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잡으면 에이즈도 잡는다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3.09.04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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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두 노출되면 바이러스 침투 못해…조루 증세 완화 효과는 “글쎄”

한국은 포경수술 건수에서 세계 1위다. 방학이면 아들의 ‘고추’를 수술시키려는 어머니들로 비뇨기과가 붐빈다. 10대 후반의 남학생 가운데 포경수술을 받은 사람이 90%나 될 정도로 한국 남성의 포경수술 비율은 유난히 높다. 현재 세계적으로 포경수술을 받는 남성은 약 25%이며, 이슬람교와 유대교 신자를 제외하면 5%를 밑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에서 영국은 6%, 덴마크는 2% 수준이다. 포경수술이 관례화된 미국 신생아의 포경수술 비율도 60% 남짓이다. 한국의 포경수술 붐은 1950년대 이후 미국의 문화를 따라한 결과다. 유행에 눈사태처럼 쏠리는 사회 풍조가 얼마간 작용했을 터다.

포경(包莖)은 우리말로 우멍거지다. 고래잡이를 뜻하는 포경(捕鯨)과 한글 발음이 똑같아서 포경수술을 속칭 ‘고래잡이 수술’이라고 부른다. 포경(包莖)은 음경에서 귀두를 싸고 있는 포피가 뒤로 젖혀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수술의 목적은 포피 안쪽 공간과 입구 쪽 주름 사이에 세균이 번식할 가능성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다.

ⓒ 일러스트 임성구
포경수술, 세균 번식 감소시키기 위한 것

포경수술 바람이 본격적으로 일어난 것은 1932년. 영국의 의학 전문지 <랜싯>에 ‘포경이면 남성의 음경암과 아내의 자궁암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부터다. 반면 “귀두 포피는 귀두와 요도구를 외부 자극과 오염으로부터 보호하므로 그냥 놔두는 것이 좋다”는 반론이 나오면서 포경수술을 꺼리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 후 귀두가 노출되면 평소 속옷과의 마찰로 단련돼 조루 증세가 완화된다는 의견과, 포피가 성 감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를 제거하면 성적 쾌감이 줄어든다는 의견도 나오는 등 포경수술에 대한 이론이 분분했다. 물론 현재도 포경수술의 장단점에 대한 논문이 수시로 각종 의학지에 발표되면서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포경수술이 에이즈 발병률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화제가 됐다. 세계보건기구(WHO)와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INSERM) 공동 연구진에 따르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포경수술을 한 남성이 에이즈에 감염될 확률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65% 낮았다.

이에 앞서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존스홉킨스 대학, 컬럼비아 대학 공동 연구팀이 우간다에서 부인이 에이즈에 감염된 187쌍의 부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포경수술을 받지 않은 남편 137명 중 16.7%가 1년 내에 에이즈에 감염된 반면, 포경수술을 받은 남편 50명은 한 명도 에이즈에 걸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미국 시카고의 카를로스 에스타다 박사가 미국비뇨기과학회에 발표한 논문에서도, 포경수술을 하지 않은 남성의 음경 포피세포에 에이즈 바이러스가 인체에서 둥지를 트는 수용체(受容體)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왜 여자는 포경수술을 받지 않을까. 남성의 생식기는 음경(페니스), 여성의 생식기는 음핵(클리토리스)이다. 따라서 음경과 음핵은 상동기관이다. 상동기관은 하나의 구조로부터 발달했기 때문에 서로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다. 음경과 음핵을 예로 들어보자.

첫째 음경과 음핵은 크기가 다를 뿐이지 똑같은 발기 조직을 갖고 있어서 성적 자극을 받으면 커진다. 발기 조직이 커지는 것은 동맥이 굵어지고 정맥이 가늘어져 피가 모이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둘째 음경의 끝을 음경꺼풀이라는 피부가 싸고 있듯이 음핵은 음핵꺼풀이 싸고 있다. 음경꺼풀은 차지하는 면적이 넓기 때문에 병균과 같은 이물질이 끼어 질병을 유발하기 쉽다. 그래서 남성은 음경꺼풀을 잘라내는 포경수술을 받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여성은 음핵꺼풀의 면적이 작기 때문에 이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을 필요가 없다.

