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탑에 희망의 종 울리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3.09.04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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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교육, 2076일 노사분규 타결…대화와 타협 결실

국내 최장기 비정규직 농성 기록을 세워가던 재능교육 노사분규가 극적으로 타결됐다. 햇수로 5년 8개월, 일수로 2076일 만이다. 기륭전자 비정규직의 1895일을 훌쩍 넘어선 기록이다. 지난 8월26일 재능교육 본사에서 ‘협력과 상생을 위한 2013년 합의문’ 조인식을 갖고 노사가 손을 굳게 맞잡았다. ‘국내 최장기 농성’이라는 불명예를 안았으나 재능교육 노사는 ‘양보와 타협’의 묘미를 보여준 사례가 됐다.

재능교육은 1977년에 설립된 토종 학습지 회사다. ‘스스로’를 브랜드로 내걸며 한때 업계 1위를 넘봤으나 2007년 노사문제가 터지면서 3위로 내려갔다가 지금은 4위까지 떨어졌다.

재능교육 노사가 처음부터 갈등을 빚었던 건 아니다. 2007년 5월 노사는 수수료 변경을 골자로 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회사는 노조와 맺은 단체협약에 대해 노조원을 포함한 전체 교사를 대상으로 찬성 여부를 물었고, 그 결과 98% 이상의 교사가 동의했다.

지난 8월26일 재능교육 본사에서 회사 측과 노조 측이 합의문 조인식을 가졌다. ⓒ 재능교육 제공
김현태 재능교육 대외협력실장은 “노-노 갈등으로 인해 새로운 노조가 등장하면서 노사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재능지부에 소속된 새 노조는 이전에 합의한 단체협약을 파기하고 새로운 단체협약을 맺자고 제안했다. 회사 측은 ‘조합원 투표를 통해 다수가 인정한 협약을 번복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고 말했다.

재능교육 노조는 2007년 12월21일 ‘교사들의 수수료 제도 변경’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 시멘트 바닥에 천막을 쳤다. 길고 긴 투쟁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때부터 회사와 노조의 끝이 안 보이는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재능교육 노조는 “회사가 단체협약을 파기한 탓에 농성이 시작됐다”는 입장이었다.

2008년 10월 사측은 노조에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했고, 농성에 가담한 조합원들과의 계약도 순차적으로 해지했다. 재능교육 노사는 고소, 고발,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 손해배상 소송, 불매운동, 심지어 폭행 시비까지 노사분규가 일어난 다른 사업장과 똑같은 전철을 밟았다. 회사와 노조 간의 앙금은 더욱 깊어졌다.

2010년 11월 노조는 농성장을 서울 중구 을지로 사옥으로 확대했다. 바로 옆에 있는 환구단(고종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설치한 곳) 정문 앞에 천막을 쳤다. 노사 갈등이 해소되기보다는 오히려 악화되는 모습이었다.

회사 측은 노사문제 해결에서 ‘법’과 ‘원칙’을 내세웠고, 노조는 노조대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투쟁 강도를 높였다. 브레이크 없이 평행선을 달리던 노사에 ‘대화’와 ‘타협’은 없었다.

노사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재능교육은 노동문제 전문가인 양병무 전 노동경제연구원 부원장을 사장으로 영입했다. 이때가 2010년 5월이다.

2011년 1월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됐다. 양병무 대표와 노동계를 대표한 강규혁 민주노총 민간서비스연맹위원장,이재웅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장이 마주 앉았다. 노동계는 ‘단체협약 체결과 해지자 전원 복직’을 주장했고, 회사 측은 ‘임직원과의 정서상 단체협약과 해지자 전원 복직은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같은 해 4월 두 번째 협상에서 “회사가 더 양보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요청을 전격 수용했다. 사측은 단체협약은 어렵지만 해지자 가운데 한 명을 제외하고는 전원 복직시키고, 노조원들의 생계 보전을 위한 위로금 지급, 각종 민·형사 소송을 취하한다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노동계도 이를 전향적으로 받아들여 관련자 전원이 모인 자리에서 최종 합의안을 논의했으나 재능지부 노조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백지 상태로 돌아갔다. 노조 측은 ‘단체협약 체결’ ‘해지자 전원 복직’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2012년 1월 암 투병 중이던 이지현 조합원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고, 이는 협상의 새로운 변수로 작용했다. 같은 해 8월 사측은 노조에 최종안을 제시했다. 크게 다섯 가지였다. 합의서 체결 즉시 해지 조합원 11명 전원과 위탁 사업 계약 체결, 단체교섭 시작, 민·형사상 고소·고발 취하, 해지 교사 11명에게 생활안정지원금과 노사협력기금 지급(총 1억5000만원), 조합 활동을 이유로 불이익 처분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회사로서는 마지막 카드를 내민 셈이다.

