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이 영국 큐가든보다 아름답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3.06.12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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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왕립원예협회의 ‘보태니컬 아트 쇼’ 최고상 받은 신혜우

신혜우씨(29)는 고려대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식물분자계통학)을 밟고 있다. 이 공대 대학원생이 세계적인 미술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했다. 그의 전공과 미술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은 ‘식물’이다.

신씨는 지난 4월 영국왕립원예협회(RHS)가 주관하는 보태니컬 아트(식물 세밀화) 쇼에서 최고상을 수상했다. RHS는 1804년에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원예협회다. 식물도감에 정교하게 묘사된 그림이 실리는데, 이게 바로 보태니컬 아트다. 원예학이 발달한 유럽이나 일본에서 식물 세밀화는 과학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컬렉션의 대상이 될 만큼 독립적인 미술 장르로 인정받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신혜우 제공
한국의 녹나무를 소재로 한 세밀화

공학도인 신씨가 식물 세밀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 3학년 때 지도교수가 갖고 있던 보태니컬 아트 책을 보면서부터다. 별다른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신씨는 책을 보고 그림을 따라 그려보면서 부쩍 관심이 커졌다. 급기야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실시하는 두 번의 공모전에서 환경부장관상을 타고, 국립수목원의 <세밀화로 만나는 이 땅의 희귀 식물>에 열 점의 작품을 올렸다. 울릉도·독도 박물관의 특산 식물 세밀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식물학도이자 식물 세밀화 아티스트로 꾸준히 활동했다.

그가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RHS의 보태니컬 아트 쇼에 눈을 돌린 것은 그때쯤이다. “2010년 영국에 가서 2007년 보태니컬 아트 쇼 최고상 수상자의 강의를 3일 정도 들었다. 그분도 나처럼 한 번도 그림을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도전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귀국 직후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본업인 박사 과정 이수가 우선이라 그림 그릴 시간을 내기도 힘들어 1년에 잘해야 6점 정도를 그릴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꽃의 아름다움만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과학을 기반으로 한 학술적인 그림이다. 식물 세밀화 한 장에 사진 50장의 정보가 들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적어도 1년의 관찰 기간이 필요했다.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단풍이 지는 사계의 변화를 모두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내 그림 팔리는 것 보고 깜짝 놀라”

그가 잡은 주제는 한국의 녹나무(lauracease in Korea). 한국에 자생하는 12종의 녹나무과 나무 중 참식나무·후박나무·녹나무·생달나무·까마귀쪽나무·생강나무 등 6종을 그리기로 정했다. 이 나무는 모두 한반도 남서 해안 쪽 자생식물이다. 계피나무나 아보카도가 바로 녹나무과의 일종이다.

녹나무를 고른 이유에 대해 그는 “후박나무를 완도에서 처음 봤을 때 그 반짝이는 잎과 열매가 정말 예뻤다. 꽃이 특이했다. 수술에 뚜껑이 있어서 성숙한 후에야 뚜껑이 열리고 꽃가루가 방출된다. 이런 모습은 사진으로는 잡기 힘들다. 이런 것을 그림으로 그려 한국 자생식물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식물학 전공자인 그는 개량 품종보다는 야생식물이나 자생식물을 훨씬 더 좋아한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영국 왕립 식물원 큐가든을 보고 바로 백두산을 간 적이 있다. 큐가든보다 백두산이 훨씬 더 아름다웠다. 그곳에서 본 털개부랄꽃(난의 일종), 가솔송(고산 초원지대의 꽃나무)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백두산은 전공 때문에 갔다. 그는 식물 표본 채집을 위해 가거도 같은 외딴섬부터 캄보디아의 오지 정글, 중국의 하이난, 시베리아의 삼림지대까지 두루 다녔다. 그런 곳에 갈 때는 TV쇼 <정글의 법칙> 출연자보다 훨씬 많은 준비를 하고 가야 한다고 했다.

출품작을 준비 중이던 그는 지난해 여름 영국으로 날아갔다. 보태니컬 아트 쇼는 열리기 1년 전에 런던의 웨스트민스터의 원예홀에서 다음 해 전시회에 출품할 수 있는 참가자를 결정하는 셀렉션 미팅(사전 심사)을 열기 때문이다. 그는 이 미팅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지난 4월11일 오프닝 행사 때 그가 출품한 녹나무 시리즈가 최고상(best botanical art exhibit)을 받았다. 출품작 중 8명에게 금메달이 수여되고 이 중 두 명에게 ‘best botanical art exhibit’와 ‘best painting’을 수여하는데, 신씨의 작품이 최고상에 뽑힌 것이다. 전시회에 출품한 생달나무 그림은 RHS 도서관에서 구입해 갔고, 준비해 간 엽서는 일찌감치 동이 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개인 컬렉터가 생강나무와 후박나무 그림을 사 갔다.

“최고상을 받고, 내 그림이 팔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는지. 앞으로 본업인 박사 과정도 충실히 공부해 좋은 논문을 내고 싶다. 아울러 우리나라 자생식물을 다른 나라에 널리 알리고 싶다. 더 열심히 그리고 다른 나라의 전시회에도 참여하겠다. 우리나라에는 예쁘고 매력적인 꽃나무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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