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는 중요하지 않아
  • 대전=이규대 기자·조혜지 인턴기자 ()
  • 승인 2013.08.2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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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지적장애 여중생 성추행 사건…피해자 가족 “사건 은폐됐다” 주장

장애인은 사회적 약자다. 여성도 그렇다. 여성 장애인은 두 집단의 교집합이다. 약자 중의 약자인 셈이다. ‘비장애성’과 ‘남성’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폭력으로부터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 이들에게 더 많은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이유다.

대전에 사는 중학생 박아름양(18·가명)은 여성 장애인이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박양은 지적심장장애 1급(지적장애 2급, 심장장애 3급 복합)에 해당한다. 지난해 12월 박양은 자신의 인권이 짓밟혔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같은 반 남학생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육성·일기 등으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진술했다. 사진 속 글자는 피해자의 일기에 나오는 문구들. ⓒ 시사저널 박은숙
피해자 “같은 반 학생이 성추행” 진술

박양은 매끄럽지 못한 언어를 동원해 자신이 겪은 일을 진술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초동 수사에 나선 경찰도 ‘무혐의 처분’으로 학교 측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사건 발생 후 8개월이 흐르는 동안 양측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과연 박양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해 12월26일 낮 12시40분쯤이었다. 박양이 늦은 등교를 한 지 약 2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박양의 어머니에게 박양에 대한 지도를 담당하는 특수교사 이 아무개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박양의 속옷에 생리혈이 묻었다. 그래서 속옷을 벗겼으니, 새것을 가져다 달라”는 내용이었다. 어머니는 곧바로 학교에 가 박양을 집으로 데려왔다.

가족들의 주장에 따르면, 집에 돌아온 박양은 오전에 받았던 선물을 뜯지도 못하는 등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어머니가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박양은 남학생 4~5명이 화장실에서 자신의 바지를 벗기고 추행했다고 털어놓았다. 구체적인 행동을 흉내 내며 설명하기까지 했다. 놀란 어머니는 그런 일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이름을 써보라고 했다.

박양은 같은 반 친구인 ‘정민준’(14·가명)이라는 이름을 적었다. 4교시 음악 시간 중 담당 교사가 영화를 틀어두고 자리를 비운 사이, 그가 교실 맨 뒤쪽 문 옆의 자리에 앉아 있던 박양을 남자 화장실로 데려가 폭행·성추행했다는 것이다.

어머니·언니와 함께 다시 학교에 돌아온 박양은 교실로 가 피의자를 지목할 것을 요구받았다. 박양은 비어 있는 정민준군의 자리를 손으로 짚었다. 이후 가족들은 박양과 정군, 박양의 담임교사 및 특수교사와 함께 남자 화장실로 가 상황 재연을 실시했다. 박양은 자신이 겪었다는 일을 이 자리에서 표현했다.

담임교사는 아이들의 증언을 들었다. 피의자로 지목된 정군은 담임교사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고 대답했다. 박양 가족이 집으로 돌아간 후, 피해자 박양의 앞자리에 앉은 두 학생에게 ‘4교시에 교실 밖으로 나간 애들이 있었는지, 박양이 나갔는지’를 물어보니 ‘안 나갔다’는 대답을 들었다는 것이 담임교사의 주장이다.

이를 근거로 담임교사는 박양이 주장하는 성추행이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수사기관에 신고도 하지 않았다. 담임교사는 사건 당일부터 다음 날까지 반 학생들을 상대로 개별 면담과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박양이) 교실 밖으로 나갔다면 누군가 볼 수밖에 없는데 4교시에 나간 아이가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박양과 가족들은 성추행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학교 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맞선다. 같은 상황을 두고 말이 완전히 엇갈린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지 세 달 만인 3월26일 피의자 정군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내사를 종결했다.

피해자가 교실을 나가 화장실로 나가는 것을 본 사람이 없고, 화장실과 거리가 가까워 소리치면 교실에서 들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 등이 주요 근거였다. 담당 수사관은 ‘모든 정황을 종합해볼 때 피해자 박양의 진술 외에는 범행이 있었다고 단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8월21일 피해자 어머니가 관련 서류를 보이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성추행 판단 제1원칙은 ‘피해자 중심주의’

이에 대해 박양의 가족들은 “교사도 없는 학기말 교실이 얼마나 소란했겠나. 단순히 교실 밖을 나가는 모습을 봤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만을 가지고 이 사건을 무혐의 처분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고 항변했다. 과거에도 박양이 교실을 빠져나간 적이 있는데, 이것이 뒤늦게 확인돼 학교가 뒤집어진 사례도 있었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4월23일 경찰에 ‘이의신청의견서’를 제출했다. 학교나 경찰 측이 신빙성이 크지 않은 정황 증거만을 가지고 피해자의 진술을 묵살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의신청을 받아들였다. 대전경찰청 이의조사팀이 사건을 재수사했다. 가족들은 박양의 진술이야말로 이 사건의 결정적인 직접 증거라고 주장한다.

