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서랍 속 ‘히든카드’ 꺼내나
  • 엄민우·조해수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3.10.02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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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주변에서 친박 핵심 실세 금품 수수 의혹 다시 거론

‘검란(檢亂)’이란 말은 역대 정권마다 어김없이 반복돼왔다. 그만큼 정치권력과 검찰의 정면충돌은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밖에 없었다. 권력자들 간의 힘겨루기이다 보니 정국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전격 사퇴 표명으로 지금 검찰은 눈만 껌벅이는 모양새다. 총장은 열흘이 넘도록 출근하지 않고 있다. 서초동 대검청사에는 폭풍 전야 같은 고요가 짙게 깔려 있다. 내부에서야 온갖 예측과 시나리오가 오가겠지만 겉으로 보기엔 그렇다는 것이다.

일단 칼자루는 청와대가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일까. 지금 서초동 분위기는 묘하다. 이상하리만치 차갑다. 하지만 그 냉기류 속에 반전이 뒤따를 것이란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검찰의 반격이 한 번쯤은 다시 정국을 흔들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시민단체의 고발로 채 총장 혼외 아들 의혹을 흘린 ‘배후’에 대한 수사가 가능해졌다. 베일에 싸인 임 아무개 여인 역시 한 시민단체에 의해 검찰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당했기 때문에 계속 논란의 중심에 서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검찰의 사정 칼날이 현 정권 실세를 정조준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함께하는시민행동’은 9월26일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조선일보에 정보를 제공한 신원 미상의 전달자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혐의는 가족 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초중등교육법 위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으로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취득하고 유출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채동욱 총장 혼외 아들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 연합뉴스
검찰, 청와대 ‘불법 사찰’ 의혹 수사

이번 고발로 검찰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대한 ‘불법 사찰’ 의혹을 공식적으로 수사할 수 있는 길이 일단 열렸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곽 전 수석과 서천호 국정원 2차장이 (채 총장) 사찰을 ‘기획’했고, 이중희 민정비서관·김광수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이 이를 ‘실행’했다”고 주장했다.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은 “김기춘 비서실장이 채 총장을 ‘제거’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민단체에 고발당한 신원 미상의 인물이 누구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검찰이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비장의 카드를 결국 꺼내 들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여권 최고 실세가 연루된 뇌물 수수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이미 실명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인데, 검찰이 들여다보고 있다고 알려진 사건만도 2건이다. 첫 번째는 새누리당 친박계 핵심 의원인 ㄱ씨가 ㄴ건설사로부터 6억원을 받아 챙겼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는 “터무니없는 얘기다. 이미 오래전에 이와 비슷한 의혹이 제기된 적이 있다. 당 차원에서도 파악에 나섰는데, 전혀 사실무근으로 판명됐다. 지금 이 얘기가 다시 나오고 있는 것은 특정 세력이 악의를 가지고 유언비어를 흘리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이미 사실무근으로 파악된 것”

나머지 한 건은 또 다른 친박계 핵심 중진인 ㄷ씨가 ㄹ건설사로부터 수억 원의 돈을 받았다는 것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다른 사건을 수사하는 도중, 이와 같은 첩보를 입수한 것은 사실이다. 아직까지 수사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관련 정보를 더 들여다본 후 수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현 정권 실세들이 연루된 사건 정보를 이미 오래전부터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지난 6월 채 총장 조기 교체설이 나오기 시작할 당시 검찰 안팎에서는 “채 총장이 박근혜정부에 상처를 입힐 의혹들을 쥐고 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가 채 총장을 찍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만약 이 말대로 채 총장이 쥐고 있던 ‘히든카드’를 꺼낸다면 검찰 대 청와대 간 전면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한편에선 채 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마당에 청와대와 정면으로 맞서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또 권력의 향배에 어느 곳보다 예민한 검찰 조직이 ‘떠나겠다’는 채 총장 편을 들 것이란 보장도 없다. 

 

채 총장 사퇴 후 검찰은 태풍 전야…내부에선 ‘부글부글’ 


지난 3월21일과 9월13일. 6개월 간격으로 검찰의 두 거물이 사의를 표명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채동욱 검찰총장이다. 둘의 사의 표명 뒤에는 ‘여자 문제’라는 공통 키워드가 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는 검찰 내부 분위기는 전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김 전 차관이 나갈 당시 검찰 내부에는 ‘부끄럽고 참담하다’는 분위기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채 총장의 경우는 좀 다르다. 최근 검찰 쪽 내부 동향과 분위기를 민감하게 체크하고 있는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들은 “검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다들 말을 아끼면서도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마치 고요하게 ‘때’를 기다리는 느낌”이라고 입을 모았다.

검찰 내부의 동요는 채 총장의 사의 표명 직후부터 곧바로 나타났다. 채 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다음 날 김윤상 대검 감찰1과장은 황교안 법무부장관 등 현 정부에 대한 비난이 강하게 담긴 글을 남기고 사표를 던졌다. 검찰 내부 통신망에는 채 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한 것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일부 평검사들은 연판장을 돌릴 움직임을 보였다.

채 총장은 검찰 내부에서 비교적 신망이 두터웠다. 일각에서는 채 총장이 특수통이라는 점을 들어 검찰 내부에 특수통과 공안통 간 알력이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지만, 이는 실제와는 다르다는 전언이다. 일부 간부급 고위 인사를 제외하면 공안통 검사들도 채 총장의 사의 표명에 대해 아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검사동일체 원칙’이 지배하는 검찰에서 채 총장이 신망을 얻는 배경에는 그의 굴곡 있는 검찰 인생도 한몫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채 총장은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기보다는 좌천 등 쓴맛을 보며 능력으로 승부해 결국 총장 자리까지 오른 인물로 알려져 있다. 더불어 ‘스폰서 검사’ ‘성추문 검사’ ‘김학의 동영상 파문’ 등으로 추락한 후배 검사들의 자존감을 채 총장이 성역 없는 수사로 끌어올렸던 터라 ‘그를 흔드는 손’에 대해 후배 검사들이 분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검사들의 분위기는 청와대에서도 예민하게 체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채 총장이 사의를 나타낸 당일 서울서부지검에서 평검사 회의를 열어 총장에게 사의 표명을 거둘 것을 요구했다. 부산지검·창원지검·서울북부지검에서도 회의가 열릴 뻔했으나, 일부 수석검사들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되지 않아 성사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가장 주목되는 서울중앙지검에서는 “상황을 좀 더 지켜보자”는 ‘윗선’의 간곡한 만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겉으로는 채 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직후보다 조용한 분위기다. 그러나 이러한 검찰의 침묵에 대해서는 순종이라기보다는 형세를 판단하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이미 범죄정보기획관실을 중심으로 정보를 모으며 반격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검찰은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자존심이 세지만 권력엔 한없이 약한 굴종의 역사도 갖고 있다. 수장이 출근하지 않고 있는 대검찰청엔 정적이 감돌고 있다. 청와대와 정면으로 맞설 것이냐, 주저앉을 것이냐 조만간 판가름이 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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