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고 비우는 마음에 촉촉함을 채우다
  • 이미령│북 칼럼니스트 ()
  • 승인 2013.07.0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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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지에서 읽을 책 30선

꽉 짜인 일상에서 잠시 틈을 얻는다. 다람쥐가 쳇바퀴에서 잠깐 내려온다. 틀에서 나를 꺼낸다. 벼르기만 하다가 못 해본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 휴가(休暇)다. 휴가는 틈이고 여유다.

올여름 휴가 때는 뭐 할까 생각하는 것만으로 슬그머니 흥분이 되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가깝거나 먼 곳으로 훌쩍 떠날 수 있고, 매일 아침저녁 집과 일터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했으니 그냥 몇 날 며칠 집에 틀어박혀 폐인처럼 지내도 좋다. 휴가는 그래서 휴가(休家)이기도 하다.

휴가 때 뭘 하면 가장 좋을까. 쉬고 비우기다. 하지만 마냥 맥 놓고 있기에 그 시간이 너무 아깝다면, 떠나자! 어디로? 책 속으로! 책 속으로 휴가를 떠나 굳어진 나의 뇌를 말랑말랑하게 만들고, 각박해진 마음에 촉촉이 물을 끼얹고, 좁쌀보다 더 좁아진 나의 시야를 크게 틔운다면 이보다 더 멋진 치유의 시간은 없으리라.

서울 용산역의 대교문고 아이파크몰점에서 여름휴가 중 읽을 만한 책들을 골라 전시해놓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각박한 마음 촉촉하게 적실 책 

■ <유럽문화사> 도널드 서순 지음│오숙은·이은진·정영목·한경희 옮김│

뿌리와 이파리

다섯 권으로 된 썩 괜찮은 유럽문화사 시리즈.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후학으로 꼽히는 서순이 1800년부터 200년간 유럽인들이 생산·유통·소비해온 문화를 총망라한 저술’이라는 설명에 호기심이 동한다면 올여름 휴가 때 도전해보자. 다섯 권을 다 읽기가 두렵다면 제4권만큼은 꼭 읽어보라는 저자의 말도 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한겨레출판

아직 읽지 않았다면 올여름에는 읽자. 프로만이 살아남는다며 온통 프로가 판치는 사이비 프로 세상. 우리는 프로가 되려고 얼마나 몸부림을 쳤던가. 하지만 연전연패의 프로야구팀 삼미 슈퍼스타즈는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는 신조로 세상을 사는 법도 있다는 걸 교훈으로 남겼다. 이 각박하고 뻣뻣한 세상, 반드시 안타를 쳐야 하고 출루를 해야 한다는 법이 글쎄 어디 있는가 말이다.

■ <철학이 필요한 시간> 강신주 지음│사계절

강신주라는 이름을 이곳저곳에서 듣는다. 특히 30대 여성들에게 좋은 책 한 권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강신주 책이요”라고 대답한다. 동서양의 고전을 넘나들면서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게 인문학적 포만감을 안겨주는 철학자다.

■ <설운 서른> 김종길 외 49인 지음│버티고

시인은 시를 쓴다. 시인 한 사람의 시집 한 권을 천천히 읽어가는 것은 시대의 병을 가장 예민하게 앓는 시인에 대한 예의다. 시집을 읽으려면 이렇게 읽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시와 친해지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면 여러 시인들의 시선집을 만나기를 권한다. 30대라는, 푸릇한 청춘과는 작별하고 아슬아슬한 청춘의 막차를 탄 그 세대를 노래하는 시들이 빼곡한 이 시집에는 읽고 또 읽어도 여전히 읽고 싶은 노래뿐이다. 글쎄, 서른은 서러워서 붙인 이름이라면 마흔은? 그리고 쉰은?

