 후 2년 만에 되팔아 수십억 원의 시세 차익을 냈다”면서 “부인에게 빌라 매입 자금을 불법 증여한 혐의가 조사의 핵심이다. 조 전 사장에 대한 조사는 상당 부분 마무리됐다. 조만간 추징 금액이 결정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세청 세무조사가 빌라를 분양받은 재벌 2·3세나 연예계로 확대될지도 관심거리다. 하지만 국세청측은 이에 대해 “조사 중인 내용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빌라 인근에 있는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빌라가 워낙 고가인 탓에 매물이 거의 없다”면서 “거래가 있어도 개인 인맥을 통하다 보니 계약 과정에서 축소 거래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매년 발표하는 개별 공시지가에서도 이런 추세를 엿볼 수 있다. 2005년 부지 매입 때만 해도 개별 공시지가는 1㎡당 170만원(3.3㎡당 510만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듬해 295만원(3.3㎡당 885만원)으로 뛰었다.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국내 부동산 시장이 급속히 냉각됐다. 부유층이 몰려 있는 ‘버블 세븐’ 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이 급락했다. 하지만 이 빌라의 가격은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오히려 큰 폭으로 상승했다. 2012년 공시지가는 387만원(3.3㎡당 1161만원)으로 2005년 대비 127.7%나 올랐다. 최근 평가액이 많이 하락했어도 분양자들은 두 배 정도의 시세 차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거래 가격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홍송원 대표가 이재현 회장 장녀에게 매각한 가격은 38억원이다. 한 아무개 김포CC 사장도 2010년 38억원에 이 빌라를 팔았다. 가수 인순이씨의 경우 매각 금액이 27억원에 불과했다. 조경민 전 사장의 부인이 이화일 조선내화 회장에게 57억원에 매각한 점을 감안하면 최대 30억원까지 차이가 난다. 거래 가격을 축소했거나 부풀렸다는 의혹이 이는 이유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전자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 부동산 개발업자는 “로얄층 여부나 거래 시기에 따라 조금씩 가격 차이가 날 수 있다. 하지만 30억원이란 차이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면서 “여러 정황을 감안할 때 축소 신고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근거로 이 빌라의 전세 가격을 꼽았다. 이 빌라의 소유자들은 거주보다는 투자 목적으로 매입한 듯했다. 등기부등본에 등재된 빌라 소유자들의 주소지가 대부분 다른 곳으로 표시돼 있다. 때문에 전세 거주자들이 적지 않다. 전세 가격은 25억원 안팎이다.

검찰이 5월29일 서울 장충동에 위치한 이재현 CJ그룹 회장 자택 압수수색을 마친 뒤 떠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CJ그룹측 “축소 거래는 말도 안 된다”

KB국민은행이 지난 5월 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아파트 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은 56% 수준이다. 2010년 이후 수도권의 전세 가격이 크게 오른 점을 감안할 때 빌라 가격은 50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일부 입주자들은 빌라를 담보로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기도 했다. 한 입주민의 경우 채권 최고액이 52억5000만원에 달했다. 통상적으로 금융권이 대출 금액의 120%를 채권 최고액으로 설정한다고 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대출 자체가 부동산 담보 가치의 50~70% 수준”이라며 “내부 사정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서류로만 판단하면 20억~30억원대의 거래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인순이씨 세무조사와 관련해 참고인들이 기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아래는 앤디 워홀 작품으로 빌라 거래 대금을 대납한다는 계약서. ⓒ 시사저널 박은숙
서울 장충동 빌라 거래와 관련해 또 한 가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가수 인순이씨는 2008년 12월 이현숙 국제갤러리 사장의 남편인 김 아무개씨에게 이 빌라 5층 501호를 팔았다. 매매 가격은 27억원. 사실상 분양가 수준이거나 그보다 낮게 거래했다는 점에서 축소 계약 의혹이 일고 있다. 이들의 거래 과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부지 매입 가격이 적었기 때문에 건축비와 세금을 더해도 분양 비용은 27억원대”라면서 “분양 이후 빌라 가치가 급등했음에도 원가에 거래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순이씨가 빌라를 매매하기 6개월 전인 2008년 6월 3층의 전세금이 24억원에 달한다는 점에서 의문을 더한다.

인순이씨는 현재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분당세무서는 인순이씨가 소득을 축소 신고해 세금을 누락한 정황을 잡고 지난해 여름부터 조사 중이다. 지난해 한 차례 인순이씨를 불러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에는 참고인 조사도 마친 것으로 나타났다. 분당세무서 조사관리팀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나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조사가 지연되고는 있지만 상황에 따라 기간을 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순이씨는 매매 대금 중 일부를 유명 작가의 미술품으로 대신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당시 부동산 매매 계약서에 따르면 김씨는 인순이씨의 하나은행 대출금 10억5000만원을 승계하고, 나머지 16억5000만원은 앤디 워홀의 작품인 <블루 재키>로 대물 지급했다. 미술계 관계자는 “<블루 재키>는 앤디 워홀의 수공 작업 참여도에 따라 수십억씩 가격 차이가 난다”면서 “부동산 거래로 미술품을 대체 거래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인순이씨는 “명의만 빌려주었다”고 말했다. 인순이의 소속사 측은 “빌라가 매각된 것도 나중에 검찰 조사에서 알았다”면서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인 만큼 충분히 소명하겠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2008년 세무조사 과정에서 인순이씨가 이 빌라를 본인 소유로 등록했다는 점에서 향후 조사의 적정성을 놓고도 논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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