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앞에 네 편 내 편이 어디 있느냐”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4.01.22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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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세 번째’ 염수정 신임 추기경 뛰어난 친화력과 자신 낮추는 겸손함이 장점

염수정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안드레아·71)이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월12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삼종 기도 직후 염 추기경을 한국 교회 세 번째 추기경으로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염 추기경은 다음 날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 주교관 앞마당에서 열린 임명 축하식에 참석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봉사하고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 치유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시사저널은 염 추기경의 삶과 신앙을 조명해온 가톨릭신문과 주변 인물 취재를 바탕으로 그의 발자취를 되짚어봤다.

염 추기경은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운동복 차림으로 명동성당을 산책하다 만난 신자들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나누고, 소소한 일상에도 ‘허허허’ 웃음을 보이는 모습이 영락없는 ‘성당 할아버지’다. 축구·수영 등 운동을 좋아하고 등산과 자전거 타기도 즐긴다. 강한 포용력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녔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1월13일 한국의 세 번째 추기경에 임명된 염수정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임명 축하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러한 인품으로 선후배 사제 사이에서 신망이 두텁다. 항상 ‘부족한 사람’이라며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도 그를 좋아하는 이들이 꼽는 장점 중 하나다. 2001년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된 염 추기경은 가톨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격이 없는 제가 큰 은혜를 입어 송구스럽다”는 말부터 꺼냈다. 당시에도 그는 풍부한 사목 경험과 뛰어난 교구 행정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가까이서 지켜봤던 고 김수환 추기경도 “인내할 줄 알고 겸손하게 살아온 덕망 있는 사제”라며 염 추기경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추기경 임명 직후에도 그의 이러한 면모가 잘 드러났다. 상석을 양보하는가 하면 한파 중에 축하식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부터 걱정했다. 염 추기경은 전날 갑작스럽게 임명 소식을 들었다. 따로 연락이 없었다. 서울대교구 수석비서인 허영엽 신부가 신발도 채 신지 못하고 달려와 소식을 전했다.

염 추기경은 이후 쏟아지는 축하와 기대 속에서도 마음은 무거운 책임감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원하시는 교회상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는 교회다. 제가 조금이라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전임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은 “그동안에 쌓으신 경륜을 활용하셔서 소임을 성실히 효과적으로 수행하시리라 기대한다”고 축하했다.

가톨릭 순교 집안…삼형제가 성직자

염수정 추기경이 사제의 길을 걸어온 데는 6대째 내려온 뿌리 깊은 신앙이 밑거름이 됐다. 그의 집안은 5대조 할아버지인 파주 염씨 의암공 덕순옹(요셉·1768~1827년)이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교회와 첫 인연을 맺었다. 박해를 피해 당상관 통정대부 관직까지 버린 염옹은 배티성지가 있는 충북 진천군 백곡면으로 들어가 신앙을 이어갔다.

4대조인 염석태옹(베드로)은 1850년 5월 진천 감영에서 순교했고, 그의 부인 김마리아 여사도 같은 해 9월 경기도 죽산 성지에서 순교했다. 3대조부터 순교한 부모의 시신을 찾기 위해 경기도 안성군 삼죽면 일대로 거주지를 옮겨 정착했다. 할아버지 염재원옹(요한)은 옹기를 굽던 전형적인 천주교인이었고, 할머니 박막달레나 여사는 평생 집안에서 사제가 나오기를 기원하며 안성본당은 물론 미리내와 장호원까지 순례하는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염 추기경의 삶과 신앙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이는 어머니 백금월 여사(수산나·1995년 선종)였다. 아버지 염한진씨(갈리스토·1983년 선종)와 사이에 5남 1녀를 둔 어머니는 성경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들려주면서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신앙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했다. 3남인 염 추기경을 비롯해 4남 수완(서울 문정동본당 주임), 5남 수의(서울 잠원동본당 주임) 등 ‘삼형제 성직자’가 탄생한 배경이다.