■ <베를린, 천 개의 연극> 박철호 지음│반비

살면서 천 편이 넘는 연극을 본다면 내게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 10년 동안 연극 천 편을 보면서 지낸 연극 연출가이자 비평가가 유럽 연극의 수도 베를린에서 본 연극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나 괴테의 <파우스트>, 체호프의 <벚꽃 동산>과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연극을 베를린의 극장에서 생중계처럼 들려주니 새삼스럽게 그 맛이 느껴진다.

게다가 조금은 낯설지만 지나치기에 너무나 아까운 작품들에 대한 소개도 흥미롭고, 새롭게 시도되는 유럽 연극 무대의 현장도 친절하게 보여준다.

■ <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최용만 옮김│푸른숲

돈 많은 친척에게 거금을 상속받거나 뜻밖의 보너스를 두둑하게 챙길 일이 전혀 없는 중국의 가난한 시골 마을 남자 허삼관. 굽이굽이 인생길에서 생각하지 못한 고비를 만날 때 그가 기댈 돈줄은 제 몸에 가득 흐르고 있는 피뿐이다. 매혈로 번 돈으로 장가를 들고, 남의 씨가 분명한 맏아들 일락이가 사고 친 것 배상해주느라 또 피를 판다.

가족들은 아버지의 피를 판 돈으로 고비를 힘겹게 넘어가고 느긋한 황혼녘에 허삼관은 마지막으로 자신을 위해 피를 팔기로 한다. 하지만 늙은 피를 반갑게 사줄 곳은 없다. 이 소설을 네 번 읽었다. 그런데 또 읽고 싶다. 허삼관을 만나는 일은 유쾌하고 조금은 상스럽지만 묘하게도 성스럽다. 사람은 그렇게 거룩하게 인생을 산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 <맑은 바람 드는 집> 흥선 지음│아름다운 인연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어울리는 한시를 골라 선보이는 스님의 한시 일기다. 정갈한 모시 적삼에 시원한 수박 한 조각, 한지로 만든 부채와 대나무 발이 드리워진 대청마루…. 어느 사이 잊히고 만 우리네 여름 풍경이지만 이 책을 읽을 때면 옛 여름 추억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정갈한 일기 형식의 글과 맛깔스레 손 글씨로 쓴 옛 시를 읽자면 내가 왜 그리 앙앙거리고 살아왔는지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 <흑단> 리샤르드 카푸시친스키 지음│최성은 옮김│크림슨

‘그 대륙은 글로 기술하기에는 너무나 광활하다. 그것은 살아 있는 대양이고, 별도의 혹성이며, 다양하고 광대한 코스모스다. 단지 극도로 단순화시켜, 편의상 우리가 ‘아프리카’라고 부를 따름이다’라는 서문으로 시작하는 499쪽의 두툼한 아프리카 르포 에세이.

하지만 독자의 눈을 홀리고 가슴을 설레게 할 근사한 사진은 단 한 장도 담겨 있지 않다. 오직 두 발로 걷고 두 눈으로 보고 손으로 기록한 그의 여행 에세이를 읽자면 아프리카 내륙 깊숙하게 걸어 들어간 것 같다. 얼핏 보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진 아프리카이지만, 그의 눈에는 이제 여명이 찾아오고 있단다. 아프리카가 지닌 생명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검고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흑단나무 같다고 하는데,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참으로 진중하고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  <비노바 바베> 칼린디 지음│김문호 옮김│실천문학사

불평등과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방법이 없을까? 누군가 나타나 세상을 뒤집는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가장 빠르고 손쉬운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 저마다가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좋은 세상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6년 동안 8000km 넘는 거리를 다니며 지주들을 만나 “당신에게 아들이 다섯 있다면 가난한 사람을 당신의 여섯째 아들로 생각해서 당신 땅의 6분의 1만 주시오”라고 청한 끝에 지주들이 자발적으로 400만 에이커의 땅을 내놓게 만든 사람이 있다. 간디가 자신의 비폭력 저항운동을 이끌 최고의 지도자로 꼽은 사람 비노바 바베가 그 주인공이다. 그의 삶과 사상을 만나면 어떻게 살고 어떻게 늙어가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제이 그리피스 지음│전소영 옮김│알마