하지만 노조의 생각은 달랐다. 농성 중에 사망한 고 이지현씨를 복직자 명단에 포함시켜달라고 요구했고, 단체협약을 체결한 후 회사에 복귀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재능교육 노사 협상은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다시 해를 넘겼다. 노사 협상은 답보를 거듭했다. 2013년 2월6일 노조는 재능교육 본사 맞은편에 있는 혜화동 성당 종탑을 불시에 점거하면서 ‘배수의 진’을 쳤다. 오수영 재능지부장 직무대행과 여민희 두 조합원은 겨울 한파가 매섭던 날 20m 높이의 성당 종탑에 올라갔다.

회사 측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었다. 이 일로 인해 노조도 내분을 겪어 ‘종탑파’와 ‘시청파’로 나뉘면서 양측 간 반목이 시작됐다.

회사 측도 조바심이 생겼다. 종탑에 올라간 조합원들의 건강과 안전에 이상이 생기면 엄청난 부담을 떠안아야 했다. 종탑 아래서 지켜보는 노조원들도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종탑 농성 50일이 지나고 100일이 지나고 200일에 이르렀다. 학습지 노조의 상급 단체에서도 재능교육 노사분규를 끝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들 단체의 요구에 따라 우여곡절 끝에 노사 간 교섭이 재개됐다.

8월19일부터 22일까지 집중 교섭을 벌인 끝에 최종 합의에 도달했다. 회사와 노조가 한 발짝씩 양보해 얻은 성과다. 사측은 노조의 요구대로 고 이지현 조합원을 포함한 계약 해지자 11명을 전원 복직시키고, 2008년 10월에 해지한 단체협약을 원상회복하기로 했다. 또 노조 생활안정지원금 및 노사협력기금으로 기존 제시액보다 7000만원 늘어난 2억20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반면 노조는 복귀 전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요구해왔으나 ‘복귀 후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 시작’을 내건 회사 측 입장을 받아들였다.

재능교육 노사는 오랜 분규로 인해 깊은 상처가 남았다. 하지만 회사 측은 협상 타결을 위해 ‘법대로’를 뛰어넘는 노력을 기울였다. 노조도 그 못지않은 성과를 얻어냈다. 현재 학습지 교사는 특수고용자 신분이다. 업계 어느 곳도 단체협약을 맺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번에 ‘단체협약’의 물꼬를 텄다. 결과적으로 회사와 노조 모두 ‘승리자’가 된 셈이다. 


ⓒ 시사저널 이종현
오랜 노사분규가 끝났다. 소감이 어떤가.

비정규직 최장기 농성을 한 회사의 대표라고 생각하니까 항상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됐으니까 최장기 사업장 농성을 잘 끝낸다면 더 큰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반드시 끝내야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종탑에 올라간 두 조합원이 안전하게 내려온 것을 보고 사장 입장에서는 참 고마웠다. 서로 악수하면서 ‘우리는 재능가족’이라는 것을 가슴으로 느꼈다. (장기 농성으로) 노조원들도, 회사도 상처를 입었다. 이제부터는 상생하고 화합하며 회사와 노조가 함께 웃는 회사를 만들겠다.

회사는 ‘법’과 ‘원칙’을 고수하다 입장을 선회했다. 왜 그런 것인가.

‘법’과 ‘원칙’을 계속 고수하면 (노사분규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지난해 8월 회사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을 제시했다. 그런데도 노조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다 두 여성 조합원이 종탑에 올라가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 조합원의 건강과 안전이 염려됐다. 그래서 7월, 8월 늦어도 9월에는 해결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다시 교섭을 제안했다. 노사가 타협과 양보를 통해 소중한 결실을 맺었다.

