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응수 대목장이 소나무 빼돌려 창고에 쌓아뒀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4.01.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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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복원 전문가 사이에 소문 무성 경찰, ‘러시아산 의혹 사건’ 수사 의지 확고

“언젠가 문제가 터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2년 전 숭례문 복원공사가 중단됐을 때도 신응수 대목장이 소나무를 빼돌려 자신의 창고에 쌓아뒀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국내 문화재 복원공사에 정통한 한 목재업계 인사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숭례문 복원공사는 2009년 12월부터 본격화됐으나 2011년 12월~2012년 1월 사이 약 한 달간 공사가 중단됐다. 시공사인 명헌건설과 목수들 사이에 인건비 문제로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목재업계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일부 목수는 (숭례문 복원공사를 총괄한) 신응수 대목장이 인건비 일부를 가로챘다며 상당한 불만을 터뜨렸던 것으로 안다”면서 “신 대목장이 (숭례문 공사에 들어간) 나무를 자신의 창고로 빼돌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고 밝혔다.

1월3일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숭례문 복원공사를 총괄한 신응수 대목장이 운영하는 강원도 강릉의 목재업체를 압수수색했다. ⓒ 연합뉴스
경찰, 숭례문 의혹 본격 수사 나서

숭례문 복원 과정에서 우리나라 금강송이 아닌 러시아산 소나무가 쓰였다는 의혹에 대해 경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이런 가운데 시사저널이 처음 보도한 ‘숭례문 러시아산 소나무 의혹’은 이미 2년 전부터 불거졌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문화재보수·복원공사에 들어가는 목재에 질이 떨어지는 러시아산 소나무가 쓰이고 있다는 주장도 들린다.

국내 문화재 복원공사에 참여했거나 이 업계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은 “사실 국산 소나무를 고집하는 문화재 복원 및 보수 공사에 러시아산 소나무가 섞여 들어가는 일은 오래전부터 자주 있었던 일”이라며 새삼스러울 게 없다고 입을 모았다.

문화재 보수공사에 참여했던 한 업체에서 국립산림과학원에 직접 러시아산 소나무인지 국내산 소나무인지 구분해달라고 요청한 사례도 있다. 한국목재공학회 최원철 이사는 “2년 전 지방의 문화재 보수공사에 참여했을 때 관재로 들어온 나무 상당수가 러시아산 소나무(구주 적송)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것이 국산 소나무인지 러시아산 소나무인지 국립산림과학원 측에 수종 분석을 의뢰한 적이 있다”며 “당시 국립산림과학원에서는 ‘현재 세포 분석 방식으로 소나무 품종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보내왔다”고 말했다. 목재로 쓰인 소나무의 품종과 서식지를 판별하는 것에 대해 정부 산하 기관 전문가조차 고개를 가로저었던 것이다. 문화재 관련 공사에서 목재를 바꿔치기해도 들통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동안 문화재 관련 비리 문제는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이유로 경찰의 수사망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숭례문 복원 과정에서 러시아산 소나무가 쓰였다는 의혹에 대한 경찰의 수사 의지는 어느 때보다 확고하다. 경찰은 1월3일 숭례문 복원 작업을 총괄한 신응수 대목장이 운영하는 제재소인 강원도 강릉의 우림목재를 압수수색한 데 이어 별도로 유전자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1월6일 경찰청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숭례문 복원에 사용된 나무에 대해 DNA 검사·분석을 통해 실제로 금강송이 (들어간 것이) 맞는지 확인 중”이라며 “아직 복원에 사용된 나무가 러시아산이라고 확인한 단계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실제 경찰은 국립산림과학원에 유전자 분석을 의뢰한 상태다. 이 작업은 문화재청의 의뢰와 별도로 진행 중이다. 경찰 발표에 앞서 문화재청 또한 지난해 12월18일자 보도자료에서 “강원도 삼척 준경묘 현지의 금강송과 숭례문 복구에 사용된 부재의 샘플을 채취해 국립산림과학원에 동일 개체 여부에 대한 유전자 분석을 의뢰 중이며 나이테 분석을 통해 동일 수종 여부도 함께 확인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국립산림과학원 관계자는 “경찰청과 문화재청 두 기관에서 각각 유전자 분석 의뢰를 했다. 사실 동일한 시료라고 볼 수 있지만 의뢰는 각자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숭례문에서 채취한 코어(직경 8㎜의 나무심)를 가지고 왔다. 숭례문에 러시아산 소나무가 쓰였다는 의혹이 일자 러시아산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다. 이 코어는 경찰 관계자의 입회하에 두 기관이 같이 채취해온 것이라고 한다.

반면 경찰청은 강원도 삼척 준경묘 현지에서 벌목하고 남은 금강송 뿌리와 목재 일부를 잘라왔는데 이는 준경묘에 있는 나무가 숭례문에 쓰인 것과 같은 개체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 관계자는 “경찰은 준경묘에서 잘린 나무와 숭례문에서 딴 코어가 일치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개체 식별을 의뢰했다”고 설명했다.

