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대통령’ 놓고 진보·보수 혈투 펼친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4.03.1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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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린 맞서 진보 진영 단일화 나서…서울시장 선거와 맞물릴 듯

“잘할 사람을 뽑아야 하나, 당선될 사람을 뽑아야 하나.” 진보 성향의 교육계 유력 인사가 서울시교육감 후보 단일화 전망을 묻는 기자에게 고개를 갸웃하며 한 말이다. 적합도와 경쟁력 둘 중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 그는 교육감 역할을 잘 수행할 후보와 보수 진영과 맞상대해 잘 싸울 후보를 달리 봤다. 선거의 본질이 일꾼을 뽑는 데 있다면 전자를 택해야 한다. 반면 선거의 목표가 승리에 있다면 후자를 택해야 한다. 정답은 없지만 선택은 불가피하다.

오는 6월4일 치러질 지방선거에서는 시·도교육감 선거가 함께 치러진다. 한 번의 투표로 지역의 행정 수장은 물론 교육 수장까지 동시에 뽑는다. 이에 따라 진보·보수 진영에서는 교육감 후보 단일화 움직임이 활발하다. 지난 교육감 선거의 학습 효과가 크다. 2010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여러 후보가 난립해 표를 나눠 가진 보수 진영은 진보 진영의 단일 후보로 나선 곽노현 전 교육감에게 1.1%포인트 차이로 석패했다.

2월18일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이 서울시의회에 참석해 서울시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바로 뒤는 박원순 서울시장. ⓒ 뉴시스
진보 후보 단일화, 교사·교수·의원 3파전

진보 진영에서는 일찌감치 후보 단일화를 공개적으로 추진해왔다. 83개 단체가 참여한 ‘2014 좋은 서울교육감 후보 시민추천위원회’(시민추천위)는 2월19일 출범 후 한 달 동안 예비후보들과 각 지역을 돌며 ‘토크콘서트’를 가졌다. 이후 여론조사(40%)와 시민선거인단 투표(60%) 결과를 합계해 최종적으로 단일 후보를 선정하게 된다.

경선에 참여한 후보는 장혜옥 학벌없는사회 대표,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최홍이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 등 3명이다. 교사 출신인 장 대표는 두 차례 해직을 당했고, 2006년 제12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을 지냈다. 참여연대 창립을 이끌었던 조 교수는 2011년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상임의장을 맡았다. 33년간 교사 생활을 한 최홍이 위원장은 서울시 교육의원 3선이다.

3자 구도는 현재 교육계 내 진보 진영 지형이 잘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전교조와 민교협 수장 출신에 관록을 자랑하는 교육 행정가가 맞붙어 3파전을 펼치게 된 것이다. 그런 만큼 누가 단일 후보로 선출될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는 게 주변의 전망이다.

다만 각 후보의 장점이 곧 단점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장 대표는 교육계 내 최대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전교조 출신이다. 조직력을 갖춘 후보가 아무래도 경선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교조 위원장 출신이라는 경력이 본선에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보수 진영의 이념 공세가 불 보듯 빤하기 때문이다. 2012년 12월 대선과 함께 치러진 서울시교육감 보궐 선거에서 진보 진영 단일 후보로 나선 이수호 전 전교조·민주노총 위원장(37.01%)은 문용린 현 교육감(54.17%)에게 참패를 당했다.

문 교육감 측이 이 후보의 전교조 경력을 문제 삼아 ‘종북몰이’에 나선 것이 압도적 승리의 바탕이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조 교수는 시민사회 활동 경험이 풍부한 진보 진영의 대표적 학자다.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과 마찬가지로 민교협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다. 두 전직 교육감의 승리 공식을 이어갈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교수 출신이 초·중등 교육을 이끌 교육감을 맡는 데 대한 반감도 적지 않다. 교사 출신의 한 정계 인사는 “별다른 준비도 없이 교수가 교육감 자리에 앉게 되면 현장과 괴리된 설익은 정책을 내놓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학교는 실험장이 아니고 학생은 실험용 쥐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최 위원장은 교사 경험과 의회 경력을 두루 갖췄다. 교육 현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교육 행정을 원활히 이끌어나갈 능력 면에서 비교 우위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조직력과 인지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계 내에서는 교육 전문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다른 분야와의 교류가 활발하지는 않았다. 2010년 선거 때도 후보 단일화 경선에 나섰다가 고배를 마셨다. 

