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상금 50만 달러 현금화, 농협 지점 이상한 거래”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4.01.28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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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내부 관계자 단독 증언…추심 전 매입 승인 공문 삭제 의혹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1년 3월14일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준 ‘자이드 환경상’을 받았다. 환경보호와 경제 번영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녹색 성장을 주도했다는 것이 수상 이유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상금으로 받은 50만 달러(한화 5억5000만원)는 환경 분야 등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데 기부하거나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일주일여 만에 상금으로 받은 외화 수표를 현금화했다. 청와대 주거래 은행인 농협은행(농협) 청와대지점이 중간 역할을 했다. 통상적으로 해외 은행이 발행한 수표를 현금화하기까지는 15~20일 정도 걸린다.

절차도 복잡하다. 항공우편으로 아랍에미리트의 수표 발행 은행에 수표를 보내면 농협 국제업무부에 달러로 송금된다. 농협은 이 돈을 다시 원화로 바꿔 고객 계좌에 입금하게 된다. 이것이 추심 과정이다. 그런데 농협 청와대지점은 2011년 3월22일 이 전 대통령의 외화 수표를 추심 전에 매입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본점 서울심사센터에 보냈다. 다음 날 서울심사센터의 승인이 떨어지면서 이 전 대통령은 상금으로 받은 50만 달러를 현금화할 수 있었다.

그동안 이런 사실은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었다. 농협도 쉬쉬했다. 하지만 올해 1월11일이 전 대통령의 상금 세탁 의혹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농협은 곧바로 반박 자료를 냈다. 농협은 “신용이 확실한 경우 수표 원본과 신분증 사본을 받고 고객에게 미리 돈을 내주기도 한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외화 수표 추심 전 매입은 2011년에만 여러 차례 있었고, 절차상 문제도 없었다는 것이 농협 측 주장이다. 이 전 대통령의 비서실도 해명 자료를 내고 “상금은 공직자행동 강령이나 소득세법 등 모든 법적 확인 절차를 거쳐 (이 전 대통령의) 계좌에 예치됐다”며 “해당 언론사의 적절한 조치가 없을 경우 법적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서울 서대문에 위치한 농협 본사에는 ‘이명박 정권의 비자금 의혹 규명과 최원병 회장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가 끊이지 않는다. 시사저널은 올 초 농협과 이 전 대통령 사이에 수상한 거래가 있었다는 제보를 접하고 취재에 착수했다. 전·현직 농협 관계자 등을 상대로 다각적인 취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농협이 이 전 대통령의 상금 50만 달러를 추심 전 매입하면서 특혜성 지원을 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익명을 요구한 농협 관계자는 “상금으로 받은 외화 수표는 청와대지점을 거쳐 서울심사센터에 보내졌다”며 “하지만 추심 전 매입 승인을 위한 공문 외에 첨부된 서류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농협 관계자들에 따르면 추심 전 매입도 일종의 여신이다. 자필 서명이 들어간 신청서와 신용평가서, 재직증명서 등이 첨부되지 않으면 처리 자체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농협은 이 전 대통령 계좌에 5억5000만원을 미리 내주면서 필요한 절차를 모두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동안 농협이나 이 전 대통령 측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해명을 뒤집는 증언이어서 주목된다.

 

“MB 주민번호, 농협 직원이 손으로 적었다”

시사저널은 청와대지점의 추심 전 매입 승인 요청서와 서울심사센터의 내부 기안문 등을 입수했다. 농협 청와대지점은 2011년 3월22일 이 전 대통령의 외화 수표를 추심 전 매입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서울심사센터에 보냈다. 그런데 승인 요청 공문에는 농협 직원이 이 전 대통령의 주민등록번호(주민번호)를 수기로 표기한 것으로 돼 있다. 농협의 주장대로 승인 요청 당시 주민등록증 사본을 첨부했다면 농협 직원이 손으로 주민번호를 다시 적을 필요가 없었다는 점에서 의문을 남긴다.

이 전 대통령 측은 농협 측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박정하 전 청와대 대변인은 1월23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농협에서 안내하는절차대로 청와대 부속실 직원이 처리한 것으로 안다. 구체적인 내용은 우리도 모르기 때문에 농협에 문의해달라”고 말했다. 농협 측도 “신청 공문에는 (이 전 대통령의) 주민증 사본 뿐 아니라 자필 서명한 신청서가 첨부돼 있었다. 절차상 문제는 없다”며 “서울심사센터 직원이 전자문서로 온 공문을 인쇄해 결재를 올리는 과정에서 편의상 주민번호를 추가해 오해를 산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의문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농협 청와대지점에서 보낸 공문뿐 아니라 서울심사센터에서 올린 내부 기안문에도 이 전 대통령의 이름 아래 수기로 된 주민번호가 적혀 있었다. 이와 관련된 농협 관계자들의 공식 답변도 서로 달랐다. 어떤 식으로든 검증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전 대통령의 상금 50만 달러를 둘러싼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 전 대통과 관련된 전산 기록이 2011년 4월11일 농협의 전산 장애 사태를 전후로 사라진 의혹도 제기됐다. 농협은 그동안 “추심 전 매입과 관련된 전산 기록뿐 아니라 원본 내역도 모두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의 외화 수표를 매입하기 위해 청와대지점과 서울심사센터가 주고받은 공문이 전산에서 사라진 의혹이 제기됐다. 농협의 한 관계자는 “이 공문 이 전자문서함에서 삭제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농협 규정상 여신 승인 요청 문서는 10년간 보전해야 한다. 또 여신 승인 문서의 경우에는 준영구적으로 보관하도록 돼 있다. 농협이 이 전 대통령의 외화 수표를 추심 전 매입 방식으로 처리한 지 3년 정도가 흘렀다. 정상적으로 거래가 됐다면 전자문서함에 해당 공문이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 전 대통령의 외화 수표 추심 전 매입 요청과 승인 공문이 전자문서함에서 사라졌다는 증언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적지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2011년 10월 민주당 소속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들이 서울 내곡동 사저 부지 앞에서 기자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상금으로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했나

