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지방선거] ‘원수’는 경남도청 앞에서 만난다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4.01.28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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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vs 안상수 ‘전쟁 2막’ 예선이 더 흥미진진한 경남도지사 선거

본선보다 예선이 더 재미있는 경기. 6·4 지방선거 경남도지사 선거가 그렇다. 이유는 간단하다. 경남은 다시 새누리당의 표밭이 됐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권의 김두관 후보가 깜짝 이변을 연출하며 당선됐지만, 2012년 경남도지사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의 홍준표 후보가 당선되면서 여권이 경남을 탈환했고, 그해 18대 대선에서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63.1% 대 36.3%의 큰 표 차이로 눌렀다. 2012년 4월에 치러진 19대 총선에서도 새누리당은 경남 지역을 거의 싹쓸이했다.

이번 경남도지사 선거 역시 싱거운 싸움이 될 것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오는데,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본선의 싱거움을 덜어줄 예선 이벤트가 생겨서다. 독주하던 홍준표 지사의 재선 가도에 ‘안상수’라는 장애물이 등장한 것이다. 현재까지는 현직의 홍 지사가 우세하지만, 선거라는 게 당장 눈앞에 보이는 요소가 전부가 아님은 물론이다. 그러니까 ‘상수’는 아니라도 ‘변수’로서 안상수라는 카드는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2011년 3월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장에 함께 자리한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와 홍준표 최고위원. 두 사람의 표정이 상대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말해준다. ⓒ 연합뉴스
홍준표 지사는 1954년생으로 경남 창녕이 고향이다. 고려대를 졸업한 검사 출신(사시 24회)이다. 15~18대 4선 의원으로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원내대표와 대표최고위원을 지냈다. 안상수 전 대표는 1946년생으로 경남 마산이 고향이다. 서울대를 졸업한 검사 출신(사시 17회)이다. 15~18대 4선 의원으로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대표최고위원을 지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헷갈릴 만큼 두 사람의 경력이 흡사하다.

“홍 지사는 선배인 안 전 대표를 무시했다”

두 사람 모두 검사 시절 이름을 날렸다. 안 전 대표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당직검사로, 홍 지사는 1993년 슬롯머신 사건 수사검사로 각각 명성을 얻었다. 1996년 15대 총선 때 김영삼 대통령이 이들을 신한국당에 끌어들인 것도 이들의 유명세를 산 것이다. 여당 원내대표와 당 대표를 지낸 것도 똑같다. 원내대표는 홍 지사(2008년 6월)가 먼저 하고, 안 전 대표(2009년 5월)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당 대표는 안 전 대표(2010년 7월)가 먼저 했고, 홍 지사(2011년 7월)가 다음을 이었다.

나이와 출신 대학 정도만 갈아 끼우면 이력서를 대체해도 될 정도로 유사하지만, 두 사람의 캐릭터는 딴판이다. 얼핏 검찰 선후배로 꽤 절친할 것 같으나 영 아니다. 검사 시절 교분도 없던 두 사람은 상대에 대한 감정도 별로다. 아니, 2010년 7월 당 대표 경합 때 한 번 맞붙은 이후로는 견원지간이 됐다.

홍준표 지사는 다혈질이다. 한번 옳다고 믿으면 물러서는 법이 없다. 입도 거칠다. 이명박 정권 출범의 일등 공신으로서 법무부장관 자리를 희망했지만, 무위에 그친 것도 이런 것들과 무관치 않다. “노동부장관이나 복지부장관은 몰라도, 법무부장관 자리는 곤란했다.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를 맡겼다가 무슨 사태가 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MB 정권 시절의 고위 인사가 전하는 말이다.

