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제 전문가들, "남북 무력 충돌 가능성 낮다"
  • 감명국·엄민우·조유빈 기자 ()
  • 승인 2014.04.0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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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북한 문제 전문가 18인 설문 인터뷰…“10년 내 통일은 불가능”

“저는 한마디로 통일은 대박이라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1월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취임 후 첫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남북 관계 리스크 등을 묻는 질문에 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대박’이란 표현을 썼다. 평소 절제된 언어를 쓰는 대통령의 입에서 ‘대박’이란 표현이 나오자 실시간으로 언론사들의 속보가 떴다. 내용은 단 한 줄이었다. ‘박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이른바 ‘통일 대박론’이 회자됐다.

통일 대박론이 확산되면서 갑자기 닥칠지도 모를 통일에 우리 사회가 대비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됐다. 자연스럽게 북한 체제 붕괴론이 불거졌다. 갑작스러운 통일은 곧 북한 김정은 체제의 붕괴를 뜻하기 때문이다. 곧 ‘통일 대박론=흡수통일론’이란 등식이 굳어졌다. “이는 자칫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 연합뉴스
실제 북한의 도발이 최근 잇따르고 있다. 3월31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상에서 북한군이 포사격을 하면서 100여 발이 NLL 남쪽 우리 지역에 떨어지기도 했다. 북한제로 추정되는 무인기 2대가 파주와 백령도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북한은 4차 핵실험을 예고하며 대남 비방전을 다시 시작했다.

박 대통령이 3월28일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한 데 대한 북한의 반응은 ‘도발’이었다. 드레스덴 선언 이후 남북 관계가 오히려 악화되자 정홍원 국무총리가 4월4일 국회에 출석해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은 흡수통일이나 북한의 급변사태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총리의 공식 해명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북한의 체제 붕괴설과 독일식 흡수통일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현 정부와 보수층을 중심으로 한 무리한 ‘통일 드라이브’가 자칫 북한을 자극해 한반도에 불행한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경고와 우려의 목소리도 점점 확산되고 있다.

과연 통일은 우리 앞에 다가와 있는 것일까. 북한 체제 붕괴 가능성과 전쟁의 위험성은 얼마나 될까. 시사저널이 국내 대표적인 북한 문제 전문가 18인을 대상으로 한반도 문제에서가장 민감한 다섯 가지 질문을 던졌다.

■ 통일, 5~10년 내에 가능한가

설문에 응한 18명의 전문가 가운데 5~10년 내 통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답한 이는 사실상 단 한 명도 없었다. 13명의 전문가는 “10년 이내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나머지 5명은 “조기 통일이 쉽지 않을 전망이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는 해야 한다”고 답했다.

서보혁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 교수는 “통일 대박론의 장점은 최근 통일 문제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였다는 데 있다”며 “하지만 10년 내 통일은 실현 가능성도 없을뿐더러 우리에게도 상당히 부담되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 붕괴설이 확산되는데, 실제 파악되는 북한의 내부 상황은 반대다. 경제와 식량 사정도 점점 나아지고 있다. 통일이 당장 눈앞에 온 것처럼 보는 시각은 대단히 성급한 것”이라고 밝혔다.

장용석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단기간 내 통일론은 비현실적이다. 북한 체제가 설령 붕괴된다 해도 통일이 바로 된다고 보장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동현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교수는 “별안간 북한 체제가 무너진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복권 당첨으로 대박을 노리는 꿈같은 얘기”라고 말했다.

박승준 중국 푸단 대학 국제문제연구원 방문교수는 “아직도 미국이나 중국의 생각이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특히 중국은 여전히 한반도 분단 상태를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양욱 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김정은 위원장이 없어지면 통일이 될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잘못이다. 북한 체제도 어느 정도 뿌리를 내렸다고 본다. 김정은이 없어져도 다른 새 집권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지금 남북한의 경제력과 독일 통일 때 서독·동독의 경제력을 비교해볼 때, 서둘러 통일되었다가는 남북한 모두 대박이 아니라 쪽박을 차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그동안은 20~30년 정도면 통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조차도 불투명해졌다.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르겠다”고 비관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반면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섣부른 예측은 금물이지만, 통일에 대비는 해야 한다. 정말 생각지도 않게 5년 내 급변사태가 벌어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승열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제 통일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은 맞다. 현재 북한의 중심 엘리트는 군부이기 때문에 체제 불안정으로 갈 확률이 높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국빈 방문 마지막 날인 3월28일 작센 주 드레스덴 공대를 방문해 교수·학생 등을 대상으로 한반도 통일 프로세스를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 현실성이 있는가