보수 진영도 4월 말까지 단일 후보 추대

후보의 장단점이 확연히 드러나면서 누가 단일 후보로 선택될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진보 진영의 고민은 여기에 있지 않다. 후보 단일화 이후가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 경선에서는 그동안 출마설이 나돌던 거물급 인사들이 빠졌다. 그러다 보니 누가 단일 후보가 되든 본선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물급 인사들이 출사표를 던질 경우 또 한 번 단일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박미향 시민추천위 상임집행위원장은 “단일화 이후 이슈를 선점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곽노현·이수호 후보도 대중적 인지도가 낮았지만 단일 후보가 된 후 진보 진영의 아이콘이 됐다. 이번에는 이전 선거 때와 달리 후보들이 지역을 돌며 토크콘서트를 하는데 반응이 좋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다른 후보의 출마와 관련해 “내부에서도 그런 우려가 있었지만 비공식 채널을 통해 물밑 교섭을 했다. 다른 후보가 나오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문용린 현 교육감의 재선 도전 여부가 관심사다. 그동안 문 교육감은 출마와 관련한 질문에 3월 말쯤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해왔다. 아직 출마 선언을 공식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문 교육감이 결국 출마를 선택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올해 1월 <문용린의 행복 교육> 출판기념회를 가진 것도 출마 쪽에 힘이 더 실리는 근거 중 하나다. 진보 진영도 이를 기정사실화한 가운데 후보 단일화를 추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문 교육감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교육계 내부 정보에 밝은 한 인사는 “문 교육감이 주변에 너무 보수적인 인사들이 둘러싸고 있어 힘들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합리적 보수를 지향해온 그로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도 겪었을 것이다. 거취 표명을 3월 말로 정한 것도 다른 길로 나설 가능성을 열어둔 것 아니겠느냐”고 내다봤다. 최근에는 건강이 좋지 않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만약 문 교육감이 출마하지 않으면 보수 진영도 대안 찾기에 나설 수밖에 없다. 현재 자천 타천 보수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는 문 교육감 외에 안양옥 한국교총 회장, 고승덕·조전혁 전 새누리당 의원, 이상면 전 서울대 교수 등이다. 일선 학교의 체육교사로 시작해 서울교대 교수직을 맡기도 한 안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교육 멘토’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사법·행정·외무고시 3관왕으로 유명한 고 전 의원은 현재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자유주의 교육운동연합 상임대표를 지낸 조 전 의원은 현역 시절 ‘전교조 저격수’로 유명세를 탔다. 2012년 선거 때도 출사표를 던졌던 이 전 교수는 2월12일 기자회견을 통해 “문 교육감이 당시 이번에 양보해주면 다음 선거에 나오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주장해 논란을 불러왔다.

보수 진영에서도 후보 단일화 움직임이 일고 있다. 2010년 후보 난립으로 패배한 후 ‘곽노현 트라우마’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보수 성향 교육단체인 미래교육국민포럼은 2월27일 ‘좋은 교육감 후보 추대를 위한 범교육계 결의’ 행사를 통해 “후보들의 자질 및 도덕성을 검증해 높은 전문성과 인격을 겸비한 후보를 추대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장혜옥 ㈔학벌없는세상 대표, 최홍이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오른쪽부터). ⓒ 연합뉴스
서울시장 선거 ‘러닝메이트’ 약일까 독일까

진보 진영에서는 문 교육감이 서울시 교육 수장이 된 후 ‘곽노현 그림자 지우기’에만 매달렸다고 비판한다. 친환경 무상급식 예산 및 혁신학교 축소, 학생인권조례 폐기 등 곽 전 교육감이 추진했던 혁신 교육을 전면 파기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단일 후보가 확정되면 이를 쟁점으로 삼아 문 교육감을 강하게 몰아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혁신 교육을 펼쳤던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을 ‘성공 사례’로 앞세울 가능성도 크다.

반면 문 교육감이 서울시 교육을 이끈 기간이 1년 정도라는 점에서 공과를 따져 묻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보수 진영에서는 오히려 곽 전 교육감이 어지럽혀 놓은 교육 정책을 바로잡아나가는 중이라며 역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돈희 미래교육국민포럼 이사장은 “교육의 본질을 지키고 불온한 정치적 세력이 교육을 위협하는 것으로부터 교육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주목되는 부분은 동시에 치러지는 서울시장 선거와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고받을지에 있다. 선거법은 교육감 선거에 정당 공천을 배제하고 정치적 개입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여야 정치권의 지원 정도에 따라 승패가 엇갈릴 수도 있다. 공식적으로 움직일 수는 없지만 정책 연대 식으로 선거가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유권자 입장에서도 시장과 교육감 후보가 사실상 ‘러닝메이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김형태 서울시의회 교육의원은 “시장과 교육감의 성향이 다르면 서로 힘든 점이 있다. 현재 박원순 시장과 문 교육감이 그렇고, 이전 오세훈 전 시장과 곽 전 교육감도 그랬다”고 설명했다.

여야, 보수·진보 간 입장 차도 엿보인다. 황인상 P&C 정책연구원 대표는 “야당이 후보 단일화를 통한 일대일 대결 구도를 만드는 데 더 적극적이다. 교육감 후보 단일화가 야권 연대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이에 반해 여당은 교육감 선거가 진보 대 보수 구도로 가면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감 선거의 경우 판이 커지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고 지적했다.


무주공산 경기도, 거물들 대결 펼쳐지나  


서울시와 함께 교육감 선거가 치열한 곳이 경기도다. 김상곤 전 교육감이 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사퇴한 후 무주공산이 된 자리를 누가 차지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후보들이 하나 둘 출사표를 던지면서 후보 단일화 작업에도 시동이 걸렸다. 보수 성향으로는 강관희·김광래 교육의원, 권진수 전 양서고 교장, 박용우 전 송탄 제일중 교사, 최준영 전 한국산업기술대 총장 등 5명이 출마를 선언했다. 정종희 전 안양 부흥고 교사, 석호현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이사장, 이현청 전 상명대 총장도 출마가 예상된다. 진보 성향으로는 권오일 전 에바다학교 교장, 이재삼·최창의 교육의원 등 3명이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최대 관심사는 지역 교육계로부터 끈질기게 출마 권유를 받고 있는 이주호 전 교육부장관이 보수 진영 후보로 나서느냐 여부다. 그럴 경우 판이 커질 수밖에 없다. 또 서울에서 출마를 검토 중인 안양옥 교총 회장과 조전혁 전 새누리당 의원도 경기도로 시선을 돌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도 장관급 후보자들이 출마 권유를 받고 있다. 이들이 선거 무대에 올라설 경우 도지사 선거 못지않은 혈전이 펼쳐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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