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석 ‘공룡’, 2석 ‘햇병아리’에 애원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4.03.04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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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도지사 지지율 깎는 민주당의 지방선거 ‘무전략’

연전연패(連戰連敗). 민주당이 최근 10년 동안 받은 참담한 선거 성적표다. ‘탄핵 역풍’이 불었던 2004년 17대 총선 승리를 끝으로 민주당은 이후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등에서 새누리당(이전 한나라당 포함)에 판판이 깨졌다. 딱 한 번의 예외가 있다. 바로 2010년 6월에 치러진 제5회 동시 지방선거다.

당시 선거에서 민주당은 전국 16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7곳에서 승리했다. 사실상 민주당 성향의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서 당선된 후 민주당에 입당한 김두관 경남도지사 당선자까지 포함하면 과반에 해당하는 8곳에 민주당 깃발을 꽂았다. 당시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은 6곳 승리에 그쳤다. 민주당은 환호했다. 정권 교체가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들떴다.

2월22일 세종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이춘희 전 건설교통부 차관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안희정 충남도지사(오른쪽)와 허태정 대전 유성구청장이 귀엣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당시 지방선거 승리는 이변이었다. 민주당의 인기가 아닌, ‘차세대 리더’를 자처하는 젊은 기수들의 ‘개인기’로 일궈냈다. 한나라당 텃밭인 충청·강원·경남 등 이길 수 없는 지역에서 안희정·이시종·이광재·김두관 후보가 온몸으로 부대끼며 승리를 따냈다. 민주당 후보로는 처음으로 인천시장에 당선된 송영길 후보 역시 마찬가지다. 2011년 10월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 역시 ‘안철수 돌풍’과 박원순 후보 개인 인기에 힘입은 무소속의 승리일 뿐, 민주당은 들러리에 불과했다.

안희정 지지율 57.9%, 민주당은 29.4%

민주당의 무기력함과 무능함은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치러진 2012년의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충청·강원·경남 등에서 민주당은 새누리당에 힘 한번 못 써보고 밀렸다. 소속 광역단체장들의 개인적 인기에만 의존하는 민주당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이런 분위기는 오는 6월4일 치러질 제6회 동시 지방선거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공개되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민주당 정당 지지율과 당 소속 현직 시·도지사 개인 지지율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대표적인 예가 안희정 충남도지사다. 안 지사는 한국일보가 지난 2월23일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후보군들을 압도적인 격차로 따돌렸다. 안 지사는 홍문표 새누리당 의원과의 가상 맞대결에서 57.9% 대 31.7%로 크게 앞섰다. 이명수 의원과 정진석 전 국회 사무총장 등 다른 후보들과의 맞대결에선 더블스코어 가까이 벌어졌다. 안 지사 개인 지지율이 50%를 훌쩍 넘어서는 상황이지만 ‘어느 정당 후보를 지지하는가’란 질문에서는 새누리당 후보가 47%인 데 반해, 민주당 후보 지지율은 29.4%에 불과하다. 안 지사 개인 지지율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셈이다. 민주당이 안 지사의 인기를 깎아 먹고 있는 형국이다. 안 지사의 한 측근은 “충청 지역이 원래 영호남과는 달리 정당보다는 인물을 중심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우리도 ‘안희정’ 이름 석 자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굳이 민주당을 내세울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다른 지역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충북의 이시종 지사, 서울의 박원순 시장, 인천의 송영길 시장, 강원의 최문순 지사 등도 모두 비슷한 처지다. 특히 강원의 경우는 더 심하다. 민주당 소속의 최문순 지사는 강원일보와 춘천KBS가 2월9일 공동으로 조사한 지역 여론조사에서 47.7%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새누리당 후보군과의 가상 맞대결에서 15~30%포인트 차로 크게 앞섰다. 하지만 ‘어느 정당 후보에 투표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서는 새누리당 후보가 48.4%를 기록해 민주당 후보(28.9%)를 거꾸로 크게 앞서고 있다. 최 지사 입장에서는 지역을 다닐 때 민주당 로고를 가리는 게 득표 전략에 훨씬 도움이 될 법한 상황이다.

“어젠다 없다 보니 인물 중심으로 가는 것”

민주당의 지방선거 전략이라는 것도 현재로서는 후보 개인의 인기에 의존하는 것 말고 딱히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민주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박원순 시장과 안희정 지사 등이 잘해주고 있고, 한때 호남을 위협하는 것으로 봤던 안철수 신당의 거품이 최근 잦아들면서 현상 유지는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호남 지역 수성을 포함해서 수도권과 충청 등 중원에서 3~4곳을 지켜주면 승리라는 계산이다. 민주당의 지방선거 전략을 총괄하고 있는 최재천 전략홍보본부장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수도권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되며, 좀 더 범위를 넓혀 충남북·대전·강원 등 중원 벨트를 제대로 공략하겠다”고 밝혔다. 박원순·송영길 시장은 물론, 안희정·이시종·최문순 지사 등의 선전을 기대하는 것이다.

정치 전문가들의 평가는 다소 비관적이다. 신율 명지대 정외과 교수는 “후보자가 정해지지 않은 지금의 여론조사에선 현역 프리미엄 효과가 강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역 시·도지사가 최소한 20%포인트 정도는 앞서야 안심할 수 있다. 민주당의 경우 서울·인천 등 일부 지역에서는 향후 역전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밝혔다. 그는 “민주당이 집권 여당을 상대로 선거를 치르려면 어젠다 중심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진영 대립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당 지도부가 허약해서 어젠다를 제대로 못 이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현역 단체장 인물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가면 선거 막판에 가서 정당 지지율과 연동될 수밖에 없고, 지금의 정당 지지율을 감안해볼 때 민주당은 호남을 제외한 어떤 지역에서도 새누리당을 상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과 연대해야 한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는 이유다. 최재천 본부장 역시 “지금 민주당은 여론조사에서 한 자리 숫자가 나오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지지율이 낮은 상태다. 새누리당과 싸울 수 있는 체급이 못 되는 상황에서 유사한 정치적 비전을 가진 정당과 연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재 126석을 갖고 있는 제1야당의 최우선 선거 전략이 의석수 2석에 불과한 신생 정당과의 선거 연대라는 것을 자인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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