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슬램 달성하고 골프장에서 결혼하고 싶어”
  • 안성찬│골프 전문기자 ()
  • 승인 2013.11.27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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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 한국 선수 최초로 LPGA ‘올해의 선수’

‘세리 키즈’로 성장한 박인비(25·KB금융그룹)가 박세리(36·KDB산은금융그룹)도 못한 일을 해냈다. 한국 골프사에 새로운 역사를 쓰며 ‘최고의 해’를 보냈다.

올 시즌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6승을 올린 박인비는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올해의 선수(Player of the Year)’상을 받는다. 이 상은 LPGA 투어 사무국이 해마다 주는 5개 상 중에서 가장 의미가 큰 상이다.

LPGA 투어 사무국이 시상하는 5개 분야 상은 롤렉스 ‘올해의 선수’, 시즌 평균 최저 타수를 기록한 선수에게 주는 ‘베어트로피’, 최고 신인에게 돌아가는 루이스 서그스 롤렉스 ‘올해의 신인’, 모범상 성격의 ‘헤서 파·윌리엄 앤드 뮤지 파월 상’, LPGA 발전을 위해 후원을 아끼지 않은 기업에 주는 ‘커미셔너 상’ 등이다.

1966년 제정된 ‘올해의 선수’상 제도는 그해 선수들의 투어 대회 성적에 점수를 매겨 가장 높은 점수를 올린 선수에게 주는 상이다. 그런 점에서 박인비는 최고의 기량을 과시하며 최우수선수(MVP)가 됐다. 박인비는 한 시즌 메이저 대회를 3차례 연속 우승하며 63년 만에 대기록을 달성했다. 4월 크라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6월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 등 세 번 연이어 메이저 대회 정상에 올랐다.

박인비가 10월18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골프클럽 바다 코스에서 열린 LPGA 투어 하나·외환 챔피언십 1라운드 경기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08년 US여자오픈 최연소 우승 이후 슬럼프

박인비가 올해의 선수를 확정한 것은 지난 11월18일. 멕시코 과달라하라C.C.에서 끝난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4라운드를 마치고 나서다. 박인비는 3언더파 69타를 쳐 합계 11언더파 277타로 4위에 올랐고, 롤렉스 포인트 297점을 받았다. 경기를 마친 후 박인비는 “LPGA 투어에 훌륭한 한국 선수가 많았고 그만큼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올해의 선수가 없다는 것이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했다”면서 “한국인 최초였기에 올해의 선수상에 더욱 욕심이 났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박인비는 올 시즌 22개 대회에 출전해 평균 드라이브 거리 245.86야드(81위), 페어웨이 안착률 73%(53위), 그린 적중률 73%(14위), 그린 적중 시 홀당 평균 퍼팅 수 1.73개(1위), 평균 퍼팅 수 29.13개(8위), 샌드세이브 54%(17위), 평균 타수 69.9타(3위), 버디 330개(5위), 이글 5개(28위)를 기록했다.

한국 선수들은 1998년 박세리 이후 LPGA 무대에서 상위권을 휩쓸며 2012년 유소연(23·하나금융그룹)까지 8명의 신인상 수상자를 배출했고 베어 트로피도 4번이나 수상했다. 그러면서도 지난해까지 ‘올해의 선수’를 배출하지 못했다.

사실 박인비는 자신이 생각해도 믿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1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쉽지 않았다.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최연소(19세) 챔피언에 올랐을 때만 해도 박인비는 LPGA 무대를 조금은 쉽게 봤다. 그것이 문제였다.

‘세리 키즈’로 시작한 골프다. 클럽을 잡은 것은 10세 때.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 갔다. 클럽을 잡은 이후 경제적으로 어려움은 없었다. 사업을 하는 아버지가 든든하게 뒤를 받쳤다. 부친은 페트병(PET) 용기 포장재 사업을 한다. 가업을 이어 40년째 운영 중이다.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골프 레슨을 받았다.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서 데이비드 레드베터, 부치 하먼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골프 교습가에게 지도를 받았다. 덕분에 아마추어 시절부터 프로 2부 투어까지 늘 상위권에서 맴돌았다. 주니어 시절 9승에다 미국 주니어골프협회(AJGA) 대표 선수로 다섯 번이나 선발됐다. 특히 2002년에는 미국 주니어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올해의 선수’로 선정됐다.

