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도를 보라
  • 윤길주 편집국장 ()
  • 승인 2013.12.0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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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국을 사랑하는 일본인입니다. 연세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밤이면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 신촌에서 김치찌개에 소주잔을 기울입니다. 곤혹스러운 경우도 있는데, 일본 문화나 역사를 얘기할 때랍니다. 한국인 친구들은 무시하거나 험악하게 따지기 일쑤라고 합니다. “미개한 족속을 우리 조상이 깨우쳐줬더니 배은망덕하게 침략했다”는 겁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두 나라가 ‘너무 먼 나라’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고 했습니다.

이 친구는 축구 광팬입니다. 한국과 일본 국가대표팀이 붙는 날은 난리입니다. 한국이 일본에 지면 “운이 좋아서 어쩌다 그런 거지”라고 치부합니다. “쪽바리가 축구는 무슨…” 하며 만년 하수로 깔봅니다. 피파(FIFA) 랭킹에서 일본(44위)이 한국(56위)을 한참 앞서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냉정하게 봤을 때 요즘 우리 축구가 일본에 밀리는 게 사실인데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중국 화웨이는 세계 2위의 통신장비업체입니다. 한국에서 화웨이 홍보를 맡고 있는 PR회사 간부가 고충을 털어놨습니다. “마케팅을 열심히 해도 통하질 않습니다. 중국 제품은 무조건 싸구려 짝퉁으로 생각합니다. 아직도 무게를 부풀리려고 꽃게에 납을 넣어 수출하는 나라쯤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일본 언론이 짬짜미라도 한 듯 한국 때리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일본 거대 은행이 대출을 끊으면 삼성은 하루 만에 괴멸’(주간문춘) ‘박근혜가 울며 사과하게 할 5장의 카드’(주간포스트) 등 기사가 과격합니다. 2012년 기준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5조9809억 달러로 우리나라 1조1635억 달러의 4배에 달합니다. 일본에서 소재와 부품을 끊으면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공장이 멈춘다고 합니다. 최근 일본 언론의 호들갑이 단순한 겁박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아베 정권은 집단자위권을 앞세워 군사대국화에 나서고 있습니다. 보스로 모시는 미국이 아베의 손을 들어줘 잔뜩 기를 살려놨습니다. 미국은 중국과 맞짱 뜰 선수는 일본밖에 없다고 본 겁니다. 우리 편인 줄 알았던 중국이 제 맘대로 이어도를 포함한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해 뒤통수를 칩니다. 미국과 일본이 협공하자 반격에 나선 겁니다. 넘버원(미국), 넘버투(중국), 넘버쓰리(일본)의 결투에 우린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사실은 끼워주지 않는다는 게 맞는 말이죠. 샌드위치 신세가 된 힘없는 나라의 비애입니다.

요즘 정치권을 보면 임진왜란이 떠오릅니다. 율곡 이이는 왜구의 침입을 예측하고 10만 양병설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당파 싸움으로 날을 새던 조정은 묵살합니다.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했습니까. 그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우리는 양쪽으로 갈려 못 잡아먹어서 안달입니다. 미국이 이어도 부근에 폭격기를 띄우고, 중국이 항공모함을 발진시키는 비상한 시국에 우리끼리 핏대를 올리고 있습니다. 힘을 다 해도 ‘넘버쓰리’ 하나 당해낼 수 없는 처지에 무장해제하고 ‘날 잡아 잡수쇼’ 하는 꼴입니다.

중국은 냄새 나는 우리에서 잠자는 사자가 아닙니다. ‘넘버원’과도 완력을 한번 겨뤄보겠다고 눈을 번뜩이는 맹수입니다. 일본은 만날 우리에게 깨지는 축구팀이 아닙니다. 칼을 품고 대륙을 넌지시 노려보는 사무라이입니다. 얕보다가 언제 베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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