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 조작 논란과 관련해 시사저널이 지난 2월25일자에 단독 보도한 검찰 측 증거 서류의 팩스번호가 이번 사건의 핵심 열쇠로 떠오르고 있다(시사저널 1271호 ‘9680-2000은 스팸번호’ 기사 참조). 국정원은 물론, 당시 간첩 사건 수사를 진행한 검찰까지 모두 치명타를 입을 수 있는 사안이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알려진 대로 검찰은 똑같은 내용의 중국 허룽 시 공안국의 ‘사실 확인서’를 두 차례에 걸쳐 법원에 증거 자료로 냈다. 두 증거 자료에서 다른 점은 팩스번호뿐이었다. 첫 번째 제출한 문서의 팩스번호는 ‘96802000’이었다. 두 번째 제출 문서에는 ‘043342236××’가 찍혀 있었다. 확인 결과, 앞의 것은 중국에서 스팸번호로 흔히 쓰이는 번호였고, 뒤의 것은 허룽 시 공안국 대표전화번호였다.
증거 조작 가담 세력들에겐 뼈아픈 실수
서로 다른 팩스번호 문서 논란은 해당 사건을 담당한 검사들의 ‘사전 인지 가능성’을 높여준다. 검찰은 지난해 12월5일과 13일에 각각 스팸번호가 찍힌 문서와 허룽 시 공안국 팩스번호가 찍힌 문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똑같은 내용의 증거를 두 차례 제출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증거 조작을 검찰과 국정원이 공모해서 한 게 아니라 국정원 단독으로 수행한 증거가 된다는 시각도 있다. 수사 검사들이 처음부터 증거 위조에 가담했다면 스팸번호가 찍힌 팩스는 법원에 제출하지 않고 두 번째 문서만 제출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사들이 조작된 사실을 알고도 그렇게 했는지, 모르고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어느 경우든 검찰은 책임을 피하기 힘들다. 알았다면 증거 조작을 방조한 것이고, 몰랐다면 증거 식별 능력에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본지가 최초 보도한 ‘팩스번호’ 문제는 증거 조작에 가담했던 세력에게는 뼈아픈 실수로 기록됐다. 당초 조선족 협력자의 단독 소행으로 정리될 뻔했으나 ‘팩스번호’ 출처가 드러나면서 국정원의 조직적 가담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부실한 검찰 수사도 도마에 올랐다.