염 추기경은 “어머님께서는 형제들에게 사제가 되라고 강요하신 일이 없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해주셨다. 나중에 막내 동생이 사제품을 받고 나서 가족들이 모였을 때 비로소 우리들이 사제가 될 수 있도록 기도했다는 얘기를 하셨다”고 전했다. 어머니는 선종하는 순간까지 신앙의 모범을 보였다고 한다. 장례 조의금으로 들어온 3200여만원은 교구 사제 양성 후원 기금으로 봉헌됐다.

염 추기경은 1943년 순교 성지로 널리 알려진 경기도 안성군 삼죽면 미장리에서 태어났다. 사제품을 받은 것은 1970년 12월8일이다. 서울 불광동본당 보좌를 시작으로 이태원·장위동·영등포 본당 등에서 주임신부로 사목했다. 가톨릭대 성신교정 사무처장과 서울대교구 사무처장 등을 지냈다. 사제 생활 거의 대부분을 일선 본당과 행정 두 분야에서 역량을 쌓았다. 2002년에 주교품을 받고 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로 교회 살림을 도맡았다.

2005년 10월5일 출범한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를 이끌며 자살·낙태·배아복제 반대 활동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끌어올렸다. 2008년에는 2억5000만원 상당의 가톨릭 미술 공모전을 제정하기도 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2010년 2월 설립된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과 옹기장학회 이사장을 맡아 나눔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 2012년 정진석 추기경 후임으로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됐다.

어느덧 70대 노년기에 접어들었지만 소통에 대한 노력은 여전하다. 아이폰 유저인 염 추기경은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하는 데도 능숙하다고 한다. 신자들은 물론 일반인들과의 소통을 위해 페이스북을 이용하고 있고, 800여 명에 이르는 교구 사제단과 소통하기 위해 ‘사제전체모임’을 갖기도 했다.

염수정 추기경이 오는 2월22일 로마 바티칸에서 열리는 추기경 서임식에서 한국의 세 번째 추기경으로 서임된다. 사진은 염 추기경(맨 뒷줄 왼쪽 두 번째)의 가족사진. ⓒ 연합뉴스
페이스북으로 바깥세상과 소통

염 추기경은 다소 보수적인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11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신부들이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을 비판하며 대통령 사퇴 촉구 미사를 드린 직후 “교회는 사제들의 정치적 개입을 금지하고 있다”고 말해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대해 염 추기경은 1월16일 가진 간담회에서 “당시 발언은 국정원 대선 개입 문제를 말한 것이 아니라 연평도 사건에 대한 언급이었다. 당시 희생된 분들이 있기 때문에 그분들의 아픔을 같이해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사제들의 발언을 정치 개입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해석은 기자가 할 일이다”라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염 추기경은 “사제들은 희생자들의 아픔을 같이해야 하며 편 가르기는 삼가야 한다”며 “하느님 앞에서 네 편 내 편이 어디 있느냐”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계획을 묻자 “남한테 자꾸 이야기하기보다는 내가, 나부터 죽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그는 “남한테 그렇게 살라면서 넌 왜 그렇게 안 사느냐, 너나 잘 살라고 말하지 않겠느냐”며 “자꾸 뭔가 말하기보다 내가 그렇게 사는 모습을, 본을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흩어진 양 떼를 모으겠다”며 갈등과 분열이 아닌 치유와 화해에 이바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염수정 추기경. 신임 추기경에게 거는 기대도 크다. 미래사목연구소장인 차동엽 신부는 가톨릭신문에 보낸 특별 기고에서 “염수정 신임 추기경의 탄생 소식을 접하고 불현듯 신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 염 신부님의 모습은 언제나 과묵하면서도 믿음직한 형님! 그 모습이 지금까지 내 가슴에 각인된 염 추기경의 아이콘이다”라고 전했다. 차 신부는 “염 추기경이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의 낡은 틀을 깬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회 참여’를 몸소 실행하는 추기경이 되기를 기대해본다”고 밝혔다.

