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좀 키우려다 평생 주저앉는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7.31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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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 연장 수술 부작용 심각…일부 의사들, 환자 부추겨 돈벌이

이른바 ‘키 크는 수술’로 알려진 사지 연장 수술이 20~30대 사이에 인기다. 다리뼈를 늘여 키가 커질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형외과 전문의들조차 꺼릴 정도로 위험한 수술이다. 게다가 부작용이 생길 경우 환자는 영구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일부 개원의들은 돈벌이를 위해 환자에게 수술을 권유하고 있다. 정부의 제재가 필요해 보인다.

김남석씨(35)는 2011년 한 정형외과에서 키 크는 수술을 받았다. 종아리뼈를 늘이는 수술을 받은 후 합병증이 생겨 보행이 불가능해졌다. 양다리의 길이가 2cm가량 차이 나고, 종아리뼈가 X자로 변형되면서 무릎이 완전히 펴지지 않는 상태가 됐다. 이런 환자의 사례에 대해 대학병원 전문의들은 어떤 의견을 보일까. 이동훈 분당차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사지 연장 수술을 받은 후 부작용을 호소하는 환자가 꽤 있다”며 “왜소증(키가 성인 남성 150cm 이하, 여성 140cm 이하)이 아닌 정상인은 이 수술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 수술이 세상에 등장한 지는 100년이 넘었다. 소아마비 등을 치료하기 위한 수술이었지만 부작용이 심해 점차 사라졌다. 1980년대 옛 소련의 의사가 환자 치료 목적으로 개선된 수술법을 고안했고, 그 수술이 세계로 퍼졌다. 우리나라에도 1980년대 후반에 도입됐다. 주로 다리가 기형이거나 교통사고로 다리뼈가 수십 조각이 나서 다른 치료 방법이 없는 환자를 치료하는 수단이었다. 그 후 일부 의사가 다리가 짧은 사람에게 이 수술을 하면서 일반인에게는 키 크는 수술로 인식됐다.

이 수술은 다리뼈를 자르고 틈을 낸 채로 고정한다. 그러면 그 틈에 뼈가 생기면서 전체적으로 다리가 길어지는 효과를 보인다. 보통 4~6cm 정도 키가 커진다. 키가 커지고 다리도 길어지는 효과 때문에 극심한 통증과 오랜 치료 시간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술을 받으려는 사람이 있다. 쌍꺼풀 수술 정도로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경고한다. 이 수술은 정형외과 전문의들도 피하고 싶을 만큼 까다롭다. 심종섭 삼성서울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뼈를 자르고, 금속 막대기를 삽입하며 그 주변의 근육·피부·신경·혈관 등에 손상이 없어야 한다”며 “수술 자체도 어려운 데다 합병증이 심각해서 치료 외에 미용 목적으로 정상인을 수술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남성의 경우 성장기를 넘긴 직후 또는 군입대를 전후한 20대 초·중반에 키 크는 수술에 관심이 많다. 사진은 지난해 한 병무청에서 징병 검사자가 키를 측정하는 모습. ⓒ 연합뉴스
“의사들도 꺼리는 어려운 수술”

따돌림을 당하거나 취업이 어려운 이유를 키 때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심리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정형외과가 문제다. 수술에만 수천만 원이 들고, 6~12개월 동안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일부 정형외과는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이것이 마치 성형수술처럼 가벼운 수술인 양 선전한다.

휜 다리가 평생 고민거리였던 이남수씨(36)는 지난해 한 정형외과를 찾아 상담했다. 그런데 키 크는 수술을 같이 하면 좋겠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수술 후 극심한 통증으로 뼈 연장 치료를 중단했다. 게다가 무릎 마비 증세까지 보였는데도 그 의사는 아무 이상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이씨는 인천에 있는 한 대학병원을 찾아 뼈를 고정하기 위해 뼛속에 삽입한 금속 막대기가 무릎 쪽으로 튀어나와 통증과 마비가 생긴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오른쪽 종아리뼈가 뒤틀린 상태였고, 이미 잘라낸 뼈는 붙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을 들었다.

이 사례처럼 일부 의사는 정상인에게 키 크는 수술을 권유한다. 이런 의사들은 수술 경험이 국내에서 가장 많아서 안전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한마디로 자신의 수술이 최고라는 함정에 빠진 의사”라고 지적한 뒤 “학회 등에 참석해 동료 의사와 토론하면서 최신 수술법을 연구하고,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 함에도 일부 의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부 정형외과는 10~20cm까지 키를 늘일수 있다며 소비자를 현혹한다. 심종섭 삼성서울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왜소증 환자는 두 차례 수술로 최대 30cm까지 키를 늘일 수 있다”면서도 “어디까지나 환자 치료 목적이지 미용 목적으로 그 정도 늘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한 정형외과 원장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그는 바쁘다는 핑계로 기자를 피했다. 또 다른 정형외과 관계자는 “환자에게 부작용을 충분히 설명한 후 환자가 동의해서 수술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수술 부작용으로 나를 찾아온 환자는 그 정형외과에서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고 전했다. 또 “환자에게 부작용을 설명하면서도 ‘드문 일’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환자를 안심시켜 수술을 받도록 유도하는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나중에 환자가 부작용을 문제 삼아도 의사는 수술 전에 설명하고 동의를 받았다는 식으로 피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 분당차병원 제공
“수술 후 원상 복구 불가능”

한번 부작용이 생기면 원상태로 되돌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수술을 하려는 정형외과 전문의는 거의 없다. 박수성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같은 4cm를 늘여도 부작용이 생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며 “불행하게도 사전 검사로 부작용을 예측할 수 없다”고 밝혔다.

