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사 검사’ 사건 뒤에 검·경 암투 또 ‘아른’
  • 조해수·이승욱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4.01.22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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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전 검사 비리 포착하고도 선수 뺏겨 검찰 “경찰이 의도적으로 사건 부각” 불만도

이른바 ‘해결사 검사’ 사건을 둘러싸고 또 해묵은 검·경 갈등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직 검사가 연루된 이번 사건을 놓고 검·경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지금의 경찰 수뇌부가 수사권 독립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는 않지만, 경찰 일선의 밑바닥 분위기는 다르다. 불씨만 당겨지면 언제든 대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폭풍 전야의 고요함이 검·경을 휩싸고 있다.

‘해결사 검사’ 사건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대검찰청 감찰본부(이준호 본부장)는 1월13일 춘천지검 전 아무개 검사(37)가 연예인 에이미(32·본명 이윤지)를 위해 강남 ㅊ성형외과 병원의 최 아무개 원장(43)에게 압력을 행사해 수천만 원의 돈을 받도록 해준 혐의(변호사법 위반 및 공갈)로 감찰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감찰본부는 1월 초 전 검사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주 동안의 짧은 암행 감찰을 거친 후 공개수사로 전환해 이틀 만인 15일에 전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고, 이튿날 전 검사는 전격 구속됐다. 구속되기 전까지 전 검사는 단 두 번의 조사만 받았다고 한다.

검찰 “경찰, 내사 진행한 것 아니다”

검찰이 전 검사에 대한 수사를 서두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경찰의 움직임에 대한 견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전 검사에 대한 정보를 처음 입수한 쪽은 경찰이었다. 최 원장의 병원 직원인 김 아무개씨(여)는 지난해 10월, 최 원장이 자신에게 프로포폴을 투약한 후 성폭행을 했다며 최 원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이 사건은 11월 초 강남경찰서에 이첩됐고, 성폭행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 도중 전 검사의 비리 혐의가 드러났다.

경찰은 전 검사와 최 원장 사이에 있었던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두 사람의 통화 및 휴대전화 문자 내역을 확인하고자 했다. 최 원장의 성폭행 사건과 ‘해결사 검사’ 사건은 전혀 다른 사건이다. 경찰이 통신 내역을 확인하려고 했던 것은 성폭행 고소 사건이 아닌 전 검사에 대한 ‘인지 수사’로 수사를 확대하려고 했음을 뜻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결국 대검 감찰본부에 넘어갔다. 검찰이 ‘검사 비리’가 외부로 확산되는 것을 우려해 경찰 사건에 대해 발 빠른 조치를 취한 것으로도 보인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2012년 말, 10억대의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광준 전 검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김 전 검사가 유진그룹 유순태 EM미디어 대표(46)로부터 6억원, 조희팔(다단계 사기 피의자) 측근 강 아무개씨(52)로부터 2억4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포착해 수사에 착수했지만, 검찰은 특임검사를 임명하는 초강수를 두며 해당 사건을 검찰로 가져왔다.

같은 시기에 불거진 서울동부지검 소속 전 아무개 검사의 성추문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 대검 감찰본부는 2012년 11월20일 피의자 ㅇ씨(여·43)의 변호인이 서울동부지검의 지도검사에게 검사와 부적절한 성적 접촉이 있었다는 문제를 제기하자 곧바로 감찰에 착수했으며, 이날 인터넷을 통해 소문이 급속도로 퍼져나가자 즉각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대해 검찰이 경찰을 의식해서 사태가 더 확산되기 전에 서둘러 사건을 공표한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전 검사와 관계를 맺은 ㅇ씨가 한 성폭력상담센터에서 상담을 했는데, 이 루트를 통해 경찰이 사전에 관련 정보를 입수했다는 것이다. 특히 검·경 갈등이 극심했던 당시, 경찰이 이 사건을 수사할 경우 검찰이 치명상을 피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이번 ‘해결사 검사’ 사건은 이전의 두 사건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즉, 경찰이 이 건에 대해 별건 수사를 진행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경찰이 이 사건에 대해 따로 내사를 진행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최 원장 성폭행 수사에서 전 검사의 관련 혐의가 발견됐고, 지휘 검사는 정당한 절차를 거쳐 대검 감찰본부에 보고했다. 이에 따라 감찰본부가 수사를 진행한 것이고, 혐의가 인정됐기 때문에 구속영장을 발부해 기소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경찰 수뇌부와 수사 일선, 온도 차

