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팔 마피아’, 실리콘밸리 점령하다
  • 김중태│IT문화원 원장 ()
  • 승인 2014.03.04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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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팔 멤버, 여러 IT 기업에 투자해 거액 손에 쥐어

페이팔(PayPal)은 페이팔 계좌끼리 또는 신용카드로 송금·입금·청구가 가능한 인터넷 결제 서비스다. 서비스 자체로도 크게 성공을 거뒀지만 페이팔을 창업한 사람들이 미치는 영향력 때문에 실리콘밸리에서 주목받는 이름이 됐다. 페이팔에서 나와 창업한 사람들이 미국 실리콘밸리를 움직이는 하나의 큰 세력이 되면서, 이들을 일컬어 ‘페이팔 마피아’라는 말이 생겨났다. 페이팔 마피아는 2007년 포춘이 관련 기사를 실으면서 알려진 용어다.

페이팔(PayPal.com)은 1998년 12월에 시작된 서비스로 인터넷을 이용한 결제 서비스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결제 서비스이기도 하다. 페이팔이 지닌 장점 중 하나는 이메일 주소로 상대에게 돈을 입금하거나 상대로부터 입금을 받을 수 있는 점이다. 이메일을 이용해 상거래를 하기 때문에 신용카드 번호나 계좌 번호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며, 따라서 개인정보 유출 방지나 보안에 좋다. 이메일만 있으면 거래가 가능하니 이용하기에 편리하다. 그런 면에서 최근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겪고 있는 한국 금융계가 주목해야 할 게 바로 이 페이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로 불리는 피터 시엘. ⓒ REUTERS
페이팔의 새로운 금융 거래 방식은 미국에서 크게 이목을 끌었고 페이팔은 1조8000억원이라는 거액에 이베이에 팔렸다. 그 덕분에 페이팔 초기 멤버들은 거부가 되었는데, 이들이 다른 벤처에 투자하면서 페이팔 초기 멤버는 ‘페이팔 마피아’로 불리며 실리콘밸리의 파워그룹으로 성장했다.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로 지목되는 사람은 피터 시엘이다. 피터 시엘이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이유만으로 대부의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다. 페이팔 멤버 사이에서 피터 시엘의 역할이 중요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

이에 대해 알아보려면 페이팔의 탄생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페이팔 창업자인 맥스 레브친(Max Levchin)은 일리노이 공대 출신으로, 창업을 위해 스탠퍼드 대학 옆 팔로 알토(Palo Alto)의 친구 집으로 이사한다. 스탠퍼드에서 강의를 듣다가 헤지펀드 매니저인 피터 시엘(Peter Thiel)을 만난다. 6명만 듣는 수업에서 둘이 만난 것이다. 점차 친해지자 맥스는 자신의 사업 아이디어를 피터에게 말하고, 피터가 투자가를 소개해주겠다고 해서 맥스가 회사를 만든다. 개발자였던 맥스는 사업에 맞는 CEO(최고경영자)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피터에게 CEO가 없다고 하자, 피터가 ‘내가 당신 회사의 CEO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피터는 페이팔의 CEO가 된다. 처음 회사 이름은 컨피니티(Confinity)였는데, 나중에 엘론 머스크가 만든 인터넷 은행 ‘엑스닷컴(X.com)’과 합병하면서 이름이 페이팔로 바뀌었다.

페이스북에 투자해 수조 원 벌어

처음 만든 제품은 팜 파일럿(Palm Pilot)에 정보를 저장하는 소프트웨어였는데 실패한다. 하지만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돈’을 저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고, 이는 ‘돈을 안전하게 저장하고 전송하기’로 발전해 페이팔이 탄생한다. 이 아이디어로 투자자를 설득했고, 투자자는 팜 파일럿에 50억원(450만 달러)을 보낸다. 이 돈을 밑천으로 페이팔 마피아라 불리는 쟁쟁한 멤버들을 끌어모은다.

