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의 강 거꾸로 돌릴 수 없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4.01.0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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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정치권에서 ‘뜨거운 감자’ 안철수·이재오·박원순·원희룡 등 감상평

“지금 이 나라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영화 <변호인>을 본 한 관객이 지난해 12월28일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올린 감상평이다. 그는 “잊고 살았던 고문당한 전신이 스멀스멀거리고 온몸이 근질근질하고 전신이 옥죄면서 아파온다”고 밝힌 후 “비단 나뿐일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아, 그런데 지금 이 나라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눈물이 난다”고 했다. SNS 글만 놓고 본다면 <변호인>의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의 실제 모델인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자로 여겨질 법하다.

그런데 이 SNS 계정의 주인은 여당인 새누리당의 이재오 의원이었다. 이명박 정권 당시 최고 실세로 불렸던 이 의원은 친이계(친이명박)의 좌장 역할을 맡았던 유력 정치인이다. 그런 그가 새누리당 현역 의원 가운데 처음으로 <변호인>에 대한 감상평을 올린 것을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여당 내에서는 이를 못마땅해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았다. 현 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오래전부터 박근혜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이 의원은 <변호인>을 보는 도중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그와 함께 영화를 본 지인은 “관객들로 영화관이 꽉 찼는데 이들 대다수가 눈물을 흘리더라. 이 의원은 본인이 재야인사 시절 여러 차례 고문을 당하고 오랜 감옥 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특별한 소회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이 의원은 박정희 정권 때인 1964년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주동자로 지목돼 대학에서 제적됐다. 이후 민주화운동으로 다섯 차례 투옥돼 10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7년간 수배 생활을 하기도 했다. 다만 이 의원의 SNS 글이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으로 읽히는 데 대해서는 “정치적 상황만 놓고 확대 해석한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공안의 과잉과 정치의 마비

이 의원이 지난해 8월13일 SNS에 올린 글도 화제가 됐다. 노무현 정권 때인 2006년 4월29일 노 대통령이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관저에서 조찬을 함께한 내용이었다. 당시 여야는 사립학교법안 재개정 문제를 놓고 날카롭게 대치 중이었는데, 노 대통령이 “이번에는 이 대표 손들어주시죠”라고 말하자 김 대표가 “당 분위기와 완전히 다른 말씀을 하신다”고 정색했다고 한다.

이 의원은 “그날 두 가지를 배웠다. 여당 원내대표가 대통령 앞에서 당의 입장을 분명하게 전달한 것과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정국이 꼬여 여야가 싸울 때는 야당의 손을 들어주는 여유가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 글도 야당 대표의 회담 요구를 거부하던 박 대통령에게 충고를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 의원에 앞서 SNS에 감상평을 올린 여당 정치인이 있다. 한나라당 시절 최고위원을 두 차례 지낸 원희룡 전 의원이다. 그는 지난해 12월26일 “국가가 국민에게 부당한 폭력으로 군림할 때, 변호인 같은 사람들의 용기와 희생으로 민주화 시대로 넘어설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의 압도적 동의로 건너온 민주화의 강을 거꾸로 돌릴 수는 없다. 영화 <변호인>에서 지금의 분위기를 느끼는 관객이 많을수록 국민이 체감하는 민주주의에 문제가 있다는 경고 신호다. 공안의 과잉과 정치의 마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국민과 권력의 대결 구도를 가져온다는 역사의 경험을 늘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 전 의원이 ‘공안의 과잉과 정치의 마비’를 거론한 것을 두고도 박근혜정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그에게 직접 물어봤다. 원 전 의원은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의도를 갖고 한 얘기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SNS에 올린 글은 “영화에 대한 감상평일 뿐”이라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사회운동가로서 뛰어났던 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공과에 대한 평가는 대통령이 된 이후의 일이다. 대통령을 안 했으면 훨씬 더 사랑받았을 것이다. 갈등의 중심에 섰던 부분에서 많은 아쉬움이 있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민주당 인사들 ‘변호인 메시지’ 강조

야권에서 민주당과 경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안철수 무소속 의원도 SNS에 감상평을 올렸다. 안 의원은 지난해 12월26일 “마지막 장면의 여운을 느끼면서 ‘법치란 법 준수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공권력의 남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을 생각했다”고 밝혔다. 안 의원이 ‘공권력의 남용’이라고 밝힌 배경을 놓고 지난해 12월22일 경찰의 민주노총 본부 강제 진입 등을 꼬집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안 의원의 신당 창당 준비 기구인 ‘새정치추진위원회’ 금태섭 대변인은 “이 영화에 대해 특별히 얘기한 것은 없었다. 안 의원이 영화를 굉장히 많이 보는데 기본적으로 영화는 영화로 본다”고 밝혔다.

민주당 인사들은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해 12월22일 SNS에 장문의 감상평을 올렸다. 박 시장은 “화려하거나 거대하지 않지만, 담담하지만 큰 울림이 있는 곰삭힌 맛이 느껴졌다. 올기쌀같이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나는 영화다”라고 호평했다. 인권 변호사 출신인 그는 “<변호인>은 옛날 얘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다. 아직도 ‘국가란 국민입니다’ 하고 외치던 송우석 변호사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지난해 12월31일 <변호인>의 양우석 감독을 비롯해 송강호·곽도원·임시완 등 출연 배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노무현 정권에서 재정경제부장관과 교육인적자원부장관 등 부총리를 두 차례 지낸 김진표 의원은 지난해 12월24일 SNS에 “불의와 부조리와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우리 사회에서 ‘돈 없고 힘없는’ 억울한 이웃들의 변호인이 되고자 했던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는 감상평을 올렸다.

기획예산처장관을 지낸 장병완 의원은 공식 회의석에서 <변호인>을 언급했다. 장 의원은 지난해 12월26일 열린 민주당 고위정책회의에서 “1980년대 사건을 다룬 <변호인>이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이유는 그때와 작금의 시대 상황이 별로 다르지 않아 국민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영화 <변호인>의 ‘살아 있는 계란이 죽은 바위를 넘는다’는 대사를 곱씹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 연합뉴스
영화 <변호인>을 본 후 SNS에 올린 유명 연예인들의 감상평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룹 ‘신화’의 멤버 김동완은 지난해 12월21일 “좋은 영화 한 편 보고 돼지국밥집에 왔다”며 국밥 한 그릇과 반찬 그리고 영화 티켓을 담은 ‘인증샷’을 게재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가 즐겨 먹던 음식이 돼지국밥이다.

그는 “이 조그만 국밥집 아주머니께서 가끔은 당신 삶이 만족스러워 오는 이들에게 웃음을 나눠줬으면 좋겠다. 가끔은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생겨 배고픈 이들에게 식사를 대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다.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김희철도 지난해 12월24일 “혼자 <변호인> 봤음. 슬프기도 하고 고맙기도 짠하기도 한 영화, 고맙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영화 티켓을 입에 문 사진을 올렸다. 그는 “영화 보고 나오니까 국밥 당기네. 혼자 국밥에 소주 마시러 가는 중”이라고 밝혔다. 개그맨 이병진은 지난해 12월27일 “오늘 티켓을 쥐고부터 떨리기 시작한 그 영화 <변호인>, 말하고 싶지 않은 명대사 투성이더군요”라는 글을 남겼다. 그는 특히 “송강호님과 그분께 감사드립니다”라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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