논란 많지만 수술 후 실보다 득 많아

포경수술을 두고 지금까지는 ‘위생적이다’와 ‘성감을 낮춘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하지만 에이즈에 걸릴 확률을 낮춘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포경수술이 어떻게 에이즈의 감염을 막는지는 그동안 의문점이었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의대와 비영리 연구단체인 응용유전체학연구소(TGen)의 랜스 프라이스 연구팀은 그 의문을 풀었다. 음경 포피에 있는 약 40종의 미생물을 분석한 연구 결과에 의해서다.

연구팀에 따르면 귀두 포피에 사는 미생물은 포경수술 후 산소에 더 많이 노출되는데, 이때 공기와 적대 관계인 ‘혐기성 미생물’은 줄어들고 산소가 필요한 ‘호기성 미생물’이 증가해 남성 생식기의 세균 생태계를 바꾸기 때문에 에이즈에 걸릴 확률이 낮아진다. 즉, 포경수술로 공기에 노출된 환경에서는 에이즈 바이러스나 혐기성 세균이 오래 살지 못해 에이즈 바이러스(HIV)가 몸속으로 침투할 확률도 크게 떨어진다. 그 이유는 면역세포 중 하나인 랑게르한스 세포와 관련이 있다. 랑게르한스 세포는 평소 몸 안에 침입한 바이러스를 잡아먹으며 우리 몸을 보호한다. 그런데 혐기성 세균이 늘어나 랑게르한스 세포가 활성화하면 갑자기 작용이 달라진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보통 랑게르한스 세포와 또 다른 면역세포인 ‘CD4+’를 감염시키며 우리 몸속에 침투한다. 이때 혐기성 세균에 의해 활성화된 랑게르한스 세포가 거꾸로 에이즈 바이러스의 몸속 침투 과정을 돕게 된다.

그러나 포경수술을 하게 되면 혐기성 세균 수가 줄어들어 에이즈 바이러스의 몸속 감염률을 낮출 수 있다. 포경수술이 에이즈 바이러스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구체적 근거가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포경수술, 그래서 실보다 득이 훨씬 많다.  

 

포경수술은 언제부터 했을까 


포경수술은 6000년 전 이집트에서 시작돼 유대인에게 전해졌다고 한다. 유대교에서는 생후 8일째 되는 날 포경 시술을 하는데 이 의식을 할례라고 한다. 할례는 구약성서에서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후손 사이에 한 계약의 증표로 묘사된다(창세기 17장 9?14절). 이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99세에 할례를 받았다.

이슬람권에서는 마호메트가 포피 없이 태어났다고 알려진 뒤 수술이 전통으로 굳어졌다. 중세 유럽의 일부 성직자와 의사들은 포피를 그냥 두면 ‘자위의 광기’에 빠지게 되고, 히스테리나 간질, 야뇨증 등을 일으킨다며 수술을 권했다. 예전에는 귀두를 덮고 있는 부분을 통째로 싹둑 자르고 꿰매는 기요틴(단두대)법이 대부분이었으나, 요즘에는 귀두를 덮고 있는 부위의 바깥쪽 포피만 양파 껍질을 벗겨내듯 피하조직과 구분한 뒤 포피만 잘라내고 남아 있는 피하조직만 당겨서 꿰매는 방법을 많이 쓴다.

지금까지 진행된 연구·조사는 포경수술을 받은 사람이 받지 않은 사람에 비해 에이즈 발생 위험성이 작다는 ‘상관 연구’였다. 물론 포경수술을 꼭 받아야 되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이 있다. 하지만 포피의 감염을 예방하고 청결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 등만 보더라도 해서 나쁠 것은 없다. 아무리 자주 씻는다 해도 포피 주름에 이물질이 낄 수 있기 때문이다. 포경수술을 하면 각종 감염 등이 예방된다는 것은 여러 번 입증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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