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도 못하는 게 있네
  • 김원식│뉴욕 통신원 ()
  • 승인 2013.09.16 15:36
  • 호수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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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전쟁 반대론’에 부닥친 오바마의 ‘시리아 딜레마’

미국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주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시청이나 공공기관 건물에서 ‘타운홀 미팅’을 자주 갖는다. 9월5일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서도 타운홀 미팅이 열렸다. 40여 명의 주민이 모인 자리에 이 지역 상원의원인 존 매케인 의원이 참석했다. 매케인의 인사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남성이 말했다. “우리는 당신을 전쟁하라고 보낸 것이 아니고 막으라고 보냈다.” 겨우 인사말을 마친 매케인은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던 여성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이 여성은 “난 선거에서 당신을 지지했다”고 운을 뗀 후 “당신은 미국민 대다수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우리는 당신이 시리아에 개입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매케인을 몰아붙였다.

뜻하지 않게 지역 주민에게 수모를 당하는 매케인의 모습은 전파를 통해 미국 전역으로 퍼졌다. 보수적인 공화당, 그중 가장 보수적인 인사로 대선 후보까지 지냈던 상원의원의 봉변은 오늘날 미국 국민의 정서를 잘 반영하고 있는 사건이다. 미국의 끊임없는 중동 전쟁에 미국인들의 피로감은 극에 달한 상황이다. 엄청난 달러를 써가며 방위산업체는 즐거웠을지 모르지만 대신 경제 악화라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전쟁 수행에 따르는 불안과 공포는 미국인들의 정서를 억누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탄생도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완전 종식과 철수라는 공약을 내걸면서 가능했던 일이다.

그동안 오바마는 시리아 반군의 끊임없는 요청에도 내전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전제 조건은 있었다. 금지선(red-line)으로 정한 화학무기의 사용 여부다. 그런데 시리아 사태가 그 ‘레드라인’을 넘어서버렸다. 전쟁 반대 여론을 잘 알고 있는 오바마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한 셈이다.

9월9일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에서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지지자들이 미국의 군사 행동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 EPA 연합
오바마, 의회에 ‘시리아 책임’ 떠넘겨

오바마는 제한적인 정밀 타격으로 군사 개입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상황이 돌변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전쟁 개입에 따른 공포와 스트레스에 짓눌리고 있던 영국에서 의회가 군사 개입 인준안을 부결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도 “의회와 국민의 의사에 따르겠다”며 시리아 공격에서 발을 뺐다. 당황한 오바마 정부는 그래도 독자 공격을 감행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지만 상황은 그리 만만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또 다른 전쟁 발발을 우려하는 미국 여론은 군사 개입 반대로 쏠렸고 언론마저도 군사 공격 효과에 대해 회의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난감한 오바마는 9월10일 시리아에 대한 군사 행동에 관한 의회의 결의를 요구함으로써 워싱턴을 놀라게 했다. 군사 공격 결정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데 의회로부터 사전 인준을 받겠다고 한 것이다. 이런 결정이 백악관 회의에서 나왔을 때 참모 중 일부는 강하게 반발했지만 일부는 오바마에 적극 동의했다. 전쟁 반대 여론이 기세등등한 상황에서 의원들에게 민의를 묻는 절묘한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책임을 의회로 떠넘기겠다는 오바마의 정치적 판단은 적어도 시리아 사태를 둘러싼 미국 내 정국을 단숨에 변화시켰다.

반대로 오바마의 이번 결정은 대통령 재임 기간 중 가장 의외의 결정으로 평가받고 있다. 동시에 가장 위험도가 높은 결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대통령의 정치적인 운명이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두 세력, 즉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과 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세력이 낚싯대를 드리운 오바마의 예상대로 움직이는 물고기는 아니다.

오바마에게도 원군은 있다. 존 매케인을 비롯한 공화당 강경파 그리고 맥스 보커스 등 시리아 사태에서 편들어줄 만한 민주당 중도파는 오바마의 제안에 찬성할 가능성이 크다.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총무 등도 찬성 대열에 낄 수 있다. 그러나 티파티 운동 소속의 공화당 소장파 의원들은 과거 오바마 정부가 내놓은 법안이 통과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민주당 진보파와 손잡았던 전력을 가지고 있다. 이번 시리아 개입 인준 건을 놓고도 이전과 비슷한 협력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러 언론의 여론조사에서 시리아 공격에 관해 찬성하겠다고 밝힌 의원은 수십 명에 불과하지만 반대 의사를 표명한 의원은 200여 명이나 된다. 만약 시리아 공격 안이 부결될 경우 시리아에 대한 책임은 의회가 일정 부분 나눠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의회의 표결과 이후의 행동은 미국의 입장을 정의하는 사건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6월에 열렸던 ‘G8’ 정상회의 때 러시아는 시리아 정세를 놓고 아사드 정권을 지지한 유일한 이단자였다. ‘G7 +1’이 합쳐진 G8에서 ‘+1’은 서방 선진 7개국이 ‘민주주의 낙제생’이라며 러시아에게 준 명찰이었다. 그런데 이번 ‘G20’이 열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공수가 역전됐다. 미국 정보기관의 기밀을 누설하고 현재 러시아에 망명 중인 이른바 ‘스노든 사태’는 미-러 관계를 악화시켰다. 러시아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 중 “미-러 간 단독 정상회담은 없다”던 백악관의 발표는 결국 시리아 때문에 뒤집어졌다.

러시아와 중국뿐만이 아니다. 유럽연합(EU)도 “군사적 해결책은 있을 수 없다”고 미국에 경고하고 나섰다. 특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함께 전투하며 전통적인 동맹국 역할을 했던 영국 의회가 무력 개입에 ‘노’를 외친 게 상징적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G20은 미국 주도의 가치와 세계 질서에 이의를 제기하기에는 최적의 무대였다.

오바마는 9월10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군사 개입보다는 외교적 해결을 택했다. “일단 외교적으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시간을 벌고자 의회에 인준에 관한 표결을 연기할 것을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오바마는 국내에서는 세계 경찰의 위상에 맞게 시리아에 대해 군사적 개입을 해야 한다는 명분론과 중동 전쟁의 후유증으로 반감을 표출하고 있는 미국인들의 현실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국외에서는 “시리아 공격은 미국식 정의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국가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다. 이런 와중에 이란과 러시아는 아사드 정권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고, 레바논과 이라크에서 출발한 다수의 수니파 전사는 시리아 정부군과 싸우기 위해 시리아 국경을 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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