전체적으로 드레스덴 선언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인 전문가가 많았다. 가장 큰 원인으로 꼽은 것은 내용상으로 볼 때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정성장 위원은 “북한을 독일식으로 통일시키겠다고 한 이상 북한은 드레스덴 선언을 독이 든 사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배고파도 독이 든 사과를 먹을 순 없는 것 아니겠나”라며 북한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했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우선 실현 가능성은 0%다. 2월에 남북 고위급 회담이 있었고 합의 사항도 3가지가 있었는데 다 깨지고 남북 대결 국면 진입 시점에 나온 제안이다. 행동은 적대적으로 하면서 이렇게 제안하면 누가 믿겠나”라고 비판했다.

선언 전 북한과 사전 조율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제의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차이가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베를린 선언 전에 미국·일본과 협상을 하고 북한과도 물밑 접촉을 했었다”고 말했다. 장용석 연구원 또한  “북한에 미리 통보를 해주든지 하는 사전 조치가 있었어야 하는데 이건 일방적으로 던진 선언이다. 북한의 수용 가능성은 둘째 치고 박 대통령의 의지가 정말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오히려 북한을 압박하는 카드 성격이 더 큰 것 아닐까”라고 지적했다.

반면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통일을 하려면 북한도 어느 정도 발전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선언을 한 것이다. 남북교류협력사무소를 만들자고 했으니 고위급 회담도 할 수 있다”고 긍정적 평가를 내놓았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소장은 “중요한 것은 북한 정권보다 주민들에게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민생·인도주의적 측면을 봤다는 것인데 드레스덴 선언은 그 정치적 기반을 만든 것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유보적인 의견도 있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북한의 반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대통령 차원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의지를 보여준 것 같다. 단기적으로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향후 진전이 된다면 논의 단계가 올 수 있는 선언”이라고 해석했다.

■ 통일준비위원회 역할을 어떻게 보는가

시사저널 인터뷰에 응한 상당수 전문가는 대통령 직속으로 출범할 통일준비위원회(통준위)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가장 큰 이유로 북한을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꼽았다. 정성장 위원은 “통준위는 북한이 무너지면 관리하겠다는 성격을 갖는 조직이다. 이는 독일식으로 흡수하겠다는 성격이어서, 마치 우리 정부가 자신들이 무너지는 것만을 바란다고 느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용석 연구원 역시 “통일을 이야기할 때 ‘준비’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가 있다. 중·장기적 계획이 아니라 임박한 통일에 대비해 실무적 문제를 다룬다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이 때문에 북한에서는 흡수통일이라고 느끼고 강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장교 출신인 최주활 탈북자동지회 회장 역시 “상호 합의를 통해 남북이 같이 통일 관련 기구를 만들어 준비한다면 모를까, 한쪽에서 만든 통일 기구가 얼마만큼 실행력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와 상반된 의견을 내놓은 전문가도 있었다. 정영태 위원은 “설령 당장은 북한을 자극할지 모른다. 그러나 북한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를 먼저 전제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못한다”며 통준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양욱 위원은 “통일부가 통일에 관한 모든 것을 수행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범국가적 차원에서 진행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전했다.