오히려 검찰은 경찰의 행동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최 원장의 성폭행 사건과 전혀 상관없는 전 검사 사건을 의도적으로 부각시켰다. 경찰의 이른바 ‘사건 끼워 넣기’에 당한 것이다. 마치 무슨 큰 건이나 잡은 듯이 우리(검찰)를 흔들려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경찰이 해당 내용을 대검 감찰본부 공표 전에 언론에 흘린 것으로 알고 있다. 언론 플레이를 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2012년 때처럼 검·경 간의 전면전으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 정부 들어서 검·경 수뇌부가 수사권 조정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해 12월8일 검찰과 경찰은 ‘국가보조금 비리 검·경 합동수사’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날 발표에 나선 대검 반부패부 수사지휘과와 경찰청 지능범죄수사과는 상대 기관의 장점을 치켜세우며 ‘공조와 협업’을 강조했다. 경찰이 광범위한 수사를 통해 비리 사례를 적발하면 검찰은 이 중 고액 사건에 집중하면서, 수사부터 기소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효과적인 공조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서도 “국회와 국민이 정해주는 것”이라며 “검·경은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뿐”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춘천지검 소속 전 아무개 검사가 1월17일 대검에서 조사를 받은 후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가장 먼저 공격적인 자세를 취해왔던 경찰의 스탠스가 달라졌다. 이성한 경찰청장 전임인 김기용 전 청장은 검찰 출신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연루된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을 무리하게 수사하다 청와대의 눈 밖에 나서 전격 경질됐다. 박 대통령도 경찰에 대형 비리 수사가 아닌, ‘성폭력·학교폭력·가정폭력·불량식품’ 등 국민 생활과 관련된 4대악 척결을 주문하고 있다. 이 청장이 검찰 비리 수사에 나설 분위기가 아닌 것이다.

이번 ‘해결사 검사’ 사건 역시 이러한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최 원장은 전직 경찰청장의 동생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현직 검사가 연루된 사건은 경찰 수뇌부에 곧바로 보고된다는 것이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즉,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경찰 수뇌부는 전 검사의 비리 사실을 검찰보다 먼저 파악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 수뇌부가 (해결사 검사 사건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면, 이런 식으로 지휘 검사에게 보고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사건을 본청으로 가져와 따로 수사를 진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강남서는 검찰에 보고하면서 전 검사와 최 원장이 주고받은 메시지까지 첨부했다. 애초부터 별건 수사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청장 자체가 검찰과의 일전을 벌일 만한 전사형 타입이 아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번 사건 역시 검찰에 넘기고 마무리하려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결사 검사’, 에이미 수사 제대로 했을까 


방송인 에이미(32·본명 이윤지)를 위해 성형외과 병원장에게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구속된 이른바 ‘해결사 검사’ 사건의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구속된 전 아무개 검사(37)가 2012년 수사를 맡았던 에이미의 프로포폴(일명 우유 주사) 수사에 대한 객관성 논란이 일 조짐이다.

에이미는 지난 2012년 4월 초 서울 강남의 한 네일숍에서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한 후 구속됐다. 전 검사는 춘천지검에서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에이미를 구속시킨 장본인이다. 검찰은 당시 에이미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프로포폴 수사를 할 당시부터 전 검사와 에이미가 ‘특별한 관계였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당시 사건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다.

전 검사 측 변호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두 사람은 프로포폴 사건 수사를 하면서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이후 사귀었던 건 맞다”고 말했다. 에이미 측은 “성적인 관계는 아니었다”면서도 “사람 대 사람으로 법률 조언을 받는 관계였다”고 밝혔다. 2012년 11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출소한 에이미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조사 과정에서 만난 검사님 덕에 많은 것을 느꼈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은 검사 윤리강령을 통해 피의자 등 사건 관계인과의 사적 접촉을 일절 금지하고 있다. 사건 수사의 객관성과 형평성을 위한 조치다. 그런데 검찰은 전 검사를 구속 기소하면서 공갈 및 변호사법 위반 혐의만 적용했다. 또 검찰이 1월13일 처음 전 검사에 대한 감찰 착수 사실을 밝힌 후 이틀 만인 15일 신속히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이 과정에서 소환 조사가 단 두 차례만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전 검사의 수사 과정에 대한 감찰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이에 따라 검찰이 검사의 추문 논란이 확대되는 것을 우려해 2012년 수사 당시 전 검사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서는 눈감고 병원장에 대한 압력 부분만 수사하는 것으로 성급히 매듭지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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