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들이 얼음 궁전 됐다, 날씨가 미쳤다”
  • 김현일 대기자·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1.1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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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으로 변해버린 미국 동부 약해진 제트기류 뚫고 나온 극소용돌이가 원인

“아마 얼음 궁전이 이렇게 생겼을 것이다. 꽝꽝 얼어붙은 미시간 호수 너머의 고층빌딩군은 은백색으로 뒤덮여 있다. 25년 만에 자연이 연출해내는 거대한 쇼다. 이틀 동안 학교도 휴교했으나 이제 날씨가 조금씩 풀리면서 정상을 되찾고 있다. 사실 미네소타에 비하면 영하 25도에 불과(?)한 여긴 약과다. 미네소타는 영하 50도 이하로 내려갔다. 다행히 그쪽도 오늘(1월8일)은 다소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미주중앙일보 권현기 대표가 전하는 미국 동북부 지역의 현지 상황이다.

다음은 시카고와 이웃한 어바나 샴페인에 교환교수로 머무르고 있는 남상호 박사(62)의 1월6일자 일기 내용이다. ‘월요일. 맑음, -22~-27도. 어제 하루 새 20cm 정도 눈이 쌓였다. 너무 추우니까 눈도 가루처럼 바람에 날린다. 5분도 견디기 어렵다. 시카고 공식 기상관측소인 오헤어 국제공항의 기온은 -26.7도. 1988년(-25.6도) 이후 25년 만에 가장 추운 날씨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러나 체감 온도는 -46도로 알래스카보다 춥다고 한다.’

미국 동부를 최악의 한파가 강타한 가운데 시카고의 미시간 호가 꽁꽁 얼었다. ⓒ AFP 연합
“미친 날씨에 민감해하면 진짜 ‘미치게’ 돼”

미시간 대학이 자리한 애나버 시에 40년 이상 거주해온 최두영씨(61·회계법인 대표) 등은 적잖은 주민이 서둘러 플로리다나 도미니카 등 캐리비언 일대의 휴양지로 피신했다고 전하면서, 하룻밤 새 40cm 이상 눈이 쌓이는 경우가 허다한 만큼 이제 놀라지도 않는다고 했다. 이번엔 북쪽의 냉기류가 세력을 떨쳐서 그렇지 한겨울에 영상 20도를 넘는 이른바 ‘인디언 서머’(가을·겨울에 느닷없이 찾아오는 무더위) 현상도 심심치 않다는 것이다. 인디언 서머는 멕시코 만에서 발달한 온난 기류가 거칠 게 없는 미국 중서부 평원지대의 북단까지 밀고 들어와 세력을 떨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최씨는 “정부 관계자나 과학자들은 몰라도 일반인들이 이 크레이지(crazy·미친)한 날씨에 민감하게 대응하다가는 같이 크레이지하게 된다”며 “그냥 적응할 뿐”이라고 웃었다.

그렇더라도 미국을 강타한 이번의 냉동고 한파는 ‘크레이지’라는 말을 들을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미네소타 주야 본래 미국 본토에서 두 번째로 추운 지역이어서 예년에도 영하 30도까지 가는 경우가 심심치 않았다지만, 체감온도까지를 감안한 ‘풍속 냉각 영하 59도’의 살인적 날씨를 기록한 몬태나 주의 사례는 기상학자들도 혀를 내두르는 정도다. 몬태나 주는 위도상으로는 본토의 북쪽에 위치하지만 1월 평균 기온이 영하 2도에 불과했는데, 이번에 그레이트 폴스 등 몬태나 북동부 지역에 남극보다 혹독한 한파가 몰아닥친 것이다. 이는 조지아 주 등 남부 지역까지 영하 20도에 이르게 한 것 이상의 기상 이변이라는 게 최씨의 설명이다.

