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고이자 최악의 ‘쩐의 전쟁’ 불붙다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3.11.20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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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우·이용규 등 대어급 FA 어디로…구단이 몸값 축소 발표 의혹도

‘묻지 마 투자’가 유행이다. 언뜻 주식시장을 연상할 테지만, ‘묻지 마 투자’가 횡행하는 곳은 놀랍게도 프로야구 FA(자유계약선수) 시장이다. 야구 관계자들은 “FA 선수들의 몸값이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로 책정되기보단 구단 간 과열 경쟁에 따라 ‘돈 싸움’으로 변질됐다”며 “매일 ‘돈 없다’고 징징대던 구단들이 도대체 어디서 돈이 생겨 FA 선수들에게 선뜻 100억원 가까이를 안겨주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한다.

삼성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2013 시즌’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하지만 10개 구단 관계자들에게 시즌 종료는 새로운 시즌의 시작을 의미한다. 바로 스토브리그다. 한 구단 관계자는 “정규 시즌이 전쟁 기간이고, 포스트시즌이 막바지 전투라면, 스토브리그는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는 진지 구축 기간”이라며 “스토브리그에서 얼마나 팀 전력 강화에 성공하느냐에 따라 내년 시즌 전쟁의 승패가 갈린다”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많은 야구 전문가가 스토브리그 결과를 보면 다음 시즌 성적을 예상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이 기간에 이뤄지는 각종 트레이드와 FA 계약, 2차 드래프트가 향후 팀 전력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두산 베어스 이종욱, 기아 타이거즈 이용규, SK 와이번스 정근우. ⓒ 시사저널 임준선·박은숙
각 구단들, 스토브리그에 사활 걸어

특히나 FA 계약은 스토브리그의 꽃으로 꼽힌다. 이유는 하나. FA 선수들이 지난 몇 년간 최고의 활약을 펼친 ‘검증된’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 시즌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4개 팀 가운데 삼성을 제외한 3개 팀은 FA 효과를 톡톡히 봤다. 두산은 지난해 FA였던 홍성흔을 영입해 주장으로 앉힌 후 팀워크가 몰라보게 좋아졌고, 넥센도 2011년 50억원을 투자해 FA 이택근을 영입하고서 올 시즌 구단 사상 첫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LG 역시 지난해 정성훈·이진영과 FA 재계약에 성공하고, 삼성에서 뛰던 불펜투수 정현욱을 영입한 뒤 11년 만에 가을 무대를 밟았다.

그래서일까. 신생팀 KT를 제외한 9개 구단 관계자들은 “뛰어난 FA 영입이 곧 성적 향상으로 이어진다”며 스토브리그에서 대어급 FA 선수들을 잡으려 분주히 뛰고 있다. 문제는 구단들의 FA 영입전이 치열해질수록 선수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른다는 것이다. 수도권 구단 단장의 말대로 올 시즌 FA 영입전은 사상 최고이자 최악의 ‘쩐의 전쟁’이다.

ⓒ 연합뉴스
FA 시장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던 구단들

올 시즌 스토브리그는 처음부터 과열이 예상됐다. 삼성·LG 등 전통적인 FA 시장 큰손들뿐만 아니라 한화·롯데 등 그간 FA 영입에 소극적이던 구단들이 시즌 종료와 함께 FA 영입을 통한 전력 강화를 화두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여기다 NC마저 FA 시장에 뛰어들 움직임을 보이면서 과열 조짐이 현실화했다.

지방 구단의 아무개 단장은 “재정이 빈약한 넥센과 선수층이 두터운 두산, ‘신흥 짠돌이 구단’ SK를 제외한 다른 팀들은 FA 영입전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먼저 삼성이다. 삼성은 3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지만, 팀 전력은 최근 3년 동안 올 시즌이 가장 약했다. 내년엔 더 약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마무리 오승환의 국외 진출이 확실해 불펜 약화가 불을 보듯 뻔한 데다 한국시리즈에서 봤듯 이승엽·진갑용 등 주전 야수들의 노쇠화가 눈에 띄는 까닭이다. 만약 FA 장원삼과 박한이마저 떠난다면 삼성은 당장 4위권 밖 전력이 된다. 결국 삼성은 지난 11월15일 장원삼과 60억원, 박한이와 28억원이라는 거액에 FA 계약을 마쳤다. LG도 마찬가지다. 올 정규 시즌 2위를 차지했지만, LG는 여전히 포수가 취약 포지션이다.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 1승3패로 패했을 때 야구계에선 “큰 경기 경험이 풍부한 포수가 투수진을 리드했으면 결과가 달랐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롯데는 여론 때문에라도 FA 시장에 나서야 하는 처지였다. 사실 롯데는 경찰청에서 제대한 ‘장성우’라는 좋은 포수가 있기에 기존 주전 포수 강민호에게 지나치게 얽매일 상황은 아니었다. 내심 검증된 내야수와 거포 4번 타자를 잡고 싶었다.

