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학습지원비 어디 쓰는지 “우린 몰라”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3.12.24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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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장 재량에 맡겨져… 관리 부실 허점 드러내

시사저널은 ‘투명 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와 함께한 제1회 정보공개 청구 공모전 ‘찾아라! 내 삶을 바꾸는 정보’의 수상작을 정리해 연재합니다. 이번 호에는 우수상으로 선정된 이상석씨의 초등학교 학습지원비 관련 정보공개 청구 자료를 싣습니다.

초등학교 앞의 문구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숫자에서도 나타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6년 2만583개였던 문구점 수는 2011년 1만5750개로 감소했다. 5년 만에 4833개, 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문구점이 사라졌다. 가장 큰 원인은 ‘학습 준비물 없는 학교 제도’ 때문이다. 학습 준비물을 학교가 직접 구매하면서 학교 앞 문구점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위치한 한 문구점 주인은 “3~4년 전과 비교하면 아침 시간이 많이 한가해졌다. 준비물을 찾는 아이들이 없어졌고 매출도 반 토막 났다”고 말했다.

문구점에는 위기지만 학부모에겐 고마운 제도다. 아이들이 준비물을 가져가지 않아도 학교에서 챙겨주기 때문이다. 준비물을 못 챙긴 죄로 수업 시간에 교실 뒤에서 벌을 설 일도 없어졌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김지연씨(42)는 12세 딸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학습준비물지원센터에 준비해놓은 학습 자료를 정리하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나가서 학용품의 먼지를 털어내고 찾기 쉽게 제자리에 정리한 뒤 리코더나 단소 등을 깨끗이 씻어 말린다. 때로는 교사와 함께 수업에 필요한 교구를 만들 때도 있다. 김씨는 “이런 곳이 모든 학교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 수업을 돕는 것도 즐거운 일이고, 교구를 만들 때는 선생님의 수업을 함께 돕는다는 의미도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구윤성
학습 준비물과 동떨어진 물품 구입도

문구점에는 어둠, 학부모에게는 빛과 같은 제도인 학습 준비물 없는 학교 제도는 시·도교육청의 지원을 받는다. 여기에서 학습 준비물이란 초등학생들이 정규 교육과정에서 학습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연필·지우개·자·리코더·단소 등 소모성 물품을 말한다. 시·도교육청은 교육 예산으로 초등학교 학습 준비물을 지원하고 있다. 시·도교육청의 예산에 따라 각 지자체에 지원되는 금액은 다르다.

2012년을 기준으로 전북교육청은 학생당 5만3728원의 학습 준비물 지원금을 지원했지만, 대전은 2만2324원을 지원해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전국 평균인 3만79원에 맞추기 위해 증액을 시도하고 있다. 올해 경기도교육청은 학부모들의 교육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난해 학생당 2만5000원씩이던 지원비를 3만원으로 늘렸다.

올해 7월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는 기자회견을 열어 학습 준비물 지원금 문제를 지적하는 자리를 가졌다. 대전 지역 141개 초등학교의 학습 준비물 구입비를 분석해보니 교육청에 보고한 결산 내역과 차이 나는 곳도 있고, 학습 준비물과 동떨어진 물품을 구입한 경우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밝힌 결과를 보면, 대전시교육청의 2012년 전체 학습 준비물 구입비 결산 총액은 24억9154만1470원이었다. 하지만 정보공개를 통해 분석한 전체 초등학교 학습 준비물 구입비 총액은 22억3975만4361원으로 2억5178만원가량이 사라졌다. 각 학교가 공개한 학습 준비물 품목에는 현수막, 신문, 외장 하드, 제본기, 코팅기 등 학습 자료로 볼 수 없는 것들이 포함돼 있었다.

이것이 비단 대전만의 일일까. 이상석씨는 자신이 거주하는 광주광역시의 초등학교 학습 준비물 지원금이 어떻게 관리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학습 준비물 지원비가 그 목적대로만 사용되지 않고, 각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사용 범위가 달라진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학습 준비물 지원비의 관리에 관한 정보공개 청구는 총 네 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처음 대상은 몇몇 교육지원청이었다. 이씨는 “보조금 형태로 지원되는 비용이라서 정산 관련 서류를 보유하고 있을 것 같아 정보공개를 청구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교육지원청의 답변은 이랬다. “학습지원금은 일반 운영비에 포함해 지원하고 있습니다.” 학교장 재량에 따라 학습 준비물 지원금을 일반 운영비에 합쳐 사용해도 된다는 뜻이다.

다음에는 대상을 바꿔 광주시와 전남도교육청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하지만 “시·도교육청 역시 지원금 집행 결과에 대해 따로 정산을 받거나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있었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지자체가 민간 이전 예산 등 각종 보조금에 대해 정산 보고를 받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씨는 안 되겠다 싶어서 광주·전남에 위치한 662개 초등학교에 직접 학습지원금 집행 내역과 집행 증빙에 관해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흥미로운 것은 학교 측의 반응이었다. 이씨는 “상당수 학교에서 정보공개 청구 자체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씨가 청구한 초등학교 중 상당수는 청구자가 직접 신청한 정보공개 청구를 처음 경험했다. 교육청을 경유하지 않고 당사자가 직접 청구를 한 경우 정보공개 청구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특히 “정보공개 청구를 왜 했느냐”고 묻는 질문이 적지 않았다. 청구 의도나 청구자인 이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학교도 꽤 있었다.

정보공개 청구에 반감 표출

청구자인 이씨에 대해 신분 확인을 요구한 학교도 있었다.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를 기재한 후 우편으로 청구를 했더니 학교 측에서는 청구자의 개인 신분 확인을 요구하며 신분증 사본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정보공개 시스템(www.open.go.kr)을 통해 청구할 경우 개인의 주민등록번호와 이름, 주소 외에는 별도의 신분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이씨는 신분 확인을 요구한 학교들만을 상대로 정보공개 시스템에서 교육청을 통해 해당 학교를 지목하는 방법으로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직접 청구했을 때 반감을 보이던 초등학교들이 막상 교육청에서 공문이 내려오자 별다른 불만 없이 바로 처리하더라”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초등학교 학습 준비물 지원금 관리 실태를 알기 위해 이씨가 청구한 횟수는 총 네 번이나 됐다.

빈약한 인식 탓에 얻은 자료들은 부실했고 쓸 만한 자료를 건지기도 어려웠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시·도교육청이 학력 신장에 집중하는 동안 어린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사용되는 비용이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600개가 넘는 학교에 일일이 정보공개 청구서를 보내고, 대응하는 과정은 정말로 힘겨웠다. 하루에 100통이 넘는 (학교 측의) 전화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래도 이씨의 ‘3개월 투쟁기’를 통해 얻은 긍정적인 성과는 ‘인식의 확산’이다. 이씨는 “자신들이 정보공개 대상인지조차 모르던 초등학교들이 과거에 비해 정보공개 제도를 분명히 알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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