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의 바벨탑 프로젝트 흔들린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3.07.2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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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쇼핑 고강도 세무조사…잠실 롯데월드타워 건축 허가 특혜 의혹 수사설도

서울 잠실의 123층짜리 롯데월드타워는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평생 숙원이다. 땅 매입 시점인 1988년부터 123층 빌딩 완공 시점인 2016년까지 치면 거의 30년 프로젝트다.

필생의 역사(役事) 마무리를 코앞에 두고 신 회장에게 큰 근심거리가 생겼다. 아니, 롯데그룹 전체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감사원·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 등 사정기관이 총출동하다시피 해 롯데그룹을 뒤지기 시작한 것이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이뤄진 일이라 롯데가 “정기 세무조사”라고 해명해도 재계에선 믿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안보상 이유로 반대한 공군의 의견을 무시하고 123층 프로젝트(롯데월드타워) 건설 허가를 받아내는 등 지난 몇 년간 인허가 사업에서 재미를 본 것이 롯데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롯데는 이명박(MB) 정부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고 있다. 제2롯데월드 허가도 그렇지만, 롯데는 MB 정부 시절인 2007년 말부터 2012년 말 사이 46개였던 계열사가 79개로 늘어났다. 49조2000억원이던 자산 총액도 95조800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MB 정부 시절 최고의 수혜자라는 말이 무색치 않은 수치다.

서울 송파구 신천동에 신축중인 제2 롯데월드 전경(ⓒ 시사저널 임준선)과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 연합뉴스
5년간의 단맛 뒤에 찾아온 위기

이런저런 이유로 올 초부터 ‘롯데가 새 정부의 타깃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재계에 파다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일종의 ‘과거사 정리’ 또는 ‘정권의 차별화 전략’ 차원에서 특정 대기업을 손보는 게 일종의 관례처럼 이어져오고 있다. 이런 까닭에 시기가 문제였을 뿐 롯데의 타깃설은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다.

이런 소문이 확인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 2월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에 대한 세무조사가 시발점이었다. 호텔롯데는 국내와 모스크바에 5개의 특1급 호텔을 두고 있다. 국내외에 면세점도 보유하고 있다. 호텔롯데의 주주는 일본롯데홀딩스 등 100% 일본계다.

호텔롯데는 롯데쇼핑, 롯데제과와 함께 79개 계열사의 순환출자 고리의 핵이다. 롯데쇼핑·롯데제과·호텔롯데 3사가 신동빈 부회장이 해외 진출을 선언한 2008년부터 조세 회피처에 롯데유럽홀딩스 등 무더기로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점도 눈길을 끈다.

호텔롯데 세무조사에는 국세청 국제거래조사국 요원들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롯데그룹 내부 거래와 전산 자료를 관리하는 롯데정보통신에는 국세청 조사4국이 투입돼 호텔롯데 관련 자료 일체를 확보해갔다. 국세청 조사4국은 특별세무조사를 하는 곳이다. 이재현 CJ그룹 회장 비자금 의혹이 불거진 지난 5월 CJ그룹을 먼저 ‘턴’ 것도 조사4국이었다. 최근 전두환 비자금과 관련해 조사를 벌이고 있는 곳 역시 조사4국이다.

7월16일엔 조사4국 직원 150명이 롯데쇼핑에 사전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사, 잠실롯데마트·롯데시네마, 왕십리 롯데슈퍼 등 롯데쇼핑의 4개 사업 부문을 모두 뒤졌다. ‘정기 조사냐, 특별 조사냐’를 놓고 말도 많았지만 이 정도의 인력 동원은 특별 조사에서나 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게다가 이미 그룹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가 끝나고 바로 이어지는 것이라 국세청이 작심하고 조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설득력을 갖는다.