이 지구에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은 이제 거의 남지 않았다. 어디를 가도 사람들로 북적이고, 대체로 뻔하다. 그게 식상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사회주의적이고 페미니즘적이며 생태주의적’ 글을 쓰는 제이 그리피스는 친절하게도 우리에게 다섯 가지 야생의 세상을 보여준다. 7년의 세월에 가지고 있는 모든 돈과 에너지를 다 쏟아부은 야생에로의 여행 끝에 세상에 선보인 이 책에는 아마존과 북극과 웨스트파푸아와 오스트레일리아 오지의 비릿하기 이를 데 없는 야생의 냄새가 가득하다.

이 세상에는 ‘불모지의 대리인과 야생의 자연을 사랑하는 자’ 또는 ‘생명을 구하는 진영과 생명을 짓밟는 진영’ 두 가지 진영만이 존재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어설프게 “나도 제이 그리피스처럼 여행해야지”라고 나서지는 말자. 그녀가 이렇게 부탁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악기를 선택하라. 단지 걸으면서 연주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매너리즘에 빠져 자신이 숨 쉬며 사는지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일독을 권한다.

■ <속도에서 깊이로> 윌리엄 파워스 지음│임현경 옮김│21세기북스

“컴퓨터를 끈다. 휴대전화도 꺼라. 그러면 주위에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구글 회장 에릭 슈미트가 2009년 봄 펜실베이니아 대학 졸업 축사에서 한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은 새로운 병이 생겨나고 있다. ‘이메일 무호흡증’ ‘인터넷 중독 장애’, 휴대전화가 없으면 두려워하는 일명 ‘노모포비아(nomophobia)’ 등등. 예전 같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런 병명에서 자유로울 현대인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컴퓨터, 휴대전화, 스크린만 바라보며 살 때 놓치는 것이 바로 ‘깊이’인데, 여기서 말하는 ‘깊이’란 시간을 두고 천천히 느끼고 생각하는 방법이다. 소크라테스가 즐기던 산책, 세네카의 손 편지 쓰는 시간, 셰익스피어의 테이블, 소로의 오두막을 가져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휴가지에서 느긋하게 읽어가기에 딱 좋은 책이다.

■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사사키 아타루 지음│송태욱 옮김│자음과모음

현재 일본 사상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비평가이자 젊은 지식인 사사키 아타루. 그가 기다려보고, 견뎌보고, 상상해보고 그리고 철저하게 고독해볼 자유를 빼앗긴 이 시대 사람들을 위해 닷새에 걸쳐 편지를 띄웠다.

인류 역사는 혁명으로 거듭나서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 하지만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으니, 혁명이라고 하면 보통 ‘폭력’을 떠올리지만, 지금까지 인류 역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혁명은 ‘폭력’이 아니라 ‘책 읽기’였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누군가 한밤중에 펼쳐본 한 권의 책, 한 줄의 문장이 세상의 혁명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진지하지만 친절한 그의 설득에 당신은 오늘 밤 책을 펼치게 될지 모른다.

■ <적절한 균형>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손석주 옮김│아시아

인도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주한 저자가 1975년 국가 비상사태 속 인도 서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장편소설. 카스트 제도에 항거해서 재봉사가 되는 천민들, 새로 그어진 국경선으로 큰 사업을 잃고 마는 파르시 즉 조로아스터교 기업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학생 운동가, 집안의 가난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소녀들, 강제 노동에 끌려가 혹독하게 고생하는 도시 빈민들, 부패한 관리, 그러는 가운데 사람들의 돈을 후려내는 사이비 성자 등등. 인도판 <인간시장>, 인도판 <꼬방동네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 <얼굴이 말하다> 박영택 지음│마음산책

