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삿거리도 없는데 슬슬 ‘작업’ 들어갈까
  • 하재근│문화평론가 ()
  • 승인 2013.11.27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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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신문이 연예계 ‘11월 괴담’ 퍼뜨려…경쟁적으로 선정적 뉴스 확대 재생산

지난 11월10일 이수근과 탁재훈이 도박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른바 ‘맞대기’라는 불법 스포츠토토 도박에 수억 원대를 썼다는 것이다. 그 뒤를 이어 붐, HOT 출신의 토니 안, 신화 출신의 앤디, 개그맨 양세형, 배우 겸 개그맨 공기탁까지 관련자로 발표됐다. 연예인 7명이 연루된 초대형 도박 스캔들로 비화한 것이다.

곧바로 ‘11월 괴담’ 보도가 나왔다. 연예계에는 해마다 11월에 안 좋은 사건이 터진다는 괴담이 있었는데, 올해도 역시 희생자가 나왔다는 것이다. 11월 괴담은 언제나 이맘때면 잊지 않고 찾아오는 한국 언론의 애호 상품이다. 각 매체들은 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대마초에 음주운전까지…11월 되자마자 연예계 11월 괴담 공포 덜덜덜’ ‘11월, 괴담의 늪에 빠진 연예계’ ‘연예계 11월 괴담은 분명히 실재한다. 왜?’ 등의 기사를 경쟁적으로 내보낸다.

올해는 도박 사건에 이어 곧바로 에일리 누드 사진 유출 사건까지 터져 ‘역시 11월 괴담!’을 입증했다. 해외의 한류 정보 사이트 ‘올케이팝’에 가수 에일리의 데뷔 전 누드 사진이 공개됐다. 이 사건으로 인해 에일리도 11월 괴담 희생자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누드 사진 파문을 겪은 가수 에일리가 11월14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2013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열창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유재하 사망 사건 후 괴담 떠돌아

11월 괴담은 대략 1980년대 후반에 형성돼 2000년대에 크게 확산됐다. 일반적으로 가수 유재하의 교통사고 사망 사건을 그 출발점으로 본다. 유재하는 1987년 11월에 사망했고, 1985년 11월엔 가수 김정호의 사망, 1990년 11월엔 가수 김현식의 사망, 1995년 11월엔 듀스 멤버 김성재의 사망 사건이 있었다.

정확하게 ‘11월 괴담’이란 표현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일반적으로 2000년대 초라고 알려져 있다. 2000년 11월 클론의 멤버 강원래가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됐고, 김승우와 이미연이 이혼했다. 2001년 11월엔 <허준>의 ‘예진아씨’였던 황수정이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돼 세상을 놀라게 했고, 싸이의 대마초 파문도 있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11월에 대한 민감성이 생겼는데, 과거를 돌아보니 마침 11월에 사망한 연예인들이 떠오른 것이다. 게다가 유재하와 김현식의 경우엔 사망일이 똑같이 11월1일이어서 으스스한 느낌까지 들게 했다. 이 때문에 11월 괴담이 급속도로 퍼졌다.

그 후 11월 괴담이 확고한 도시 괴담으로 자리를 굳히는 사건이 잇따라 터졌다. 2003년 11월엔 고현정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이혼했고, 2005년 11월엔 신정환의 도박 파문이 있었으며, 김부선이 대마초 흡입 혐의를 받고, 원타임의 멤버 송백경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후에도 해마다 연예인 신종플루, 인디 가수 이진원 사망, 젝스키스 멤버 이재진 음주운전 등 11월 괴담을 뒷받침하는 사고가 터졌고, 급기야 올해에는 희대의 연예계 도박 스캔들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11월 괴담은 한국 연예 매체가 가장 사랑하는 가을 아이템이 됐다.

