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갈량’은 ‘마법사’ 될 수 있을까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3.08.14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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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구단 KT 위즈 초대 감독 조범현

‘조갈량’ 조범현(53)이 돌아왔다. 8월5일 수원에서 열린 프로야구 10구단 KT 위즈 초대 감독 취임식에서 조 감독은 “시대 흐름에 맞는 야구로 기대에 부응하겠다”며 “창단 후 3년 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겠다”는 포부를 당차게 밝혔다. 2011시즌 KIA 사령탑에서 물러난 후 2년 동안 야인으로 지냈던 조 감독은 10구단 창단 감독으로 야구계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8월2일 KT는 ‘초대 사령탑으로 조범현 전 KIA 감독을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KT는 보도자료를 통해 ‘조 감독 선임은 파격보다는 안정을 선택한 결과’라며 ‘한국시리즈 우승과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을 이끈 조 감독이야말로 신생 구단 사령탑으로 최적의 인물이라 판단했다’고 선임 배경을 밝혔다.

KT 관계자는 “화려한 경력뿐만 아니라 조 감독의 세 가지 장점이 크게 부각됐다. 첫 번째 장점은 육성 능력이다”라며 “몇몇 야구인에게 누가 신생 구단 감독으로 좋을지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육성 능력이 뛰어난 사령탑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육성 능력이 뛰어난 사령탑이냐고 물으니 대다수가 ‘조범현이 최고’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무명의 신인과 1.5군 선수가 주축이 될 것이 자명한 신생 구단에서 감독의 육성 능력은 팀의 미래와 직결된다. 그런 의미에서 조 감독이 높은 평가를 받는 건 당연하다.

조 감독은 SK와 KIA 감독 시절 많은 유망주의 성장을 도운 바 있다. 2003년 SK 감독을 맡았을 땐 박정권·박재상·김강민·정상호·송은범·정우람 등 유망주를 1군 선수로 만들었고, 2008년 KIA 사령탑에 취임했을 땐 나지완·안치홍·양현종 등 미완의 대기를 스타 선수로 키웠다.

ⓒ KT 제공
아들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조범현 인생 유전

KT가 주목한 두 번째 장점은 소통 능력이었다. 사실 조 감독은 말이 많은 지도자가 아니다. 코치와 선수에게 딱 필요한 이야기만 한다. 기자와도 어지간히 친분이 있지 않고선 단답형 대답으로 일관한다. 이것만 봐선 소통과는 거리가 먼 지도자 같다. 그러나 이것이 장점이다.

최희섭은 2008년까지 팀의 골칫덩이였다. 큰돈을 들여 영입했지만, 성적은 형편없었다. 성격도 예민해 동료가 장난삼아 던진 말도 며칠씩 의미를 곱씹으며 괴로워하곤 했다. 그런 최희섭을 조 감독은 훌륭하게 길들였다. 방법은 소통이었다.

조 감독은 당시를 회상하며 “(최)희섭이에게 여러 말 하지 않았다. 스프링캠프에서 희섭이가 타격 훈련을 하면 내가 배팅볼을 던져줬고, 수비 훈련을 하면 펑고를 쳐줬다. 감독은 선수에게 ‘내가 항상 널 지켜보고, 신뢰하고 있다’는 확신만 심어주면 된다. 희섭이도 내 의도를 알았는지 그때부턴 날 믿고 따라와줬다”고 말했다. 대개는 전임 감독과의 좋지 않은 추억을 이야기하게 마련이지만, KIA 선수들은 지금도 조 감독을 “묵묵히 내 뒤를 봐줬던 사람”이라고 기억한다.

프런트의 의견을 잘 청취하는 것도 조 감독의 장점이다. KIA 관계자는 “구단이 무리한 요청을 해도 ‘일단 들어보자’는 게 조 감독의 스타일이었다. 설령 구단이 감독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내려도 절대 뒷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회상하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신생 구단에서는 감독의 ‘무거운 입’만큼 강력한 우군도 없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장점은 조 감독이 연고지 수원이 원하던 인물이라는 데 있다. 조 감독은 수원과 전주가 10구단 유치 경쟁을 벌일 때 중립을 지켰다.