미술평론가인 저자가 작품 속 얼굴들을 사회적 얼굴, 밥 먹는 얼굴, 추억의 얼굴, 명상의 얼굴, 지워진 얼굴, 우는 얼굴, 욕망의 얼굴, 눈 없는 얼굴, 죽음의 얼굴, 가면의 얼굴이라는 열 가지로 나누고 써내려간 에세이 형식의 글. “산다는 것은 어떤 얼굴들을 만나는 일이고, 그 얼굴 속에 깃든 정신을 흡입하는 일이다. 그 얼굴과 내 얼굴이 만나 이룬 하나의 세계를 가설하는 일”이라고 하는데, 작품에 담긴 얼굴을 감상하는 즐거움과 작가의 무겁지 않으나 깊이 있는 글솜씨에 반하게 된다.

■ <일단, 웃고 나서 혁명> 아지즈 네신 지음│이난아 옮김│푸른숲

터키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우울하다. 이때 머리에 퍼뜩 떠오르는 작가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아지즈 네신. 터키 사회의 현실을 비틀어 꼬집는 그의 소설집에는 권력과 명예에 집착하거나 그에 안주하고 또는 그에 빌붙어서 살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득 담겨 있다. 읽어가면서 자꾸만 한국 사회를 풍자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풍자는 세상을 웃음거리가 되는 것으로부터 지켜준다”는 풍자작가 아지즈 네신. 낄낄 웃다 보면 어느 사이 저자의 예리한 풍자의 칼날에 허를 찔리는 기분이 든다. 그의 이름은 기억할 만하다.

ⓒ 시사저널 임준선

  어린이·청소년이 휴가지에서 읽을 책 

■ <개를 기르다> 다니구치 지로 지음│박숙경 옮김│청년사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가 생후 2개월 된 강아지 탐을 집으로 데려온다. 이후 15년을 한 식구로 살아온 탐. 하지만 어느 사이 탐은 늙어 깊은 병에 걸린다. 고통받지 말라고 안락사를 시켜야 할까. 아니면 그냥 앓다가 죽게 한쪽에 내버려둬야 할까. 지로와 그의 아내가 늙은 개를 대하는 자세는 반려동물을 기른다는 것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은 생명에 대한 예의를 아는 사람에게 가능한 일. 늙어서 죽는 탐을 보자니 자꾸 눈물이 흐른다.

■<마지막 거인> 프랑수아 플라스 글·그림│윤정임 옮김│디자인하우스

돈 많은 영국 귀족인 모험가 아치볼드 레오폴드 루트모어는 어느 날 사람 주먹만 한 거인의 어금니를 사들인다. 그리고 거인의 나라를 찾아 길을 나선다. 중앙아시아 어딘가에 있는 거인의 나라에 도착한 그는 전설처럼 아름다운 거인들과 깊은 우정을 쌓으며 자세하게 기록한다. 런던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기록을 발표하고, 이후 거인의 나라는 멸절한다. 아름다운 것을 정복하고 소유하려는 인간의 이기심을 고발한 책이다.

■ <매듭을 묶으며> 빌 마틴 주니어, 존 아캠볼트 글│테드 랜드 그림│김장성 옮김│사계절

인디언 할아버지 이야기다. 할아버지에게는 앞을 보지 못하는 손자가 있다. 손자는 영원히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이 세상은 꼭 눈으로 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며 손으로, 느낌으로, 냄새로도 충분히 볼 수 있다고 할아버지는 가르친다. 어둠의 신은 두려움에 빠질 때만 나타날 뿐이라는 것. 손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끈의 매듭을 하나씩 묶어간 할아버지. 영원히 손자 곁에 머무를 수는 없겠지만 그 끈이 매듭으로 가득 차게 되면 손자는 할아버지의 바람처럼 강한 생명을 내뿜으며 세상을 향해 달려나갈 것이다. 인디언 할아버지가 눈먼 손자에게 모닥불 가에 앉아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이 아름답게 그림으로 펼쳐져 있어 더 감동적이다.

