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 드라이브 국정원은 ‘반칙왕’?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4.02.2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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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준 물러나야” 비난에도 침묵 일관

박근혜정부와 ‘공안 정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종북’이라는 두 글자는 박근혜정부의 확실한 구원투수였다.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던 2012년 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다”며 안보론을 끄집어냈다. 정권 출범 직후 터진 국가정보원(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은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에 파묻혀버렸다. 오는 6·4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 해산 심판을 촉구하는 여당의 목소리가 높다.

박근혜정부 들어 심화되는  공안 정국에서 국정원은 그야말로 ‘날개 달린 호랑이’다. 국정원은 박근혜정부의 해결사 노릇을 자처하며, 공안사범 색출에 열을 올렸다. 대법원이 지난해 말 공개한 ‘10년치 국가보안법(국보법) 사건 접수 및 처리 내역 통계’에 따르면, 노무현 정권 시절 29건(2006년)까지 떨어졌던 국보법 사건은 이명박 정권 들어 점차 증가하더니 박근혜정부 첫해인 지난 2013년에는 102건으로 치솟았다. 2004년 이후 10년 동안 국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 100건을 넘은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기소가 늘어난 만큼 무죄 판결도 증가했다. 2006년에는 무죄가 선고된 사건이 단 한 건도 없었지만, 지난해에는 78명 가운데 4명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공안 정국 바람몰이에서 무고한 희생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 사진공동취재단
위조 논란의 1차적 진원지는 국정원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역시 이런 과정에서 발생했다. 검찰은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다음 날인 지난해 2월26일 유우성씨를 국보법(간첩, 특수 잠입 및 탈출, 편의 제공 등)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때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의 파장이 점차 확산되고 있던 시기였다.

유씨 사건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은 유씨의 여동생인 유가려씨의 증언에 의존해 간첩 혐의를 입증하고자 했지만, 가려씨는 재판에서 “국정원의 폭력과 강압에 의해 허위 진술을 했다”며 자신이 수사를 받을 당시 했던 말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국정원과 검찰이 내세운 핵심 증거가 흔들리면서 1심 재판부는 유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다만 여동생 진술이 수사기관(국정원)의 폭행과 협박, 가혹 행위 등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1심 무죄 선고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서였을까. 국정원은 유씨의 간첩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그가 북한을 드나들었다는 증거 자료를 2심 법정에 제출했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발급했다는 이 증거 문건이 위조 논란에 휩싸이면서 국정원은 더욱 궁지에 몰리는 처지가 됐다. 이는 자칫 박근혜정부가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한중 관계 등 외교 부문에까지 상처를 줄 수 있는 만큼, 남재준 국정원장으로서도 심각한 사안으로 받아들여질 법하다.

현재 드러난 내용으로 보면 위조 논란의 모든 1차적 진원지는 국정원이다. 대공 사건의 경우 국정원이 주도권을 잡고 수사를 진행하고, 검찰은 건네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기소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인 서영교 의원은 “이번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의 주범은 국정원”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국정원이 수사권을 남용하는 것을 넘어 이제 사건을 조작하기에 이르렀다. 외교 분란을 일으키고 사법 질서를 파괴하고 국기를 뒤흔든 남재준 국정원장을 즉각 경질하고 수사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도 이미 강경 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정원 개혁안도 다시 힘을 얻고 있다. 민주당은 이미 국정원 수사권을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에 넘기고, 국정원의 정보·보안 업무에 대한 기획조정권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로 이관하는 내용 등을 담은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해놓은 상태다. 서 의원은 “선진국 정보기관은 수사 기능을 기존 수사기관에 이관하고, 정보를 다루는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하고 있다. 이는 정보기관의 조작·은폐를 막기 위해서다. 국정원이 맡은 공안 사건에는 그동안 끊임없이 조작 수사라는 꼬리표가 붙어왔다. 국정원 개혁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대공 수사에서 국정원이 ‘갑’,  검찰은 ‘을’”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국정원은 이번 사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한다. 오히려 검찰이나 외교통상부가 총대를 메고 국정원을 보호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는 국정원이 유씨 사건 초기에 보여줬던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국정원은 유씨 변호인 측(장경욱·양승봉·김용민 변호사)을 상대로 “거짓 주장으로 국정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형사소송을 제기했고, 국정원 수사관 개인 명의로 변호사마다 2억원씩 모두 6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바 있다.

이번 논란에서 책임을 면하기 힘든 검찰이지만, 검찰 쪽도 국정원을 향해 불만이 가득하다. 중국 정부의 ‘문서 조작’ 공식 답변 내용이 알려진 지난 2월14일 밤, 검찰은 긴급 언론 브리핑을 가진 데 이어 일요일인 16일 오후에도 브리핑을 했다. 또 정보 라인을 총가동해 야당은 물론 언론들의 반응을 살피느라 분주했다. 검찰이 이번 사안을 얼마나 예민하게 보는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검찰 측의 입장은 “억울하다”는 것이다. 대공 수사의 경우 검찰은 국정원을 보조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점을 알아달라고 주장한다. 한 검찰 관계자는 “대공 수사에서 국정원-검찰의 관계는 일반 형사 사건의 검찰-경찰 관계라고 보면 된다. 모든 주도권을 국정원이 갖고 있다. 검찰은 국정원이 입수한 증거에 따라 기소할 뿐이다. 검찰 입장에서는 국가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제공한 정보를 믿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국정원이 ‘갑’이고, 검찰은 ‘을’이라는 얘기다.

민주당은 이번 사건을 “공안 정국 조성과 국가기관(국정원)의 실적을 올리기 위해 국민을 희생양으로 삼은 ‘제2의 부림 사건’”으로 규정했다. 부림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변호인>은 얼마 전 10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 속에서 공안 사건을 조작한 차동영 경감(곽도원 분)의 다음과 같은 대사는 어쩌면 이번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말일지 모른다.

“우리가 잡아들이는 빨갱이들이 정말 다 빨갱이라면 우리나라는 망해도 벌써 망했다. 나는 국가를 살리기 위해 빨갱이들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야지 국가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없는’ 빨갱이를 ‘만들어서라도’ 국민들에게 자꾸 휴전 국가라는 자극을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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