“사회 참여 몸소 실행하는 추기경 되길”

고 김수환 추기경이 정직(진실)·준법(정의)·배려(사랑) 세 가지를 선진국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꼽으면서 이것이 국민운동을 통해 구현되기를 소망했다는 점도 거론했다. 차 신부는 “염 추기경이 이 정신을 계승해 적극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질적 성장에 기여하는, 그리하여 그 혜택이 모든 소외받고 가난한 이들에게 골고루 분배되는 이 나라의 영적 지도자로 활약해주실 것을 기도로써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홍순 전 로마 교황청 주재 한국 대사는 민족 화해와 북한 인권에 더욱 힘써줄 것을 당부했다. 서울대교구장인 염 추기경은 평양교구장 서리도 겸하고 있다. 한 전 대사는 “지난해 부활절 교황 담화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기도를 요청한 바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번 염 추기경 임명은 한국 교회가 민족 화해와 북한 백성의 인간다운 삶을 촉진하는 일에 염 추기경과 함께 더욱 노력하도록 권고하는 뜻도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염 추기경의 서임식은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인 2월22일 바티칸에서 열리는 추기경 회의 중에 거행된다. 다음 날인 2월23일에는 새 추기경들과 함께 추기경 서임 축하 미사를 주례할 예정이다.            



ⓒ 시사저널 임준선
1월12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염수정 서울대교구장을 새 추기경으로 지목했다. 이로써 선종한 고 김수환 추기경과 정진석 추기경에 이어 세 번째 추기경이 한국에서 탄생했다. 정 추기경이 서임된 지 8년 만이다. 한국에서 배출된 추기경이 모두 서울대교구장 직위를 거친 것을 보면 염 추기경의 서임은 사실상 예정된 수순이었다. 가톨릭에서 추기경은 교황을 보좌하는 최고위의 성직자다. 추기경 회의를 통해 가톨릭교회의 주요 의사 결정을 하고, 교황 선출 권한도 갖는다.

지금까지 가톨릭 추기경은 종교를 떠나 한국 사회의 정신적인 지도자로 자리매김해왔다. 역대 추기경들은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사회 참여 목소리를 냈다.

1대인 김수환(세례명 스테파노) 추기경은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서임됐다. 당시 47세로 세계 최연소 추기경이 됐다. 그는 암울했던 시대에 민주화와 인권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아픔을 함께하며 성직자로서의 ‘양심’을 몸소 보여줬다. 평생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며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김수환 추기경은 정권을 향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냈다. 전국에 생중계 중인 성탄 자정 미사에서 박정희 정권의 초헌법적 철권통치를 비판한 일화는 유명하다. ‘박종철 타살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시국 미사를 통해 “정권의 뿌리에 총칼의 힘밖에 없다”며 전두환 독재를 겨냥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명동 대성당에 들어온 시위대를 연행하지 못하도록 경찰들을 막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 때 촛불 시위 자제를 촉구하고, 국가보안법 존치를 지지해 진보 진영의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민주화와 인권에 대한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세상을 떠나면서 각막을 기증한 사실이 알려져 그해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신청이 쇄도했다.

2대 정진석(세례명 니콜라오) 추기경은 2006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그는 김수환 추기경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였다. 정치적 이슈에 대해 침묵하거나 정부 정책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으로 진보 진영의 비판을 받았다.

주교회의에서 지적한 4대강 사업에 대해 “토목 공사 하는 사람들이 다룰 문제이지, 종교인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말해 천주교 원로 사제들이 용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 추기경은 “자신의 분야가 아니면 언급하지 않는 것이 분수에 맞다”며 사회와 거리를 뒀다.

최근 정 추기경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회적 발언을 하는 일부 사제들이 ‘중개자 노릇’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표현하며, 그들을 ‘거짓 예언자’라고 규정했다. 이들의 욕심 때문에 종교계의 논란과 분열이 야기된다는 주장이다.

염수정(세례명 안드레아) 추기경도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서임 전 천주교 내 진보 진영에서는 염 대주교의 추기경 서임을 견제하는 청원서를 교황청에 보내기도 했다. 지난해 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사제들의 시국 미사 논란 당시에 염 추기경은 “현실 문제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사제의 몫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가 사제들의 정치적·사회적 개입을 금한다는 이유에서다.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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