■ <과학자의 서재> 최재천 지음│명진출판

자연과학자 최재천 교수가 들려주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 온종일 골목에서 구슬치기를 하며 놀던 소년이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갔으며, 어떤 생각으로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진솔하고도 편한 문체로 들려준다. 성공의 직선 도로가 아닌 우회로가 그를 기다렸지만 ‘가장 자연스럽게 사는 길’을 택했다는 그의 이야기를 청소년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다.

■ <두근두근 첫사랑> 웬들린 밴 드라닌 지음│김율희 옮김│보물창고

일곱 살 소년 브라이스에게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사랑을 고백하는 동갑내기 여자친구 줄리는 그야말로 고민 덩어리. 운명은 브라이스의 편이 아니었는지, 6년 내내 한 교실에서 지내야 했다. 범생이 브라이스를 향해 일편단심 애정을 보이던 줄리는 결국 현실을 깨닫고 마음을 접는다. 하지만 하필 그 시기에 이번에는 브라이스가 줄리를 향해 더듬더듬 첫사랑의 골목길을 더듬어가게 될 줄이야…. 초등학생들의 엎치락뒤치락 사랑 이야기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예사롭지 않다. 따뜻한 인간애를 느끼게 해주는 아름다운 소설.

ⓒ 시사저널 임준선

  유아와 함께 웃으며 시간 보낼 그림책 

■ <찢어진 가방> 김형준 글│김경진 그림│어린이아현

“너희는 시장 물건이야. 너희는 못생겼어. 너희는 나만큼 예쁘지 않아. 너희는 나보다 값이 싸.” 값비싼 명품 가방이 다른 소박한 가방들을 향해 한껏 콧대를 높인다. 하지만 ‘세상만사 새옹지마’란 이런 걸까. 명품 가방은 사람들의 손을 타는 바람에 찢겨 바느질 자국을 안게 된다. 게다가 하필 도둑이 들어 바로 그 명품 가방을 훔쳐가고 만 것. 과연 이 가방은 주인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존재의 가치를 생각하게 해주는 사랑스런 그림 동화.

■ <화가 났어요> 게일 실버 글│크리스틴 크뢰머 그림│문태준 옮김│불광

할아버지가 얀에게 블록 쌓기 놀이를 그만하고 저녁을 먹자고 말하자 계속 놀고 싶었던 얀은 몹시 화가 난다. 큰소리로 울다가 공들여 쌓은 블록마저도 무너뜨리고 마는 얀. 결국 할아버지는 화가 난 손자를 방에 혼자 들어가 있게 하는데…. 분을 참지 못하고 있는 얀 앞에 새빨간 털북숭이가 나타난다. 대체 누구일까?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아이를 위한 재미있고 기발한 그림 동화책.

■ <너희들도 언젠가는 노인이 된단다> 엘리자베트 브라미 글│얀 나침베네 그림│이효숙 옮김│보물창고

조부모는 가족의 개념에 넣어서 생각하지 않는 요즘 시대. 노인을 친근하게 일상적으로 만날 수 없게 된 아이들은 노인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다. 노인들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지, 늙어서 행동이 굼뜨다고 하여 밀쳐지는 소외감은 어떤지, 여전히 멋진 이성과 마주치면 가슴이 설레는지…. 바로 그 늙음은 훗날 아이에게도 반드시 찾아오고야 말 현상이라는 것까지. 아이들에게 늙음을 생각해보게 해주는 소중한 그림 동화책이다.

■ <네 개의 그릇>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이지원 옮김│논장

작게 오려낸 동그란 원형 네 개. 이 네 개의 둥근 종이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자동차 바퀴, 우산, 선글라스, 무거운 역기…. 둥근 종이로 표현할 수 있는 사물을 열심히 생각해내고, 거기에 근사한 이야기도 지어내볼 수 있다. 도서관에서 버리는 책들의 종이를 사용해서 만들어 버려지게 된 책의 마지막 놀라운 변신까지 엿볼 수 있는 그림책. 상상력을 크게 키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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