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오세훈에 사기당했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07.1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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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뉴타운 1조3000억 상업지 개발 사업 무산 후폭풍

“불만·불편·불신 3불(不)이 팽배해 있다.” 서울 은평뉴타운에 먹구름이 짙게 깔렸다. 이명박·오세훈 서울시장 시절 강북 개발의 요충지로 장밋빛 전망이 넘쳐나던 곳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편의시설 확충을 위해 추진되던 중심 상업지 복합 개발 사업이 최근 좌초되자 ‘사기 분양’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아파트 분양 당시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부분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데 대한 불만이 쌓일 대로 쌓였다. 첫 입주가 시작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일산이나 서울 도심으로 나가 ‘원정 쇼핑’을 해야 할 정도로 생활에 큰 불편을 겪고 있다. 뉴타운 추진 주체인 SH공사가 후속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번에도 말뿐일 것이라는 불신의 골이 깊다. 일부 주민은 “이명박·오세훈에게 사기당했다”며 허위·과장 광고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등 소송에 나설 예정이다.

2006년 5월24일 오세훈 당시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은평뉴타운 건설 현장을 방문해 관계자로부터 개발 계획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MB 서울시장 되자마자 뉴타운 밀어붙여

서울시 산하 SH공사는 7월2일 은평뉴타운 안에 대규모 주거·상업 복합시설을 조성하려던 ‘알파로스’ 사업이 최종 무산됐다고 밝혔다. 2008년 프로젝트파이낸싱(PF) 방식으로 시작된 알파로스는 은평뉴타운 중심 상업용지 5만425㎡에 주상복합, 호텔, 의료 단지 등을 조성하는 1조3000억원 규모의 초대형 개발 사업이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급속히 위축되면서 사업은 출발 단계에서부터 위기에 봉착했다. 여기에 사업계획 변경안, 차입금 차환 및 자본금 증자안 등을 놓고 출자사 간 의견이 엇갈리면서 갈등을 겪어오다 결국 사업이 백지화됐다.

은평뉴타운은 서울시 뉴타운 사업의 본보기로 여겨졌다. 서울시가 강북 개발을 추진하면서 시범 사업 대상지로 선정한 곳이 지금의 은평뉴타운이다. 그런 만큼 은평뉴타운이 어떻게 형성되느냐는 한동안 서울시가 ‘전가의 보도’로 삼았던 뉴타운 사업의 성패를 결정짓는 바로미터가 되는 셈이다.

첫 출발은 10년 넘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MB(이명박 전 대통령)가 서울시장으로 취임한 지 3개월 정도 지난 2002년 10월23일, 서울시는 낙후된 강북 지역을 ‘살고 싶은 강북’으로 만들기 위해 뉴타운을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MB가 ‘개발시장’의 면모를 드러낸 첫 행보였다. MB는 한 발짝 더 나가 “2012년까지 강북 전역의 주택 재개발 구역을 대상으로 뉴타운 개발을 단계별로 시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시범 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곳은 모두 3곳이었는데 길음은 ‘주거 중심형’, 왕십리는 ‘도심형’, 은평은 ‘신시가지형’으로 유형을 달리했다. 이 중에서 은평뉴타운은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를 모은 곳이다. 다른 지역과 달리 미개발지인 그린벨트가 많아 이를 해제해 개발에 나설 경우 자연환경을 살린 전원도시를 조성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때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3개월여 짧은 기간에 서둘러 개발 계획을 입안하다 보니 시민 공청회 같은 주민들의 의견 수렴 과정이 생략됐다. 주변 지역에 미칠 파급 효과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이뤄졌는지도 의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당시 서울시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MB의 연이은 개발 정책에 대한 비판 글이 쇄도했다.

논란은 정치권으로 옮아갔다. 대통령 선거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발표된 서울시의 강북 뉴타운 건설을 두고 사전 선거운동이라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은 MB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소속 일부 구청장들이 선심성 개발 계획 발표를 통해 이회창 대통령 후보를 돕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MB의 광폭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3년 9월26일 독일 베를린을 방문 중이던 그는 당초 3~5곳을 새로 뉴타운 지역으로 선정하려던 계획을 바꿔 신청이 들어온 17곳 가운데 지정 요건에 맞는 후보지는 모두 선정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듬해 있을 총선을 앞두고 더 많은 지역에 개발 청사진을 제시해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2008년 4월5일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은평뉴타운 건설 현장을 방문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오세훈도 뉴타운 사업 확대 공약 걸고 당선

MB는 청계천 복원과 함께 뉴타운 개발을 발판으로 대권 도전에 나섰다. 서울시는 2005년 6월21일 ‘뉴타운 특별법안’ 추진 방침을 발표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정책 실패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 부동산 가격 폭등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 틈을 파고들었다. MB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군청 수준의 정책’ ‘강남 아줌마보다 못하다’ 등 비난 수위를 높였다. 그러면서 뉴타운 사업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며 이슈 선점에 나섰다. 강남과 강북의 균형 발전 차원에서 시작된 뉴타운이 부동산 문제 해결책으로 둔갑한 것이다.

2006년 5·31 지방 선거를 통해 MB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오세훈 시장도 뉴타운 사업 50개 확대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서울 지역 구청장 자리를 한나라당이 싹쓸이하면서 뉴타운 사업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오 시장은 취임 후 거의 매주 자치구를 순회 방문하며 선물 보따리를 풀어놨다. 은평구를 찾은 자리에서 그는 은평뉴타운 지역에 속하면서도 개발 유보지로 분류된 진관외동 기자촌을 개발 유보지에서 해제해 뉴타운에 포함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은평뉴타운에 경고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SH공사가 분양하는 아파트 3.3㎡당 분양가가 최고 1523만원에 이르자 고분양가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서울시가 공정이 80% 이상 진행된 후 분양하는 아파트 후분양제를 적용하겠다며 분양 시기를 1년 연기하면서 고분양가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하지만 1년 후 분양을 재개할 때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는 문제라는 점에서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었다.

