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협력자 김씨는 브로커에 불과하다”
  • 중국 선양 시=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4.03.1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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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성씨 간첩 증거 조작 의혹 사건이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으나 문건 조작의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시사저널은 중국 선양 현지 취재를 통해 공문서들이 너무도 쉽게 위조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우리 돈 몇 만원이면 영사관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는 위조 공문서를 만드는 브로커들이 널려 있었다. 유우성씨의 출입경기록도 이들에 의해 위조된 것으로 보인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한 편의 드라마다.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간첩 증거 위조 사건이다. 2월14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주한 중국 대사관에서 건네받은 공문을 공개했다. ‘유우성씨 항소심 재판부에 검찰이 제출했던 중국 공문서 3건은 위조됐다’는 내용이었다.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의혹의 눈길은 180도 방향을 틀었다. ‘간첩 의혹’을 받던 유씨에게서 검찰과 ‘간첩 증거 공문서’를 검찰에 전달한 국정원 쪽으로 의심의 눈초리가 쏠렸다.

중국 선양의 번화가 중 한 곳인 시타(西塔) 거리(왼쪽)와 위조된 중국의 은행 잔액 증명서(가운데). 중국 선양 한국 영사관 (오른쪽). ⓒ 시사저널 김지영·시사저널 포토
3월5일엔 국정원 협력자 김 아무개씨가 검찰 조사에서 “문서를 위조했으며 국정원도 알고 있다”고 진술한 후 자살을 시도했다. 김씨는 아들에게 남긴 유서에서 ‘국정원에서 받아야 할 2개월 봉급 300×2=600만원, 가짜 서류 제작비 1000만원, 수고비를 받으라’고 했다. 검찰과 국정원은 나락으로 추락했다. 검찰은 공식 수사로 전환했고 급기야 3월10일 국정원을 압수수색했다.

기자는 3월11일 한국 총영사관이 주재한 중국 선양(瀋陽) 시에 있는 소식통과 전화 통화를 했다. 기자가 소식통에게 “선양에서 공문서를 위조하는 게 가능하냐”고 묻자, “그건 일도 아니다. 여기 중국에서는 공문서뿐 아니라 사문서도 얼마든지 위조할 수 있다”며 “여기 와보면 알겠지만 가짜 만드는 건 일상생활이다”고 말했다. 기자가 “현지에 가면 공문서 위조업자를 만날 수 있느냐”고 하자 “가능하다”고 답했다. 

기자는 3월13일 선양으로 날아갔다. 중국 현지에서 어떤 방식으로 공문서가 위조되는지 그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서다. 운이 좋으면 ‘유우성 공문서’를 직접 위조했던 업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있었다.

현지 취재 결과 ‘유우성 문서’를 위조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현지에서 만난 공문서 위조업자와 위조 공문서 유통업자, 위조된 공문서로 사업하는 여행사 관계자 등은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번 사건에 대해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돈만 주면 출입국기록이든, 그 어떤 공문서든 만들 수 있다”고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지금은 여기도 난리가 났다.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상당히 조심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공문서 원본만 있으면 2~3일 내 위조 가능”

선양에서 어렵게 만난 공문서 위조업자는 유우성씨의 북한 출입국기록 등을 얼마든지 위조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 업자는 중국어를 사용하는 한족(漢族)이었다. 그는 “출입경(출입국)기록은 200위안(우리 돈 3만4800원)이면 위조할 수 있다”며 “만약 나한테 400위안(6만9600원)만 주면 공문서 3건을 2~3일 안에 위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 협력자 김씨가 유서에서 ‘가짜 서류 제작비 1000만원’을 언급한 것에 대해 국정원은 “다른 서류 제작 비용”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위조업자는 “김씨의 가짜 서류 제작비 1000만원은 서류 위조 비용이라기보다는 김씨 자신이나 서류 위조 과정에 관여한 사람들의 수고비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그만큼 중국 현지에서 서류를 위조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저렴’하다는 얘기다.

