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전문 요양사 단 한 명도 없다니…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3.0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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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환자·가족 살기 힘든 곳…의사와 충분한 상담 불가능

두 해 전 봄은 잔인했다. 적어도 아내를 요양원에 맡길 수밖에 없었던 이씨에게는 그랬다. 8년 전 생긴 치매 증세가 점차 심해지더니 결국 열 달 배 아파 낳은 딸마저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이 됐다. 생계를 꾸려가야 해서 아내를 요양원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아내를 요양원에 두고 나오던 날, 이씨는 아내 얼굴을 품에 안고 작별 인사를 했다. 소 닭 보듯 하는 아내의 모습에 그의 가슴은 아렸다.

수시로 요양원을 드나들면서 요양사와 다른 노인들은 눈에 익었지만 그곳에 있는 아내의 모습은 여전히 낯설다. 요양사가 위생 장갑을 낀 손으로 새 모이 주듯 아내에게 밥을 먹이는 모습은 어색하기만 하다. 그는 “겨우 쉰다섯 살인 아내는 남편과 딸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됐다”며 “요양원에 아내를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야속하다”고 되뇌었다.

한 가정에 치매 환자가 생기면 무엇보다 돈 걱정이 집안 전체를 짓누른다. 치매의 특성상 누군가 환자를 돌봐줘야 하지만 핵가족, 맞벌이 가정에서 생계를 팽개치고 환자 뒤치다꺼리를 하긴 어렵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거나 요양시설에 환자를 입원시키려면 돈이 필요하다. 정부의 치매 정책과 현실 사이에 온도 차가 생기는 부분이다.

ⓒ EPA연합
여든 살 김씨는 일곱 살 위인 누나를 3년째 돌보고 있다. 누나에게는 자녀가 없어서 혈육인 김씨 외에는 돌볼 사람이 없다. 누나는 치매 판정을 받고 1년 동안 약을 먹으며 호전되기를 바랐지만 증세가 심해져 지난해 겨울 입원 치료까지 받았다. 한 요양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 기간이 3개월이어서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유랑하듯 보낸 세월이 10개월이다. 그나마도 이제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집에서 누나를 돌보고 있다. 그는 “대학병원에서는 한 달에 400만~500만원, 작은 병원에서도 150만원 정도 들어서 소싯적에 벌어놓은 돈으로 누나를 뒷바라지했지만 이제는 한계에 달했다”며 “배보다 배꼽이 큰 간병비 때문에 병원에 더 있을 수 없어서 12만원을 내고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누나를 건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는 매월 생활안정자금 30만~40만원을 주고 있지만, 김씨의 누나를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받게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는 “누나가 입원하면 요양보호사가 나오지 않게 되므로 간병인을 개인적으로 둬야 하는데, 한 달에 75만~180만원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치매 가족 연간 부담금 4000만원

국내 치매 환자는 2014년 2월 현재 59만명으로 추정된다. 드러나지 않은 치매 환자까지 포함한 수치다. 환자를 돌보는 배우자나 자녀 등 가족까지 합치면 230만명이 치매의 고통 속에서 허덕이는 셈이다. 치매 환자는 매 15분에 한 명씩 생기고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은 치매 환자다. 치매 환자는 20년마다 2배씩 증가해 2050년에는 271만명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고령화와 함께 치매는 이미 사회적 문제가 됐다. 그래서 국가도 치매 치료에 막대한 돈을 쓴다. 정부는 한 해 드는 비용이 10조원에서 2050년에는 100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한다. 그나마 대부분 치매 환자가 먹는 약값 정도로 한 명당 2000만원이 든다. 그러나 병원에 오가는 교통비, 간병비 등을 포함하면 치매 환자 한 명에게 필요한 비용은 6000만원에 이른다. 약 4000만원은 치매 환자 가족이 부담하는 몫이다.