그러나 수원시가 주관하는 야구 행사에 참가하고, 수원 소재 사회인야구단에서 총감독을 맡으며 수원의 호감을 샀다. 조 감독이 KT 초대 사령탑에 낙점되자 수원시 공무원과 지역 야구계가 두 손을 들어 환영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NC 김경문 감독은 과거 두산 사령탑 시절 “감독은 하늘이 점지해주는 자리”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00 명이 넘는 전직 야구인 가운데 프로 감독(감독대행 포함)을 경험한 야구인은 단 62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 중 현역 선수로 뛰었던 야구인이 감독에 오른 건 고작 32명뿐. 게다가 많은 구단이 현역 시절 슈퍼스타 출신을 감독 후보 0순위로 올려놓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평범한 야구인이 감독이 되는 건 보통 ‘빽’으론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조 감독은 천운을 타고난 사람이다. 2003년 이후 10년 동안 벌써 3번이나 감독을 맡았기 때문이다.

조 감독은 1982년 OB(두산의 전신)에 입단해 1992년 삼성에서 은퇴할 때까지 11시즌을 현역으로 뛰었다. 통산 기록은 타율 2할1리, 12홈런, 107타점. 11시즌 가운데 1할대 타율이 8시즌이나 됐을 만큼 평범한 선수였다.

코치가 돼서도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 감독은 1993년부터 1999년까지 쌍방울에서 배터리 코치로 일했다. 당시 쌍방울은 리그에서 가장 가난한 구단이었다. 야구계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하는 팀이기도 했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삼성 배터리 코치로 뛸 때도 조 감독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야구인이었다.

하지만 오랜 무명 생활과 갖은 풍파가 그를 ‘준비된 지도자’로 키웠다. 그에겐 아들을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아픈 기억이 있다. 쌍방울 코치 시절 조 감독은 신인 포수 박경완을 키우는 맛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지만 그즈음 하나밖에 없던 초등학생 아들은 신장이 좋지 않았다. 가까스로 신장 이식자를 찾아 수술일을 기다렸지만 갑자기 아들의 상태가 악화하며 결국 조 감독은 아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그는 지금도 먼저 떠난 아들과 마지막으로 함께 탔던 고속버스를 기억한다. 아들은 퉁퉁 부은 얼굴로 가느다란 숨을 내쉬며 차창에 ‘하트(♡)’를 그렸다. 그리고 그 옆에 힘겨운 손동작으로 ‘아빠 엄마 사랑해’를 썼다. 아들이 그린 하트는 조 감독의 가슴에 지금도 대못처럼 박혀 있다.

아들과의 이별 이후 조 감독은 “아들 때문에 약해졌다”는 소릴 듣기 싫어 이전보다 몇 배 더 노력했다. “지독하다”는 평을 들으면서까지 그는 야구에만 몰두했다. 2003년 새 감독을 물색하던 SK가 조 감독을 최종 선택한 것도 “조범현만큼 야구에 대한 지식과 식견을 갖춘 야구인이 없다”는 야구계의 찬사가 큰 배경으로 작용했다.

젊고 파격적인 코치를 원하는 KT

8월7일 오전 조 감독은 서울 구의야구장을 찾았다. 한국야구위원회가 실시한 트라이아웃을 관전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트라이아웃에선 해외파 정영일 등 프로야구 2차 신인지명회에 나올 7명의 선수가 첫선을 보였다. 10개 구단 감독 가운데 유일하게 트라이아웃에 참석한 조 감독은 “신인 지명 대상자의 가능성을 체크하려고 왔다”며 “신인지명회에서 어떤 선수를 뽑느냐에 따라 KT의 미래가 달라지는 만큼 전국을 찾아다니며 주요 유망주를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덧붙여 조 감독은 “조만간 코칭스태프 인선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야구계에서 조 감독은 코치를 줄 세우는 이른바 ‘조범현 사단’이 없는 지도자로 유명하다. 이번에도 조 감독은 개인적 인연보다는 신생 구단 연착륙을 위해 능력 있는 코치를 주로 뽑을 생각이다. 항간에는 박경완(SK)을 대표로 하는 젊고 파격적인 야구인이 코치로 합류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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