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7인회’가 통일 대박론 조정하나
  • 이영종│중앙일보 외교안보팀장 ()
  • 승인 2014.04.0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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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등 역할…통일준비위 부위원장 인선 관심

드레스덴에서 나온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제안이 험난한 파도에 부닥쳤다. 지난 3월28일 독일 방문길에 들른 옛 동독 드레스덴 공대에서 북한 영·유아 지원 사업을 비롯한 3대 제의를 던졌지만 북한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이것저것 모은 잡동사니”라는 것이다. 북한은 이틀 뒤인 30일 외무성을 통해 4차 핵실험 가능성을 거론하고 그 다음 날에는 서해 백령도 인근 북방한계선(NLL) 인근 수역으로 포사격을 가했다. 일부 포탄이 남측 수역으로 떨어지는 일촉즉발의 긴장 상태가 벌어졌다. 연초부터 ‘북남 관계 분위기’를 강조하면서 대남 평화 공세를 파상적으로 펼쳐온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은 4월1일 백두산을 찾아 “조선반도 정세가 매우 엄중하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상황은 남북이 극심한 대치 상황으로 치닫던 지난해 3~4월 정국으로 회귀한 분위기다. 2월14일 판문점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청와대와 북한 국방위가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해 적극 노력한다”고 합의한 건 백지장이 돼버린 듯하다. 일각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에 대해 가타부타 답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리자 핵실험 등 일련의 카드를 빼들어 헝클어버렸다는 관측을 제기한다. 사실상 거부라는 답안지를 내민 것이란 얘기다.

3월31일 북한의 서해상 포사격 훈련과 관련해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회의가 긴급 소집됐다. ⓒ 연합뉴스
하지만 정부 대북 부처 당국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통일부 핵심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제안은 당장 뭘 주고받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박근혜정부 대북 구상의 핵심을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반응이나 박 대통령에 대한 그들의 인신공격 등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대북 구상의 이행 계획을 구체화하고 좀 더 큰 틀에서 남북 관계 관리와 통일 대비 프로젝트를 차분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게 청와대와 정부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통준위, 통일 관련 컨트롤타워 역할 할 듯

이런 정부 움직임의 한가운데에 통일준비위원회(통준위)가 자리하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대북 기조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올 들어 박 대통령이 띄운 ‘통일 대박론’에다 드레스덴 선언 이행 문제까지 총괄하는 추진체다. 박 대통령이 신년 연설에서 처음 언급한 이 기구의 윤곽이 드러난 건 지난 3월14일이다. 청와대와 정부 유관 부처는 물론 민간까지 함께 참여하는 조직이지만 구성안은 막판까지 철통 보안에 부쳐졌다. 대북 주무 부처인 통일부 정책실조차 당일 아침 국가안보실의 언론 브리핑 지시를 받은 뒤에야 구체적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할 정도다. 통준위 구성의 핵심은 박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는다는 점이다. 통준위는 통일 전략을 수립하고 부처 간 조율을 담당하는 ‘통일 관련 컨트롤타워’로 볼 수 있다. 통일에 대한 국민 여론 통합 등의 역할도 맡는데, 그 총사령관을 박 대통령이 맡아 전면에서 주도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통준위는 50인 이내의 정부·민간 위원으로 구성된다. 위원장이 지명하는 부위원장은 정부와 민간에서 1명씩 맡는다. 통준위 구성은 현재 막판 인선 작업이 한창인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 당국자는 “전성훈 전 원장이 청와대 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공석이 된 통일연구원장 인선을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속전속결로 진행해 최진욱 박사를 임명한 것도 통일연구원장이 통준위 당연직 멤버로 참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책연구기관장 임용도 통준위 구성을 염두에 두고 진행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맡는 위원장을 제외하고 통준위를 사실상 이끌게 되는 당국·민간 부위원장 자리를 누가 맡느냐를 놓고 치열한 물밑 탐색전과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관계 부처 당국자의 말이다. 하영선 서울대 교수와 유호열 고려대 교수, 김영수 서강대 교수 등 오랜 기간 북한 및 외교안보 분야에 종사해온 전문가 그룹이 민간 부위원장 물망에 오르내린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박근혜정부 인수위 멤버로 초대 통일부장관 물망에 올랐던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가 발탁될 것이란 말도 나온다. 그는 1년여의 잠행을 접고 최근 세미나 등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부적절한 대북 접촉설 등 불미스러운 사태로 낙마한 만큼 요직 기용이 어려울 것이란 견해도 만만치 않다.

남재준 국정원장과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왼쪽부터). ⓒ 시사저널 이종현·중앙선관위 제공 제공
국정원, 대북 정보 수시로 청와대에 보고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구상 추진과 통준위 운용과 관련해서는 드러난 구성원보다 ‘보이지 않는 손’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베일에 싸인 박 대통령의 대북·통일 정책 ‘책사’가 누구냐는 게 핵심이란 얘기다. 가장 주목받는 건 박 대통령의 자문 그룹으로 알려진 원로 모임 ‘7인회’다. 김기춘 청와대비서실장과 강창희 국회의장,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김용환·김용갑 새누리당 상임고문, 안병훈 도서출판 기파랑 대표가 멤버다. 특히 현 수석부의장은 박 대통령의 독일 방문과 관련해 명망 있는 전문가들과 함께 극비리에 방문 지역 선정과 그곳에서 던질 통일 관련 메시지, 대북 제안 내용 등을 담은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관계자는 “최병렬 전 대표가 통준위 부위원장 등 핵심 요직을 맡게 될 것이란 얘기가 여의도 정가를 중심으로 떠돌고 있다”고 전했다. 7인회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고 그것이 통준위 인선에도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의 역할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국정원 댓글 사건 때 보여준 박 대통령의 남 원장에 대한 애착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 조작 의혹’ 파문에도 불구하고 식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정원의 막강한 대북 정보를 바탕으로 남 원장이 박 대통령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다른 쪽에서는 보수적 성향의 남 원장과 국정원이 북한 체제 붕괴론 등을 기반으로 박 대통령에게 대북 정보와 분석 자료를 보고함으로써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도 내놓는다. 

연초 북한이 유화 국면을 조성함으로써 순항할 것 같던 남북 관계는 다시 기로에 섰다. 4월 남북 관계 기상도에는 먹구름만 가득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도발 본능’을 표면화함으로써 남북 관계는 상당 기간 출구를 찾기 어려울 전망이다. 추가 핵실험이나 서해상 군사 도발이 현실화할 경우 한반도 정세는 요동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강경 선회는 박근혜정부에 대한 불만과 함께 미국·중국 등에 대한 시위 성격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북한 비핵화’에 공감하고, 북한의 노동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유엔 대북 성명에 중국이 동참해 만장일치란 결과가 나오자 발끈한 것이란 진단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드레스덴 대북 제안과 통준위 구성이란 수레의 두 바퀴를 굴려가야 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신뢰하기 어려운 존재인 북한을 대상으로 ‘신뢰 프로세스’를 펼쳐가야 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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