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삼성·포항 스틸러스가 돈 걱정을 해?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4.02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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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난에 꽁꽁 얼어붙은 K리그…스타플레이어는 중국으로

월드컵이 열리는 해는 어느 때보다 미디어에 의해 축구가 많이 노출되고 시장에서도 축구를 활용한 마케팅과 프로모션이 활발히 진행된다. 브라질월드컵이 3개월도 남지 않은 지금 시점이라면 그 분위기가 벌써 달아올랐어야 한다. 그러나 K리그에는 찬바람만 쌩쌩 불고 있다. 모기업은 재정 지원을 팍팍 줄이고 있다. 급기야 모기업이 바뀌는 일도 벌어졌다. 이런 가운데 스타플레이어는 살림살이가 나은 이웃 중국 무대로 줄줄이 떠나고 있다. 브라질월드컵이 열리는 2014년, 봄이 올 줄 알았던 축구계는 여전히 겨울이다.

K리그는 기업구단이 주도한다. 기업구단에 모기업이 지원하는 돈은 연 200억원 안팎이다. 시민구단은 기업구단이 능력 있는 선수를 거액에 데려가 취약한 재정을 보충하길 기대한다. 기업구단에서 시민구단으로 향하는 자금이 끊이지 않아야 K리그가 산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 2년 동안 이런 낙수 효과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기업구단의 씀씀이가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사이 기업구단이 받던 예산은 반 토막이 났다. 사회 환원과 직원 복지 차원이라던 명분도 사라지고 있다. 기업은 이제 스포츠를 통해서가 아닌 직접적 경로를 통한 사회 환원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3월1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개막전 수원 삼성과 상주 상무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 수원 배기종과 선수들이 팬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포항 스틸러스, 지원 예산 100억원으로 축소

최근 재정적으로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한 팀은 포항 스틸러스다. 포스코가 40년 넘게 포항 스틸러스를 지원한 것은 고 박태준 명예회장이 열혈 축구팬이었기 때문이다. 포항 스틸러스는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한다. 든든한 지원을 받아온 프로팀답게 그동안 이회택·최순호·황선홍·홍명보·이동국 등 국가대표를 숱하게 배출했다. 하지만 최근 지속되는 철강업계 경기 불황으로 포항의 곳간은 넉넉하지 않다. 이미 10년 전부터 지원 규모를 줄여왔다.

200억원에 이르던 지원이 최근엔 100억원으로 감소했다.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반 토막 이상이 난 것이다. 박 명예회장 별세 후 모기업의 관심은 한층 줄어들었다. 지난해 황선홍 감독의 지도력이 빛난 포항은 K리그와 FA컵을 모두 차지하며 최고의 팀이 됐지만 지원은 늘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포스코 수뇌부 교체의 혼돈 속에서 눈치만 봐야 했다.  광양 지역의 전남 드래곤즈도 지원하고 있는 포스코에선 불경기 속에서 두 팀이나 끌고 갈 이유가 없다며 통합하자는 내부 목소리까지 흘러나오는 판이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가 지원해온 수원 삼성도 최근 큰 변화에 직면했다.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의 든든한 뒷받침 속에 스타를 긁어모으며 ‘레알 수원’으로 불렸던 것도 이제는 옛말이 됐다. 최근 수원은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 자회사로 편입됐다. 1995년 창단 이후 가장 큰 변화다. 삼성전자는 구단 후원사로 지위가 바뀌었다. ‘삼성전자축구단주식회사’였던 법인명도 ‘수원삼성축구단주식회사’로 변경된다. 삼성그룹 울타리 안에는 있지만 조 단위 규모의 모기업이 억 단위로 바뀐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하대성·데얀 등 중국 무대로 떠나

모기업 변경의 표면적인 이유는 국내 굴지의 광고회사이자 스포츠 마케팅에서도 가장 많은 노하우를 지닌 제일기획이 스포츠 팀을 맡는 것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모기업 지원이 100억원 가까이 축소되며 수원은 이전에 걱정하지 않았던 살림살이 문제를 고민하게 됐다. 예년 같으면 늘 주도권을 쥐었던 겨울 이적 시장에서도 비교적 조용했다. 그동안 준비해온 자생력 강화의 강도와 속도가 한층 높아져야 한다는 얘기다.

통일그룹이 손을 뗀 성남 일화는 성남시가 인수해 성남 FC라는 시민구단으로 전환했다. 현대중공업이 후원하는 울산 현대 역시 예산이 전년에 비해 30%가량 감축됐다.

