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과 원전의 불편한 관계
  • 김선우 | 시인 겸 소설가 ()
  • 승인 2013.10.1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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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송전탑 현장의 사진들을 보다가 자주 목이 멘다. 평생 소중히 일구며 살아온 집과 농경지 바로 앞에 765kV의 초고압 송전탑이 세워지고 동네 한복판으로 송전선이 치렁하게 지나가게 되는 상황이 닥친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송전선으로부터 80m 이내에 거주할 때 백혈병과 암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도 정부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국민의 생명권·생존권·재산권을 모두 무시한 채 강행되는 국책 사업은 도대체 누굴 위한 것인가. 정부와 한전은 밀양을 ‘님비(NIMBY; 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는 뜻)’로 여론몰이를 하고자 하지만 상식을 가진 시민이라면 더 이상 속지 않는다.

한전은 내년 여름 전력난에 대비해 송전탑 공사가 시급하다고 말한다. 전체 전력의 40%를 소비하는 서울의 전기 자급률은 고작 3% 정도에 불과하다. 밀양의 송전탑은 서울로 전기를 실어 나르기 위해 지어지는 것이다. 대도시, 대기업의 풍족한 전기 소비를 위해 지방 소도시와 시골 농부들의 삶이 착취당하는 부조리한 구조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대안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 제기 외에도 참으로 우려스러운 것이 바로 밀양 송전탑과 원전의 관계성이다. ‘여름 전력난’ 운운하지만 실은 UAE와 맺은 원전 수출 계약 때문에 정부와 한전이 공사 강행을 서두르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정부는 건설 중인 신고리 3호기 원전을 내년 8월에 가동해야 하는데 여기서 생산한 전기를 보내려면 밀양 송전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일본 핵발전소 사고로 세계적 재난 상황에 직면해 있는 지금, 우리 정부의 이런 태도는 국민 안전에 대한 최소한의 성찰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원전 비리’의 현실을 보라. 신고리 1·2호기와 신월성 1·2호기에 이어 신고리 3호기 역시 원전 핵심 부품이 위조 부품으로 드러난 상황이다.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것은 부품이 요구하는 품질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인데, 부품의 품질에 문제가 있다면 교체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위조 부품을 그대로 둔 채 ‘재시험’ ‘재검증’이라는 이름으로 형식적인 절차를 밟아 ‘위조됐어도’ 웬만하면 그냥 원전을 가동하겠다는 것 아닌가. 경악을 넘어 분노가 터진다.

문제가 된 핵심 부품은 원전 사고 위험이 있을 때 신호로 알려주는 아주 중요한 부품이라고 한다. 이 부품을 교체하려면 최소 1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그러면 내년 8월에 원전 가동을 못하는 게 당연하다. 그래야 국민이 안전한 것이다. 위험한 부품을 편법으로 그냥 밀어붙이면 원전 사고의 재앙 속으로 섶을 지고 들어가는 꼴인 것이다. 송전탑 공사를 밀어붙이는 게 먼저가 아니라 신고리 3호기의 ‘제어케이블’ 교체를 정직하고 안전하게 진행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원전 사고는 한번 일어나면 수습이 불가능한 재앙이다. 방사능 오염은 한순간에 이 조그만 땅덩어리 한반도를 괴멸시키게 될 것이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정부라면, 제발 정신을 차려야 하지 않을까. 고리 1호기 등 수명이 끝난 핵발전소만 안전하게 폐쇄해도 초고압 송전탑 건설은 필요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밀양 송전탑. 그 필요성과 타당성에 대한 논의를 공개적으로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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