하지만 롯데는 팀 내 최고 인기 선수 강민호가 다른 팀으로 이적할 경우 홈 팬들로부터 받게 될 비난과 원망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FA 시장이 열리자 처음부터 ‘강민호 사수’에 올인했다. KIA는 나지완의 입대로 생기는 외야 공백과 선발투수 확보 차원에서 FA 시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한화야말로 FA 영입이 가장 절실한 팀이다. 야구계에선 김태균이 버틴 1루를 제외한 한화의 전체 포지션을 취약 지구로 평가한다. 그만큼 특출한 선수가 없다. 한화 구단 수뇌부가 스토브리그가 시작하자 “반드시 대어급 FA 2명을 잡겠다”고 공언한 것도 외부 수혈 없인 팀 전력 강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데뷔 해인 올 시즌 의외의 선전을 펼친 NC 역시 취약 포지션을 강화해 내년 시즌 상위권 도약을 이루겠다는 속내를 내비친 터라 적극적인 FA 시장 참여가 예상된다.

야구계가 예상하는 FA 전망

야구 관계자들은 FA 시장이 열리자 비슷한 예상을 내놓았다. 당시 설득력 있게 떠돌던 소문을 차례대로 열거하면, 우선 삼성은 팀 내 FA 박한이는 잡지만, 장원삼은 놓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모그룹의 운영비 지원이 인색해진 삼성이 50억원 이상이 예상되는 장원삼을 잡기엔 역부족이라는 게 소문의 배경이다.

LG는 포수 강화 차원에서 강민호 영입에 주력할 것이라는 소문이 많았다. 두산은 외야수 이종욱의 잔류에 올인하고, 유격수 손시헌과 1루수 최준석의 잔류엔 크게 공을 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게 올 시즌 두산의 실질적인 주전 유격수는 김재호였다. 최준석 역시 포스트시즌에 발군의 활약을 펼쳤지만, 1루 우타자 요원으로 윤석민이 있는 만큼 큰 매력은 없다는 게 중평이었다.

넥센은 일찌감치 “돈이 없다”며 FA 시장에 참여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롯데는 달랐다. 야구계엔 “롯데가 ‘돈 싸움’에서 밀려 이대호·홍성흔·김주찬을 놓친 전례가 있다”며 “이번엔 어마어마한 베팅으로 강민호를 잔류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부 야구 관계자는 “롯데가 고향 선수인 2루수 정근우를 영입해 내야진 보강에 나서거나 거포 확보 차원에서 역시 고향 선수인 최준석을 영입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SK는 애초부터 ‘정근우 잔류에 실패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원체 SK가 내부 FA 잔류에 소극적인 팀인 데다, 정근우 역시 그런 SK를 떠나고 싶어 한다는 소문이 배경이다.

KIA는 이용규 잔류에 최선을 다할 테지만, 쉽게 뜻을 이루긴 힘들 것이라는 소릴 들었다. 야구계엔 이용규가 시즌 중 지인들에게 자주 “다른 팀에서도 야구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화는 센터 라인 강화와 발 빠른 테이블세터진을 구축하기 위해 2루수 정근우, 외야수 이종욱과 이용규 가운데 2명을 잡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구단 관계자는 “한화가 지난해 류현진의 포스팅비로 받은 목돈 가운데 120억원가량을 FA 영입비로 책정한 것 같다”며 “한화가 아무개 선수에게 ‘70억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귀띔했다.

NC는 ‘창단 후 2년간 FA 3명과 계약할 수 있지만, 보상 선수는 내주지 않아도 된다’는 특례조항에 따라 선발투수·내야수·외야수 영입에 나설 것으로 전망됐다. 야구계엔 구체적으로 실명까지 거론됐는데 마산이 고향인 장원삼과 김경문 NC 감독의 총애를 받았던 손시헌이 NC 유니폼을 입게 될 것이란 예상이 나오기도 했다.

