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하는 모습 부러워 훔쳐본다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3.06.2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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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증은 ‘엿보기 심리’가 작동하는 본능적 현상

일본에는 한국에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환락업소가 많다. 신주쿠 가부키초는 도쿄에서 가장 번화한 쇼핑가인 동시에 분위기 있는 유흥가 중 하나다. 대낮에는 쇼핑가일 뿐이지만, 어둠이 짙게 깔리고 네온사인이 하나 둘 켜지면 거리에는 노조키베야(훔쳐보기 쇼룸), 스트립 극장 등 일본의 섹스 산업을 상징하는 간판들이 신기루처럼 나타난다.

노조키(のぞき)란 무언가를 ‘엿본다’는 뜻이고, 베야(部屋)는 ‘방’이라는 뜻이다. 정리하면 무언가를 엿보는 방이 있는 유흥업소다. 방 한가운데서 속옷 바람의 여자가 나와 은근한 춤을 추다가 천천히 속옷을 하나 둘씩 벗는 쇼를 펼친다.

방 주위로는 여러 개의 밀실이 놓여 있다. 박스 정도의 크기로 아주 좁다. 이 밀실 안에 남자 손님이 한 사람씩 들어가 특수 유리로 된 조그만 창을 통해 젊은 여성의 관능적인 행위를 몰래 들여다본다.

ⓒ 일러스트 임성구
관음증 남성은 여성에게 겁이 많다

스트립 극장도 마찬가지 성격이다. 그렇게 화려하거나 크지 않은 규모의 시설에 앉아 ‘스트립쇼’를 볼 수 있는 이곳에는 단체로 쇼걸이 출연하는 쇼도 있고 혼자서 하는 쇼도 있다. 둘 다 구성에 따라 갖가지 성적 상상이 가능한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보는 사람이 시선을 돌릴 정도로 노골적인 포즈를 취한다. 많은 남성은 여자들의 성기 노출 쇼를 보기 위해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스트립 극장을 찾는다. 남자들이 여자의 벗은 몸 보기를 이토록 갈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조키베야나 스트립 극장은 여자의 비밀스러운 부분을 엿보고 싶어 하는 남자들의 관음증을 이용한 업소다. 관음증(voyeurism)은 옷을 벗거나 성교하는 장면을 훔쳐보면서 성적 만족을 추구하는 증상이다. 거의 모든 남자는 어느 정도의 관음증을 갖고 있다. 야구장의 치어걸, 도색 잡지 등의 포르노그래피, 미인 선발대회 등은 어쩌면 이러한 엿보기 욕망을 해소시켜주는 사회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관음증은 여성들에게도 있다. 여성들도 남성들처럼 알몸으로 춤추는 남자를 보기 위해 여성 전용 클럽을 찾는다.

남녀 모두에게 있는 ‘엿보기 욕구’는 대부분 일시적으로 나타난다. 성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이런 심리는 어느 특정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행동을 강박적으로 계속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관음광(voyeur)이라고 한다. 관음광은 성적 흥분과 만족을 얻기 위해 타인의 성행위를 관찰하는 데 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들이다.

시각적 자극으로 테스토스테론 수치 높여

<소크라테스 스트립쇼를 보다>의 저자인 움베르토 에코는 “스트립쇼는 형이상학적으로는 구경꾼들로 하여금 자신이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쾌락과 전혀 맛보거나 손댈 수 없는 쾌락을 비교하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자신의 현실과 이상을, 자신의 여자와 이상적인 여성을, 자신의 섹스 경험과 이상적인 섹스를, 그가 소유한 나체와 그가 결코 알지 못할 초여성적인 나체를 비교한다는 것이다. 남이 하는 모습이 더 부러워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관음증 남자들은 지켜보는 대상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할 때, 즉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때 더 쾌감을 느끼고 성적으로 흥분한다. 관음증이 심한 남성은 낯선 여자를 골라서 훔쳐볼 기회를 붙잡기 위해 몇 시간이고 기다린다. 그들은 때로 여성의 나체나 정사 장면을 엿보면서 자위행위를 한다. 자위행위를 통해 그들의 남근이 손상되지 않았음을 알고 여성에 대한 우월감도 느낀다. 이러한 남자들은 대개 여성에 대해 겁을 먹고 수줍어하며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몰래카메라는 바로 일본 사람들이 이런 엿보기를 좋아한 데서 비롯된 산물이다.

일반적으로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것에 의해 성적 자극을 받는다. 남성은 보는 것을 좋아해서, 시각적 자극에 의해 성적으로 달아오른다. 공상에 잠길 때조차도 신체 부위와 성교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불러낸다. 그러한 장면을 상상할 때 성 충동과 함께 음경이 발기하는 상태가 되고, 선정적 대상을 보는 행위에서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높인다.

수컷 원숭이는 성적 접촉이 가능한 암컷을 보거나 동료가 암컷과 교미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올라간다. 마찬가지로 스트립쇼를 구경하러 가거나 여자의 누드가 실린 잡지를 보는 남자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아져 욕정이 폭발하는 것이다.

반면 여성은 보통 낭만적인 말이나 이미지, 영화와 책의 주제들에 의해 성적 자극을 더 많이 받는다. 극히 심리적인 양상이다. 남성의 사랑한다는 말이 진심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마치 자신이 못생긴 것을 알고 있는 여자라도 남성에게서 얼굴이 예쁘다는 말을 들으면 거울을 보고 흐뭇해하는 것과 똑같은 심리적 반응이다. 여성의 성적 공상에는 따뜻한 애정과 약속, 친숙한 파트너와의 섹스도 포함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이상한 현상은 분명 여자에게도 관음증이 있고 관음광도 있는데 꼭 남자의 관음증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여자의 성욕이나 성 기능 장애에 대해서는 늘 수면 아래 잠자도록 놔둔다. 아마도 성에 대해서만큼은 아직도 남자가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을 욕망의 대상에 올려놓는 노출증 

정신과 질병의 하나로 노출증(exhibitionism)이 있다.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성기를 노출하고픈 충동을 강하게 갖거나 실제로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충동적으로 노출시키는 증상이다. 이는 성도착증에 해당된다. 노출증은 관음증에 반대되는 성향이다. 자신을 욕망의 대상에 위치시킴으로써 욕망의 응시를 즐기는 마조히즘적 쾌락이다. 정상적인 사람이 심한 정신적인 쇼크를 당하거나 개인적인 실패를 겪은 후 노출증 환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전형적인 노출증 환자는 대개 심한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이다. 피해자는 위협적으로 느낄 수도 있지만 대다수 노출증 환자는 위험하지 않으며, 폭력이나 성폭행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 관음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노출 성향도 갖고 있다. 여성들의 노출 증세도 드문 것은 아니다. 젖가슴, 배꼽 또는 허벅지를 내놓고 다니면서 남성들의 시선을 끌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이 설령 노출증을 갖고 있더라도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사회가 노출하고 싶은 욕구를 더 부추기고 무리 없이 그 상태를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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