몬태나 주와는 반대의 경우로, 몬태나 이북에 위치한 캐나다 앨버타 주 등은 또 ‘평온’하다는 사실도 특이하다. 에드먼튼에 거주하는 김찬익씨(67)는 눈은 많이 왔지만 기온은 예년 수준이었다고 알려왔다. 이러고 보면 뉴욕 주 등지의 혹한은 별게 아니다. 뉴욕 롱아일랜드에 거주하는 이홍준씨(65)는 1월9일 “뉴욕 주지사가 나이아가라 폭포가 위치한 버팔로 등 14개 카운티에 한파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주 고속도로 일부를 폐쇄했다지만, 특히 뉴욕시티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한파나 적설, 강풍 등은 다른 지역에 비하면 대단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저 인구 밀집 지역이라 비행기 이착륙 지연·취소, 일시적 교통 통제 등 자그마한 충격이나 변화도 크게 부각되기 때문에 그럴 뿐이라는 것이다. 이씨는 “다음 주에 비 소식이 있다”며 “불과 며칠 전 눈 하나 없는 골프장에서 골프를 쳤는데 ‘살인 한파’ 얘기가 나오니 ‘크레이지’로 치부하고 넘어갈 뿐”이라고 했다.

이래저래 뉴욕·뉴저지 주나 이번 한파를 못 느끼고 넘어간 플로리다 주 등 미국 남부 지역과 중서부 지역의 체감 격차는 클 수밖에 없는데, 기상 전문가들은 이변의 폭이 커지고 빈도가 잦아지는 점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날씨가 정상을 회복하면서 지방 정부와 현지 언론들은 많은 양의 눈과 혹한이 겹친 이후에 발생할 이런저런 사건·사고들에 대비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예컨대 아이스 댐 대책도 그중 하나다. 아이스 댐은 녹은 물이 스며들면서 안팎의 온도 차로 지붕이 들뜨는 현상을 가리키는데, 이런 보이지 않는 피해들을 감안하면 이번 한파의 실제 피해 총액은 알려진 5억 달러를 훨씬 상회하리라는 전언이다.

이쯤 되면 이런 의문을 가질 만하다. “지구온난화가 정말 맞아?” 여기저기에서 지구온난화를 무색하게 하는 이율배반적 기상 현상이라며 회의론을 내놓기 바쁘다. 그러나 온난화는 명백한 사실이다.

영하 37도라는 기록적인 한파를 기록한 미네소타 주에 체감온도 경보가 내려졌다. ⓒ EPA 연합
지구온난화로 제트기류 약해져 한파 발생

기상 전문가들은 코끝이 떨어져나갈 듯한 북반구 한파의 원인으로 폴라 보텍스(polar vortex)를 꼽는다. 폴라 보텍스는 ‘극소용돌이’, 즉 북극과 남극의 찬 공기를 감싸고 있는 소용돌이 모양의 기류다. 겨울철 극지방 성층권에 형성되는 매우 강한 저기압의 ‘회오리바람’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폴라 보텍스는 ‘제트기류’에 가로막혀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한 채 시베리아 북부 지역 등 극지대에 머무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폴라 보텍스를 감싸는 제트기류의 세력이 약해졌고 그 틈을 타 차가운 소용돌이가 평상시보다 더 아래쪽인 북반구 중위도 지역까지 밀고 내려와 미국과 캐나다 등을 덮친 것이다.

‘차단막’ 역할을 하는 제트기류가 약해지는 건 지구온난화에 따른 북극 해빙과 관련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북극 얼음을 녹이는 지구온난화가 촉진되면 1년 내내 더운 날씨만 계속될 것 같지만, 오히려 겨울 한파는 더 혹독해질 가능성이 크다. 왜 그럴까.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면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열의 절반 이상을 반사시키던 북극 지역의 빙하가 감소하게 된다. 그럴 경우 바다가 흡수하는 태양열이 늘어나게 되고 그만큼 대기층으로 증발하는 수증기와 열의 양도 증가한다. 이로 인해 북극 지방에는 고기압이 형성돼 한기를 감싸고 있던 제트기류가 약해지고 북극의 찬바람이 북반구 전체를 뒤덮을 기세로 남하하게 된다. 한파는 북극 고기압이 대륙의 터줏대감처럼 딱 버티고 있는 한 물러서지 않는다.

