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돌보다 우리가 쓰러져요
  • 김회권 기자·조유빈 인턴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3.09.04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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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사회복지공무원 실태…적은 인원에 살인적 업무

1월31일. 2월26일. 3월19일. 5월15일. 올해 상반기에만 사회복지공무원(이하 복지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4차례나 있었다. 지난 5월15일 새마을호 열차에 몸을 던진 김 아무개씨도 그중 한 명이다. 지난해 복지공무원으로 임용된 김씨는 논산시청 사회복지과에서 근무했다. 당시 김씨를 포함해 4명은 1만명이 넘는 시민에게 복지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김씨는 장애인 주거 시설 운영비와 단체 사업비 등을 관리했다.

김씨는 밀려드는 업무에 2월부터 쉬는 날이 거의 없었다. 낮에는 서비스를 받는 시민들을 상대해야 했고, 퇴근 시간 이후에는 미뤄놓았던 서류 작업들을 해야 했다. 격무의 연속이었다. 매일 파김치처럼 처지게 만드는 피로와 업무 스트레스는 김씨를 철로로 내몰았다.

“여성이 많은 곳이죠. 그 때문에 험한 꼴도 많이 당하고 그래요. 힘들죠. 그래서 오래 못 하겠다고 다들 이야기해요.” 서울의 한 동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ㄱ씨는 복지공무원 5년 차다. 복지를 책임진다는 사명감은 말 그대로 “잠깐 느껴봤다”고 한다. “과로사 안 하는 게 용하다고 우리끼리 말해요. 매일매일 입력하느라 정신이 없거든요.”

2013년 3월30일, 자살한 사회복지공무원을 기리는 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추모사를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올 상반기에만 복지공무원 4명 자살

복지공무원의 잇따른 죽음이 파장을 일으키자 지자체들은 뒤늦게 개선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지난 4월9일 서울시청에는 각 구청에서 근무하는 복지 관련 공무원 2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ㄱ씨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그때 박원순 서울시장이 여러모로 불합리한 부분을 개선해주겠다고 했어요. 직원도 늘려 배치하고 인사 부분도 신경 써주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당장 실시해도 턱없이 모자라요. 혁명적인 수준이 돼야 합니다.”

현재 정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복지 사업은 292개에 달한다. 이 중 주민 밀착형 사업인 기초생활보장급여·기초노령연금·결식아동지원 등 197개 사업이 동 단위 주민센터에서 이뤄지고 있다.

공무원 중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분야가 따로 분리된 때가 1987년이다. 당시에는 ‘복지’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고, 그래서 업무량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복지가 일상적인 용어가 되었을 정도로 확대됐다. 복지공무원이 맡아야 할 범위 자체가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어졌다.

“전산화가 독이었죠. 1건을 처리하는 데 10분 정도 걸려요.” ㄱ씨는 사회복지통합관리망인 ‘행복e음’을 ‘독’이라고 말했다. 전산화는 필요했지만 전산 작업을 위해 따로 인력을 배치한 게 아니다. 손으로 작성한 신청서를 전산망에 옮기는 작업은 기존 복지공무원의 몫이다. 민원 하나를 처리할 때마다 각종 서류를 받고 일일이 조사하고 입력한다. 업무 시간에는 현장도 돌아야 한다. 입력 작업은 주로 업무 시간이 지난 후에 이루어진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대통령 후보가 ‘복지’를 외쳤던 지난해 대통령 선거는 복지공무원들에게 끔찍한 기간이었다. “큰 틀의 복지 정책이 나오면 세세한 부분으로 나뉘어 현장으로 내려오거든요. 인원은 그대로인데 일은 엄청나게 늘어나는 거죠.”

