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수다 떨다 세상 바꾸다
  • 김중태│IT문화원 원장 ()
  • 승인 2013.08.2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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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청년이 만든 군대 내 비밀 대화 도구 ‘메신저’

한국인이 스마트폰으로 하루에 한 시간 하는 일이 카카오톡으로 지인과 소통하는 것이다. 카카오톡은 무료로 실시간 대화가 가능한 모바일 인스턴트 메신저(MIM: mobile instant messenger)의 한 종류로 PC용 메신저에 뿌리를 두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세계 최초의 메신저 프로그램은 ICQ로 이스라엘의 미라빌리스(Mirabilis)에서 1996년 11월 출시됐다. ICQ는 ‘I Seek You’라는 의미로 사용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친구들과 언제든 대화할 수 있어 큰 인기를 끌었다. 2001년에 인터넷 사용자 4명 중 1명이 ICQ를 쓸 정도로 확산됐다. 국가별·성별·연령별 사용자 검색과 파일 전송, 음성 전송, 노트 등 다양한 기능이 제공되기 시작했다.

원조 메신저인 ICQ가 이스라엘에서 만들어진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이스라엘 창업자들이 ICQ를 만든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군대에서 상관에게 들키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대화를 하기 위해서였다. 친구와 대화를 하려고 만든 이 프로그램은 1998년 AOL에 4억 달러에 인수되면서 이스라엘 벤처 신화의 발판이 됐다. ICQ 창업자가 회사를 팔아 생긴 돈으로 벤처 산업에 투자해 수많은 벤처가 태어나는 계기가 됐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벤처 왕국이다. 2011년과 2012년에 다국적 기업에 팔린 이스라엘 벤처기업은 117개로, 액수로 따지면 130억 달러(약 14조원)에 이른다. 팔려나간 기업 말고 2012년 말 기준 나스닥에 상장된 이스라엘 벤처기업은 53개다.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다. 유럽 국가 전체인 51개보다 많은 숫자다.

ICQ가 인기를 끌자 야후와 마이크로소프트 등에서도 메신저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시장은 세 업체의 주도 아래 폭발적으로 커졌다. 한국에서도 1998년 디지토닷컴이 ‘소프트메신저’를 내놓은 적이 있다. 그러나 한국 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MSN메신저가 장악했다. 한국에 초고속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일반 국민이 집에서 인터넷을 쓰게 된 시기는 2000년부터다. MSN메신저는 운영체제인 윈도만 설치하면 자동으로 깔렸다. 이러한 ‘끼워 팔기’를 통해 한국 시장은 MSN메신저가 독점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MSN메신저 독점 깬 ‘무료 문자’

2003년 SK커뮤니케이션즈의 ‘네이트온’이 출시되면서 시장은 급변한다. 윈도에 탑재된 MSN메신저의 위상을 누구도 무너뜨리기 어려울 것이라 여겼기 때문에 후발 주자인 네이트온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네이트온이 ‘난공불락’이던 MSN메신저를 누르고 국내 1위가 된 비결은 무료 문자와 싸이월드 연동이다.

당시 1200만명의 사용자를 가진 MSN메신저를 잡으려면 킬러 아이템이 필요했다. SK컴즈는 이동통신 계열사의 특징을 살려 무료 문자라는 비밀 병기를 내놓는다.

당시 문자메시지(SMS)는 학생과 젊은 층에게는 가장 중요한 소통 수단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건당 몇십 원의 비용은 큰 부담이었다. 그런데 이 문자를 100건이나 무료로 제공한다고 하니 모두 네이트온을 깔기 시작했다. 거기에 대화할 ‘버디리스트’가 만들어지니 메신저로도 손색이 없었다. 무료 문자 제공 이후 인기가 치솟자 싸이월드를 네이트온과 연동시키는 기능을 선보였다. 그렇게 해서 네이트온은 1400만명의 사용자를 확보하며 2005년 3월 드디어 MSN메신저를 제치고 국내 1위에 올랐다.