경찰과 문화재청 간 신경전 팽팽

경찰이 숭례문 의혹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가면서 경찰과 문화재청 사이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경찰의 유전자 분석 의뢰 과정을 살펴보면 문화재청에 대한 불신이 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경찰의 숭례문 러시아산 소나무 의혹 수사에 정통한 사정 당국 관계자는 “사실 (숭례문 부실 공사 의혹에 대해) 경찰 쪽이 문화재청보다 더 많은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며 “그렇지만 숭례문 기둥에 러시아산 소나무가 쓰였는지 여부를 파악하려면 문화재청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이에 경찰의 요청으로 문화재청이 숭례문에서 시료를 채취해 유전자 및 나이테 분석에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 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경찰은 숭례문 복원공사의 1차 책임자인 문화재청의 조사에 대해 회의적이다. 경찰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함께 숭례문에 들어간 목재 시료를 채취했지만 문화재청과 별도로 유전자 분석을 요청한 것도 문화재청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 문화재청은 부실 복원공사 논란이 일고 있는 숭례문, 균열이 발생한 경주 석굴암의 본존불, 일부 경판이 훼손돼 문제가 됐던 해인사 팔만대장경 등 주요 문화재의 관리 부실 문제로 감사원 감사를 받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해 11월27일부터 문화재청의 문화재 관리 부실에 대한 특정감사를 위한 예비조사에 들어갔고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문화재 보수 및 관리 실태에 대해 대대적인 감사를 벌이고 있다. 문화재청은 기자의 숭례문 의혹 등에 대한 답변 요청에 “감사원 감사 기간이라 말할 수 없다”며 입을 다물고 있다.

앞으로 핵심 쟁점은 경찰과 문화재청이 의뢰한 유전자와 나이테 분석을 통해 숭례문에 러시아산 소나무가 쓰였다는 의혹이 해소될 수 있을지 여부다. 준경묘 일대의 금강송과 러시아산 소나무를 유전자 분석 등으로 식별이 가능한지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금강송(금강형 소나무)은 한국에 분포한 소나무(Pinus densiflora) 품종 가운데 태백산맥 일대에 분포한 소나무다. 목재 형질이 우량하다는 이유로 일반 소나무와 구별해 부른 것이다. 러시아산 소나무는 러시아에 널리 퍼져 있는 품종인 구주소나무(Pinus sylvestris)를 이른다.

소나무 유전자 분석 의뢰를 맡은 국립산림과학원 측은 DNA 제한 효소를 이용해 국산과 러시아산 소나무의 구별이 가능하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홍용표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유전자원과 과장은 “분석이 가능한 양의 DNA가 확보되면 이를 분석하기까지 시간은 이틀 정도 걸린다. 러시아에 분포한 구주소나무와 국산 소나무는 DNA 분석을 통해 100% 식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러시아 지역에 분포해 있는 소나무 품종인 ‘구주소나무’(위)와 한국의 소나무. 한국의 소나무가 태백산맥 지역에서 자라면 금강송이 된다. ⓒ 시사저널 최준필
“유전자 분석으로 품종 식별” vs “불가능”

하지만 유전자 분석에 들어간 나무 시료들이 벌채한 지 상당 시간이 지난 죽은 개체이기 때문에 DNA를 확보하는 것부터가 난제다. 특히 국립산림과학원이 2년 전과는 다른 입장을 내비친 것 또한 의문이다. 홍 과장은 “세포 분석과 유전자 분석은 다르다. 다만 5년 이상 묵은 개체에서 분석 가능한 양의 DNA를 확보해 분석에 들어간 사례는 아직까지 없었다”며 “만약의 경우 DNA를 확보할 수 없다면 (지금과는) 다른 방법을 이용해 DNA를 확보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고 밝혔다.

소나무의 품종에 따른 유전적 차이가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국내 소나무학 권위자인 전영우 국민대 산림환경시스템학과 교수는 “금강송 종자라는 것은 유전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역 생태에 따라 자라나는 모양을 보고 금강형 소나무(금강송)라고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지구상에 소나무 종류가 115가지가 있는데 현재까지 연구 결과 금강송이 다른 소나무 종자와 유전적인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나와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전문가에 따르면 유전자나 나이테 분석으로 소나무 품종이나 산지를 식별하기는 어렵다. 1월3일 경찰이 신응수 대목장이 운영하는 우림목재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신 대목장 운영 업체의 목재 사용 내역 자료를 확보한 것 또한 이럴 경우를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경찰은 혐의자로 지목된 신응수 대목장이 운영하는 목재상의 목재 반입 내역을 확보해 신 대목장이 (숭례문 공사 외에) 타 공사를 수주해 목재를 사용한 내역도 조사 중”이라며 “이는 (숭례문 기둥에 쓰인 소나무가) 러시아산인지 여부와 별도로 진행되는 것이다. 경찰은 자료 분석만으로도 (신 대목장의) 횡령 혐의를 입증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유전자 분석 등을 통해 숭례문에 들어간 목재가 러시아산으로 확인되면 경찰 수사는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경찰에서 금강송의 유통 경로를 파악하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중간 수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한 달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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