복지공무원 65%가 우울증, 30%는 자살 충동

네 번째 자살 사건이 있기 직전인 지난 5월9일, 공무원노조와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사회복지직 공무원의 노동 조건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심각했다. 사회복지직 공무원 중 약 65%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30%는 자살 충동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ㄱ씨는 “업무를 떠나 정서적으로 불안감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급권자에게 불리한 결정을 전해야 할 때가 복지공무원들에겐 가장 두렵다. 지난해에는 성남시 중원구청 복지공무원이 수급권자의 아들이 휘두른 칼에 얼굴과 목, 광대뼈 부근을 다쳐 병원에 후송되는 사건이 있었다. 아들이 칼을 휘두른 이유는 어머니의 기초수급비가 20만원 줄어든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교도소에서 갓 출감한 사람이 수급자 신청을 받아주지 않는다며 신변을 위협하는 사례도 있다. 출소자들의 경우 생활이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의 자활을 돕기 위해 기초생활보장사업과 연계할 경우 복지공무원이 직접 담당해야 한다. 하지만 상대해야 하는 출소자의 범죄 경력을 알 수 없다. ㄱ씨는 “복역했다는 기록만 알 수 있다. 상대가 살인을 했는지 강간을 저질렀는지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대다수가 여성인 복지공무원들이 느끼는 공포감은 크다.

복지공무원이 도대체 얼마나 부족한 것일까. <시사저널>과 정보공개센터는 복지공무원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2010~12년 서울시 각 구청별 인구 대비 복지공무원 현황’에 관한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자료를 보면 2012년 복지공무원 수는 전체 공무원 4만252명 중 1669명으로 4.1%에 불과했다. 복지공무원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노원구였다. 전체 공무원 중 9%를 차지했다. 가장 낮은 곳은 중구로 2.9%였다. 

2007~12년 정부의 복지 재정은 80조2000억원에서 123조5000억원으로 54% 증가했다. 다른 부처는 제쳐놓더라도, 단순히 보건복지부가 맡아야 하는 복지 사업 수만 무려 40개가 늘었다. 사업이 늘자 복지 대상자 수도 급증했다. 6년 동안 신규 대상자가 159% 증가했다. 그러나 그 실행을 책임져야 할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은 2만2748명에서 2만5400명으로 11.6%가 늘었을 뿐이다. 복지공무원 1인이 담당해야 할 복지 대상자 수는 2007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부처마다 앞다퉈 ‘복지’ 내세워

보육료·양육비 지원 대상도 확대됐고 초·중·고교의 교육비 신청 및 접수 업무 대행도 복지의 범주에 포함됐다. 보건복지부뿐 아니라 교육부·고용노동부 등 다른 부처들도 ‘복지’ 개념을 갖다 붙이고 있다.

2012년을 기준으로 보면 복지공무원 한 사람이 담당해야 할 주민 수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기초수급대상자의 경우 서울시 복지공무원 한 사람이 120명을 담당해야 한다. 장애인은 244명을 맡아야 하고, 기초노령연금수령 대상자도 326명을 관리해야 한다. 이 중 중복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단순 계산을 해보면 복지공무원 1인이 담당해야 할 기초수급대상자·장애인·기초노령연금수령자만 690명에 달한다.

복지공무원 1인이 담당하는 인원이 가장 적은 곳은 강남구(500명), 용산구(504명), 성동구(532명) 순이었다. 가장 많은 곳은 도봉구(972명), 은평구(945명), 성북구(857명) 순이다. 대표적인 복지 서비스만 언급한 숫자인데 현재 ‘복지’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의 손에 놓이는 일명 ‘깔때기 현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복지공무원이 담당해야 하는 대상자는 더 많을 수밖에 없다. 결국 복지공무원을 많이 뽑는 게 일차적인 해결책이다.

올해 복지부는 대통령에 대한 업무 보고에서 공공과 민간의 복지 인력을 확충하겠다고 보고했다. 안전행정부도 “2013년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을 2340명 증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에도 복지공무원 확충안이 담겨 있다. 박 대통령이 약속한 숫자는 ‘7000명’이다. 복지 현장에서는 “인원을 충원하는 것은 환영한다. 하지만 당장 7000명을 추가해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복지공무원을 관리하는 전문적인 기관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있다. 선수경 한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장은 “많은 인원을 충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로 인해 생길지도 모르는 서비스 질 저하 등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업무의 설정’이다. 선 회장은 “사회복지공무원의 업무 영역을 명확하게 설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다른 기관에서 연금 등 기존 사회복지공무원이 담당했던 분야를 대신 맡아줄 경우 업무 부담은 확연히 줄어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복지공무원이 얼굴을 맞대는 사람들은 복지공무원을 공무원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국가’로 인식한다. 국가가 되어줘야 할 그들의 책상엔 수많은 할 일이 적힌 포스트잇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 이 기사는 정보공개센터의 정보공개 청구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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