성희롱·성추행·성폭행 여부를 판단하는 제1 원칙은 ‘피해자 중심주의’다. 물리적으로 뚜렷한 증거가 없다면 성폭행 사건은 사건 당사자의 기억에 의존해 사건이 구성된다. 이때 피해자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정황을 판단해야 오류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적 약자인 여성 장애인이 관련된 성추행 사건이라면 더욱 그렇다.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해 피해자 박양의 진술을 우선 청취하고, 이것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아동·장애인 성폭력 사건 전문가의 자문을 바탕으로 규명하는 작업이 선행됐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의미 있는 진단이 있다. 대전여성학교폭력피해자 원스탑지원센터 임상심리사인 이자영씨가 1월25일 제출한 의견서다. 사건 직후인 지난해 12월27일 1시간 29분간 진행한 영상 녹화 조사를 분석한 결과물이다. 이씨는 ‘피해자는 일관되게 자신의 피해 사실에 대해 보고하고 있으며, 자신의 감정에 대해 표현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가해자와의 상호 작용에 대해서도 묘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피해자가 자신이 실제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진술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피해자 박양이 증언한 내용이 상당 부분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사건 초기, 학교나 경찰 측은 피해자 박양의 진술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접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은 듯이 보인다. 정황 증거로만 성추행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을 뿐, 피해자 박양의 진술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박양의 담임교사는 사건 당일 학급 학생들과의 면담과 설문 등으로 성추행이 아니라는 자의적 판단을 내렸다. 학교 측은 현재까지도 이런 결론을 고수하고 있다. 경찰의 ‘내사 종결 사유서’에서도 박양 진술 자체의 타당성에 대해서 고민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기자가 임상심리사 이자영씨의 의견서를 거론하며 관련 내용을 질의하자 담당 수사관은 “인터뷰를 통해서 할 말은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수상한 점은 또 있다. 경찰과 학교가 박양의 신체 및 심리 상태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성추행 피해자를 사건 직후 산부인과에 보내 진료받도록 하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피해자의 몸 상태가 성추행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경찰은 박양의 신체 상태에 대한 어떤 진단도 없이 성추행 주장을 기각했다. 학교 역시 박양의 신체·심리 상태와 성추행 가능성을 연결 지어 생각하지 않고 피의자의 ‘무혐의’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피해자가 스스로 몸에 상처를 낸 흔적.
그러나 피해자 박양의 몸과 마음에는 성적 추행이 있었음을 의심할 만한 증거들이 남아 있었다. 박양을 진단한 산부인과 의사는 3월14일 작성한 진단서에서 ‘hymen(처녀막)이 11시, 3시 방향으로 intact(온전)해 보이지 않는다’는 소견을 냈다.

신윤오 충남대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3월20일 작성한 진단서에서 박양이 겪고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명시했다. 신 교수가 진단한 박양의 상태는 다음과 같았다. △머리를 벽에 찧으며 폭행·성추행과 관련된 외상성 사건으로 추정되는 경험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 △여러 번 옷을 갈아입음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 지르기 △사건을 재현하는 것으로 보이는 놀이 △특정인의 이름을 반복해 부르는 행동 등이다.

해당 진단서들은 사건 발생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작성됐다. 만약 경찰이나 학교 측이 그 사이 박양의 상태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런 사실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경찰과 학교는 피의자의 ‘무혐의’에 집착했을 뿐, 박양의 신체나 심리를 통해 실제로 성추행을 당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데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박양에 대한 해당 중학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4월12일 회의록에 따르면, 학생복지부장이 ‘(박양은)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 다니는 것으로 안다. 빨리 쾌유하길 기원한다’고만 밝혔을 뿐이다. 이 회의에서는 박양 성추행 사건에 대해 ‘경찰 조사 결과가 무혐의로 나왔기에 학교에서는 따로 조치를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회의 법 누구 위해 존재하나”

사건을 재수사한 이의조사팀은 7월24일 작성한 수사 결과 보고서에서 이전의 ‘내사 종결 사유서’와는 사뭇 다른 결론을 내놓았다. 박양의 일관된 진술, 피의자 정군의 태도, 임상심리사의 의견서 및 의사들의 소견서 등을 볼 때 ‘피의자의 혐의 사실에 대한 개연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다만 ‘피의자의 혐의 사실을 입증할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직접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는 의견과 함께 사건을 대전지방법원 소년부에 송치했다. 판단은 사법부의 몫이 됐다.

현재 박양 가족은 “부디 피해자인 박양의 진술을 토대로 진실을 철저하게 규명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의 재수사를 통해서도 박양이 입은 성추행 피해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를 입증하는 증거는 드러나지 않았다. 박양과 학교의 입장은 여전히 엇갈린다. 성추행 사건의 진실은 과연 밝혀질 수 있을까. 박양의 어머니는 “사건 당시 너무나 놀라고 충격을 받아 정신이 없었다. 딸애를 즉시 산부인과로 데려가 진단하지 않았던 것이 평생의 한으로 남을 것 같다. 억울해서 숨이 막힐 정도다. 이 사회의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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