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 던져주는 수사만 하라는 것이냐”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4.03.04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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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부패부 워크숍 이후 특수부 검사들 불만…“특수를 공안처럼 만들려는 것”

지난 2월15, 16일 경기도 용인의 한 연수원에서 대검찰청 반부패부(부장 강찬우 검사장)가 주관한 ‘전국 특수 전담 차장·부장검사 워크숍’이 열렸다. 검찰은 매년 전국 특수부장 회의를 개최해 수사 대상과 방침에 대해 논의해왔지만, 올해처럼 대규모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올해의 경우) 전국 지검의 특수부장(31명) 외에 일선 실무 책임자인 차장검사(18명)까지 참석했으며, 외부 전문가들(법조 출입기자, 법학 교수, 기업 법무 담당자, 법원·검찰 출신 변호사 등 26명)의 검찰 특별수사에 대한 제언을 기초로 이틀에 걸쳐 워크숍을 개최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4월23일 공직 부패, 경제 비리 등 대형 사건을 수사했던 대검 중수부가 폐지되고 이를 대신하기 위해 12월5일 반부패부가 공식 출범했다. 반부패부는 중수부와는 달리 직접 수사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 대신 전국 일선 청의 특별수사를 지휘·감독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번 워크숍은 기존 특별수사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새로운 특별수사 패러다임을 구축하기 위한 자리였다. 검찰 관계자는 “기존 중수부와는 다른 반부패부 출범과 김진태 신임 검찰총장의 수사 관행 개선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워크숍을 개최하게 됐다”고 밝혔다.

2013년 12월5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반부패부 현판식’에서 김진태 검찰총장(왼쪽에서 세 번째)과 오세인 반부패부장(왼쪽에서 두 번째)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가 현판을 제막한 뒤 박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특수수사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어”

이 워크숍 이후 특수부 검사들을 중심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날 논의의 명분은 특수수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었지만, 실상은 검찰 수뇌부가 일선 청의 모든 특수수사에 깊숙이 관여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번 워크숍에서 검찰 수뇌부는 단발성·일회성 정보에 의존한 수사를 지양하고,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면밀히 분석해 구조적·고질적 비리를 척결하는 데 수사를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공공기관 비리, 정부보조금 비리, 방위산업 비리, 탈세사범, 원전 비리, 증권 비리 등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구조적 비리 유형을 콕 집어 밝히기도 했다. 이에 따라 기관 고발이나 구체적인 수사 의뢰가 없는 기업 수사의 경우 당분간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고, 일선 청 역시 성과주의를 지양하고 대검이 강조한 수사에 집중할 것을 요구받았다고 한다.

특별수사는 대부분 첩보를 통한 인지 수사를 기본으로 한다. 작은 첩보를 단서로 수사를 진행해 감춰져 있던 대형 비리를 캐내는 것이 특수부 검사들의 일이다. 특수통으로 분류되는 서울 지역의 한 검사는 “앞으로는 대형 비리를 밝혀내는 것보다 위에서 원하는 방향대로 실수 없이 수사를 마무리해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분위기다. 위에서 던져주는 수사만 하라는 것은 특수수사를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하향식 문화는 공안 수사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특수를 공안처럼 만들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알려진 대로 공안부 검사들은 매번 정례적으로 공안부장검사회의 등을 통해 서로의 사건을 조율하고 조정한다. 특수통이 주로 ‘칼잡이’로 표현되는 강골 검사들의 경연장인 반면, 공안통은 집단의식이 강한 특성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는 특수통 검사들이 공안통을 수사 면에서 다소 평가절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반부패부의 수사 지휘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방안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검찰 중간 간부들의 역할이 강조됐다고 한다. 경륜과 실력을 갖춘 중간 간부들이 후배 지도와 감독에 그치지 않고 솔선수범해 적극적으로 직접 사건 수사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결재권자인 간부와 사건을 직접 담당하는 주임검사 및 평검사 사이에 이견이 생길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윤석열 전 국정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 팀장(현 대구고검 검사)과 조영곤 전 서울중앙지검장(퇴임) 사이의 항명·외압 파동이 이를 잘 보여준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관계자는 “김 총장은 가장 크게 문제가 됐던 검찰 수사의 독립성 확보보다 상명하복의 검찰 문화 유지에 더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워크숍에서도 정작 검찰 수사의 독립성을 담보해줄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는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대검은 중수부가 사라지면서 직접 수사권이 없어졌지만, 인사권을 강화하면서 과거 못지않은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대검 인맥 없이는 출세가 어렵겠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 수술식 수사” 강조

워크숍에는 김진태 총장도 참석했다. 김 총장은 특수수사 패러다임 전환과 관련해 “환부만 도려내는 이른바 ‘외과 수술식 수사’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2일 부임한 김 총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구마 줄기 캐기 식 수사는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줄기를 잡아당기면 줄줄이 달려 나오는 고구마처럼, 본 사건 외의 별건 혐의를 밝히는 데 주력했던 특수수사의 관행을 비판한 것이다. 김 총장은 지난해 반부패부 현판식에서도 “별건 혐의를 찾기 위한 광범위한 압수수색이나 무차별적 소환을 통해 관련자를 압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성과가 나올 때까지 수사를 진행하는 저인망식 수사 관행에서도 탈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총장의 말대로 외과 수술식 수사를 현실에 접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외과 수술식 수사는 과잉 수사에 대한 논란은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후 발생한 여러 사건에서 검찰 수사를 통해 ‘몸통’이 밝혀진 것은 거의 없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 아들 의혹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그 단적인 예다. 검찰은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행정관과 국정원 정보관이 정보 유출에 개입한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12월4일 청와대가 ‘개인적 일탈’ 행위로 이 사건을 규정한 후 검찰 수사는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검찰 특수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사건 초기에 광범위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면 윗선을 밝혀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자칫 잘못할 경우 검찰이 (정권과 관련된 사건) 수사에 소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이것은 모든 사건을 ‘개인적 일탈’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박근혜정부에 면죄부를 주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검찰은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형사부 기능을 대폭 강화하며, 경찰과 함께 4대악(성폭력, 학교 폭력, 가정 폭력, 불량식품) 척결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에는 24년 만에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조직폭력배 척결에 나섰다. 검찰이 민생과 밀접한 사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권력형 부정부패를 파헤치는 것은 어쩌면 검찰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소 잡을 칼을 닭 잡는 데에만 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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