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 10명 중 8명 집에서, 그중 절반은 혼자 살아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03.0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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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예방적 홈케어’로 치매와 재정 부담 동시에 해결

“집에서 살 수 없게 되는 사태는 막아야죠.”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지원은 전 세계적 과제가 됐다. 네덜란드는 이 분야 최선두에 서 있는 국가다.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차를 몰아 북쪽으로 45분 정도 달리면 치매와의 전쟁 최전선에서 싸우는 재택 돌봄 지원센터가 있다. ‘헬기언트’라고 불리는 이 센터는 이 지역 인구 60만명이 겪을지도 모를 치매를 위해 설립된 곳이다.

60만명이 사는 지역에 설치된 센터는 총 4곳이다. 4000여 명의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을 지원하고 있다. 센터마다 케이스 매니저, 정신과·노인과 의사 및 간호사, 심리학자가 상주하고 있다. 이곳의 목표는 명확하다. 가능한 한 환자들이 오랫동안 정든 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치매 발병 초기부터 집중적으로 가족들의 삶에 들어가는 게 특징이다. 치매와의 전쟁에서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케이스 매니저다. 자격증이 필요한 직업은 아니지만 매니저들 모두 간호사 출신으로 치매를 다뤄본 경험을 갖고 있다. 이들에게 의료 행위는 부수적인 능력일 뿐이다. 생활 지원 지식을 쌓는 등 환자들을 돌보기 위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야 매니저가 될 수 있다.

치매를 앓으면서도 혼자 사는 네덜란드의 한 노인이 방에서 나오고 있다. ⓒ AP연합
‘자택 케어’는 재정 적자 줄이는 비결

예컨대 70세 노인이 치매를 의심해 센터를 찾아왔다고 가정해보자. 일단 의사와 함께 기능 테스트를 한다. 결과가 뇌혈관성 치매로 진단됐다. 그럴 경우 팀에서 협의해 이 환자의 재산을 대신 관리해줄 법적 대리인을 소개해준다. 물론 환자의 동의 아래 이뤄진다. 그 후부터는 방문 간호 서비스가 시작된다. 방치해둔다면 심각한 상황에 빠져 집에서 살 수 없게 되는 사태가 생길 수 있지만 선제적으로 대응하면 그런 불행을 막을 수 있다.

초기의 집중적인 지원으로 생활이 어느 정도 정상으로 돌아오면 지역 방문 복지사에게 환자를 인계한다. 헬기언트의 케이스 매니저는 그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환자를 방문해 필요한 지원책이 없는지 확인한다. 인계한 지역 복지사나 환자 가족들에게 조언도 해준다.

네덜란드가 국가 차원에서 ‘전국 치매 프로그램’을 수립해 시행에 나섰을 때가 2004년이니 벌써 10년 정도가 흘렀다. 지금은 전국의 90% 이상 지역에서 이런 거점 센터를 통해 치매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2004년 ‘전국 치매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네덜란드 정부는 전국 57개 지역에서 치매 환자와 사회복지사들을 모아 워킹 그룹을 만들었다. 이들에게 치매 환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과제에 대해 물었다. “행동 장애에 대한 환자 자신의 공포와 혼란이 두렵다” “환자 가족의 스트레스와 불안이 심각하다” “정든 집을 떠나 시설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다”는 답변이 많았다. 네덜란드 정부는 이런 지적들에 대한 개선책으로 300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여기서 개별 프로젝트는 ‘가지’에 불과했다. 실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튼튼한 ‘기둥’이 자리 잡았다. 바로 헬기언트 같은 케이스 매니저를 창구로 하는 서비스 제공 시스템 확립이다.

환자뿐 아니라 그 가족을 지원하는 방안 또한 국가의 몫이다. 네덜란드의 ‘치매 카페’가 대표적이다. 매월 1회 저녁에 정기적으로 개최되며 2시간 정도 진행된다. 치매 환자나 가족이 참가하는 모임이다.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신 것 같아 공부하러 왔다”는 초등학생도 있을 정도로 치매라는 질병과 사회가 만나는 창구가 되고 있다. 치매 카페의 운영은 비영리 단체(NPO)가 하며 참가비는 무료다. 운영에 필요한 비용은 모두 국가가 지원한다. 카페를 아무나 운영할 수는 없고 훈련된 주최자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네덜란드 역시 속도는 우리보다 느리지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노인들을 위한 사회보장비가 재정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도 네덜란드가 노인 간병을 위해 지출하는 공공기금 비중은 매우 높다. 유럽의 최대 부국인 독일이 노인 간병을 위해 지출하는 공공기금은 국내총생산(GDP)의 1%지만, 네덜란드는 3.5%에 달한다.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졌다는 유럽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고령화 인구와 높은 공공기금 지출 비중은 네덜란드에서도 심각한 문제다. 재정 적자도 늘어나고 있다. 네덜란드 치매 정책의 핵심인 ‘집에서 삶을 영위하게 하는 것’은 비용 절감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집과 마을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꾸민 치매 마을 ‘드 호그벡’과 같은 요양시설도 있지만, 이런 곳은 일정 정도 이상의 간병이 필요한 중증 환자에게만 열려 있다. 오히려 대다수 치매 환자에게는 선제적으로 대처해 ‘재택 케어 정책’을 현실화하고 공적 비용의 지출을 줄이는 것이 하나의 고리로 연결돼 있다. 국가 차원의 대책이 10년간 계속되는 동안 나온 결과 역시 긍정적이다. 현재 네덜란드 치매 환자의 80% 정도가 가정에서 생활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그중 절반가량이 혼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네덜란드의 재택 케어 정책은 표준처럼 채택돼 주변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스위스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치매를 앓을지도 모르는 스위스 국민의 수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자의 간호에 드는 비용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누구도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현재 스위스의 치매 환자 수는 11만1000여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숫자는 점점 늘어 2050년에는 환자 수가 26만6000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글로벌 보험회사인 알리안츠 스위스는 인구 통계 자료인 ‘데모그래픽 펄스(Demographic Pulse)’를 이용해 전 세계의 치매 환자 수가 2050년까지 현재의 3배가 넘는 1억15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여기서 눈에 띄게 치매 환자 증가율이 높은 국가가 스위스다. 삶의 질이 높아 건강을 유지하며 장수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까닭에서다.

복지 강국 스위스도 네덜란드 모델 채택

‘스위스 알츠하이머협회’는 수년 동안 지속적으로 정부에 치매 대책을 요구해왔다. 결국 스위스 상원과 하원의 전문위원회는 치매 정책의 수립을 요구하는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스위스 알츠하이머협회가 요구하는 방향은 네덜란드와 일맥상통한다. ‘치매 환자가 자립할 수 있도록 자극하고 최대한 지원해 그들에게 간호가 필요한 시기를 늦출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치매 선진국의 이런 대책이 통계적로도 유의미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선진국에서는 치매 예방 및 건강 증진 정책을 통해 치매 발병률이 하락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치매 예방과 관련한 정책이 부족해 치매 환자가 증가할 것이라는 통계만 나오고 있다”는 게 아주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이윤환 교수의 지적이다. 이 교수는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치매 발생률이 낮아지는 경향이 보고되고 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처럼 선제적으로 대응해 치매 발생 시기를 늦출 경우 치매 환자 증가 추세를 완화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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