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기 위해 벗는다
  •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3.07.1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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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 노출로 이어진 섹시 콘셉트 경쟁

“벗기는 것만큼 쉽고 효과적인 건 없다.” 한 신생 기획사 대표의 말이다. 신생 걸그룹이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우선 섹시 코드를 동원한 노출이라는 것이다. “제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우선 시선이 가야 그 실력도 보이는 법이다.” 한때 걸그룹은 연예 시장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소녀시대와 2NE1 정도는 아니더라도 카라나 시크릿, 포미닛처럼 일단 뜨기만 하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시장까지 섭렵할 수 있었다. 특히 일본 시장이 매력적이라는 것은 카라를 통해 입증됐다. 국내와 달리 카라는 일본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엄청난 수익을 끌어모았다. K팝이 뜨는 만큼 아이돌 그룹에 대한 수요는 점점 커졌다.

기존 기획사는 물론이고 한 건 올려보겠다는 신생 기획사까지 합류해 너도나도 아이돌 그룹 생산(?)에 돌입했다. 하지만 음악 시장의 트렌드가 아이돌 그룹 중심에서 아티스트형 아이돌로 바뀌었고, 무엇보다 너무 많은 경쟁자가 생겨나면서 데뷔조차 시키기 힘든 상황에 빠져버렸다. “도무지 길이 없다. 방송에 들어가려는 경쟁이 치열한 데다 너무 쏟아져 나오다 보니 뭘 해도 주목받기 어렵게 됐다. 걸그룹이 너도나도 노출 경쟁을 벌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판이니.”

이른바 ‘생계형 노출’은 이제 일상화되는 경향이다. 걸그룹에서부터 연기자, 심지어 개그우먼에 이르기까지 일단 시선을 끌어야 살 수 있다는 ‘노출 경쟁’이 말 그대로 점입가경이다. 과거 브라운아이드걸스가 <아브라카다브라>를 발표하며 보여줬던 이른바 ‘쩍벌춤’은 당시만 해도 파격적이었지만 지금은 지극히 평범한 수준이 돼버렸다. 이제 ‘쩍벌’은 걸그룹 퍼포먼스의 기본 옵션이다.

을 부르는 걸스데이.를 부르는 달샤벳. ⓒ 연합뉴스
생계형이란 이름으로 일상화된 노출

애프터스쿨은 <첫사랑>이라는 곡을 들고 나와 난데없이 봉춤을 선보였다. 핫팬츠를 입은 채 봉에 매달리고 끼고 도는 동작은 마치 쇼걸을 연상시켰다. 달샤벳의 신곡 <내 다리를 봐>는 일단 가사 자체가 노골적이다. ‘눈 말고 다리를’ 보라고 하고 ‘손을 놓고 나를 안으라’고 하면서 ‘고민은 그만’하라고 부추기는 이 가사에 맞춰 달샤벳은 치마를 살짝 벗어 보이는 퍼포먼스로 노출이 아닌 ‘벗는 차원’으로 점프했다. 걸스데이의 <여자 대통령>이라는 곡도 노골적인 가사와 섹시 퍼포먼스의 결합이다. ‘하의실종’ 차림에 꼬리를 흔드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이들은 ‘내 다리를 보라’고 먼저 도발하고, 여자 대통령 시대에 먼저 키스하라는 가사로 자신을 ‘당당한 여성’으로 포장하지만 그 맥락이 합당한지는 의문이다. 이들의 퍼포먼스가 ‘당당한 여성’의 징표가 아니라 그저 적극적인 ‘성 상품화’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시선을 끌기 위한 팬티 노출도 본격화되고 있다. 투개월의 김예림은 솔로 앨범을 발표하면서 티저 영상에 팬티 차림으로 등장해 논란이 됐다. 최근 활동을 시작한 걸그룹 비키니는 <날 받아줘>라는 곡의 티저 영상을 통해 팬티를 클로즈업하고 웃옷을 벗어던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효리는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를 하며 스커트를 걷어 올려 팬티를 노출하기도 했다.