치매 판정은 환자와 가족에게 암 선고만큼이나 충격적이다. 암으로 확진되면 의사는 환자나 가족과 충분히 상담한다. 그러나 치매 환자와 가족에게는 그런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역시 돈 문제 때문이다. 정지향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교수는 “암 관련 상담은 보험이 적용되지만 치매는 예외”라며 “치매에 대한 상담도 보험 적용 범위에 넣어서 환자와 의사가 시시콜콜한 것까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나마 한국은 보건소가 전국 곳곳에 있어서 치매 검사를 받기에 편리한 환경이다. 집에서 가까운 보건소에서 무료로 치매 검사를 받을 수 있고, 치매가 의심되면 인근 병원에 보내져 전문 진단을 받을 수 있다. 치매와 관련된 정보는 치매정보365(www.edementia.or.kr)나 치매상담콜센터(1899-9988)에서 24시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치매 환자 소식은 매년 끊이지 않는다. 꼭 돈 문제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끼고 자식과 주변 사람들에게 짐이 될까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이다. 선진국 요양시설에서 환자가 1인실을 이용하고 환자 1명을 요양사 1명이 돌보는 시스템을 갖춘 이유다. 한국 요양시설에서는 환자 6명이 한 병실을 사용하고 요양사 1명이 담당하는 치매 환자는 3명 정도다.

전문가들 “진료 포기하는 인식 바꿔야”

그나마 국내에 치매 전문 요양사는 단 한 명도 없다. 일반 환자를 돌보는 요양보호사가 치매 환자를 건사하는 정도다. 그러다 보니 전문성이 환자 가족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정지향 교수는 “치매 환자는 다른 질환과 달리 인지 기능이 떨어진 상태라서 전문적인 손길이 필요하다”며 “치매 전문가를 양성할 필요가 있고 증상의 경중에 따라 환자를 돌볼 줄 아는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치매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치매 완치율은 5~10%로 낮은 편이며, 특히 알츠하이머에 의한 치매는 완치가 불가능하다. 이런 생각에 치매를 불치병으로 여기고 진료 자체를 쓸데없는 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치매 진단율이 62%에 그친 배경이다. 치매가 있어도 진단을 받지 않는 사람이 10명 중 4명꼴이다.

과거에는 노망이니 망령이니 하던 치매가 현재는 조절 가능한 병으로 간주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연구가 2010년에 있었다. 이대목동병원 연구팀이 1년 동안 치매로 진행될 수 있는 환자(경도 인지장애) 60명에게 운동 치료를 진행했더니 인지 기능이 좋아졌고, 60명 가운데 16명은 치매에 걸리지 않았다. 경도 인지장애가 있는 사람 100명 가운데 15명이 치매에 걸리는데, 한두 명이라도 치매에서 건질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지향 교수는 “뇌세포는 한 번 망가지면 회복이 어렵지만 뇌세포를 연결하는 가지가 두꺼우면 인지 기능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약, 운동 치료 등으로 그 가지를 두껍게 만들어 인지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치매 환자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시중에 떠도는 소문에 혹한다. 민간에 치매 예방약이 돌고 있고, 치매를 치료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돈벌이에 나선 업체도 있다. 하지만 의학적 근거가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재까지 연구로 확인된 교육 프로그램은 한 가지뿐이다. 인하대병원 연구팀은 2012년 치매 환자 280명을 대상으로 3개월 동안 인지 치료를 했고 약만큼이나 도움이 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최성혜 인하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환자에게 시각 기능, 판단 능력, 기억력 증진에 도움을 주는 교육을 12주간 했더니 인지 기능이 좋아졌고 6~9개월 후에도 그 기능이 유지됐다”며 “이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치매 환자를 방치하고 심지어 낯선 곳에 버린다는 소식이 언론 지면에 오른다. 그만큼 정신·경제·사회적으로 치매에 대한 뒷받침이 약한 탓이다. 치매 환자 가정에서 보면 한국은 치매가 있으면 살기 불편한 나라다. 치매 환자를 6년째 돌보고 있는 한 보호자는 “돈도 돈이지만 치매 환자를 돌보는 것 자체가 오롯이 가족의 몫이고 국가는 지원하는 흉내를 내는 정도”라며 “치매가 사회적 문제라면 국가가 책임지고 가족이 보조하는 선진국형 관리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치매란? 

