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가 영웅이 됐던 것처럼…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1.0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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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영재 이강인·이승우·백승호·장결희 유럽에서 주목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에서 뛰고 있는 스페인 국가대표 스트라이커 로베르토 솔다도는 최근 친정팀인 발렌시아의 유소년 경기를 중계방송으로 보다가 한 선수를 주목했다. “지금 뛰고 있는 저 10번 공격수 대단하다”며 트위터에 글을 남겼다. 여기에 전 스페인 국가대표 골키퍼 산티아고 카니사레스가 답글을 남겨 그 선수의 정체를 알려줬다. “이강인이라는 선수인데 내 아들과 함께 유소년팀에서 뛰고 있다.” 이강인은 2년 전 스페인으로 건너간 만 12세의 한국인 축구 유망주로, 해당 연령대 최고의 선수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스페인 프로축구 바르셀로나의 꿈나무 이승우가 2013년 9월1일 서울 송파구 보인고에서 열린 ‘보인고-바르셀로나 15세 축구팀’ 친선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솔다도의 트위터 글이 화제가 된 다음 날 발렌시아의 지역지인 ‘수페르 데 포르테’는 1면 기사로 이강인의 스토리를 소개했다. 2011년 발렌시아 입단 테스트를 통과한 이강인은 2년 사이 알레빈(11~12세 팀)의 A팀에서도 에이스를 상징하는 10번으로 성장했다. 이강인의 이름은 낯설지 않다. 2008년 축구를 좋아하는 어린이들의 성장기를 다룬 예능 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 3기> 멤버다. 그때도 이강인은 특출한 기량, 축구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주목받았다. 제아무리 스페인의 유소년 축구가 세계 최고라고 하나 일개 12세 이하 선수에게 1면을 할애한 일은 이전까지 없었다. 프리메라리가가 겨울 휴식기이기 때문에 화제성 기사를 소개한 것이지만 그만큼 발렌시아 구단과 지역 내에서 이강인에 대한 평가와 기대가 뜨겁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강인은 최근 열린 12세 이하 국제 유소년 축구대회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FC 바르셀로나 같은 강팀들을 상대로 중요한 골을 넣었다. ‘에이스’ 이강인의 활약 속에 발렌시아는 대회 3위를 차지했고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이 이 어린 선수를 주목하고 있다.

바르셀로나 유소년팀 소속의 공격수 이승우도 화제다. 만 15세인 이승우는 지난 2011년 바르셀로나 유스에 입단해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전 유럽이 주목하는 유망주로 거듭났다. 뛰어난 기량으로 이미 연령대보다 한 계단 위로 월반한 이승우는 각종 대회에서 득점왕과 MVP를 휩쓸었다. 바르셀로나에서도 차세대 메시가 될 유망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승우와 바르셀로나가 5년 계약에 합의했다. 만 20세까지 바르셀로나 선수로 뛸 것이라는 얘기다. 이승우의 기량을 확인한 첼시, 맨체스터 시티, 파리 생제르맹 등이 영입 의사를 보였지만 세계 최고의 유스 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바르셀로나를 다시 택했다.

프리메라리가는 만 18세부터 선수와 구단 간의 정식 프로 계약을 허용한다. 향후 3년간 이승우가 현재처럼 성장한다면 그는 리오넬 메시, 차비 에르난데스, 안드레 이니에스타처럼 자연스럽게 바르셀로나 성인팀에 입단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바르셀로나 삼총사, 제2의 메시 될 수 있을까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는 이승우 외에도 백승호·장결희까지 3명의 한국인 선수가 뛰고 있다. ‘라 마시아(농장)’로 불리는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은 스페인은 물론 전 세계의 유망주를 데려와 최고의 환경과 시스템 안에서 성장시킨다. 대표적인 사례가 메시다. 13세이던 2000년 바르셀로나 유스팀에 입단한 메시는 2004년 본격 데뷔한 후 만 20세가 되기 전 이미 주전으로 올라섰다. 바르셀로나는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던 메시의 잠재력을 주목했고, 성장 호르몬 장애를 치료해주는 것은 물론 아예 그의 가족을 스페인으로 이주시켜 안정적인 생활을 하도록 지원했다. 메시는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 뒤에도 그런 바르셀로나와의 의리를 지켜가며 오직 한 팀에서만 뛰고 있다.

바르셀로나 유스팀에 있는 한국인 삼총사도 모두 그런 메시를 성공 모델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들이 어린 나이에 한국을 떠나 스페인, 그것도 최고의 유스 시스템을 갖췄다는 바르셀로나에 입단할 수 있었을까. 한국유소년축구연맹의 노력과 적극적인 시도가 만든 결실이다. 스페인 각 지역 산하의 축구연맹과 연계한 유소년축구연맹은 국내에서 대규모 유소년 국제 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에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발렌시아 등 스페인 명문 클럽의 유소년팀이 참가했다. 그 과정에서 탁월한 기량의 한국 유망주가 유소년팀과 함께 방한한 스카우트 담당자의 눈에 포착되며 차례로 진출하게 된 것이다.

