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다 스포츠토토 엉망 만들라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4.02.12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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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사업자 선정으로 파행 운영 우려…1조원대 체육진흥기금 조성 ‘빨간불’

한 해 매출액이 수조 원에 이르는 스포츠토토 사업자 교체 작업이 본격화됐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하 공단)은 2월3일 3기 사업자 선정을 위한 제안요청서(RFP) 작성 용역업체로 안진회계법인을 선정했다. 공단은 3월 중으로 제안요청서 작성과 위탁 수수료율 산정을 마무리 지은 후 본 입찰 공고를 낼 예정이다.

현 사업자인 오리온에게는 1월2일 계약 해지를 통보한 상태다. 계약 기간은 7월2일까지다. 5월 중순이면 차기 사업자 선정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진·보광·GS그룹 등이 후보 기업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들 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는 스포츠토토의 차기 사업자 자리를 놓고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공단에서 발표할 제안요청서 내용이 가장 중요하다”며 “유진·보광 등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도 현재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입찰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포츠토토가 3기를 맞아 사업 주체를 새로 선정해야 하는 가운데 한 대리점에서 고객이 스포츠토토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차기 사업자 인수인계 차질 빚을 듯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스포츠토토는 매년 국내외에서 벌어지는 50개 리그, 1만여 개의 경기를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한다. 전산 시스템이 복잡할 뿐 아니라 고도의 운영 노하우가 요구된다. 공단은 6개월여 만에 차기 입찰자 선정뿐 아니라 인수인계를 마무리 지을 예정이어서 안정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복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전산 시스템이 간단한 로또조차 차기 사업자 인수인계까지 11개월이 걸렸다”며 “스포츠토토는 로또보다 상품 종류가 많고, 시스템 또한 복잡하기 때문에 더 많은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우선 지적되는 것이 제안요청서 작성 기간이다. 3기 로또의 경우 제안요청서 입찰 공고에서 작성까지 4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스포츠토토는 두 달 정도가 전부다. 그것도 두 차례나 입찰이 무산되면서 단독 입찰에 나선 안진회계법인과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제안요청서에 사업 특성이나 평가 요소를 정확히 반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정을 무리하게 잡으면서 사업의 핵심 평가 항목을 누락할 가능이 있다”며 “이런 기준으로 평가가 진행되면 차기 사업자가 안정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현 사업자인 오리온과 차기 사업자의 인수인계 기간은 한 달 반 정도로 예상된다. 마찬가지로 로또의 절반 수준이어서 우려가 더하다. 앞서의 관계자는 “스포츠토토는 1기 사업자인 타이거풀스의 파행 운영으로 지난 2003년부터 오리온이 맡아왔다”며 “12년의 운영 노하우를 두 달도 안 되는 기간에 새 사업자에게 전수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스포츠토토 사업자 선정을 주관하는 문체부와 공단 측은 “이미 충분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문체부 체육정책과 관계자는 “스포츠토토의 전산 시스템이나 운용 인력은 그동안 공단에서도 공유해왔다”며 “차기 사업자가 선정되면 전문 인력을 추가로 영입해 공백을 메울 수 있다”고 해명했다. 공단 측도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리스트로 만들어 점검하고 있다”며 “일각에서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믿고 지켜봐달라”고 주문했다.

그럼에도 우려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조차 향후 상황을 낙관하지 못한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장은 “사업자 교체 기간을 우선 정하고 역순으로 입찰 과정을 끼워 넣었다”며 “전문가 몇 명 영입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시스템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최소 6~12개월의 인수 기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스포츠토토의 경우 상품 운용이나 고객 환급, 수익금 정산 등에 필요한 전산망 운영 노하우와 인프라 구축 시간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서 소장은 “최근 들어 불법 스포츠토토가 난립하면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며 “차기 사업자는 이런 문제까지도 다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논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무리한 사업자 선정이 큰 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스포츠토토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오리온이 통합전산망(SAP)을 구축하기 전까지만 해도 수작업으로 수익금을 공단에 이체했다. 이 과정에서 수익금을 잘못 입금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준비 과정이 부족하면 이런 사고가 재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 타이완에서도 서둘러 사업을 진행했다가 중대한 사고가 발생해 사회적 물의를 빚은 바 있다. 하지만 문체부나 공단 측은 현재 이런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피해는 스포츠토토 판매를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 6500여 개 영세 판매점에 전가될 수 있다. 운영 전문성이 없는 기업이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발매액이 줄어들고, 판매점주의 생계 또한 위협받을 수 있는 것이다. 스포츠토토는 지난해에만 1조1000억원 상당의 체육진흥기금을 조성했다. 2001년부터 2013년까지 13년간 조성된 기금은 4조5000억원대에 이른다. 국내 체육 예산의 90% 정도를 스포츠토토를 통해 조달하고 있다. 때문에 최악의 경우 사업 중단으로 기금 조성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회관에 위치한 국민체육진흥공단. ⓒ 시사저널 포토
“최악의 경우 사업 중단 가능성도”

업계나 전문가들은 서둘러 차기 사업자 선정에 나선 이유로 공영화 실패를 꼽는다. 오리온은 2003년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사업을 접은 타이거풀스로부터 스포츠토토 지분 46.8%를 확보해 대주주가 됐다. 2011년에는 한시적으로 계약을 연장했다. 하지만 공단은 2012년 중순 스포츠토토 임원의 개인 비리가 밝혀지면서 계약 연장 대신 공영화 방안을 발표했다. 민간 기업에 사업을 맡기면서 발생할 수 있는 비리 재발을 막겠다는 이유에서다. 2012년 12월에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윤관석 민주당 의원이 관련법의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공단은 개정안 통과를 기다리면서 오리온의 사업권을 1년 더 연장해주었다.

하지만 공영화 논의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정부는 그동안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과 부실을 해결할 대안으로 민영화를 추진해왔다. 스포츠토토 공영화에 따른 낙하산 인사 우려도 제기됐다. 정정택 공단 이사장까지 나서 진화에 나섰지만 잡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국회 역시 2013년 4월과 7월, 9월 3차례에 걸쳐 공단 직영화에 관한 법안을 논의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상임위 의원별로도 의견이 엇갈렸다. 결국 1년이 지나도록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공영화 논의는 사실상 백지화됐다. 이후 공단은 급하게 차기 사업자 선정으로 방향을 틀었고, 입찰 일정 역시 무리하게 잡을 수밖에 없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섣부른 정책으로 국내 스포츠 산업 발전과 스포츠계의 지원 기반이 되는 스포츠토토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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