롯데쇼핑은 호텔롯데와 함께 해외 진출과 인수·합병을 이끄는 양대 축이다. 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의 현지법인 설립에 롯데쇼핑이 앞장섰다. 롯데쇼핑의 시네마 사업부에서 오너 일가 일감 몰아주기 시비가 일기도 했다. 실제로 감사원은 지난 4월 신격호 회장 일가가 롯데쇼핑 직영 영화관 내에 수의계약을 통해 낮은 임대료를 내고 매장을 내게 하는 등 부당 지원을 한 사실을 적발하기도 했다. 또 4~5월에 공정위에서 롯데제과의 납품업체 단가 후려치기와 대홍기획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긴박한 움직임에 대해 롯데측은 “정기 세무조사일 뿐”이라면서도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이미 이재현 CJ 회장이 구속된 터라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롯데 창업자인 신격호 회장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신중한 스타일로 사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한국롯데를 이끌고 있는 신동빈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인수·합병 등으로 사업을 크게 확장했다. 특히 MB 정부 때 계열사가 33개나 늘어났다.

거꾸로 말하면 롯데가 최근 인수·합병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는 이야기다. 이를 근거로 세무 당국이 해외 현지법인 설립 현황과 국내외 인수·합병 과정 및 자금 출처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월드타워 조감도. ⓒ 롯데월드 조감도
최근 3년 동안 4조원 가까이 인수·합병

최근 4년간만 따져도 롯데는 2009년 중국 타임스 수퍼 인수(7327억원), 2010년 GS리테일 백화점·마트 부문 인수(1조3400억원), 2012년 그랜드마트 2개점 인수(1540억원), 하이마트 인수(1조2480억원) 등 7조원 넘는 돈을 퍼부었다.

게다가 롯데는 지금 롯데쇼핑 주도로 2조원대의 부산롯데타운을, 롯데물산은 3조5000억원 규모의 롯데월드타워(제2롯데월드)를, 롯데자산개발은 3조원짜리 유니버셜스튜디오코리아리조트(USKR) 건설 사업을 각각 진행하고 있다. 또 중국 선양에서 1조5000억원대의 대규모 테마파크 건립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롯데가 벌이고 있는 동시다발적인 건설 사업과 인수·합병에 들어간 돈만 해도 10조원이 넘는다. 때문에 최근 들어 롯데의 자금줄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특히 지난해부터 업계에 USKR 프로젝트가 무산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지난해 9월 경기도 화성시 신외동 송산그린시티 동쪽 420만㎡ 부지에 대한 땅값 5040억원을 사업 시행사인 USKR이 한국수자원공사에 갚지 못해 계약이 무산됐다. 그 이유는 자금난으로 알려졌다. USKR은 호텔롯데가 45.10%, 롯데자산개발이 19.73%의 지분을 갖고 있다. 롯데가 1대 주주인 회사로 전체 사업비 5조1000억원 중 3조원가량을 부담하기로 했다. 롯데측에서는 롯데자산개발이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롯데자산개발 관계자는 “계약이 무산됐다고 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표현이다. 지난해 9월 계약금 지불 기한을 맞추지 못했지만 땅값이 비싸 가격 협상을 다시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USKR이 자금난에 빠졌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언제 첫 삽을 뜨게 될지는 모른다”고 말해 이 프로젝트가 당분간 표류될 것임을 시사했다.

롯데는 대형 프로젝트마다 사업 주체를 따로 맡겨 유동성 리스크를 분산시켰다. 부산 롯데타운은 롯데쇼핑, 서울월드타워는 롯데물산에 맡기는 식이다. 롯데쇼핑은 10조원대의 이익잉여금을, 롯데물산은 3조3000억원대의 이익잉여금을 보유하고 있어 돌발 상황이 생긴다 해도 당장 유동성 위기를 맞지는 않을 것이란 게 업계의 분석이다.

MB 정부 때 그룹 덩치 키워

하지만 2008년 시작된 중국 선양의 테마파크를 포함한 복합단지 개발이 2013년 완공 목표에서 2017년으로 연기됐고, 2007년부터 시작된 USKR 프로젝트도 계약금 문제로 아직 첫 삽을 못 떠 2018년 완공이 물 건너가는 등 롯데의 질주에 이상 신호가 온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 사업도 애초에는 2016년 완공이 목표였다. 서울·부산에 100층 빌딩을 짓는 등 2017년까지 롯데가 완공해야 하는 대형 건설 프로젝트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도 부담이다.