수술로 생기는 부작용은 많고 심각하다. 뼈가 뒤틀리는 변형, 뼈가 자라지 않는 경우, 신경 손상, 통증 등이다. 금속 고정 장치를 이용하므로 흉터와 근력 약화는 모든 수술 후에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이런 부작용은 영구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박수성 교수는 “뼈뿐만 아니라 인대, 피부, 신경, 혈관 등이 찢어지듯 늘어나는 것이라서 한 번 수술 후 부작용 때문에 원상 복구시키기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부작용이 나타나도 의사가 잘 몰라서 치료 시기를 놓치기도 한다. 이송희씨(23)는 4년 전 키 크는 수술을 받았으나 부작용(구획증후군 : 다리 압력이 높아져 근육과 신경이 괴사하는 것으로 응급수술을 받지 않으면 영구적 다리 마비 초래)이 생겼다. 그러나 제때 치료받지 못했다. 지난해 한 대학병원에서 근육과 신경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지만 결과는 장담하기 어렵다. 이씨처럼 개원의에게 수술받은 후 부작용을 호소하는 환자를 여럿 접한 이동훈 분당차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정형외과 전문의는 수술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을 뿐이지 그 수술에 모두 성공한다는 보증수표는 아니다”라며 “전문의라도 수년 동안 수련 과정을 거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적절하게 대처할 방법을 알고 있어야 환자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수술 후 합병증을 호소하는 환자의 X선 사진을 보면 뼈 연장을 중지해야 할 시기임에도 무리하게 뼈를 늘인 경우를 볼 수 있었다”며 “합병증을 치료할 능력을 갖춘 의사가 수술해야 하는데, 이조차 모르는 의사가 더러 있다”고 말했다.

의사가 부작용이 생길 것을 알고도 뼈 연장을 계속 진행한 것은 문제다. 또 모르고 그랬어도 문제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환자는 돌이킬 수 없는 장애를 안고 남은 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왜소증이나 다리 기형이 없는 정상인, 성장기 어린이, 운동선수는 이 수술을 받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방학을 맞은 자녀에게 키 크는 수술을 받게 하려는 부모도 있다. 성장판이 닫히지 않은 청소년에게 사지 연장 수술은 금물이다. 박수성 교수는 “수술하면 무릎 관절에 압력이 가해지는데, 성장판도 눌러서 정상적인 성장을 억제한다”고 설명했다.

운동선수 박모씨(26)는 2009년 체급을 높일 욕심에 한 정형외과에서 키 크는 수술을 받았다. 3~4cm 예상했지만 원장의 권유로 8cm를 연장했다. 수술 후 심한 까치발 변형이 생겼다. 뼈가 붙지 않고 주변 근육의 심한 손상으로 정상적인 보행이 불가능해졌다. 박수성 교수는 “운동선수가 이 수술을 받는다는 것은 선수 생명이 끝남을 의미한다”고 경고했다.

중국도 금지한  키 크는 수술 

정상인은 이 수술을 받을 필요가 없지만 사회생활에서의 불편 때문에 꼭 수술을 해야겠다면 전문의와 충분히 상담하고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잘 들어야 한다. 영구 장애를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다. 심종섭 교수는 “부작용에 대해 아무리 설명해줘도 수술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다”며 “이런 사람은 우울증 등 정신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으므로 정신과 상담을 받도록 권유한다”고 말했다.

<시사저널>은 몇몇 피해 환자의 제보를 받았다. 그 정형외과 명단을 대학병원 정형외과 전문의들에게 보였다. 이들의 반응은 같았다. “그 의사들은 정형외과 의사들 사이에서도 문제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한 대학병원 정형외과 전문의는 “그런 의사들은 환자에게 한 말과 다르게 수술하거나 대충 하는 일이 있다”며 “눈속임, 말장난으로 환자를 속이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정형외과학회 차원에서 이들에게 제재를 가할 방법은 없을까. 한 정형외과 전문의는 “그들은 자신의 병원에 걸어두고 홍보할 목적으로 학회에 한 번 참석해 사진을 찍고는 다음부터 나오지 않는다”며 “그렇다고 해서 그 의사를 제재할 권한이 학회에는 없다”고 말했다.

중국은 2006년 미용을 목적으로 한 키 크는 수술을 금지했다. 병원 광고 문구만 믿고 수술을 받았다가 기형이 된 사람이 2005년에만 10만명 이상 보고되자 중국 위생부가 이러한 조처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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