한국에서 네이트온이 혜성처럼 등장할 때 중국에서는 세계 1위의 메신저 프로그램이 선보였다. 중국의 텐센트라는 기업이 만든 QQ라는 메신저 서비스다. QQ는 7억명 넘게 사용하는 메신저로 최다 동시 접속자 1억4540만명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텐센트는 스마트폰용 메신저가 인기를 끌자 QQ와 연동이 가능한 ‘웨이신’이라는 MIM 서비스를 내놓았다. 2011년 1월 출시된 이후 빠르게 성장해 2년 만인 2013년 1월에는 사용자가 3억명을 돌파했다. 웨이신은 위챗(wechat)으로 이름을 바꾸고 세계 최대 서비스가 됐다. 텐센트는 우리나라의 카카오톡에 720억원을 투자해 지분 13.8%를 확보한 대주주이기도 하다.

MIM의 경우 한국에서는 카카오톡이 1위를 하고 있는데, 그 탄생 과정이 흥미롭다. 한게임을 만들었던 김범수씨가 2006년 12월 아이위랩을 창업해 ‘부루닷컴’과 ‘위지아’라는 서비스를 내놓지만 처참하게 실패한다. 회사를 접을 생각을 하던 때에 마침 스마트폰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도전해보고 접자는 심정으로 시작한 것이 카카오톡이다.

그는 어떤 서비스가 좋을지 몰라 14명인 직원을 세 팀으로 나눈 뒤 각 팀에게 하나씩의 주제를 할당했다. 그 결과 그룹 커뮤니티인 카카오아지트, 모바일메신저 서비스인 카카오톡, 마이크로 블로그 카카오수다를 2010년 3월에 내놓았다. 카카오톡이 인기를 끌겠다고 판단되자 모든 팀원을 여기에 합류시켰다. 이로 인해 카카오아지트는 2010년 3월 이후 유명무실해졌고, 카카오수다는 서비스가 중단됐다.

카카오톡이 인기를 끌었으나 초기에는 선발 주자인 왓츠앱을 비롯해 비슷한 기능을 가진 엠앤톡 등에 밀렸다. 하지만 왓츠앱은 영어권 서비스 결함으로 사용자 증가에 한계를 보였다. 엠앤톡은 회원이 300만명을 넘어서면서 서비스 장애가 발생했다. 결국 MIM계에서 카카오톡(카톡)의 독주가 시작됐다.

카톡 성공 비결 “사용자 목소리를 들어라”

카카오톡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사용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다. 천재로 불리던 사람이 개발한 부루닷컴과 위지아의 실패는 사용자의 의견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일깨워줬다. 그래서 카카오톡이 나온 이후 만들어지는 기능과 개선 사항의 99%는 사용자가 보낸 의견을 바탕으로 이뤄졌고 카카오톡은 한국 최고의 앱이 됐다.

2013년 7월 기준 카카오톡에 등록된 전화번호는 1억개를 넘었다. 이 중 한국 전화번호는 6700만개, 하루 1개라도 메시지를 전송하는 사용자(UV)는 3000만명, 이들 중 1인당 평균 120명의 친구가 등록된 상태다. 카카오톡 게임은 시장 구조를 바꿀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 드래곤플라이트의 경우 2000만 내려받기를 기록하는 데 걸린 시간이 29일에 불과했다. 카카오톡 게임 매출은 2013년 상반기에만 3480억원에 달한다. 8개로 시작한 커머스도 1만2000개 상품으로 증가하는 등 카카오톡의 성장세는 무서울 정도다. 한 예로 파리바게뜨와 제휴를 맺은 케이크의 경우 짧은 기간에 50만개가 팔렸다.

이스라엘의 한 청년이 친구와 대화하기 위해 만든 메신저가 이스라엘 벤처 신화의 기반이 되고, 세계 최대 SNS인 QQ와 위챗을 탄생시켰다. 한국에서는 일상을 지배하고 이동통신·미디어·게임·쇼핑 등 각종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카카오톡으로 발전했다. 앞으로 메신저는 기본적인 소통 도구로 발전하면서 다양한 산업과 연계되는 플랫폼이 될 것이다. 남은 것은 누가 메신저 시장의 지배자가 되고, 메신저가 어떤 영역까지 진출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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