농협 측은 “전자문서함에 현재 공문이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농협 관계자는 “전자문서를 삭제할 이유가 없다”며 “서울심사센터가 통합되면서 바뀐 코드를 모르고 일부 직원이 검색하다가 실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농협 측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전자문서함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 측이 농협에 추심 전 매입을 하도록 압박한 정황은 아직까지 파악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 측이 기부 예정인 외화 수표를 서둘러 현금화했고, 여기에 발맞춰 농협이 특혜성 지원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는 점에서 공모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은 내곡동 사저 자금과 연결해 해석하기도 한다. 이 전 대통령이 농협 청와대지점을 통해 상금을 현금화한 것이 2011년 3월이고, 내곡동 사저 부지 계약은 두 달 후인 5월에 이뤄졌다. 계약을 앞두고 부족한 매입 자금을 상금으로 충당하기 위해 급하게 농협에 의뢰했고 문제가 될 것 같으니 흔적을 지운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내곡동 사저 부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의 장남 시형씨가 빌린 6억원은 아직도 출처가 밝혀지지 않았다. 시형씨는 부지 매입 대금 12억원 중 6억원만 모친인 김윤옥 여사 명의의 서울 논현동 땅을 담보로 농협 청와대지점에서 대출받았다. 나머지 6억원은 큰아버지인 이상은 다스 회장에게 현금으로 빌렸고, 가방 3개에 나눠 담아 청와대 관저에 보관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이후 내곡동 사저 특별검사제가 도입됐지만 청와대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당하면서 자금의 출처를 밝혀내는 데는 실패했다.

이창훈 특별검사보도 2012년 11월 특검 결과 발표 후 언론에서 “(시형씨의) 진술과 계좌 추적 상황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실제 6억원이 현금으로 전달됐는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농협 관계자는 “근거를 남기기 위해 일부러 수표로 거래하는 게 통상적인 관행”이라며 “김윤옥 여사가 보유한 논현동 땅의 평가액만 13억7742억원이다. 6억원만 대출받고 나머지는 큰아버지에게 현금으로 빌렸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당시까지만 해도 추심 전 매입이라는 거래 자체가 있는지도 몰랐다”며 농협 측에 모든 답변을 떠넘기고 있다. 박정하 전 청와대 대변인은 “수표로 받은 상금을 현금으로 바꿔 계좌에 보관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다. 필요한 수수료도 모두 지불한 것으로 안다”며 “급하게 처리하지도 않았고, 그
렇게 할 이유도 없다”고 해명했다.
  

MB 측 “상금은 의미 있는 곳에 쓸 것”  
           
                       

이명박 전 대통령은 상금으로 받은 50만 달러를 일주일여 만에 현금화했지만, 3년이 지나도록 용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농협의 예금 이자를 4% 정도로 잡을 경우 이자가 6000만원 이상 쌓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전 대통령의 상금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 2월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과정에서 상금 50만 달러가 이 대통령 개인 통장에 입금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언론에서는 상금의 용처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김상엽 대통령실 녹색성장기획관은 당시 언론사 기고를 통해 “상금은 추후 환경 등 공익을 위해 사용할 계획”이라며 “자신이 거처할 집을 빼고 사실상 모든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 대통령에게 당장 상금의 용처를 밝히라는 추궁은 온당치 않다”고 밝혔다.

2년여가 지난 올 1월 또다시 이 전 대통령의 상금 문제가 불거졌다. 이 전 대통령 측은 “계좌에 예치돼 있는 상금은 향후 수상 취지에 맞춰 사용할 예정”이라고 짧게 답했다. 이번엔 정치권에서 상금의 용처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국고 환수를 주장했다. 박 의원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법 논리를 떠나 이 전 대통령의 상금은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대가나 감사의 성격을 띤 돈”이라며 “당연히 신고해야 하고 국고로 귀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서도 이 전 대통령 비서실 측은 “상금은 현재 별도 계정에 보관돼 있기 때문에 이자가 쌓이면 좋은 것 아니겠냐”며 “조만간 의미 있게 사용할 곳을 찾을 것으로 본다”고 해명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민번호를 농협 직원이 손으로 적어넣은 내부 문서와 2011년 추심 전 승인 신청 접수 총괄대장. ⓒ 시사저널 구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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