박인비는 네바다 주립대(UNLV)에 입학했다. 골프와 학업을 병행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한 학기도 못 마치고 중퇴했다. 2006년 4월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다. LPGA 2부 투어에서 상금 랭킹 3위에 올라 LPGA 투어 출전권을 확보했다.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최연소 우승 기록(19세 11개월 6일)을 세웠다. 이것이 문제가 됐다. 너무 어린 나이에 큰 대회에서 우승했기 때문이었을까. 슬럼프에 빠졌다. 이듬해 출전한 20여 개 대회 중에서 3분의 1이나 컷오프됐다. 2010년에는 KIA클래식 2위 등 ‘톱10’에 11차례 들고도 우승하지 못했다.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박인비는 일본 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로 눈을 돌렸다. JLPGA 투어에서 4승을 올렸다. 다시 ‘우승하는 법’을 체득했다.

이후 LPGA 투어에 복귀했다. 지난해 에비앙마스터스에서 LPGA 투어 통산 2승.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사임다비말레이시아까지 시즌 2승을 수확하면서 상금왕과 베어 트로피까지 2관왕에 등극했다.

우승 제조기 박인비는 골프로 부자가 됐다. 1인 기업이다. LPGA 투어에서만 한 해 상금으로 239만3513달러(약 25억4334만원)를 벌어들였다. 박인비가 올해의 선수상을 확정할 때까지의 상금액이다. 시즌 마지막 대회 상금은 넣지 않은 것이다.

올해 상금 100억원…총 150억원 벌어

올 시즌을 포함해 그가 프로에 진출해 벌어들인 상금은 훨씬 더 많다. 미국에서 통산 9승을 올려 총 상금 766만1237달러(약 81억4000만원), 일본 투어에서 총 상금 1억8177만5790엔(약 19억750만원)을 벌었다. 100억원 정도를 손에 쥔 셈이다.

이는 순수 상금만을 의미하는 것이다. 계약사인 KB금융그룹의 계약금과 보너스 등을 감안하면 수입은 훨씬 늘어난다. 물론 메인 스폰서 외에 파나소닉·삼다수 등 다른 스폰서와 초청비 경비까지 합치면 150억원 이상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그가 올해만 50억원 이상 벌어들였을 것으로 추산한다. ‘상금+α’에서 α(광고·초청비, 후원 금액)는 성적이 좋을수록, 즉 상금을 많이 벌수록 커지기 때문이다.

절정기를 맞은 박인비에게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첫 목표를 이뤘으니 이제는 그랜드슬램 달성과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는 것을 새 목표로 세웠다”고 말했다. 박인비는 지난해 상금왕과 베어 트로피를 받아 올해는 상금왕에 큰 욕심이 없었다. ‘즐기면서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인기를 실감하고 있는 박인비. 슈퍼스타로 발돋움한 그는 “골프만 열심히 치다 보니 이런 자리에 오지 않았나 싶다. 내가 잘하는 거라곤 골프 치는 것밖에 없지 않은가.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 하지 못한 학업도 하고 싶고. 내년에는 골프 외에도 많은 것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스윙을 교정해 이제는 별로 고칠 게 없다”는 그는 다만, 몸을 최고의 컨디션으로 만들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2014년에는 결혼도 할 예정이다. 날짜는 내년 가을로 잡고 있다.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백년가약을 맺고 싶다”는 박인비는 골프장에서 결혼하고 싶단다. 박인비는 오는 12월 타이완에서 열리는 한국 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스윙잉 스커츠 월드 레이디스 마스터스를 끝으로 한 해를 마무리한다. 이후에는 호주 골드코스트에서 새로운 시즌에 대비한 전지훈련에 들어간다. 12월에는 약혼자와 휴식을 취하며 새해맞이를 준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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