시엘은 페이팔 초기는 물론 페이팔 매각 후에도 많은 벤처에 투자하는 안목을 보이면서 대부로서 위치를 다진다. 그는 페이스북의 가능성을 보고 최초로 마크 저커버그에게 투자해 10%의 지분을 확보했다. 나중에 페이스북이 상장되고 시가총액 1000억 달러를 돌파하면서 그는 수조 원을 거머쥐었다. 시엘이 페이스북에 투자한 시기는 2004년 8월로 마크 저커버그가 투자를 받기 위해 시엘을 찾아왔다. 이때 50만 달러를 투자해서 당시 10%의 지분을 확보했다. 그리고 파운더 펀드(The Founders Fund)라는 스타트업 투자 회사를 만들어 퀀트캐스트(Quantcast)·옐프(Yelp)·슬라이드(Slide)·링크드인(LinkedIn) 등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회사에 투자했다. 다들 지금은 성공한 실리콘밸리의 서비스들이다.

맥스 레브친·리드 호프만 등 투자 안목 남달라

초기 두 명의 창업자 중 한 명인 맥스 레브친도 시엘만큼 재능이 있는 인물이다. 맥스 레브친은 페이팔을 매각해 돈을 손에 쥐자 회사를 나와 ‘Slide.com’이라는 서비스를 만들고, 이 서비스를 2000억원에 구글에 매각했다. 또 요즘 잘나가는 서비스인 옐프에 11억원을 투자해 거액을 남기고 그 외 핀터레스트, 유누들 등에 투자해 큰돈을 벌었다.

유튜브를 만든 스티브 천, 채드 헐리, 조드 카림은 페이팔에서 일하다 만난 회사 동료다. 페이팔 엔지니어인 이들이 2005년 유튜브를 설립해 2006년 10월16일 16억5000만 달러를 받고 구글에 매각한다. 현재 나스닥에 상장된 옐프 역시 페이팔의 엔지니어인 제레미 스토플만(Jeremy Stoppleman)이 만든 회사다.

리드 호프만은 페이팔의 임원이자 투자가였는데 세계적인 서비스로 성장한 링크드인 창업자이기도 하다. 리드 호프만은 50개 이상의 회사에 투자했는데, 특이한 점은 주변 사람에게도 투자 기회를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예컨대 자신이 페이스북에 투자하면서 친구 마크 핑커스에게도 페이스북에 투자할 수 있게 해주는데, 당시 자신이 투자할 수 있는 10만 달러를 절반으로 나누어 리드 호프만과 마크가 각각 5만 달러씩 투자했다. 이 돈은 현재 수천억 원으로 불어났다.

마크 핑커스 또한 2007년에 징가를 설립했다. 리드 호프만은 당연히 여기에도 투자했다. 징가는 초기 소셜 게임 시장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회사도 나스닥에 상장돼 리드 호프만은 또다시 큰돈을 벌었다.

페이팔 마피아가 IT산업에만 투자한 것은 아니다. 페이팔이 인수한 엑스닷컴을 만든 사람은 엘론 머스크(Elon Musk)로, 그는 전기자동차 테슬라를 제작했다. 그는 민간 우주선 프로젝트인 스페이스엑스(SpaceX)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회사가 합병된 후 내부 갈등으로 페이팔을 떠나게 되는데, 페이팔을 나온 후 만든 회사가 전기자동차 제조업체인 테슬라 모터스(Tesla Motors)다. 한때 파산 위기까지 갔지만 기사회생했고, 지금은 전기자동차의 대명사가 되었다. 차기 서비스로 스페이스엑스라는 민간 우주선 프로젝트를 내놓았는데, 이것이 성공하면서 최근 가장 주목받는 인사가 됐다.

이베이에서 페이팔로 이어지는 인맥은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좌지우지하는 파워그룹이 됐다. 한국에서도 수백억, 수조 원을 번 성공한 벤처인 출신은 많다. 네이버·넥슨의 상장으로 큰돈을 손에 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들이 페이팔 마피아처럼 한국 벤처산업의 발전을 위한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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