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식품’이 밥상 습격한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3.07.09 15: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용 기준치 지나치게 높아…당국은 검출량 공개도 안 해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두 해가 지났지만 방사능 오염물질에 대한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토양에 쌓인 방사능 물질을 제염(除染)한 물이 태평양에 쏟아져 나오면서, 우리나라에서도 해수 오염과 함께 수산물 오염 우려가 높아졌다. 박근혜정부가 불량 식품을 4대 악으로 규정한 이후 ‘방사능 식품’에 대한 경계심도 부쩍 커졌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방사성 물질인 세슘이 검출되는 일본산 수산물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농림수산식품부와 농림수산검역본부가 지난 2월 발표한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세슘 검사 결과에 따르면 검출 건수가 2011년 21건에서 2012년에는 101건으로 5배나 증가했다. 중량으로 치면 149t에서 2705t으로 18배나 늘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인 2011년 4월8일 서울시청 관계자들이 가락시장에서 일본산 대구의 방사능 수치를 측정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방사능이 검출됐다 하더라도 검출량이 허용 기준치를 넘지 않아 그대로 국내에 유통되고 있다. 현재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세슘 허용 기준치는 1kg당 100베크렐(Bq)이다. 지난 2년 동안 5Bq/kg 미만은 76%(93건), 5~10Bq/kg은 18%(22건), 10Bq/kg 초과는 5.7%(7건)였다. 세슘이 검출된 일본산 수산물 중에는 허용치에 육박하는 수산물(냉장 대구 97.9Bq/kg)이 수입돼 유통된 경우도 있다.

방사능 허용 기준치 이하라면 안전한 먹거리로 볼 수 있을까. 시민단체와 일부 전문가들은 “안전한 방사능은 없다”며 “현재의 방사능 허용 기준치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에 이를 현실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주환경운동연합 연구위원장으로 활동 중인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방사능 허용 기준치는 ‘안전’ 기준치가 아니라 ‘관리’ 기준치다. 허용 기준치 이하라서 안전하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틀린 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방사능 피폭량이 증가함에 따라 암 발생률이 비례해 높아진다는 것이 연구 결과 밝혀졌고, 세계적인 의학계에서는 이것을 정설로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게다가 우리나라는 그 기준치가 너무 높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세슘 허용 기준치를 1kg당 370Bq에서 100Bq로 강화했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으면서도 1kg당 370Bq이라는 기존 기준치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는 “일본 수입산에만 일본이 정한 100Bq/kg을 기준치로 적용하고 나머지는 허용 기준치 370Bq/kg을 적용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식약처 “정보공개 청구 시 검출량 공개”

지난 3월 정부조직법이 개정·시행돼 농림축산식품부(농림부)에서 맡고 있던 수입 축산물 및 수산물에 대한 검사 업무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로 이관되면서 일본산 수산물의 방사능 오염도를 확인하는 것 자체가 어렵게 됐다. 기존의 농림부에서는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방사성 물질 검사 결과 조금이라도 검출된 경우에는 농림부 홈페이지 등에 모두 공개하도록 돼 있었다.

하지만 식약처가 매주 공개하는 일본산 수산물 방사능 측정 검사 현황 자료는 방사능 허용 기준치에 따라 ‘적합’ ‘부적합’ 여부만 표시하고 있다. 즉 허용 기준치인 100Bq/kg 미만이면 세슘 등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고 해도 검출량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아직 허용 기준치를 초과해 ‘부적합’으로 판정된 사례가 없어 검출량을 공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검사 결과가 ‘적합’일 때 그것을 공지하는 나라는 없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요즘 적합이라고 해도 검출량을 함께 공개하라는 요구가 많아졌다”며 “최근 내부 논의 끝에 수산물에 한해서 미량이라도 검출되면 정보공개를 요청할 경우 공개하기로 방침을 세웠다”고 밝혔다.

현재 한국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영향으로 만성적인 ‘저농도 피폭 상황’에 놓여 있다. 방사능 피폭 이후 15~60년에 걸쳐 암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6년 우크라이나 보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에서 서유럽인들이 피폭된 경로는 주로 음식을 통한 내부 피폭(80~95%)이었다. 외부 피폭은 5~20%에 불과했다.

한국은 음식을 통한 내부 피폭에서 얼마나 안전할까. 한국 정부의 방사능 오염 관리 체계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후쿠시마 사고로 인해 세슘 이외에 플루토늄·스트론튬 등 방사성 물질이 유출됐는데, 우리나라는 요오드와 세슘134, 세슘137에 대해서만 기준치를 두고 있고 그 외 방사성 물질에 대해서는 기준치조차 정해져 있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방사능 식품으로부터 밥상을 지키기 위해 ‘관’이 아닌 ‘민’이 먼저 움직이고 있다. 한살림·행복중심생협 등 생활협동조합(생협)들은 내부 논의를 통해 정부 기준치와는 별도로 자체 기준치를 만들어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 생협의 세슘 허용 기준치는 성인 7.4~8Bq/kg, 영유아 3.7~4Bq/kg으로 정부의 허용 기준치와는 큰 차이가 있다. 행복중심생협 관계자는 “우리의 기준은 독일방사선방호협회에서 제시한 기준을 적용한 것”이라며 “세슘 검출 결과 또한 2주마다 발행되는 소식지에 모두 공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이 직접 방사능 검사 나서기도