FC 서울은 지난 시즌 AFC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데얀·하대성과 작별했다. 두 선수는 중국 무대로 향했다. 핵심 선수가 떠난 서울은 시즌 초반 부진한 모습이다. 서울이 전력 약화가 빤히 보이는 데도 그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무엇일까. 바로 돈이다. 데얀과 하대성은 각각 장쑤 세인티와 베이징 궈안으로부터 서울에서 받던 연봉의 두 배를 제시받았다.  중국 무대로의 선수 유출은 두 선수에 그치지 않았다. 박종우(부산 아이파크→광저우 푸리), 윤신영(경남 FC→장쑤 세인티), 이지남(대구 FC→허난 전예), 케빈 오리스(전북 현대→랴오닝 훙윈) 등도 중국으로 갔다.

중국 시장의 역습은 K리그의 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중국은 최근 들어 축구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국민의 열기에 축구광으로 소문난 시진핑 국가주석의 취향까지 더해지며 국가의 눈치를 봐야 하는 부동산·건설 기업을 중심으로 축구팀에 대한 대대적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급기야 지난해 헝다그룹의 지원을 받는 광저우 헝다가 서울을 꺾고 AFC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광저우는 세계적인 명장인 이탈리아 출신의 마르첼로 리피 감독을 비롯해 수준급 용병을 영입하며 1년에 1000억원이 넘는 돈을 쓰고 있다. K리그 구단의 5배 가까운 수치다. 광저우의 성공에 자극받은 다른 기업들도 베이징 궈안, 산둥 루넝, 상하이 선화 등에 투자 중이다. 리그의 총 규모 면에서 중국 슈퍼리그는 K리그를 훨씬 앞지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K리그 기업구단에 생존의 예시를 보여주는 팀이 있다. 전북 현대다. 현대자동차가 지원하는 전북 현대는 기존 스쿼드를 지키면서도 올겨울 적극적인 선수 영입을 한 유일한 팀이다. 전북의 올해 예산은 280억원가량으로 리그 최고 수준이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예산 규모가 2배가량 커졌다. 실질적으로 구단주 역할을 하는 정의선 부회장의 스포츠에 대한 큰 관심 탓이기도 하지만 전북 구단이 모기업에서 지원액을 늘려도 된다고 판단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2005년 최강희 감독 취임 이후 중위권에서 우승 후보 1순위 팀으로 변모했다. AFC챔피언스리그에서 2006년 우승, 2011년 준우승을 차지하며 아시아에서도 강자로 인정받고 있다. 꾸준한 성과로 현대자동차의 주요 시장인 중국과 중동에서 대외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데도 한몫했다.

 전북은 매년 브라질 상파울루로 동계 훈련을 떠난다. 그곳에는 현대자동차 공장이 있다. 브라질 문화에서 축구를 빼놓을 수 없다는 점에 착안해 전북 구단은 경제와 문화를 연결하는 홍보대사 역할을 하고 있다. 전지훈련 중에도 지속적으로 홍보활동을 펼친다. 팔메이라스·크루제이루 등 브라질 인기 구단과 자매결연을 하고 현지법인 관계자를 연습경기에 초청한다. 브라질 현지 대리점 판매왕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연고지에 있는 현대자동차 전주 공장을 견학하고 홈 경기를 보게 한다. 현대자동차가 중국 시장을 한창 공략할 당시에는 중국 선수를 적극적으로 영입해 현지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축구팀으로서 모기업의 구미에 맞는 활동을 다양하게 펼치는 것이다.

 전북의 이철근 단장은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 연고지에 밀착하는 마케팅을 펼쳐야 하지만 완전히 자리 잡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때까지는 모기업의 지원이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안으로는 연고지와의 다양한 협연으로 자생력을 갖추고 밖으로는 모기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전북은 10년 뒤에 평균 관중 3만명, 유소년 선수 육성을 통한 선수 수급, 현대자동차의 지원 비율을 절반 수준으로 맞춘다는 장기 플랜을 내세웠다. 최강희 감독 역시 “중국의 자금력이 무섭다. 일본처럼 시스템이 정착된 리그는 큰 위협을 받지 않지만 K리그엔 위기다. 생존전략을 짜야 한다. 모기업을 바라만 보고 있기보다는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멀리 보는 팀 운영을 해야 한다”며 K리그에 변화와 분발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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