정작 뚜껑을 열어봤더니 예상이 조금씩 맞아떨어졌다. 우선 강민호다. ‘FA 최대어’로 불리던 강민호는 11월13일 롯데와 4년간 75억원에 계약하며 예상대로 팀에 잔류했다. 75억원이면 2005년 심정수가 삼성과 4년간 계약하며 받은 60억원보다 15억원이나 많은 ‘FA 사상 최고액’이다.

하지만 이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는 야구인은 거의 없다. 한 구단 관계자는 “아무리 강민호가 롯데를 사랑한다지만, 한 구단이 80억원을 제의했는데도 사양하고, 75억원을 내민 롯데에 잔류했다면 뭔가가 있지 않았겠느냐”며 “내가 듣기론”이라는 전제를 달고서 “기본 보장액 80억원, 옵션 12억원을 합쳐 92억원에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사실 FA 선수들의 몸값이 발표될 때마다 “축소 발표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산 건 지난해부터다. 그해 LG는 정성훈·이진영과의 FA 재계약 금액으로 4년간 34억원을 발표했는데 야구계는 “LG가 그보다 10억원 이상씩을 더 줬을 것”이라며 LG의 발표를 믿지 않았다.

같은 해 KIA의 김주찬 계약액 발표는 더 믿음을 주지 못했다. 당시 KIA는 김주찬과 4년 50억원에 계약했다고 발표했지만, 야구인들은 한결같이 “KIA가 김주찬에 50억원과 50억원에 해당하는 세금 8억원을 별도로 지급하기로 약속했을 것”이라며 “따라서 김주찬의 몸값 총액은 58억원이 맞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구단들은 FA 계약액을 축소 발표한다는 말을 듣는 것일까. 한 구단 관계자는 “어차피 국세청에 정확한 액수를 신고해야 하는 만큼 세금 탈루 목적은 절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보다는 “혹여 ‘경제도 좋지 않은데 무슨 돈이 있어 저렇게 많이 퍼줬나’ 하는 곱지 않은 시선과 차후 FA가 실패작으로 끝났을 때 ‘그 많은 돈을 투자하고도 이것밖에 얻어낸 게 없느냐’는 책임 추궁을 면할 목적으로 FA 계약액을 축소 발표한 것”이라며 “선수들이 간곡하게 원해서 축소 발표할 때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 연합뉴스
FA는 과거 보상 아닌 미래에 대한 투자

각 구단 관계자들은 강민호의 계약 소식을 듣고 “앞으로도 FA 선수들의 몸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전히 고교야구팀이 54개에 불과해 인재 풀이 협소한 데다 프로야구에서도 A급 주전 선수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2015년부턴 10구단 KT가 1군에 합류하기에 FA 영입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게 분명하다.

문제는 지금처럼 FA 몸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 결국 구단 운영비 부담이 가중돼 프로야구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구단 단장은 “강민호 같은 선수가 팀에 3명만 있어도 1년 운영비가 90억원가량 상승한다. 현재 각 구단 선수단 인건비가 100억원을 조금 넘는 현실에서 두 배 이상 인건비가 오르면 구단은 축소 경영과 티켓값 인상을 통해 부족분을 채워야 한다”며 “결국 피해는 팬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이 단장은 ‘묻지 마 투자’의 또 다른 병폐로 FA 성공 확률을 꼽았다. 이 단장은 “지난 수년간의 자료를 통해 FA 선수의 계약 전 최근 3년간의 기록과 계약 후 3년간의 성적을 비교해봤다”며 “90% 이상의 선수가 FA 계약 후 3년 성적이 이전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고 밝혔다.

야구계는 구단들을 향해 “객관적 선수 평가 기준을 세우고, 그에 따라 FA 선수들과 계약하라”고 조언한다. 한 수도권 구단의 운영팀장은 “선수들은 FA 협상장에만 오면 ‘내가 팀을 위해 지금껏 이렇게 노력했으니 그 보상을 해달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라며 “선수들이 FA는 과거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미래 기대치에 대한 투자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구단들이 선수들과 냉정하게 협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운영팀장은 “대다수 팀이 FA 영입엔 ‘묻지 마 투자’를 하면서도 기존 선수들과의 연봉 협상에선 100만원 올려주는 것도 아까워한다. 반면 올 시즌 넥센에서 보듯 FA 영입에 거액을 쓰는 대신 그 돈으로 기존 선수들의 연봉을 과감하게 올려주면 전체 선수단의 사기가 올라 더 큰 팀 전력 상승효과를 거둘 수 있다”며 “FA 1~2명만 행복하고, 나머지 80여 명의 선수가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그 팀의 미래는 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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