자신의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면 건망증이다. 치매는 잊어버린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한다. 치매란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 ‘정신이 없어진 것’이라는 의미다. 뇌에 생긴 각종 질환으로 뇌 기능이 손상되면서 기억력, 언어 능력, 시·공간 파악 능력, 판단력 등의 인지 기능이 저하된 상태를 말한다. 스스로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치매는 사회·경제·인종·지역·연령 등에 경계선이 없어서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다.


 
 

ⓒ 시사저널 구윤성
국립중앙치매센터가 제시한 비전 ‘치매가 있어도 살기 불편하지 않은 나라’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크게 세 가지 축이 있다. 한국형 치매 서비스망을 구축해서 환자와 가족의 삶을 개선할 것이다. 치매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치매 치료와 관련된 연구에도 힘쓸 계획이다.

한국형 치매 서비스망이란 무엇인가.

과거에는 환자를 위한 요양시설 늘리기에 급급했다. 앞으로는 치매 환자와 가족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방법을 강화할 생각이다. 예컨대 부모가 치매에 걸려 당황스러울 때 어떻게 할지를 알려주고, 치매 환자를 돌볼 손이 없다면 전문 인력을 지원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는 다른 나라보다 보건소가 잘 갖춰져 있어서 이를 치매 조기 발견의 첨병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치매 환자를 가족들이 돌보고 국가는 지원하는 정도다. 치매 환자 가족은 생계를 포기하면서까지 환자 간호에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삶이 피폐해진다. 국가가 환자를 관리하고 가족이 지원하는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는 없는가.

치매 환자를 돌보는 사람은 배우자(40%), 자녀(50%)가 대부분이다. 간병인이 차지하는 몫은 10%인데, 그나마도 치매에 대한 전문성이 거의 없다. 요양보호사가 다른 환자를 대하듯 치매 환자를 돌보는 수준이다. 게다가 요양보호사는 치매 환자를 꺼린다. 환자 자신도 가족에게 신세 지기를 피한다. 가족도 생계 때문에 환자에게 종일 매달릴 수 없다. 이래저래 치매 전문 인력이 필요하지만 현재로서는 태부족이다. 앞으로 요양보호사가 치매 관련 교육을 받아 환자에게 전문적인 도움을 주도록 할 계획이다. 또 환자를 돌보는 시간도 가족이 선택할 수 있도록 정비해나가겠다. 국가가 치매 환자를 주로 돌보고 가족이 부가되어 보살피는 환경을 만들겠다.

치매에 대한 인식에서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바꾼다는 말인가.

6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치매는 불치병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나타났다. 치매는 불치가 아니라 조절 가능한 병이다. 또 치매 환자는 늘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사는 것으로 아는데 사실 치매에 걸린 기간이 10년이라면 그 가운데 극심한 증상이 나타나는 기간은 2~3년 정도다. 치매는 10명 중 1명이 걸리는 흔한 병이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는 국민도 많다. 치매를 잘 모르기 때문에 무조건 숨기고 진료를 받지 않으려는 풍조가 생겨났다. 치매는 국가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문제인 만큼 치매를 드러내고 적극적으로 진료받는 분위기를 조성하겠다.

네덜란드에는 치매 환자 마을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요양시설의 확대판이다. 그곳에서는 환자가 물건을 사고 돈을 내지 않는 등의 비상식적인 행동을 해도 눈총을 받지 않는다. 모두 치매 환자들이라서 모든 행동을 서로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니 환자는 자괴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이는 시험적인 시도다. 앞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지켜볼 일이고, 결과가 긍정적이라면 한국에도 도입할 만하다.

치매 정책을 시행하는 기관장으로서 애로점은 무엇인가.

사회 지도층은 일반 병은 물론 치매를 숨긴다. 앞으로 치매센터는 치매 환자를 둔 연예인 등 유명인 100명을 홍보대사로 유치해서 사회 지도층이 치매 지원에 나서도록 독려할 계획이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치매 정책을 최고 권력자가 한다. 그만큼 치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진다. 한국은 주무 부처의 한 사업 수준이어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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