팬티는 아니지만 수영복에 가까운 이른바 ‘스윔 수트(swim suit)’는 걸그룹 의상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하고 있다. 이효리는 자신의 신곡 <미스코리아>를 들고 나오면서 수영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2NE1의 씨엘은 <나쁜 기집애>에서 스윔 수트를 입고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스윔 수트는 해외에서도 비욘세 등을 통해 유행했다.

노출을 통한 마케팅은 걸그룹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개그우먼 곽현화와 안영미는 과감한 노출 사진을 공개해 대중을 깜짝 놀라게 했다. 영화제 레드 카펫 행사는 무명 여배우의 ‘노출 쇼케이스’로 전락했다. 배우 클라라는 지난 5월 프로야구 시구 행사에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줄무늬 레깅스를 입고 시구를 해 논란이 됐다. 결국 노출 마케팅은 가수·개그우먼·배우 등 직업과 상관없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노출 경쟁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이승철은 자신의 트위터에 ‘민다리에 티저 팬티에 착시 의상? 이런 식으로 활동시키는 건 옳지 않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소설가 공지영의 트위터 글과 거기에 대해 클라라가 남긴 답변에선 노출에 대한 씁쓸한 현실이 묻어난다. ‘솔직히 여자 연예인의 경쟁적 노출, 성형 등을 보고 있으면 여자들의 구직난이 바로 떠오른다. 먹고살 길이 정말 없는 듯하다. 이제는 연예인뿐 아니라 TV나 매체에 나오는 모든 여성도 그 경쟁 대열에 ㅜㅜ’라는 공지영의 글에 클라라는 이런 답변을 남겼다. ‘뜨끔해서 드리는 말씀이지만…제게 관심은 직장인 월급과 같고, 무관심은 퇴직을 의미해요. 월급을 받아야 살 수 있는 것. 하지만 월급이 삶의 목표가 아니듯, 제 목표도 관심이 아니에요. 훌륭한 연기자가 되는 것이에요.’ 즉 벗고 싶어서 혹은 벗는 것이 목적이어서 벗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벗는다는 얘기다.

를 부르는 걸스데이.
다른 가능성을 봉쇄하는 노출의 역효과

노출 마케팅의 효과는 있는 것일까. 시선을 끄는 효과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노출이 실제 수익이나 효과로 이어지려면 결국 자신이 가진 실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봉춤을 퍼포먼스로 했던 애프터스쿨의 <첫사랑>은 영상이 화제가 됐을 때만 잠깐 관심을 끌었을 뿐 음악과의 부조화로 몇 주 만에 순위가 뚝 떨어졌다. 반면 이효리나 씨엘, 김예림, 씨스타 같은 경우는 섹시 콘셉트나 노출을 퍼포먼스로 삼았지만 살아남은 경우다. 음악 자체가 좋았기 때문이다. 클라라는 노출 마케팅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자신이 얘기하듯 진짜 ‘목적’인 ‘연기자’로 쉽게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2006년부터 <투명인간 최장수> <맛있는 인생>, 최근 방영되고 있는 <결혼의 여신>까지 꽤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하지만 대중은 클라라가 뭘 연기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결국 가수든 배우든 노출로 주목을 받는다 해도 본업에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효과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섹시 콘셉트는 이미지로만 보면 최후로 써야 할 전략쯤으로 치부되곤 한다. 광고 전문가들은 일단 섹시 콘셉트로 이미지 메이킹이 되면 더 강한 노출이나 섹스어필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섹시 이미지에 포획돼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하게 된다는 것이다. 연예계에 번지고 있는 과다 노출 경쟁과 섹시 콘셉트의 난무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깊어지고 있다. 그것은 대중을 경쟁적으로 당장의 자극에만 집중하게 해 자극 자체에 둔감하게 만든다. 이것은 결국 우리 대중문화가 가진 가능성을 제한시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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