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으로 이용 마라, 내 회고록은 납치당했다”
  • 김원식│미국 통신원 ()
  • 승인 2014.01.2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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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직 대통령을 ‘친미’ ‘반미’로 평가한 게이츠 전 미국 국방장관 논란

“내 회고록이 정치적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잣대에 의해 납치됐다. 내가 이 회고록에서 비판했듯이 이것은 워싱턴 정가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정치적 싸움이다. 나는 이 회고록은 ‘공평하다(even-handed)’고 생각하며, 누구를 비방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나는 부시나 오바마 대통령 모두에게 많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말했다.”

2014년 1월13일 미국 NBC 방송에는 집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부상을 입었다는 한 노신사가 등장했다. 그는 자신이 쓴 회고록이 불러온 파문에 관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로버트 게이츠 전 미국 국방장관(71)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국방장관에 임명했고, 버락 오바마 정부가 등장한 뒤에도 2011년 6월 말까지 국방장관을 계속 맡아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그의 회고록 <DUTY>는 워싱턴 정가의 핵심 이슈로 등장했다. 회고록 내용은 1월14일 정식 출판되기도 전에 이미 돌고 돌아 파문을 불러왔다.

ⓒAP연합
회고록은 오바마 대통령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포함한 미국의 외교 정책에서 “오바마는 전쟁에서 발을 빼는 것에 급급해 우유부단한 입장을 유지했으며, 전쟁의 승리도 확신하지 못하는 것처럼 비치는 등 ‘열정이 없었다(absence of passion)’”고 직격탄을 날렸다. 백악관은 “이미 일부에서 다 거론됐던 일”이라고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의 임기가 3년이나 남은 시점에 터져 나온 전임 국방장관의 비난에 태연하지는 못했다.

게이츠 전 장관이 노린 건 오바마뿐만이 아니었다. 조 바이든 부통령을 향해선 “거의 모든 외교 정책이나 안보 정책에서 실수를 저질렀다”고 혹평했다. 2016년 대권에서 가장 강력한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도 그의 비난을 피해가지 못했다. 당시 국방부 요구보다 현저하게 줄어든 추가 파병 사례를 들며 “(국가 안보보다)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했다”고 공격했다.

“미군 전투기 동원해 한국의 보복 공격 막았다”

게이츠 회고록에 공화당은 쾌재를 부르고 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 일부 인사들은 “오바마 임기가 끝나는 2017년까지 좀 기다렸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며 거들고 나섰다. 게이츠 자신도 CBS에 출연해 “전쟁 개입과 철수 등의 이슈를 2017년까지 늦춰 다루는 게 사려 깊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국방장관 재임 때도 국민들은 내게 생각하는 것을 굳건하고 솔직하게 실행하라고 신뢰를 보냈다. 이 회고록 작업도 마찬가지다”며 회고록 출간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다.

우리는 로버트 게이츠를 국방통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그는 정보통이다. 미 공군을 제대한 후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냈고 국가안보회의 (NSC)에서도 일했다. 26년 이상을 정보 계통에서만 근무한 안보 전문 베테랑이다. 게이츠는 ‘아버지 부시’로 불리는 조지 H. 부시 정부부터 오바마 정부까지 공화당과 민주당 정권을 오가며 미국 안보 분야의 요직에 있었다. 안보 전문가 로버트 게이츠의 능력은 그만큼 좋은 평가를 받았다. 게이츠가 국방장관에서 물러난 뒤 후임으로 왔던 리언 페네타 국방장관은 잦은 말실수로 문제를 일으켰다. 그때마다 이미지 추락을 겪어야 했던 국방부 직원들이 게이츠 시절을 그리워했다는 말이 워싱턴에 흘러나올 정도로 평판도 좋았다. 특히 정치권에 대한 그의 냉소는 오히려 득이었다.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거리를 유지하며 적을 만들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번 회고록은 과도하다고 여길 만큼 게이츠의 속내를 솔직하게 그리고 있다. 그는 매번 미국의 이익을 위해 일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한민국 문제를 다룬 사례만 봐도 그랬다. 게이츠는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전쟁 발발 등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전투기 등을 동원해 한국의 북한 보복 공격을 막았다”고 회고록에서 밝혔다. 보복 공격이 고려되고 있었고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이 무력시위를 했다는 내용은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일이다.

하지만 그 후 2011년 1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나는 중국에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 핵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이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는 결론을 내렸고 북한이 프로그램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밝혔다. “우리는 30년 이상 북한의 치명적인 도발을 인내해왔다. 하지만 한국의 여론은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사건 때문에 앞으로는 도발에 강력하게 대응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이는 한반도에서 적대적 위험이 점증적으로 높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나는 중국이 북한의 자세를 낮추도록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가 밝힌 회고록 내용이다. 그는 “남중국해 등 공해상에서 벌어지는 미국의 군사훈련에 대해 중국은 위협적인 반응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권리임을 알렸다”며 “나는 밝은 외교적 수사로 말했지만 중국은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분명히 알아들었을 것”이라고 국방장관 재임 때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던 자신의 입장을 소상하게 피력했다.

워싱턴포스트 “2차 대전 이후 최고의 국방장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신 나간(crazy) 인물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신력이 강하고, 현실적이고, 친미적이었다.” 한국의 전임 대통령을 극명하게 대비한 게이츠의 평가는 국내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동맹국의 전임 대통령을 ‘친미’와 ‘반미’로 획일적으로 구분한 그의 외교적인 결례는 미국의 국익보다 아래 개념이다. 회고록에서는 전쟁 때 벌어졌던 인권 문제 등 미국 국방 정책의 어두운 단면들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국내에서는 회고록의 단편적인 내용만으로 그를 평가절하하는 분위기지만 미국에서는 전혀 딴판이다. 그동안 게이츠의 별명은 ‘냉정하지만 예의 바른 신사’ ‘외교 정책의 현실주의자’였다. 미국의 국가 안보를 우선하지만 치우치지 않은 태도로 국방 정책을 수행해온 인물로 평가받는다. 어쩌면 이 ‘냉정한 신사’가 백악관의 정책 결정 과정과 워싱턴 정가의 비효율성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앞으로 나선 것은 당연해 보인다. 린든 존슨 대통령을 시작으로 8명의 대통령 밑에서 공직을 맡아온 게이츠다. 그런 만큼 내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미국 정가는 무게감 있게 받아들인다.

비록 단편적인 평가 때문에 우리는 불쾌할지 몰라도 이 회고록은 미국의 대외 정책, 국가 안보 정책이 수립되고 실행되는 방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가치 있는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회고록에서 언급되는 내용은 지금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국제 관계 상황들에 대한 그 나름의 평가와 기록이다. 지난 대선에서 오바마를 지지했던 워싱턴포스트는 회고록이 나온 이후 게이츠를 이렇게 평가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국방장관 중 최고라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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