김씨에 대해서도 현지인들은 “김씨는 일개 브로커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한 현지인은 “이 지역엔 김씨처럼 중국 공무원과 가깝고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특별한 사람이 아니며 돈을 벌려는 거간꾼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김씨가 탈북자 출신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또 다른 현지인은 “김씨는 중국에서 소학교 교사를 했다고 하는데 탈북자는 중국에서 교사를 절대 할 수 없다. 중국 정부에서 허용하지 않는다. 김씨는 탈북자이거나 중국 교사 출신 둘 중 하나”라며 김씨의 이력을 의심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공문서를 위조할 수 있을까. 현지에서 만난 업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위조문서를 만들기 위해선 무엇보다 ‘원본’이 필요하다. 공문서 위조업자는 “모든 공문서를 위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원본’이 필요하다”며 “유우성씨의 경우에도 ‘출(出)-입(入)-입-입’이라고 기록된 출입경기록 원본이 있어야만 ‘위조본’을 만들 수 있다. 원본만 입수하면 (국정원이 위조한) ‘출-입-출-입’뿐만 아니라 출입국 날짜 등도 얼마든지 위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씨는 자신의 간첩 혐의를 벗기 위해 동생 가려씨를 통해 지난해 11월 중국 싼허(三合)변방검사참(출입국관리소)에서 자신의 출입경기록에 오류가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정황설명서’를 발급받아 법원에 제출했다. ‘정황설명서’는 유씨의 출입경기록 가운데 일부 입국 기록은 시스템 오작동에 의해 생성된 오류임을 확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서 언급한 위조업자는 “국정원이 선양 영사관에 파견한 이인철 영사나 국정원 협력자 김씨 등도 분명히 출입경기록이나 정황설명서 등의 ‘원본’을 입수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원본이 있어야만 위조도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3월12일 간첩 사건 증거 위조에 관여한 혐의로 체포된 국가정보원 협조자 김 아무개씨가 검찰 조사를 마치고 서울구치소로 이송되고 있다. ⓒ 연합뉴스
현지인들 “김씨의 과거가 수상하다”

현지인 대부분은 유우성 공문의 원본을 입수해 위조업자에게 위조본을 만들도록 주문한 사람으로 김씨를 지목했다. 국정원 소속인 이인철 영사가 직접 나섰다가 자칫 일이 어그러져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기 때문에 김씨를 통해 모든 위조 작업이 이뤄졌을 것이란 얘기다. 김씨는 자신의 소학교 제자인 임 아무개씨 등을 통해 위조본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자가 만난 위조업자는 “김씨가 공문서 위조업자에게 원본에 기록된 ‘출-입-입-입’ 항목을 ‘출-입-출-입’으로 바꿔달라고 주문했을 것이다. 원본이 ‘입맛’(간첩 조작 증거)에 안 맞으니까 위조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실제로 검찰은 3월14일 김씨에 대해 문서 위조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중국 싼허변방검사참 명의의 ‘정황 설명에 대한 답변서’를 위조해 국정원에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가 위조한 문서는 ‘출-입-입-입’ 기록이 전산 입력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라는 유우성씨 변호인 측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검찰은 김씨를 상대로 구체적인 문서 위조 경위와 방법, 국정원 직원 개입 여부 등에 대해 보강 수사를 벌일 예정이다.