몇몇 성공 케이스도 어린 아들을 이역만리로 보내야 하는 부모로 하여금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현재 한국 축구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손흥민은 16세이던 2008년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SV의 유소년팀에 입단했고 2년간의 세공을 거쳐 성인팀에 데뷔해 스타로 떠올랐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역대 한국 축구선수 최고 이적료인 1000만 유로를 기록하며 바이어 레버쿠젠으로 옮겼다. 유럽 조기 진출이 만든 첫 결과물이었다. 올 시즌에는 김영규가 프리메라리가의 알메리아와 프로 계약을 맺고 성인 무대 데뷔전을 치렀다. 이천수·이진호·박주영에 이은 4번째 한국인 프리메라리가인 그는 스페인에서 유스 선수로 성장한 후 프로까지 진입한 첫 사례다.

바르셀로나의 한국인 삼총사는 최근 위기를 맞기도 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2013년 초 이적 조항 19조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이승우·백승호·장결희를 비롯한 바르셀로나 내 외국인 유소년에게 스페인 유소년 정규 리그 출전 금지 제재를 가한 것이다. FIFA의 이적 조항 19조란 만 18세 미만 어린 선수의 경우 부모가 축구 이외의 직업으로 그 나라에 이민을 가거나 국경 인근에 거주하지 않으면 국제 이적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어린 선수의 교육권 등을 보장하고 무분별한 이적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바르셀로나는 해당 선수를 국내외 토너먼트 대회에 적극 출전시키고 있다. 재계약을 앞둔 이승우의 경우 과거 메시처럼 구단의 지원 속에 가족이 모두 스페인으로 건너갈 예정이다. 사춘기에 있는 어린 선수가 가족의 뒷바라지 속에 프로 선수로서의 꿈을 키워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들끓는 환호보단 묵묵한 박수를

바르셀로나는 아직까지 아시아 선수를 영입한 적이 없다. 세계 최고의 전력을 유지해야 하는 만큼 그에 부합하는 경기력을 지닌 선수만이 바르셀로나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레알 마드리드, 발렌시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같은 최상위권 팀도 마찬가지다. 프리메라리가에 당도한 아시아 선수는 모두 중하위권 팀에 몸담았다. 테크닉이 가장 강조되는 무대인 만큼 어려움이 있다. 그런 가운데 이승우를 비롯한 한국인 삼총사는 외부 영입이 아닌 내부 성장 과정을 통해 바르셀로나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되려는 꿈을 꾸고 있다. 국내 언론과 팬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그런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친 관심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냉정하게 말해 그들은 아직 스타가 아닌 유망주일 뿐이다. ‘특출하다’는 것은 경쟁력보다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클럽이 공을 들이는 것은 그 가능성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다. 만 15세, 만 12세 선수가 프로로 데뷔하기 위해선 3년에서 6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변화가 몰아친다. 바르셀로나의 라 마시아의 경우는 지원을 아끼지 않지만 평가는 냉정하다. 스페인 유스 시스템은 연령별로 팀을 세분화한다. 바르셀로나의 경우 총 15개의 유스팀을 운영한다. 각 팀별로 많게는 20명, 적게는 10명이 구성된다. 프로로 가기 위한 마지막 단계인 후베닐(16~18세)은 A, B 팀으로 나뉘는데 총 40명 규모다. 이 중 프로 계약을 맺는 선수는 2~3명이고 주전으로 성인팀에 안착하는 것은 더 힘들다. 제2의 메시로 평가받았지만 조용히 사라진 선수들로만 한 팀을 구성할 수 있을 정도다.

따라서 꿈의 무대로 간 어린 유망주를 응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차분하게 노력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냉정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 나이에 스타 의식에 도취될 경우 가능성은 금세 사라질 수 있다. 과거에도 잉글랜드·프랑스에 진출해 유명 클럽 유스팀에서 뛰었던 한국인 선수가 있었다. 그러나 조기에 쏟아진 관심에 부응하지 못했고 결국 평범한 선수로 프로 생활을 마무리한 사례가 있다. 이승우·이강인 같은 선수들은 보석으로 세공되는 단계에 있다. 어떻게 세공되느냐에 따라 그 값어치는 천차만별이다. 도를 넘어선 관심과 환호가 자칫 중요한 시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들이 손흥민처럼 확실히 성장해 한국 축구를 이끌 수 있게 도와야지, 미리부터 스타로 만드는 것은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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