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권력자’의 숨겨둔 여인 베일 벗나
  • 이영종│<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3.10.1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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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관현악단 출신 피아니스트 려심, 김정은의 옛 연인” 주장 나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생전에 적어도 5명의 여자와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는 다섯 살 연상이던 영화배우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장남 김정남을 낳았다. 북송 교포 출신의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고영희와는 김정은 조선로동당 제1비서를 비롯한 2남 1녀를 뒀다. 2008년 여름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김정일이 말년을 함께한 여인은 22세 연하인 김옥이었다. 이들 외에 김영숙이란 여인이 정혼한 관계로 알려져 있지만 구체적인 신상은 드러나지 않았다. 최근 들어서는 김정일과 동갑인 홍일천이 첫 여인인 것으로 한미 정보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대북 관련 부처의 한 관계자는 “최근 미국 CIA의 내부 자료 등에 홍일천을 김정일의 여자들 가운데 맨 앞쪽에 배치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려심, 리설주와 동갑으로 김정은의 첫 여자”

이런 김정일과 달리 아들 김정은 제1비서의 경우 별다른 여성 편력이 드러나지 않았다. 26세란 어린 나이에 후계자로 지명되고, 김정일의 급사로 절대 권력을 넘겨받으면서 여자관계가 제대로 드러날 틈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김정은은 집권 1년 차인 지난해 7월에 부인 리설주를 공개했다. 우리 정보 당국은 김정은이 2009년 은하수관현악단 출신의 가수 리설주와 결혼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 조선로동당 제1비서가 10월10일 부인 리설주와 함께 평양에서 로동당 창건 68주년을 기념하는 모란봉악단과 공훈국가합창단의 합동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그런데 최근 김 제1비서에게 리설주 외에 다른 여인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끌고 있다. 김 제1비서가 부인 리설주와 결혼하기 전부터 북송 교포 집안의 20대 피아니스트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여성은 리설주와 같은 은하수관현악단 출신으로 나이도 24세로 동갑이라고 한다. 탈북자 출신 1호 박사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려심’이란 문제의 여성이 김정은의 첫 번째 여자라고 주장했다. 안 소장에 따르면 북송 교포 아버지를 둔 려심은 청진 출생으로 김정은이 스위스 유학에서 돌아온 뒤인 2000년대 초반에 사귀었다. 하지만 김정일 위원장이 김정은에게 “생모(고영희)도 북송 교포 출신인데 너까지 그런 배우자를 맞으면 안 된다”고 반대해 리설주와 2009년 결혼했다는 것이다. 안 소장은 “김정일 사망(2011년 12월) 이후 김정은이 다시 려심과 가까워졌다”며 “김정은의 여자가 청진 출신이란 소문이 제기된 것도 려심이 그 지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제1비서가 후계자 시절, 당시 그의 부인으로 소문난 ‘청진 출신 아가씨’가 바로 려심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김정은의 여자관계와 같은 내밀한 얘기가 어떻게 외부로 흘러나왔을까. 안 소장은 최근 려심의 외삼촌이 중국으로 탈북하는 과정에서 이를 도운 고위 인사로부터 이런 사실을 파악했다고 전했다. 탈북했던 려심의 외삼촌은 다른 일행과 함께 중국 공안 당국에 체포돼 강제 북송됐다고 한다. 하지만 김정은의 특별 배려에 의해 려심의 외삼촌만 풀려났다는 것이다. 안 소장은 “김정은의 내연녀라고 알려진 현송월과 관련해 북한 내부 소식통에게서 ‘려심과 관련한 내용이 현송월로 와전된 것’이란 말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현송월은 김정은의 첫 여자로 알려졌다. 정보 당국의 북한 정보 담당관들은 김정은 등장 직후부터 현송월과 깊이 사귀는 사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북한 핵심 내부 협조자로부터 파악한 내용이란 것이다. 현송월은 2005년 <준마처녀>란 히트곡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김정은이 후계자로 부상하던 2006년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 그러다 지난해 3월 은하수관현악단의 음악회에 6년 만에 얼굴을 드러냈다. 당시 만삭의 몸으로 객석에 있던 현송월은 사회자가 무대에 오를 것을 권유하자 “출산을 앞두고 있다”고 사양하다 거듭된 요청에 따라 노래를 불렀다. 정보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현송월은 김정은과 10대 시절부터 친분이 있고, 내연 관계라는 얘기까지 북한 고위층 사이에 나돌 정도”라는 첩보를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김정은의 여자였다면 임신한 모습을 TV로 드러내지는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었다. 안찬일 소장은 “결국 현송월이 아닌 려심이란 여성이 김정은과 각별한 사이란 점을 대북 소식통을 통해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모란봉악단과 공훈국가합창단의 로동당 창건 68주년 기념 공연. ⓒ 조선중앙통신 연합
24일 만에 다시 공개 활동 나선 리설주

김정은에게 리설주와 같은 악단 출신인 여자가 있다는 설은 은하수관현악단의 성추문이 불거진 상황에서 제기됐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10월8일 국회 정보위 보고를 통해 “은하수관현악단 숙청 사실은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기관이 어떤 첩보 사항이나 언론 보도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하는 건, 그것이 사실임을 확인했다는 의미다. 은하수관현악단 출신 단원들이 문란한 성관계를 갖고 이를 촬영하는 등 논란을 빚어 10여 명이 처형됐다는 설을 정보기관장이 확인한 것이다. 다만 국정원은 리설주가 이번 사태에 직접 관여돼 있는지는 추가적인 확인을 해봐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리설주의 공개 활동과 관련한 보도를 내놓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10월9일 저녁, 김정은 제1비서가 리설주와 함께 평양 김일성종합대학 교육자 살림집(주택) 준공식에 참석한 모습을 공개했다. 보도 시점으로 볼 때 당일 오후 행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리설주의 등장은 9월15일 국제 역도 경기를 참관한 이후 24일 만이다. 리설주는 예전과 다름없이 미소를 띤 표정으로 등장했다. 옅은 하늘색 정장에 짧게 자른 머리였다. 김정은과 함께 주택 내부를 돌아보던 리설주는 수도를 틀어보거나 찻잔을 직접 정돈하기도 했다. 김정은과 마주보며 웃는 장면도 연출됐다.

리설주의 등장을 두고 김정은과 북한 핵심 지도부가 성추문 사태를 정면 돌파하기로 작정한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주민들 사이에 의혹과 설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상당 기간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다 대응책을 내놓은 것이란 얘기다. 리설주가 공석에 등장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의혹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북한의 리설주 공개 카드는 시간의 문제였을 것이란 정부 당국자의 설명도 나온다.

북한이 잘 짜인 각본에 따라 대응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리설주가 재등장한 날 아침 북한 라디오 평양방송은 오전 7시40분께 은하수관현악단이 부른 <조국찬가>를 방송했다. 조선중앙TV는 이명일이 편곡과 지휘를 하고 황은미를 비롯한 5명의 가수가 노래를 불렀다는 안내 자막까지 띄웠다. 이명일은 지난해 3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은하수관현악단 공연을 이끈 지휘자다. 또 황은미는 이탈리아 유학파로 은하수관현악단에서 가장 잘나가던 성악가였다. 하지만 처형설이 나돈 직후부터 은하수관현악단의 공연은 사라졌고, 노래도 북한 매체에 등장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북한이 노동당 창건 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은하수관현악단의 노래를 등장시키고, 리설주의 모습을 공개해 성추문 사태를 덮어보려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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