아이들의 먹거리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도 일고 있다. 서울시 광역친환경급식통합지원센터는 12월까지 ‘방사능 오염 대응 안심 수산물 공급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방사능 안전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김형근 서울시 광역친환경통합지원센터장은 “370Bq/kg이라는 국가 기준에 대해 우려가 많다. 기준을 최대한 낮춰야 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수산물부터 데이터를 구축하면서 기준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 시범사업에 12개 업체가 참여 의향을 밝혔는데 아직 시범 구를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방사능 검사를 시민이 직접 할 수 있는 센터도 문을 열었다. 지난 4월15일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두레생협연합회, 행복중심생협연합회, 에코생협, 차일드세이브, 한살림연합, 환경운동연합 등 7개 시민단체가 모여 시민방사능감시센터를 발족했다. 이 감시센터는 지난해부터 모은 기금 1억3000만원으로 핵종 분석기를 구입했다. 서울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안에 설치해 지난 6월부터 가동 중이다.

 

시민방사능감시센터가 최근 구입한 핵종 분석기. ⓒ 시사저널 최준필
지난 4월15일 시민방사능감시센터가 발족했다. 시민방사능감시센터는 시민이 접근하기 힘든 식품 방사능 데이터를 구축하기 위해 1억3000만원을 들여 핵종 분석기를 구입했다. 시민이 직접 방사능 감시 활동을 벌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시민방사능감시센터의 이윤근 소장(보건학 박사)을 6월26일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 만났다.

 

시민방사능감시센터는 어떻게 문을 열었는가.

정부는 방사능 검사 결과를 방사능 허용 기준치에 따라 적합·부적합 여부만 공개하고 있다. 국민은 실제 어느 정도 검출됐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시민방사능감시센터는 직접 방사능을 검사해 먹거리 안전을 위한 정보를 공개하겠다는 생각에서 만들어졌다. 외부에서 의뢰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시료를 분석하는 경우 100% 정보를 공개할 것이다. 우선 어린이들의 먹거리, 학교 급식, 수산물을 주기적으로 분석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시민모니터링단을 구축해 체계적인 활동을 벌일 생각이다.

시민·환경단체에서 방사능 허용 기준치에 대한 문제 제기를 꾸준히 하고 있다. 정부는 허용 기준치 이하에서는 안전하다는 입장인데 어떻게 보는가.

보건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방사성 물질에 안전한 기준이란 없다. 아무리 적은 양의 방사능이라고 해도 무해하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 기준은 안전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관리를 위해서 설정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정한 세슘 기준치 370Bq/kg은 ‘내부 피폭’을 기준으로 세운 것이다. 내부 피폭은 섭취를 통해 노출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지속성이 있다는 점에서 외부 피폭에 비해 피해가 크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100Bq/kg로 기준을 강화했다. 허용 기준치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준은 일본에 비해 높다는 것 이외에도 문제가 많다.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들이 있는가.

핵발전소에서 핵분열이 일어나면 거기에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의 종류가 100여 가지나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슘134·137 외에도 많은 방사성 물질이 쏟아지는데 그중에 세슘과 요오드만 가지고 허용 기준값을 정했다. 또 방사능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나이·성별에 따라 다양하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두 배 정도 취약하고 어린이나 유아는 성인에 비해 20배 정도 취약하다. 이는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이후 갑상선암 발생률, 남녀 성비 등을 연구한 여러 논문에서 확인됐다. 현재의 방사능 허용 기준치는 성별·나이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이 부족하다.

기준치를 조정해야 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낮춰야 한다고 보나.

방사능 허용 기준치란 것은 사회적 합의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최대한 낮추는 것을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상적인 모델로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 독일방사선방호협회가 제안한 수치(성인 Bq/kg, 아동 4Bq/kg)이다. 여기에 유아나 임신부는 0으로 삼아야 한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기준인가.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식품이나 수산물 등을 조사해보면 방사능이 높게 검출되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농산물은 거의 검출

ⓒ 시사저널 최준필
이 안 된다. 이 정도라면 정보를 공개해서 적어도 아이들에게만큼은 무엇을 먹일지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그런 정보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다.

식품 섭취를 통한 내부 피폭 피해가 훨씬 크다고 했는데 특히 조심해야 할 식품군이 있나.

회유성 어류가 가장 위험하다. 실제 방사능 검출을 해본 결과 우리나라 고등어에서도 세슘이 검출된 적이 있다. 물론 일본산 고등어에 비해 훨씬 적은 양이다. 시중의 우리나라 고등어에선 0.5Bq/kg이 검출된 데 비해 일본산 고등어에선 2Bq/kg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명태, 고등어, 멸치 등을 특히 규제해야 할 식품으로 꼽는다. 이들 어류는 국내산·수입산을 가리지 않고 철저히 검사해야 한다. 표고버섯의 경우 자체적인 특성상 세슘이 검출되고 있다.


 
 

▶ 대학생 기사 공모전, '시사저널 대학언론상'에 참가하세요. 등록금을 드립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