농성이 장기화되면 노사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게 마련이다. 재능은 어떤가.

노사문제는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이 만나야 풀어낼 수 있다. 법과 원칙으로 냉철하게 했으면, 그다음엔 따뜻한 가슴으로 대해야 한다. 우리도 서로 불신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회사가 겸손한 자세로 다가갔다. 노조를 배척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가족’으로 생각하고 협상에 임했다. 본사 앞에서 노조원들이 농성할 때는 직원들에게 인사도 하고, 녹차도 타주고, 커피도 타주면서 대화하도록 했다. 회사가 이런 진정성을 가지고 대하니까 노조원들도 인간적인 반감은 없었다고 본다.

회사가 잃은 것과 얻은 것은 무엇인가.

재능교육은 노사분규가 있는 회사로 인식돼 이미지가 많이 훼손됐다. 한때 업계 1위를 넘봤는데 노조가 생기면서 2위에서 4위까지 떨어졌다. 교사 모집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것이 회사의 아픔이고 눈물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서로의 눈물을 알 수 있었다. 노조도 없던 것을 만들었으니, 서로의 자존심을 살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 이번에 노사분규가 타결되고 나서 거의 모든 언론에 보도가 됐다. 나는 200여 개의 기사를 일일이 다 읽어봤다. 그동안 쌓였던 부정적인 이미지를 일시에 해소한 것 같다. 재능교육 노사분규를 몰랐던 사람들도 회사가 결단하고 노사가 손잡은 것을 보면서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됐다고 본다. 이제는 아픔을 딛고 노사가 힘을 모으는 일만 남았다.


 
 

여민희 조합원(오른쪽) ⓒ 연합뉴스
노사분규 타결 소감은.

종탑에서 내려온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일단 장기 농성이 정리됐고, 무엇보다 우리가 요구했던 단체협약 원상회복과 해지자 전원 복직이 이뤄진 것이 기쁘다. 교사들 처우에서 악(惡) 제도가 있었는데 회사 측에서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들어가는 것이다.

협상 결과에 만족하는가.

긍정적이다. 만약 단체협약 원상회복이 안 됐으면 농성을 풀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지켜진 것이 큰 성과다.

종탑 위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

처음에 종탑에 올라가서도 교섭에서 단체협약을 거론조차 하지 못했다. 5년 넘게 농성이 이어졌는데도 회사는 우리를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종탑에서 ‘뭘 더 다른 것을 해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할 때 가장 힘들었다. 우리가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많이 알렸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알리기는 했지만 아직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특수노동자 문제가 부각이 안 됐을 때 고민이 많았다.

종탑에 올라갈 생각은 누가 했나.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천막 농성을 하면서 저기가 어떨까 계속 생각했다. 갑자기 올라간 것은 아니고 충분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다.

무섭지는 않았나. 건강은 괜찮은가.

겨울에는 그럭저럭 버텼다. 그런데 최근 비바람이 불고 번개가 칠 때는 정말 이 상태가 계속되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올여름에 무척 더워서 탈수 증상으로 밤에 열이 나고 고생을 많이 했다. 근육을 많이 안 썼더니 앉아 있기가 어렵다. 건강검진을 했는데 큰 문제는 없다고 나왔다.

회사와 감정의 골은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다. 아주 많다. 본사 앞에서 농성할 때 사측 직원들과의 충돌로 조합원들이 다친 적도 있다. 그것 때문에 병원에도 갔다. 그 외에도 농성 기간이 길어지면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살면서 그런 경험을 하기가 쉽지는 않지 않겠는가. 

회사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일단 회사가 단체협약을 인정하고 노동조합을 인정했으니 거기서부터 출발이다. 행정법원에서도 노조로 인정해야 한다고 했는데, 또 ‘법외 노조’라고 한다든가 하면 불신이 시작된다. 이번에 합의안을 체결하면서 가졌던 마음 그대로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 그동안 자본에게 많이 당했다. 그래서 믿을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 현장 교사로 돌아가는 기분이 어떤가.

많이 설렌다. (내가) 교사였을 때 잘했는데, 사실은 부담감이 있다. 6년이란 시간 동안 현장을 떠나 있다 보니 현장감도 없다. 그 사이 나이도 들었다. 신입사원처럼 배우면서, 선생님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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