MB 정부에서 롯데가 거침없는 질주를 하자 재계는 부러운 시선으로 지켜봤다. 2008년 11월 서울시의 용도 변경 완화 정책으로 서초동의 롯데칠성음료 소유 대지 7만㎡(2만1175평)가 상업지역으로 바뀌었다. 2009년 3월 롯데월드타워 건설 허가, 2012년 7월 맥주공장 신규 건설 허가 등 롯데는 숙원 사업을 지난 5년간 대부분 이뤄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들 사업에 대해 사정기관들의 검증을 받아야 할 처지다. 이 과정에서 롯데가의 오너들에게 어떤 영향이 미칠지 재계는 주목하고 있다. 지금의 국세청, 공정위 등의 기세를 보면 호락호락 물러날 것 같지는 않다.


네 명의 대통령 상대로 20년 공들여 
신격호의 바벨탑 추진 비사


롯데가 서울시로부터 서울 송파구 신천지 29번지 일대 2만6500평을 사들인 것은 1988년. 이후 이 땅은 근 20년간 나대지로 방치됐다. 신 회장은 이 땅에 100층 이상의 초고층 빌딩을 건립하기를 바랐으나 서울공항과 가까워 공군기 비행에 위험하다는 이유로 허가가 나오지 않았다.

롯데가 이 땅에 초고층 빌딩을 짓겠다고 공론화에 나선 것은 YS(김영삼 전 대통령) 정부 때부터였다. 3당 합당 직후 신 회장은 YS의 사돈인 김웅세씨를 제2롯데월드 건설을 맡고 있는 롯데물산 사장으로 영입했다.

이때부터 신 회장의 초고층 빌딩 프로젝트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1994년 5월 롯데는 서울시에 비행안전구역 바깥에 초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는지를 묻는 질의서를 내고 1995년 11월 높이 402m, 100층 빌딩 도시 설계안을 송파구에 제출했다. 하지만 1996년 7월 공군은 해발 164.5m까지만 건축하는 데 동의한다는 통보를 해왔다. 이로써 롯데의 100층 건설 프로젝트 1차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김대중 정부 초기인 1998년 롯데는 일단 그 땅에 36층 빌딩(높이 143m) 건축 허가를 받아냈다. 이후 롯데는 공사 진행 대신 불도저 한 대를 갖다놓고 땅만 긁기 시작했다. 공사를 하지 않고 방치하면 세금이 곱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100층 프로젝트에 다시 탄력이 붙은 것은 이명박 서울시장(2002~06년) 시절. 롯데는 잠실 100층 빌딩을 반대할 공군의 논리를 무력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2004년 미국 연방항공청에 기술 자문을 의뢰한 결과 ‘일부 비행 항로를 조정하면 비행 안전에 영향이 없다’는 검토 결과가 나오자 롯데는 이를 근거로 2004년 10월 지구단위 계획 변경(안)을 송파구에 제출했다. 지상 112층, 지하 5층의 555m짜리 초고층 빌딩 건설안이었다. 이 안은 2005년 12월 서울시 교통영향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했다. 2006년 2월 지구단위 계획 변경안은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심의도 통과했다. 하지만 2차 시도는 여기서 끝난다. 2007년 7월 행정협의조정위원회가 건축 고도를 203m 이내로 하라는 결정을 내린 것.

반전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부터 이뤄졌다. 2008년 저층부 건축 허가를 받아낸 롯데는 민관 합동회의와 두 번의 행정협의조정위원회를 거쳐 2009년 3월 사실상 정부 승인을 받아내고 2010년 11월, 송파구청으로부터 최종 건축 허가를 받아냈다.

그러나 뒷말이 많았고 특혜 시비도 일었다.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동창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장경작씨가 2005년 2월 호텔롯데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장씨는 2002년 조선호텔 사장에서 고문으로 물러나면서 사실상 현역을 마감한 상태였지만 호텔롯데 사장으로 부활했다. 이후 호텔롯데 총괄사장까지 올랐던 그는 제2롯데월드 건설 허가가 확정된 2009년 3월 초 상근고문으로 물러났다. 재계에서는 장씨의 급작스러운 퇴임을 두고 ‘제2롯데월드 건설 허가 특혜 시비’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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