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절벽’ 깨뜨릴 망치가 없다
  • 박일한│헤럴드경제 기자 ()
  • 승인 2013.07.0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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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득세 감면 혜택 6월 끝나…파리 날리는 중개업소들

6월2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인근 한 상가 건물. 10여 개의 부동산중개업소가 문을 열어놓았지만 상담을 하고 있는 고객은 찾기 힘들었다. 중개업소마다 ‘급매물’ 표지가 더덕더덕 붙어 있다. 문을 닫은 일부 중개업소는 사업을 접었는지 ‘임대’를 구한다는 안내문을 내걸었다. 건물 내 B공인중개업소 사장은 “4·1 부동산 대책 발표 후 잠시 반짝 거래가 늘었을 뿐”이라며 “그런 분위기마저도 이젠 거의 사라졌고 가끔 걸려오는 전화는 모두 시세가 얼마나 빠졌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 4주 연속 하락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부동산 거래가 반짝 늘었으나 지금은 뜸하다. ⓒ 시사저널 자료사진
‘4·1 부동산 대책’ 이후 반짝 활기를 띠었던 주택 시장이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거래량이 줄어들면서 급매물이 늘어나고 있다. 7월부터 예정대로 취득세 감면 혜택이 끝나 지금보다 2배 많은 2~4%를 내야 하고 주택 거래 비수기인 7, 8월에 접어들면 거래는 더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고 있다. 서승환 국토교통부장관도 6월27일 “취득세 감면을 연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가격 하락세는 이미 시작됐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6월23일을 기준으로 주간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0.06% 떨어져 4주 연속 하락했다. 특히 4·1 대책 이후 가격 상승 폭이 컸던 강남권 재건축아파트 시세는 대부분 원상태로 돌아왔다. 올 초 9억원에 거래되다 4·1 대책 이후 10억7000만원까지 뛰었던 잠실주공5단지 112㎡형은 9억4000만원까지 빠졌다.

7억2000만원에 거래되다 4·1 대책 발표 직후 8억2000만원까지 올랐던 은마아파트 101㎡형은 6월 초부터 다시 하락해 7억4000만원에 급매물이 나와 있다.

잠실주공5단지 박사공인 관계자는 “6월 이후 거래가 거의 끊기다시피 하면서 급매물이 다시 쌓이기 시작했다”며 “거래가 사라지면 시세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리모델링 수직 증축 호재로 들썩였던 분당 등 신도시 일부 지역도 이젠 시들해졌다. 정부가 수직 증축 리모델링을 허용한다고 발표는 했지만 기준과 절차 등 후속 대책이 논의되기는커녕 관련법조차 아직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당구 야탑동 매화마을1단지 성지공인 관계자는 “수직 증축 계획 발표 직후 분당 지역 아파트는 급매물이 사라지고 평균 1000만~2000만원씩 호가가 뛰었지만 매수자가 따라오지 않았다”며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는데 누가 투자하겠느냐”고 답답해했다.

실제로 수직 증축 리모델링을 허용하는 내용의 주택법개정안은 6월2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열리지 못하면서 사실상 이번 국회 처리가 무산됐다. 9월 정기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법이 공포된 후 6개월이 지나 시행되므로 법 시행 효과는 내년이나 돼야 나타날 전망이다. 리모델링 수직 증축 효과를 당장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정부는 6월24일 이례적으로 주간 단위의 ‘6월 거래량 증가’ 통계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국토부에 따르면 6월4~17일 2주간 주택 매매 거래량을 잠정 집계한 결과 거래량이 주간 평균 2만3000여 건으로 5월 주간 평균보다 37%, 전년 동기보다 75% 많았다. 특히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의 주간 거래량은 6월 둘째 주에만 650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0건이나 급등했다.

시장에서는 6월부터 거래가 본격적으로 줄어들고 있다고 느끼는데 정부가 발표하는 거래량 지표로는 늘어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현장 중개업자들과 전문가들은 정부 통계는 ‘계약일’과 ‘신고일’의 간격에 따른 착시 때문에 나온 것으로 해석한다. 정부가 작성하는 거래량 통계는 ‘신고일’ 기준이다. 집을 산 사람이 거래 계약을 체결한 후 지자체에 신고하면 이것이 정부 통계에 잡히는 것이다.

따라서 6월 통계로 잡힌 건 대부분 실제 계약 시점이 아니라 4~5월 집값 회복 기대감이 생겼을 때 계약했던 물량이라는 것이 현장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대치동 행운공인 김성일 사장은 “계약한 후 60일 이내에 신고하게 돼 있는데 취득세를 감면받기 위한 ‘등기’를 하기 위해선 6월 이내에 ‘신고’를 해야 한다”며 “6월 거래량 지표는 대부분 4~5월에 거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다수 사람이 4, 5월뿐 아니라 6월 계약된 물량도 취득세 감면 혜택을 받기 위해 신고를 7월로 미루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거래 늘었다는 정부 발표는 착시 효과

시장에서는 앞으로 주택 거래가 더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주택산업연구원이 79개 건설회사와 54개 공인중개업소를 대상으로 하반기 전국 주택 거래 실적 전망 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53.7에 머물러 상반기(118.5)보다 64.8포인트나 떨어졌다. BSI는 100을 기준으로 거래가 감소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내려간다. 올 상반기에는 새 정부 출범 등의 기대감으로 거래가 늘어날 것으로 보는 사람이 조금 더 많았다면, 지금은 거래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으로 많아진 셈이다.

거래가 줄어드는 만큼 집값은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대세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써브가 전국 중개업소 961곳을 대상으로 ‘하반기 부동산 시장 전망’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중 39.0%(375명)가 하락할 것이라고 응답했고, ‘보합’이라는 응답도 50.9%(489명)를 차지했다. 상승할 것이라는 응답은 10.1%(97명)에 불과했다. 10명 중 9명이 하반기 집값이 떨어지거나 보합세를 보이리라고 예상한 것.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2013년 하반기 건설·부동산 경기 전망 세미나’에서 올 하반기 수도권 주택 가격이 상반기에 비해 0.5%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상반기 주택 시장은 새 정부 출범 기대감과 취득세 감면 등의 혜택 때문에 그나마 온기를 유지했지만 7월 이후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질 것”이라며 “국내외 경제 위기 등 외부 악재도 많아 상승을 기대하긴 힘들다”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정부에 대해 추가 부동산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계속 커질 전망이다. 김동수 원광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 거래량이 급감하면 다양한 분야에서 고용이 줄어들고, 내수 경기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취득세 감면 연장은 물론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등 규제 완화 조치를 좀 더 과감하고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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