11월 괴담이 생겨난 이유에 대한 분석도 많다. 연말이라서 해이해지기 쉬운 시기라는 게 대표적이다. 같은 연말이지만 12월엔 큰 행사가 많아 긴장하게 되기 때문에 11월에 마음이 더 풀어진다고 한다. 검찰과 경찰의 성과 평가와 인사고과가 11월부터 이뤄지기 때문에 이때부터 연예인 비리를 터뜨린다는 분석도 있다. 날씨와 관련해 초겨울이라서 결빙으로 인해 교통사고가 발생하기 쉽다는 분석이 있고, 갑자기 추워지기 때문에 뇌출혈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이런 분석들은 모두 ‘11월 괴담’의 실체를 전제한 상태에서, 11월에 사건이 많이 터지는 이유를 사후적으로 갖다 맞춘 것에 불과하다. 과연 11월 괴담이라고 할 만큼 11월에 사건이 많이 터지긴 하는 걸까. 여기에 대해선 이미 실증 통계가 나와 있다. SBS <한밤의 TV 연예>가 2008년부터 2010년 사이의 연예계 사고를 분석한 결과, 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난 시기는 3월, 9월, 12월이었다. 11월은 중위권에 불과했다. 결국 11월 괴담은 실체가 없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1990년 11월 젊은 나이에 사망한 가수 김현식. ⓒ 뉴시스
누가 괴담을 원하고 퍼뜨리는가

사실 연예계 뉴스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11월 괴담이 말도 안 된다는 걸 바로 알 수 있다. 연예계 사고는 한마디로 시도 때도 없이 1년 내내 터진다. 11월이든 언제든 특정한 시기에 집중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런데 왜 11월이 괴담의 주인공이 됐을까.

과거 스포츠신문이 연예계 소식을 전담하던 시절, 스포츠신문 입장에선 여름 시즌이 끝나고 겨울 시즌이 시작되기 전 비수기에 크게 터뜨려줄 소재가 필요했다. 프로야구 시즌 종료와 함께 스포츠 관련 기삿거리가 크게 부족해지는 11월 즈음에 연예인 관련 사건·사고가 크게 보도되며 사람들 뇌리에 각인됐던 것이다. 거기에 유재하·김현식·김성재의 사망이라는 우연이 겹쳐 11월의 의미가 더욱 커졌다. 게다가 11월은 연예인 사건·사고와 상관없이, 사람들 마음이 1년 중 가장 쓸쓸한 달이다. 갑자기 추워지고, 낙엽이 다 지며, 한 해가 갔다는 실감이 들기 때문이다. 12월은 너무 추워서 쓸쓸함을 느낄 마음의 여유가 없고 연말엔 술자리로 들뜨기 때문에, 11월이 으스스한 괴담과 더 잘 어울린다. 그래서 11월이 괴담의 주인공으로 선택됐던 것이다.

어떤 매체들은 오로지 ‘기사 장사’, 즉 상업성이 목적이기 때문에 괴담처럼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소재를 쌍수 들어 환영했다. 그래서 조금만 생각하면 말이 안 된다는 걸 뻔히 알 수 있는데도 ‘11월 괴담 장사’에 열을 올렸다.

매체가 시도한 ‘괴담 떡밥’이 11월에만 그친 것은 아니다. 1월 괴담설, 5월 괴담설, 10월 괴담설 등 무슨 일만 생기면 어떻게든 괴담으로 엮으려는 시도가 나왔지만, 대중 정서 때문에 11월 괴담설만 성공했을 뿐이다. 앞으로도 매체들은 11월 괴담을 확장시키는 건 물론 제2, 제3의 괴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래야 기사가 잘 팔리니까.

하지만 이 ‘괴담 장사’엔 문제가 있다. 11월 괴담의 신화를 만들기 위해, 11월에 불미스러운 일을 당한 사람은 아무리 오래전 일이라도 끊임없이 보도된다. 작은 구설이라도 11월에 걸리면 무조건 크게 보도되고, 그것이 11월 내내 이어진다. 올 11월 누드 사진 유출 사고를 당한 에일리도 일단 명단에 이름이 오른 이상 영원히 회자될 것이다.

11월 괴담이 몇몇 피해자에게 주홍글씨를 새기는 것이다. 또 문제를 일으킨 개인의 책임성이 11월 괴담의 희생자란 느낌으로 인해 희석된다. 초자연적인 현상에 휘말린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괴담이란 것 자체가 비과학적이기 때문에 언론이 나서서 괴담을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젠 무책임한 괴담 장사를 멈춰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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