제트기류는 북위 40~50도 지역 20km 상공에서 빠르고 강하게 부는 편서풍을 말한다. 지구온난화가 큰 문제가 되지 않던 시절에는 제트기류의 흐름이 강해 그 안에 묶여 있던 북극 한기가 빠져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로 북극의 고온 현상이 지속되고 있어서 제트기류의 기세 또한 많이 약화된 상태다. 그래서 북극의 찬 기운이 비집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제트기류에서 벗어난 북극 한기는 중위도까지 내려오는데 피해 지역은 미국 북동부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유럽은 물론 우리나라, 중국 베이징도 위협을 느낄 만큼 혹독한 추위에 벌벌 떨 수 있다.

문제는 이게 악순환이라는 데 있다. 지구온난화 탓에 생긴 북극 해빙이 오히려 지구온난화를 촉진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발표된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의 에릭 코트 박사의 연구 내용에 따르면, 북극해에 떠다니는 얼음이 녹거나 깨진 틈을 통해 대량의 메탄가스가 나오는데 이 메탄가스가 지구온난화 속도를 높인다는 것이다. 메탄가스는 북극해 얼음 밑에 메탄하이드레이트 형태로 상당량이 분포돼 있어서 얼음이 녹으면 이것이 대기 중으로 방출된다는 얘기다.

미국 오리건 주립대학 연구진 또한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태양열 반사율이 30년 전에 비해 낮아졌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북극 지역의 얼음이 햇빛을 제대로 반사하지 못하면서 지구 온도를 낮춰주던 본래의 기능을 상실해 지구온난화를 가속시킨다는 의미다. 이런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보면 앞으로 북반구의 겨울 한파는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해수면은 예상보다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국지적인 빙하뿐 아니라 거대 빙산 또한 기온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아직 극소용돌이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그나마 북극의 얼음 면적 등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북극 해빙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미는 108년 만의 강력한 폭염  


지구 전체가 빙하에 빠진다는 내용을 담은 영화 <투모로우>의 실사판을 찍고 있는 북반구와 달리 남반구에 위치한 남미 국가들은 현재 가마솥에 빠진 것 같은 폭염 탓에 신음하고 있다. 낮 최고 기온이 연일 40도 이상으로 오르는 가운데 아르헨티나 산티아고 델 에스테로 주의 기온은 1906년 이후 가장 높은 섭씨 50도를 기록했다.

108년 만에 가장 강력한 폭염이 이어지면서 열사병과 탈수 증세로 10여 명이 숨졌고, 일부 지역에서는 전력 공급이 중단돼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남미에 찾아온 폭염과 북반구의 한파는 서로 맞물려 있다. 제트기류의 세력이 약해져 북극의 차가운 공기가 남하하는 바람에 북반구가 지금 혹한에 시달린다면, 여기서 밀려난 따뜻한 공기가 더욱 남쪽으로 몰리면서 남반구에서 이번 폭염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북극 한기의 반작용으로 남태평양에 고기압이 강하게 발달하면서 적도의 뜨거운 공기가 유입되었다는 것이다.

이 또한 지구온난화로 생긴 새로운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추정되지만, 남미 폭염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발생해왔기 때문에 지구온난화만을 원인으로 보기는 무리라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정확한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하는 일이 필요하다.

지구촌 곳곳에서는 이미 암세포처럼 기후의 이상 변화에 따른 고통이 퍼져가고 있다. 빠르게 지속되는 이상 기후에 대해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여러 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시계처럼 어느 한 지역의 기상 이변에 따른 피해를 지구 반대편에서 고스란히 떠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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