현지인들의 전언에 따른 공문서 위조 과정은 이렇다. 가짜 서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원본을 구해 이를 스캔 받은 다음 이메일을 통해 위조업자에게 전송한다. 그러면서 원본의 특정 부분을 위조해달라고 주문하면 2~3일 내로 ‘원본 같은 위조본’이 만들어진다. 선양에서 위조문서 유통 ‘사업’을 하는 현지인의 설명이다. “나도 몇 년 전에 여기(선양) 지인을 통해 위조업자를 처음 소개받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 업자가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 워낙 점조직 형태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나 같은 경우 위조업자에게 이메일로 원본을 보내면서 이름·주소 등 위조할 항목을 지시한다. 빠르면 다음 날 위조업자로부터 이메일로 ‘몇 시에 어디서 만나자’고 연락이 온다. ‘접선 장소’로 나가면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헬멧을 쓰고 나타나 서류를 건네주고 돈을 받아간다. 서류를 전달하러 오는 사람도 대포폰을 쓰기 때문에 그가 누군지 알 수 없다. 그 대포폰도 위조 서류로 만든 것으로 안다.” 그만큼 위조업자를 색출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따라서 유우성씨 공문을 직접 위조한 업자를 찾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북·중 접경 지역인 동북 3성에서 공문서를 위조하는 업자들은 대부분 베이징(北京) 이남 남방 지역에 고향을 둔 한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언급한 위조 공문서 유통업자는 “중국 춘제(음력 설날)가 되면 그 사람들(위조업자들)이 모두 남방에 있는 고향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한 달 동안 거의 ‘일(공문서 위조 유통)’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3월13일 싼허변방검사참 문서를 허위로 공증한 이인철 영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다음 날 새벽까지 강도 높게 조사했다. 이에 대해 선양 현지에서는 ‘이 영사 동정론’도 나오고 있다. 일부 한국 언론에선 “국정원이 간첩 증거 서류를 위조하기 위해 지난해 8월 이인철 영사를 선양 영사관에 파견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현지에서 보는 시각은 다르다. 선양 영사관 내부 사정에 밝은 한 현지인은 “선양 영사관의 정기 인사는 해마다 2월과 7월이다. 외교부 소속 영사는 통상 3년, 국정원은 2~3년마다 교체된다. 지난해 7월도 국정원 소속 영사가 교체될 시기였다. 이 영사가 파견된 것도 정기 인사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만난 현지인들은 “이 영사도 윗선의 지시로 위조했을 것”이라며 “영사관에 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이 영사가 독단적으로 공문서를 위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선양 현지에선 유우성씨 공문서 위조 사건과 별개로 ‘유우성씨 간첩 여부’도 뜨거운 논란거리다. 화교 출신 탈북자로 알려진 유우성씨에 대한 1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간첩 여부를 판가름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중국 국적이 있는데도 탈북자라고 속여 정착 지원금을 받은 혐의(탈북자보호지원법 위반)와 중국 이름이 있는데 다른 이름으로 여권을 만들어 사용한 혐의(여권법 위반)에 대해선 ‘유죄’를 인정했다. 이에 대해 선양에서 만난 한 북한 소식통은 “중국에선 북한 국적의 화교를 ‘조교’(조선 교포)라고 부른다. 유씨도 이른바 조교다. 조교가 중국과 북한을 오가는 것은 일반 북한 주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엄밀히 말해 유씨는 탈북자가 아니다. 중국에 거주하는 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그런데도 탈북자로 한국에 들어가 지원금을 받은 것은 문제다. 아마 (유씨의) 재판이 모두 끝나게 되면 한국에서 추방당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중국에선 한국 외교부뿐 아니라 외교부 여권과장의 가짜 도장까지 나돌고 있다. ⓒ 시사저널 김지영
중국 선양 현지 취재 결과, 중국은 그야말로 ‘위조 공문서 천국’이다. 현지에서는 공문서에 따라 ‘공정가’가 매겨져 있을 정도다. 방증(부동산 등기부등본)이나 거민호구책(주민등록등본)의 경우 100위안(약 1만7000원), 회사영업집조(사업자등록증) 90위안(1만5700원), 은행중환증명(은행 잔고 증명) 80위안(1만4000원) 등이다. 만약 공문서에 찍어야 하는 도장이 많을 경우에는 150~200위안(2만6000~3만4800원)까지 올라간다. 물론 도장도 가짜다. 심지어 기자가 만난 한 공문서 위조업자는 자신이 직접 제작한 한국 외교부와 외교부 직원의 도장까지 보여줬다. 

문제는 이렇게 위조된 공문서와 도장에 선양 주재 한국총영사관도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다는 것이다. 한국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선 ‘미수형사제재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비자 신청자가 전과자가 아니라는 일종의 ‘무범죄 증명서’다. 또 이에 대한 ‘공증서’와 중국 외교부의 인증서까지 첨부해야 한다. 이 모든 공문서를 위조할 수 있다. 전과가 있음에도 무전과자로 둔갑한다. 간혹 선양 영사관에 적발되는 경우도 있지만 웬만하면 무사통과. 선양의 한 여행사 사장은 “선양 영사관에 접수되는 비자 신청서의 10% 정도는 위조된 서류라고 보면 된다”고 말할 정도다. 한마디로 한국 비자 10건 가운데 1건은 위조된 서류에 속아 넘어가 발급되는 셈이다. 이에 대해 선양 영사관 사정에 밝은 현지인은 “중국 정부가 선양 영사관에 접수된 비자 신청서 내용에 대해 확인해주지 않기 때문에 영사관도 위조 서류를 색출해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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