자신의 저서 <변방>에서 토로했듯이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운 생활을 했던 홍 지사는 정의감이 충만했고, 그에 반하는 처사는 그냥 지나치질 못했다. 내키면 안상수 전 대표에게 ‘선배’ ‘성님’으로 호칭하기도 했지만, ‘××’가 보통이었다. 존경할 구석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국회의원 한다는 게 개 문제로 이웃을 고발하는 ××”라는 험구를 서슴지 않았다. 물론 인정할 만한 상대에게는 예를 잃지 않는 홍 지사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거칠었다. “홍 지사는 한참 선배인 안 전 대표를 무시했다. 경멸이라는 게 적확할지 모른다. 원내대표와 당 대표를 주거니 받거니 했지만, 홍 지사는 안 전 대표를 라이벌로 여기지 않았다”는 게 주변 관계자의 전언이다.

홍 지사는 넥타이·양말 등을 모두 붉은색 계통으로만 착용한다. 자기의 성씨와 같은 붉은색을 고수하는 게 자신의 단심(丹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심지어 팬티도 붉은색이다. 의원 시절 그에게 기자가 “홍 의원, 그러다 빨간 팬티까지 입겠소”라고 했더니 “빨간색인데요” 하며 허리띠를 풀어 팬티를 보여주는 천진난만한 구석이 있다.

순수한 만큼 고집은 무서울 정도다. 지난해 진주의료원 폐쇄 조치 당시 고집은 우연한 게 아니다. 같은 새누리당 대표가 경남도청까지 와서 말리고, 국회가 결의안까지 냈지만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세금을 낭비할 수 없다는 것이고, 국회의 무리는 헌법을 모르는 처사라는 것이다. 원칙에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서민을 가장 잘 알고 챙겨온 사람이 왜 그러느냐는 힐난에 “서민을 보듬어야 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혈세 낭비는 별개의 문제”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홍 지사 주변은 늘 시끄럽다. 한데 안 전 대표는 그 반대다. 조용한 편이다.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지역구 내 이웃을 고소한 것도 그런 성정의 소산일 수 있다. 한마디로 안 전 대표에게 홍 지사는 건방진 후배다. 세월이 흘러 악감정이 희석될 즈음 이번에는 안 전 대표가 고향 경남대의 석좌교수로 내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홍 지사가 진주의료원 폐쇄 조치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안 전 대표가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안상수, 도민에게 묻다’라는 이름으로 민생 투어에 돌입했다. 압도적 지지율을 바탕으로 재추대를 바라던 홍 지사의 기대는 물 건너갔다. 그래서 두 사람은 예전 ‘원수’ 시절로 다시 되돌아갔다. 2010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 땐 안 전 대표가 승리했고, 2위로 최고위원에 머무른 홍 지사는 사사건건 안 전 대표와 충돌했는데, 그때에 이어 이제 막 ‘진흙탕 싸움 2막’이 재연되려는 참이다.

열세 놓인 안상수, ‘非홍 연대’ 카드 꺼내 드나

객관적 정황으로는 홍 지사가 압도적 우위에 있다. 새누리당 내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홍 지사가 47.4%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안 전 대표는 15.7%로 며칠 전 출마를 선언한 박완수 창원시장(16.3%)에게도 뒤졌다. 두 사람의 지지율을 합쳐도 홍 지사에 훨씬 못 미친다. 홍 지사는 도정 평가에서 긍정 60.3%, 부정 31.7%를 받았다. 이렇게 보면 사실상 ‘(예선) 게임 끝’이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홍 지사에 대한 사감 때문인지 대세가 기울었음에도 안 전 대표는 일단 버티는 모양새다. “설날 민심을 살핀 뒤 공식적인 (출마 여부) 입장을 밝히겠다”는 말에서 꼬리를 내릴 가능성이 감지되기는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박완수 창원시장이 출사표를 던지자 즉각 공개리에 “정책 중심 후보가 돼달라”는 러브콜을 보냈다. 그래서 ‘안상수-박완수 연합 전선’이 형성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박 시장은 안 전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뜻이 맞고 도민들의 뜻이 그렇다면 어떤 것도 가능하다”고 화답했다. ‘박-안 연대’가 이뤄진다면 예선전의 그림은 달라진다. 본격적인 ‘진흙탕 싸움 2막’이 펼쳐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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