2006년 10월24일 열린 서울시 국정감사에서는 뉴타운 사업이 땅값 폭등의 주범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정장선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에 따르면, 은평뉴타운 내 진관외동의 공시지가는 뉴타운 지구 지정 전인 2003년 1㎡당 62만원에서 2006년 230만원으로 271%나 뛰었다. 2003년 1㎡당 94만7000원이던 은평구 진관내동의 공시지가도 3년 새 257만원으로 171.4% 올랐다.

뉴타운 사업은 2008년 4·9 총선에서 다시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서울 지역에 출마한 한나라당 후보들은 뉴타운 공약을 앞세워 대거 국회 진출에 성공했다. 이를 두고 ‘타운돌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뉴타운 추가 지정에 대한 오 시장의 태도가 논란을 불러왔다. 오 시장은 선거전이 한창이던 3월28일 “총선 이후 경제 상황이 허락하는 시점에 뉴타운을 10개 이하로 추가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의 일부 후보들은 뉴타운 개발을 오 시장으로부터 약속받았다거나 협의하기로 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통해 지역 민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후 오 시장은 “뉴타운 추가 지정은 없다”고 밝혀 뉴타운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한나라당 의원들을 머쓱하게 했다.

알파로스 사업 조감도가 붙은 개발 현장. ⓒ 시사저널 임준선
박원순, ‘은평’을 ‘금평’으로 만들 수 있을까

당시 뉴타운 사업의 문제로 제기된 것은 부동산 과열 투기와 고분양가에 따른 재정착률 저조 등이었다. 은평뉴타운의 경우 생태도시를 표방하며 주거 환경은 조성해놓았지만 정작 학교·교통·치안·편의 시설 등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이때도 나왔다.

하지만 이 문제는 5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당초 기반시설 건립은 뒷전으로 밀리고 아파트부터 짓고 보자는 식으로 사업이 진행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뉴타운 사업은 이제 박원순 시장이 풀어야 할 숙제다. 박 시장은 2012년 11월1일부터 9일간 은평뉴타운에 현장시장실을 운영하면서 미분양 사태 해결에 나섰다. 그는 “은평을 금평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중요한 것은 기반시설 확충이다. 뉴타운 사업 초기 단계에서부터 강조된 부분 중 하나가 교통 체증을 해소할 도로 건설과 생활 편의를 제공할 주변 시설부터 갖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은평뉴타운의 경우 분양 당시 약속했던 은평새길 건설은 지지부진하고 알파로스 사업은 끝내 좌초됐다.

SH공사는 후속 대책으로 인근 일반 상업용지에 대형마트와 영화관 등 주민 편의시설을 입주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해당 개발 대상지는 5000㎡ 규모의 3개 필지로 기존 알파로스 개발 부지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중심 상권이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변 상권으로 민간 사업자가 들어올지도 불분명하다는 지적이다.

이강무 서울시의원(은평3선거구)은 “기반시설 없이 아파트부터 착공한 것이 문제다. 편의시설을 우선 건축하겠다고 하지만 공모·설계 등 절차를 밟다 보면 내년 상반기에나 착공이 가능할 것이다. 그것도 제대로 됐을 때의 일이다. 입주민만 계속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SH공사 


SH공사가 알파로스 사업 무산을 결정하게 된 배경에는 더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불어난 부채가 있다는 분석이 많다. SH공사는 서울시로부터 채무 감축 압박을 받는 대표적인 곳으로, 부채는 지난해를 기준으로 총 12조5882억원에 이른다. 이는 서울시 전체 부채의 67.2%에 해당한다.

SH공사가 빚더미에 오른 결정적인 이유는 뉴타운 개발이다. 2000년까지만 해도 SH공사의 금융 부채는 3183억원에 불과했다. 부채가 급증한 시기는 2005년부터다. 이명박 시장이 뉴타운 개발 공약을 이행하기 시작할 무렵이다. 은평·길음·왕십리 등 시범지구 개발에 따른 토지 보상비가 급증했다. 2005년 2조5919억원, 2006년 6조5770억원, 2007년 8조5344억원으로 매년 수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빚이 쌓였다.

오세훈 시장 시절에도 부채가 급증했다. 2008년부터 마곡지구와 강일·마천·천왕지구 등에 대한 토지 보상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2009년에는 부채가 13조5671억원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SH공사는 2010년 이후 대대적인 감축에 들어갔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의 공약에 맞춰 내년까지 부채를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알파로스 사업 무산으로 SH공사가 출자금 238억8000만원을 날리게 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다만 SH공사가 땅 주인이기 때문에 토지대금 5000억원의 10%를 위약금으로 받게 되면 금전적 손실을 입지 않을 수 있다. 현재 이 사업에 들어간 비용은 출자사에서 낸 자본금 1200억원과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1490억원을 합해 2690억원이다. 이 중에서 2270억원이 땅값에 쓰였다.

다른 출자사들도 손을 놓고 있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본금 1200억원에 대한 지분 관계를 보면 건설공제조합(25%)이 가장 많고, 다음이 SH공사(19.9%)다. 현대건설(12.98%)·롯데건설(9.89%)·GS건설(9.58%) 등 민간 건설사 지분도 상당하다. 이들 역시 사업 무산에 따라 출자금을 날릴 처지에 놓여 있어 향후 법적 다툼이 예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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