기존의 통일부 및 민주평통과의 업무 중복 등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통일부장관을 부총리급으로 격상시키고 친정부 인사들이 많은 지금의 민주평통 상임위원 구성을 여야 골고루 맞추는 방식 등으로 기존 관련 기관들을 잘 살렸으면 굳이 만들 필요가 없었다”고 밝혔다. 진희관 교수는 “위원장을 대통령이 맡고, 그 밑에 50명의 위원을 두고 분과위원회가 있는 것을 보면 민주평통과 거의 중복된다고 볼 수 있다. 뭐가 다른지 이해가 안 된다”고 비판했다. 반면 고유환 교수는 “통일부와의 중첩 문제가 발생할 수 있겠지만, 통준위에서 긴 호흡을 유지하며 일을 진행하고 구체적인 집행은 통일부에서 한다면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 김정은의 향후 대남 전략은 어떻게 전개될까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올해 들어 남북 관계에서 ‘온건’과 ‘강경’을 번갈아가며 취하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선 ‘전략적 행보’와 ‘불안정의 방증’이라는 대립적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이런 방식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유호열 교수는 “김정은이 능수능란하게 전략 구상을 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장성택 숙청을 보더라도 내부에서 정교한 구상을 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며 “내부의 부실함에서 나오는 태도”라고 말했다. 진희관 교수도 “지난 1월 이산가족 상봉을 다시 하자고 제안한 것은 전에 없던 가벼운 행동”이라며 “강온 전략도 김정은의 변덕 때문이 아닌가 싶다. 북한의 정책 결정 과정이 김정일 시대와는 다른 게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김연철 교수는 “대결에서 대화로, 대화에서 대결로 가는 과정이 조울증처럼 빠르고 급격하다”며 “젊은 지도자의 경험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영종 중앙일보 외교안보팀장 역시 “김정은의 미숙한 리더십을 보여주는 예”라며 “나름으로는 전략적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외교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대남 열등감이 발현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의 전략적인 행보라고 판단하는 의견도 있다. 당분간 계속 이렇게 갈 것이란 얘기다. 홍현익 위원은 “북한은 남북 관계를 진정·개선하기보다는 요구하는 것을 받아준다면 가볼 생각으로 (강온 전략을) 시도하는 것”이라며 “원하는 것을 못 얻으면 결국 도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무진 교수는 “한반도 문제를 논의할 대화 모드와 대결 모드가 모두 준비됐다는 것을 북한이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최주활 회장은 “혹자는 3~4년 안에 김정은이 붕괴된다고 하지만, 김정은 체제는 더욱 공고화될 것”이라며 “강온 전략 역시 김정은 권력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고유환 교수는 “회의를 많이 하는 김정은 체제에서는 지도 집단이 공동으로 움직인다고 볼 수 있다. 자기 방식의 통치 스타일을 가지고 결속을 하기 위해 카드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한반도에서의 무력 충돌 가능성은?

국민의 최대 관심은 역시 한반도에서 전면전이나 국지전 같은 무력 충돌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에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번 무인기 정찰을 포함한 공격 자체가 전쟁 등 무력 충돌을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북한의 ‘견제’나 ‘과시’가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윤걸 소장은 “북한도 지금은 충돌할 상황이 아니라고 본다”며 “괜한 엄포를 놓아 남측을 혼란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고유환 교수는 “무력 충돌은 정리 단계”라며 “(우리가) 자극하지 않으면 무력으로 충돌할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현 교수는 “북한이 자기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공갈협박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을출 교수는 “전쟁은 곧 북한의 몰락을 예고하는 것인 만큼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장용석 연구원은 “북한에 전쟁은 자살 행위지만, 그래도 무력 충돌에는 대비해야 한다”며 “우발적 사건들이 규모 있는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계했다.

반면 남북 간 무력 충돌 가능성이 가시적으로 보인다는 견해도 있다. 정성장 위원은 “무인 비행기를 검은색으로 도색해 밤에 청와대를 공격하면 눈에 보이겠느냐”며 “생각지도 못했던 무인기 테러 가능성이 눈에 보이는 상황이다. 안보 위협을 생각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양욱 위원은 “북한은 근본적으로 비대칭 전력을 추구했기 때문에 무력 충돌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며 “최악의 경우 그들은 군사적인 모험주의를 감행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설문 인터뷰에 응한 북한문제 전문가 18인>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 교수, 김동현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교수,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박승준 중국 푸단대 국제문제연구원 방문교수,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양욱 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이승열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연구위원, 이영종 중앙일보 외교안보팀장,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소장,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최주활 탈북자동지회 회장,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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